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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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송기숙 宋基淑

1935년 전남 장흥 출생. 『현대문학』에 1965년 문학평론, 66년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오월의 미소』 『녹두장군』 등이 있음. hoesan@hanmir.com

 

 

 

길 아래서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 아녀

─황지우 「발작」에서

 

 

아무리 고개를 내둘러도 작년까지 다니던 옛 도로가 보이지 않았다. 고속버스는 새로 난 사차선 고속도로를 날듯이 달리고, 김주호씨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옛 이차선 길을 찾아 눈을 번득였다. 이따금 멀리 가까이 옛 도로가 한두 군데 보였지만, 그 도로가 일반도로로 이어졌는지 그냥 버려져 있는지 그런 걸 좀 보려 하면 금방 길이 높이 떠오르거나 가드레일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해운사를 다니느라 일년에 두세 번씩 사십여년을 다닌 길이었다. 그 이차선 도로를 다니며 이 고속도로 공사하는 걸 볼 적에는 공사 지역이 거의가 험한 산악지대라, 저리 가면 높은 산이고 저기는 아득한 계곡인데 어쩌자고 저런 데를 허무는지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름 전에 처음으로 이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굴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 곧게 뻗은 길이 여간 시원스런 게 아니었고, 이런 길이 아주 옛날부터 이렇게 예정되어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두루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오래 다니던 예전 도로가 보이지 않자, 어디 딴세상에서 허공이라도 날아가는 것처럼 좀 황당하달까, 여태 해운사에 갈 때마다 품고 다니던 직심을 버리고 껄렁하게 가는 것 같아 좀 머쓱한 기분이었다.

버스가 멈췄다. 이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고속도로 군데군데 있는 간이정류장에 멈추는 일반고속이었다. 해운사 가는 완행버스 정류장은 고속도로 바로 아래 있었다.

김주호씨가 해마다 해운사에 다니며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한가지는 뒷간 치는 일, 말하자면 화장실 청소였고, 또 한가지는 제사 지내는 일이었다. 뒷간 일은 지난 가을에 해버렸고 오늘은 제사 지내러 가는 길이었다. 금년부터는 일이 한가지 더 생기기는 했다. 절 근처 묵정밭을 일궈 남새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가 왔다. 시골버스답게 천천히 와서 천천히 멈췄고 천천히 출발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의자에 등을 기대자 자기도 모르게 염불이 새어나왔다. 오십여년 전, 병사들을 가득 실은 군 트럭이 한밤중에 낭떠러지에서 개울로 굴러떨어진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쾅, 쾅, 쾅.

해운사에서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달게 자고 있는데 비상이 걸렸다. 그때 운전병이던 김씨는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속삭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거기서 십리쯤 되는 동네에 빨치들이 십여명이나 잠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외삼촌이 두목인 그 지역 출신 빨치들일 게 뻔했다. 거기에는 자기 형님도 끼여 있었다. 어둠속에서 낮은 소리로 소대장의 지시가 다급하게 오갔다. 일개 소대 병력이 전부 출동할 모양이었다. 그들은 거의 몰살 당할 판이었다. 이 일을 어쩐다? 가다가 트럭을 어디다 처박아버릴까? 그래, 바로 그거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처박아버릴 맞춤한 장소까지 떠올랐다. 주먹을 사려쥐었다.

지금 멈춰 있는 출동지점에서 조금 가다가 비탈길을 십여 미터쯤 내려가면 길이 거의 직각으로 꺾이면서 그 아래는 서너 길이나 아득한 낭떠러지였고, 거기서 한참 더 내려가면 개울이 길 곁으로 바짝 가까워지며 바닥이 얕아진다. 거기다 처박을 참이었다. 그러면 병사들은 별로 다치지 않을 것이고 차는 제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사고원인은 운전 부주의일 것이고 운전 부주의는 과실죄일 뿐이다. 나는 운전교육도 속성이었고 운전경력도 겨우 이개월, 그나마 지프를 몰다가 트럭은 사흘 전에 이 부대로 전속 와서 처음이었다. 징역을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이를 악물었다. 운전석에 오르자 가슴이 뛰며 몸뚱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바삐 날고 있는 먹구름 사이로 언뜻번뜻 스치는 달이 형님과 외삼촌 쪽으로 숨가쁘게 내닫고 있었다.

