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 ‘창비시선 200’ 기념 특집
마종기 馬鍾基
1939년 서울 출생.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평균율』 『이슬의 눈』 등이 있음.
저녁 풍경화
1
추우시지요, 어머니
80을 훨씬 넘기신
앙상한 어깨에 손 얹으면
숨 멎듯이 내 목에 차오는 냉기,
어머니는 먼데 눈길 보내시며
환갑 넘은 아들의 손을 쓸어주신다.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는걸.
해는 벌써 저만치에 지고
가슴 아픈 새가 가지를 떠난다.
일어나세요, 너무 늦었습니다.
힘없이 고개 숙이시는 작은 떨림.
2
떠나지 말았어야 했나,
정말 참고 견뎌냈어야 했나,
매질과 욕질에 질리지 말고
그냥 당하고 삼켜버렸어야 했나.
실망과 모멸감과 억울함보다
나라와 친구가 중하다는 것을
내가 그때 정말로 몰랐던 탓일까.
세월은 참 빨리도 갔네요, 어머니
저기 또 내가 몰랐던 일몰의 장엄,
아, 내가 진정으로 몰랐던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내게 주는
따뜻한 당신의 눈물 한줄기.
가을의 율동
잭슨 폴락 전시회
많이 아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것보다 더 아픈,
황홀하고 어지러운 밤낮의 취기에서
뛰어나가 헤매며 머리 부딪쳐 피 흘리는
맹목의 밤벌레의 울음처럼, 착각처럼
허기져서 목숨 털어내는 날개들의 혼돈.
한순간에 타 죽어버리는 극치의 폭발처럼
뜨거운 열망의 거부처럼, 절망의 미궁처럼
너무도 대상이 없는 도시를 채워가는 길.
어려운 길들의 생애처럼, 버려진 기도처럼
그 길에서 떨어져내린 침묵처럼, 우수처럼
별들이 환한 밤에는 두 손에 느껴지는 네 혼,
숨어사는 작은 꽃의 소용돌이 숨소리.
내일은 또다른 색깔의 아픔이라고 했던가,
누워 있는 넓은 화폭에 다시 붙는 이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