“출발!”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조수석으로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기어를 넣고 액쎌을 밟았다. 부르릉, 차가 움직였다. 가슴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비탈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소대장이 어깨를 툭 쳤다. 예? 소스라치게 놀랐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쌔꺄, 조심하란 말이야. 예, 예. 큰 소리로 대답하며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어라, 잘못 밟았나? 발을 옮겨 힘껏 밟았다. 부르릉, 차가 거세게 내달았다. 아이고매. 쌔꺄. 소대장과 선임하사의 고함소리가 찢어졌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그러나 트럭은 이미 허공에 떴고 핸들을 꺾었기 때문에 트럭 한쪽이 낭떠러지로 휘청 쏠리고 있었다. 쾅, 쾅, 쾅.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비롯한 다섯명이 즉사하고, 반 이상이 중상이었다. 김씨는 정강이뼈가 부러졌으나 그런 건 부상 축에도 들지 않았다. 엄청난 사고였다. 병원은 수라장이었다. 찢어지는 고함소리, 기어들어가는 신음소리. 그때 비명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김씨 볼에서 불이 났다. 너도 죽어, 이 쌔꺄. 죽어, 죽어, 죽어. 김씨는 그 병사를 빤히 쳐다보며 얼굴을 그대로 맡기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니, 엔진이라도 멈추듯 숨이 딸각 멈춰버리고 몸뚱이는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렸으면 싶었다.

김씨는 부상자들을 피해 격리 수용되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계호하는 헌병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동네에 빨치들이 들었다는 건 거짓정보였다는 것이다. 거짓정보? 그럼 그런 맹랑한 거짓정보에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꼴이 됐단 말인가? 아니, 그러니까 결국 내가 그런 거짓정보에 놀아나 이렇게 많이 죽이고 병신을 만든 게 아닌가? 차가 굴러떨어진 건 브레이크 탓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트럭을 개울에다 처박아버리겠다고 작정한 다음부터는 너무도 겁에 질려 군화끈을 맨다면서도 치렁치렁 끌고 운전석에 올랐고 곁에서 하는 소대장의 말소리도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던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전날 저녁 정비병이 정비를 한 다음 출동지점으로 이동할 때까지도 멀쩡했으며 그 뒤로는 움직인 적이 없었다. 겁에 질려 브레이크를 헛밟았던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내가 그렇게 당황하지만 않았더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쪽 언덕에다 박아버릴 수가 있었다. 죽으라고 고함치던 병사의 악다구니가 살아왔다.

그랬다. 자살밖에는 길이 없었다. 생사람을 이렇게 많이 죽여놓고 브레이크가 어쩌고저쩌고 능청을 떨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사관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한겨울 논고랑의 꿩이 떠올랐다. 얼갈이해놓은 논고랑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꿩을 향해 느닷없이 돌팔매질을 하며 쫓아갔다. 꿩은 갑작스런 공격에 후닥탁 날개를 퍼덕이며 논고랑으로 도망치다가 사뭇 다급해지자 벼락덩이 밑에다 고개를 처박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좁은 고랑이라 날개가 양쪽 두둑에 부딪쳐 날아오르지 못하고 제깐에는 숨는답시고 그렇게 고개만 처박고 있었던 것이다.

자살 결심을 굳히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바로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자살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므로 수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사관은 꼬치꼬치 파고들었으나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비병까지 졸경을 치를 텐데 어차피 죽기로 작정한 마당에 정비병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비병이 정비를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수였을 것이므로 그의 실수까지 안아버리고 싶었다.

치료가 어지간해지자 헌병대 영창으로 이송되었다. 노끈까지 준비해놓고 자살 기회를 노렸으나 쉽지 않았다. 영창 헌병들의 계호임무는 탈옥 다음으로는 자해와 자살 방지가 중요 임무였다. 목숨 끊는 것쯤 마음 하나 먹기에 달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죽을 기회를 얻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욕구가 너무 절실했다. 죄값은 우선 징역으로 치르고, 살면서 두고두고 치르겠다고 작정했다. 징역은 이년이 선고되어 이년을 다소곳이 살고 불명예 제대를 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그 아우성과 신음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군 트럭만 봐도 소름이 끼치고 꿈속에서도 시뻘겋게 피를 뒤집어쓴 병사들이 아우성을 치며 허우적거렸다. 십여년이 지날 무렵 세월도 약이겠거니 싶어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첫날밤, 느닷없이 쾅, 쾅 소리가 귀를 찢으며 아랫도리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나대도 살아날 줄을 몰랐다.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고 신부는 눈물을 흘렸다. 자기 주변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던 원혼들이 그렇게 달려든 것 같았다.

그 달음으로 집을 나가 정처없이 떠돌았다. 노동판에서 막일을 하다, 산판 벌목 인부로 산속에 깊숙이 처박히다, 안강망 어선을 타고 아득한 바다에 묻히다, 그렇게 몸을 굴리기를 일년도 훨씬 더 한 어느날이었다. 술잔을 앞에 놓고 멀리 피워올린 담배연기 속에 갑자기 해운사가 어른거렸다. 해운사, 거기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쪽을 향해서는 자세도 바로 할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갈 데는 거기밖에 없을 것 같았다. 가서 어쩌자는 무슨 방도가 떠오른 것도 아니었으나 거기를 가야 어떻게든 무슨 규정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기 가면 대번에 우광쾅 날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얼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마음을 사려먹고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처럼 뒤를 당겨 해운사로 향했다.

해운사는 길이며 숲이며 옛 모습 그대로였다. 두려웠던 깐으로는 발걸음이 쉬웠다. 트럭이 곤두박였던 낭떠러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옥을 내려다보듯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았다. 트럭이 옆구리를 박았던 바위는 옛 모습 그대로 개울 한가운데 버티고 있고 그 양쪽으로 개울물이 맑게 흐르고 있었다. 멀리 일주문이 보였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문 앞에 이르렀다. 더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서성거렸다. 두렵다기보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절은 아무나 들어가는 데가 아니더냐고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여기서 돌아서면 자기는 영영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디 쓰레기 더미나 후미진 산자락 돌무더기 같은 데서 거리귀신이 되고 말 것 같았다.

담배만 뻐금거리며 서성거리다 길가 바윗돌에 엉덩이를 내려놨다. 멍청하게 앉아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걸퍽진 웃음소리와 함께 환상처럼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술이 곤드레 취한 사람들이 저쪽에서 깔깔거리며 쇠스랑으로 무얼 꺼내고 있었다. 김씨 눈에 힘이 오르기 시작했다. 옛날 여기서 며칠간 주둔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가까이 가자 오물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장실에서 오물을 꺼내고 있었다.

이 절은 큰 절이라 화장실의 규모도 컸지만 규모보다 그 구조가 여간 그럴싸한 게 아니었다. 누구든지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예사 화장실이거니 하고 무심하게 들어갔다가 일을 보고 나올 때는 신기한 눈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고, 유심히 뜯어본 사람들은 건물의 구조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일은 세 사람이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승복을 입었지만 머리를 기른 게 불목하니 같았고 다른 두 사람은 삯일꾼인 듯했다. 그들은 화장실 바닥 안쪽에 두엄처럼 쌓여 있는 오물을 평지로 꺼내고 있었다. 오물은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꺼냈다.

“나도 일 좀 합시다. 그냥 해드리지요.”

김씨는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내던지며 대번에 웃통을 벗었다. 곁에 있는 쇠스랑을 집어들자 일꾼들은 머쓱한 눈으로 김씨를 건너다봤다.

“허허. 어디서 죄를 많이 짓고 댕기다 온 사람 같은디, 이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오. 당장 이 독한 냄새 때문에 코피가 터져요. 그런 직심이면 기왕 절에까지 왔겄다, 부처님 앞에 나가서 불공이나 드리시오.”

늙수그레한 일꾼이 껄껄 웃으며 핀잔을 던졌다.

“불공은 불공이고 어디 한번 해봅시다.”

더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쇠스랑으로 오물을 찍었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를 찌른다는 말이 정말 찌르는 그대로라 하게 독했다. 냄새가 독하면 독할수록 이거야말로 내가 할 일이다 싶었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그악스레 쇠스랑을 찍어 끌어당겼다. 일꾼들은 연방 키득거렸다. 얼마나 가나 보자는 가락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웃음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억척도 억척이지만 그들 가락에 맞춰 일 후리는 솜씨가 쌍절구질에 욱이는 손 들락거리듯 하는 게 어정잡이가 아니구나 싶은 모양이었다.

요사채와 길을 사이에 두고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뒷간은, 그 구조를 위에서 보면 군대 야전변소 모양으로 세 면만 칸을 막은 그런 칸막이가 남녀용을 합쳐 이십여개였고, 오물은 서너 길 아래 건물 뒷기둥의 주춧돌과 평면을 이르고 있는 바닥에 떨어졌으며, 그 바닥은 그 주춧돌 밖의 평지로 널찍하게 이어졌다. 그 평지에서 건물을 쳐다보면 일을 보는 칸막이 바닥의 한단 아래는 건물 뒤쪽이 모두 훤하게 터져 있었다. 사람들이 일을 보는 곳은 이렇게 위아래 사방이 시원하게 터져,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대로 건물을 통과하므로 바람이 웬만치만 불어도 엉덩이가 이만저만 시원한 게 아니었다. 바닥에 오물이 쌓이면 그때마다 풀을 베다 덮기 때문에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에 냄새는 냄새대로 날아가버리고 오물은 오물대로 말라 두엄이 되었다. 그걸 일년에 한번씩 이렇게 꺼내서 바짝 말리면 두엄으로는 이만한 알짜배기 두엄이 없다는 것이다. 바짝 말리므로 밭으로 내기도 쉬우려니와 옛날 기생충이 많을 때도 기생충 알은 거의 말라버렸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화장실이라기보다 뒷간이라 해야 제격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화장실’이란 표찰말고 따로 허름한 판자에다 옛 모양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ᄭᅡᆫ뒤’라 쓴 표찰을 따로 하나 달아놨다. 예사롭게 일을 보고 나오던 사람들은 건물의 독특한 구조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깐뒤?’ 하며 걸음을 멈추기 십상이었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뒤깐?’ ‘깐뒤?’ ‘깐디?’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웃다 또 한참 떠들썩했다.

“쉬었다 합시다.”

불목하니가 소리를 질렀다. 모두 땀을 닦으며 연장을 놨다.

“당신, 어디서 이런 뒷간만 치다 왔소 으쨌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등마는 이러다가는 우리들 이 알량한 일감 떨어지게 생겼소.”

나이 지긋한 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불목하니는 이 잔은 당신이 먼저 받으라며, 김씨한테 소주잔을 디밀었다. 김씨는 손을 저었으나 한사코 들이댔다.

“뒷간 치는 데 손 모셔오기가 부처님 모셔오기보다 어렵더니 지옥에 납신 지장보살님도 아니고 살다본게 당신 같은 사람도 있소그랴.”

김씨는 가지밭에 든 놈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술을 받았다.

“저, 피!”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김씨는 깜짝 놀랐다. 말간 소주잔에 핏방울이 벌겋게 퍼졌다. 모두 까르르 웃었다. 불목하니가 잽싸게 그의 얼굴을 공중으로 젖히며 뒤통수를 두들겼다. 일꾼 한 사람은 쑥을 뜯어다 비벼서 내밀고, 다른 사람은 오물에서 하얀 뒤지를 추려 깨끗한 데만 골라 코 주변을 수습해주었다.

“송충이가 갈잎을 묵어도 함부로 묵으먼 동티가 나도 그렇게 험하게 나는 거요.”

“맞소. 갈잎도 갈잎이요마는 술을 마시면서 뒷간 터주대감을 몰라봤더니 그 동티까지 겹친 것 같소. 쇠뿔도 각각 염불도 몫몫이라고 내 몫으로 고시레를 해야겠소.”

김씨는 너스레를 떨며 소주병을 가져다 새로 술을 따랐다.

“뒷간 터주대감님, 내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술 받으시오. 고시레!”

걸쭉하게 너스레를 떨며 여기저기 고루 뿌렸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불문곡직 뛰어들어 부라퀴처럼 나내던 깐으로는 너름새가 제법이다 싶은지 모두 누런 이빨을 있는 대로 내놓고 웃었다. 김씨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없는 주변에 이런 익살을 부려본 것도 집 나오고 처음이었다. 그는 다음날 마지막으로 풀을 베어 바닥에 깔 때까지 들숨날숨이 없었다. 일을 끝내고 나자 어디 창자 속에 더께더께 끼였던 오물이라도 씻겨나간 기분이었다.

김씨는 뒷간 일이 끝난 다음에도 불목하니를 따라 수굿하게 나무도 해 나르고, 장작도 패고, 새벽같이 일어나 절간 구석구석 비질도 하고, 입안에 혀 놀듯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보살할미며 절식구들 운김에 쌓여 새벽예불에도 나가 그들 곁에 다소곳이 서서 조심스레 예불 흉내도 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지내는 사이 절 물정도 방불하게 가늠이 잡혀가고 있었다. 이끝저끝 뒤얽히는 생각에 밤중까지 잠을 설치다가 그날따라 유난히 은은하게 다가드는 풍경소리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풀벌레들도 숨을 죽인 한밤중의 적요 속에 한군데 법당만 안온하게 불빛을 안고 있었다. 부처님이 이리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손짓에 이끌리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천천히 법당 앞으로 갔다. 옆문 큼직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무겁게 문이 열리고 부처님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얼마 전에 삼천배 하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달음으로 연거푸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예불에 나가 절을 하면서도 강아지 머루 먹듯 건성으로 흉내만 냈던 터라 손놀림 발놀림이 제대로 예모에 맞는 것인지 두루 졸밋거렸으나 절을 하고 나서 부처님을 쳐다보면 그때마다 제대로 절을 받아주고 계신 것 같아 적이 안심이었다. 한참 절을 하다가 그쪽으로도 정신이 들어 절을 할 때마다 절 수를 세기 시작했다. 백 자리, 이백 자리, 삼백 자리를 넘어서자 다리가 꼬이고 허리가 휘어질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더 정성스레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다시 시작할 때는 불목하니와 보살할미가 시중을 들어주었다. 그들이 보살피자 새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젖 먹은 힘까지 짜내어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굽혔다. 마치 악귀들이 발목을 붙잡고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으나, 그 지옥에서 기어나오듯 아득바득 삼천배를 마쳤다. 온몸의 뼈마디가 따로따로 떨어진 것 같고 몸뚱이는 물먹은 빨래뭉텅이 꼴로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한 구실 했다는 생각에 눌렸던 마음은 물위의 낙엽처럼 가벼웠다.

잠부터 푹 잤다. 몸이 풀리자 오랜만에 집 생각이 났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년도 넘게 소식 한마디 전하지 않았다. 신부는 진작 친정으로 돌아갔겠지만 식구들은 또 얼마나 애를 태웠겠는가? 갖가지 생각이 꼬여들며 마음이 다급해졌다. 열흘 묵은 나그네 하룻길 바빠하더라고 다음날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식구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 듯 놀랐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신부는 넋 나간 눈으로 빤히 보고 있다가 얼굴을 싸안고 부엌으로 달아났다. 식구들은, 그동안 몸은 성했느냐, 어쩌면 그렇게 소식 한장 없었느냐, 어느 순간에 또 훌쩍 일어설지 몰라 슬슬 눈치 살피며 타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게 매양 변죽만 울리며 베돌았고, 김씨는 주눅이 들면 쥐여주는 말도 제대로 비벼내지 못하는 주변머리라 붙잡혀온 두꺼비처럼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밤이 되어 아내와 한방에 들자 서로가 떨어져나갔던 몸뚱이 다른 한쪽이라도 찾은 듯 복받치는 눈물을 주체 못하며 끌어안았다가 다시 안고 고쳐서 안기를 거듭하며, 곡절이 너무 컸던 다음이라 뒤얽히는 구름과 쏟아지는 비의 조화가 여름 한낮 소나기처럼 질퍽하였다.

김씨는 그 뒤로도 해마다 해운사 뒷간 일을 계속했다. 벌써 사십여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았고, 그 일에는 두루 미립이 나서 절에서도 그 일이라면 밑 빠진 가마솥 두고 땜장이 기다리듯 그가 올 때까지 일을 물려두고 있었다. 뒷간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김씨는 그때 억울하게 죽은 병사들 극락왕생을 비는 제사 예불도 올리기 시작했다. 제사라야 절에서 간단하게 마련한 제물을 차려놓고 한밤중에 혼자 예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 제삿날이 오늘이었다. 사고가 났던 날은 며칠 전이었으나 사고 이삼일 뒤에까지 병사들이 죽었으므로 제삿날을 그만큼 늦춰 잡은 것이다. 제물은 이미 보살할미한테 전화로 부탁을 해놨다. 보살할미는 요사이 유독 김씨 말이라면 무작정 예예,였다. 전에도 그랬지만 얼마 전 남새밭을 가꾸면서부터는 더했다.

한때 스님이 천명도 넘었다는 이 절은 옛날에는 사답도 사답이었지만 절 주변 산자락에 남새밭도 질펀하여 철따라 갖가지 채소는 물론이고 가을 김장까지 그 많은 대중이 먹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자에는 그 넓고 기름진 땅이 폐갓집 마당처럼 잡초만 우거지고 있었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무야 배추야 고루 가꿨으나 요사이는 스님들이 손에 흙이라면 노소간에 고개를 내두루는데다, 삯일꾼들도 삯에 밥에 술에 그 돈도 만만찮고 비료값에 약값까지 계산하면 사다 먹는 게 되레 낫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농사일이 손에 익은 김씨는 전부터 오목조목 산자락마다 묵어 있는 묵정밭으로만 눈이 끌리던 차에, 보살할미가 저 좋은 땅 놔두고 겉절이 상추 한주먹까지 농약으로 뒤발한 시장 거라야 맛이더냐고 푸념하는 소리에 당장 연장을 메고 나섰던 것이다. 오래 묵었던 땅이라 연장을 대자 팥고물처럼 부드러운 흙이 갖고 놀고 싶게 부드럽더니 상추가 땅심을 타기 시작하자 소리라도 지르듯 솟아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소나기가 한줄기 지나가는 바람에 상점에서 비를 그었다. 빗줄기가 제법 거세더니 금방 그쳤다.

“처사니임!”

등에 책가방을 짊어진 예닐곱살짜리 동자승이 김씨를 부르며 저 아래서 달려왔다. 하얀 까까머리에 승복을 입은 동자승은, 더러 영화나 그림에 나오는 동자승 모양 그대로 살결이 보송보송하고 얼굴도 티없이 맑았다.

“아이고, 월정이구나. 내가 지금 우리 월정동자가 제일 먼저 반길 거다 하고 오는 참이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무관세음보살.”

월정은 새삼스럽게 두 발을 모으고 합장을 하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고, 김씨는 절에 별일 없느냐며 월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월정은 아무 일도 없다며 팔랑팔랑 앞장을 섰다.

이 아이는 여기 주지스님이 어디 여관에서 새벽길을 나서다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태도 자르지 않은 핏덩어리를 주워다 기른 아이였다. 그런 아이치고는 얼굴이 밝고 영특하기가 예사 아이가 아니어서 승속간에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끔직하게 아끼는 것 같았고, 또래들하고도 잘 얼려 이따금 여남은 명이 떼몰려와서 앞뒷산을 휘지르다가 우르르 몰려들어 절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처사님, 저것 좀 보세요. 지난번에 대학생들이 길가 나무에 죄다 저렇게 이름표를 달아놨거든요. 저기 바위 뒤에 껑충한 나무는 산가막살나무, 그 뒤에 작달막한 건 난티잎개암나무, 저 위에 저건 감태나무, 저기 껑충껑충 서 있는 것은 정금나무, 여기 요거는 그냥 딸기나무가 아니고 수리딸기나무, 저기 서로 엇갈려 자란 나무는 대팻집나무, 저것은 부처님이 그 밑에서 득도하셨다는 보리수나무.”

월정은 위아래로 손가락질을 하며 나무 이름을 줄줄이 불러댔다.

“나무 이름을 알게 되니까 나무들이 모두 갑자기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름을 부르면 좋아서 깔깔거리며 손을 흔드는 것 같거든요. 저기 저건 노린재나무거든요. 야, 노린재나무야. 나야, 나 월정이야. 저 보세요. 이파리로 손을 흔드는 것 같죠?”

월정은 깔깔 웃었다. 저건 신나무, 저건 개암나무, 저건 미역줄나무…… 영특한 아이라 벌써 나무 이름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처사님, 이게 무슨 나문지 아세요? 이렇게 작고 우습게 생겼지만 그래도 귀한 나무인지 이 나무한테도 이름표를 달아놨거든요. 이게 말발도리나무. 이름도 우습죠?”

바위가 잘게 벌어진 푸석돌 틈새에서 좀스럽게 자란 나무를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괴상스런 데서 옹색스레 자라는 나무답게 원줄기가 어느 것인지 모르게 여러 줄기가 모질게 자라고 있었다.

월정은 연달아 나무 이름을 부르며 어떤 나무한테는 어째서 다른 나무한테 기대느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나무한테는 이쪽 빈 데로 가지를 뻗으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김씨는 저만치 길 아래 낭떠러지가 가까워지자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개울 한가운데 트럭이 옆구리를 박았던 바위에 노랑할미새 한마리가 꼬리를 깝죽거리고 있었다. 할미새가 또 한마리 날아왔다. 걸음을 멈춘 김씨는 담뱃갑을 한참 헛만지다가 담배를 한개비 뽑아 불을 붙였다. 할미새는 꼬리를 깝죽거리며 바지런히 근처를 옮겨다녔고 김씨 눈은 한참 할미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저만치 가던 월정이 눈이 똥그래지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쪽 남새밭에 배추 많이 자랐는지 모르겠다.”

“많이 자랐어요. 보살할머니가 솎아다가 나물을 해먹고 있어요.”

“흐음. 땅심이 그렇게 실한 밭에서는 벌레도 별로 일지 않느니라.”

김씨는 금방 발걸음이 바빠졌다.

“처사님이 늘 드시던 방에는 열흘 전에 불공 손님이 한분 드셨는데 오늘 가셨을 거예요. 오늘 가신다고 어젯밤에 제사 예불을 드렸거든요.”

김씨는 법당과 요사채를 다녀와서 객사로 갔다. 방문 옆 마루 귀퉁이에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늘 간다던 손님이 아직 떠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씨는 방에다 가방을 던져놓고 남새밭으로 내달았다.

산굽이를 돌자 개울 건너 남새밭이 온통 연둣빛으로 파랬다. 김씨는 입이 벙그러졌다. 한창 물이 오른 배추는 아까 내린 소나기로 한결 더 싱싱했다. 배춧잎은 잎사귀마다 방울방울 물방울을 달고 소리라도 치듯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마루에 얹힌 해는 소나기 뒤의 맑은 햇살을 배추밭에만 쏟아붓는 것 같았고, 빗방울을 머금은 연둣빛 잎사귀는 햇살을 그대로 투과하듯 투명하고 고왔다. 배춧잎은 먼젓잎이고 나중잎이고 모두가 속잎처럼 부드러워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그대로 바스라질 듯 연해 보였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취한 듯이 배추밭을 보고 섰던 김씨는 낮은 소리로 우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실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혼자 웃었다. 김씨는 봄배추 잎사귀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생전 처음 본 것처럼 놀라웠고 그 순간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던 것이다. 돌아가신 지 이십년도 넘는 어머니였다.

김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몹시 원망한 적이 있었다. 남의 집에는 장독대나 남새밭 가에 접시꽃이며 맨드라미는 물론이고 어떤 집에는 모란에 장미에 철따라 갖가지 꽃들이 화려한데, 자기 집에는 그 흔해빠진 접시꽃이나 맨드라미 한그루도 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꽃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고 남새밭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땅만 나도 상추나 배추 따위 푸성귀만 넣었다. 그런 어머니가 무식하고 탐욕스럽게만 보여 김씨는 늘 지르퉁했고 까닭없이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던 김씨가 상추나 배추가 모란꽃이나 장미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적이 있었다. 상추나 배추라기보다 그런 푸성귀가 지니고 있는 초록빛이라는 색깔이 모란꽃이나 장미꽃의 빨간색이나 노란색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돌덩어리가 갑자기 금덩어리로 바뀐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고,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군 트럭 추락사건으로 헌병대 영창에 수감되어 있을 때였다. 두어 달 만에 처음으로 운동을 하라며 밖으로 내보냈다. 처음에는 깁스한 다리를 움직이기가 거북했고 그 다음에는 한달 가까이 장마가 들어, 그러니까 두달 동안이나 지하실의 그 음습하고 우중충한 공간에 갇혀 있다가 그날 처음으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햇볕 세상으로 나간 셈이었다.

목발을 짚고 복도를 지나 막 운동장으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멈추고 말았다. 하얀 담장 너머로 하늘을 찌르듯 껑충하게 솟은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무심하게만 보아온 버드나무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원색으로 하얀 담장 너머, 역시 원색으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껑충하게 솟은 버드나무의 초록색, 바람에 햇빛을 반짝이고 있는 그 초록색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는 그대로 멍청하게 서서 버드나무만 보고 있었다. 저 천한 버드나무의 저 흔해빠진 초록색이 도대체 이렇게도 아름다웠더란 말인가? 질척거리는 개울가 버려진 땅에 키만 껑충할 뿐 나무로서도 볼품이 없고 목재로도 쓰임새가 없는 저 버드나무가, 더구나 산과 들 온 세상을 전부 뒤덮고 있는 저 초록색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서 버드나무만 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새로 눈이 뜨인 것 같았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무슨 소중한 것을 새로 찾은 기분이었다. 뭐 하고 있느냐는 헌병의 핀잔에 잠시 걷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역시 아름다웠다. 화단에는 석류꽃과 달리아와 봉숭아가 피어 있었다. 그런 꽃들의 분홍색이나 노란색은 초록색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화사한 색조는 되레 잡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잡스러움, 이 또한 놀라운 일이어서 다시 비교해봤지만 역시 잡스러웠다. 도대체 이 흔해빠진 초록색이 어째서 이제야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목발을 짚은 채 운동시간 삼십분을 내내 버드나무만 바라보았다. 방에 들어오자 그 감동이 조금 가라앉으며 어머니가 떠올랐다. 옛날 남새밭에 배추나 시금치 따위 푸성귀만 심던 어머니를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 눈에는 푸성귀나 벼 보리 같은 곡식의 초록색이 맨드라미나 접시꽃은 물론이고 모란꽃이나 장미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을 것 같았다. 더구나 배추나 무나 시금치는 자식들과 먹고사는 푸성귀였으므로 그만큼 더 곱게 보였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사나흘 간격으로 면회를 다니고 있었고 바로 어제 다녀갔다. 어머니 생각과 함께 그보다 더 절박한 갈구가 있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초록색, 그 아름다운 초록색으로 충만한 이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때 처음으로 든 건 아니었다. 그 사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었지만 그때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왔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더이상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어디서 촐랑거리다 왔는지 다람쥐 한마리가 물푸레나무에 붙어 똥그란 눈알을 굴리며 김씨를 보고 있었다.

“으음. 그렇게 낮은 데로 다녀라, 낮은 데로. 청설모가 너희들 씨를 말린다고 텔레비에서 야단이더라.”

다람쥐는 대답이라도 하듯 깡총깡총 뛰어 가지에서 가지로 내달았다.

“안녕하십니까? 이 채전 가꾸시는 영감님이군요?”

그때 양복이 말쑥하고 신수가 훤해 보이는 영감이 저 위쪽 암자에서 내려오며 알은체를 했다. 영감님 말씀 많이 들었다며 홍아무개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영감님께서는 절에다 보시를 해도 크게 하고 계시더군요. 저하고 연세가 비슷한 것 같은데 뒷간 일만도 그토록 고되게 몸을 부리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쉬 뵐 줄 알았더라면 하루쯤 더 묵어가는걸, 허 참.”

월정이 말한 영감 같았다.

“나도 이 절하고 묘하게 연이 닿아 한 열흘 동안 부처님 앞에 참회를 했습니다. 헌데 이제 그런 연도 다한 것 같아 암자에까지 작별인사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홍씨는 묻잖은 말을 늘어놓으며 길가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연이 다 하시다시니요?”

김씨도 이쪽 바위에 앉으며 물었다.

“허허. 내 몸뚱이 사정이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암이란 놈이 내 간에다 차근하게 판을 벌려버렸어요.”

홍씨는 허허 웃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김씨는 멍한 눈으로 홍씨를 보고 있었다. 농까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었으나 웃음소리에는 짙은 공허가 깔리고 있었다. 그렇게 보아 그런지 언뜻 좋아 보이던 안색도 핏기가 없고 입술마저 까실까실 밭아 보이는 게 병색이 그런 모양으로 드러나 있는 것 같았다. 홍씨는 사이를 두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기 큰아들이 미국 큰 병원에 의사로 있는데 그가 어서 그리 오라고 사뭇 다그치는 바람에 미국까지 병 자랑을 하러 가게 생겼다고 또 쓸쓸하게 웃었다.

“내 몸속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더니, 아무래도 병세가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고향산천 구경하기 그른 것 같습니다.”

고향산천이란 말에 애조가 짙게 묻어났다.

“서울 처사님!”

그때 월정이 달려왔다. 금방 지사장님이라는 분한테서 전화가 왔다며 방금 차를 보냈다고 한다는 것이다. 홍씨는 알았다며 시계를 보았다.

“저승사자가 눈앞에 번득여서 그런지 어젯밤에는 저 동자 아이를 붙잡고 여태까지 혼자만 싸안고 있던 이야기를 죄다 털어놨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티가 없고 영특한 아이도 있는지……”

저 아이를 보면 속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여태까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꽁꽁 묻어두고 있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말길이 터지니까 그런지 영감님하고도 하룻밤쯤 함께 지내며 속에 있는 말을 죄다 털어놨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시간이 이렇게 엇갈렸다며 당장 떠나게 된 걸 거듭 아쉬워했다.

“우리 나이 또래는 내남적없이 세상을 살아도 험하게들 살아왔지요. 육이오 바로 뒤에 저 아래 낭떠러지에서 일어났던 군 트럭 전복사건 아시겠지요?”

느닷없는 소리에 김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홍씨는 김씨를 빤히 건너다보고 있었고, 김씨는 가슴이 벌떡거리며 숨이 가빠왔다. 자기가 그 사고의 장본인이라는 걸 알고 능청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 아, 알고 있지요.”

김씨는 홍씨 눈길을 피하며 떠듬거렸다. 홍씨는 눈길을 허공에 띄웠다. 김씨는 거세게 뛰는 가슴을 누르며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홍씨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너무도 처참했지요. 죽은 사람들은 기왕 죽은 사람들이었지만, 다친 사람들도 거의가 사람 구실 못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 죄가 너무 크지요, 크다마다.”

홍씨 말에는 애조가 넘쳐났고 푸석푸석한 얼굴은 한껏 처연해 보였다. 그는 김씨를 한참 보고 있다가 다시 허공에 눈길을 띄웠다. 내가 다 알고 있다. 그 나이에 숨길 게 뭐냐. 어서 털어놔라. 홍씨는 모든 걸 환히 알고 그렇게 숭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간암 이야기를 하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에둘러 이쪽 입에서 말을 뽑아내자는 수작이 아닌가 싶었다. 구렁이가 달걀을 먹을 때는 그게 도망치지 못하는 먹이라 한참 동안 오달지게 굴리며 천천히 삼킨 다음 기둥나무 같은 데다 몸뚱이를 감아 빠삭 으깬다던가. 김씨는 이제 속시원하게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마음을 도사렸다. 작심을 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사상, 허허. 그 사상.”

홍씨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한참 또 공허하게 웃었다.

“그 사상에 홀렸을 적에는 돈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은 모두 벌레로 보였지요. 그들 편인 군인이나 경찰들은 더 못된 벌레로 보였고, 그래서 그런 작자들을 많이 죽이면 많이 죽인 만큼 사람 구실을 온전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헌데 그 사상이란 도깨비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리고 남은 것은 죄업들만 한짐씩입니다그려.”

자기는 그때 좌익으로 쫓기다가 당시 좌익들 은신처로는 군대만한 데가 없어 돈을 쓰고 입대를 했는데, 이건 처음부터 적진에 들어간 셈이라 은신이라기보다 험하게 개판을 치며 떵떵거렸노라고 또 허허 웃었다.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또 굶어죽지 말자고 이를 악물었지요. 이를 악물어도 전보다 더 험하게 악물고 나댔더니 어느새 공장이 치솟아 올라가고 수출로 돈을 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뭡니까? 구사대의 몽둥이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동그라진 노조원들의 그 시뻘건 눈, 그 시뻘겋게 핏발선 눈들 속에서 뜻밖에도 옛날 내 눈을 발견했지요. 허허. 그 눈에 비친 그 벌레는 또 얼마나 험한 벌레였겠습니까? 허허.”

홍씨는 한껏 더 허탈하게 웃었고 김씨는 진작부터 제정신이 아니어서 도깨비니 벌레니 하는 소리들이 거의 귀에 엉겨오지 않았다.

“헌데 한가지 물어봅시다. 영감님도 그때 그 사고 트럭에 타셨던가요?”

김씨는 털어놓을 작정을 하자 그때 홍씨가 부상을 당했으면 얼마나 당했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었다.

그때 저 아래 길에서 승용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가 멎고 월정과 운전사가 내렸다.

“마루에 놔둔 가방도 가져왔습니다.”

월정이 소리를 질렀다. 운전사가 다가오며 공항 가는 길의 여러 군데서 도로 보수공사를 한다며 자칫하면 늦겠다고 서둘렀다.

“허허. 이거 이야기를 하다 말겠구려. 그때 나는 정비병이라 그 트럭에는 타지 않았었지요.”

홍씨는 가볍게 말하며 일어섰고 김씨는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홍씨를 보고 있었다. 홍씨는 안녕히 계시라며 차에 올랐고 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지는 차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