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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배수아 裵琇亞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장편 『부주의한 사랑』 『붉은손 클럽』 등이 있음.
시취(屍臭)
7월 24일에 특급열차 탈선과 화재 사고가 났다.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P가 그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해서 그는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전화는 불통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날 그에겐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사망자의 명단을 내보내고 있었다. 20대의 여자: 중키에 갈색 원피스, 전신 3도 화상, 40세 정도의 남자: 비만형에 대머리, 전신 3도 화상, 5~6세 정도의 어린아이 둘: 반바지에 흰색 운동화, 전신 3도 화상, 10대 후반의 여자: 썬글라스에 밀짚모자, 좌반신 3도 화상에 양다리 절단상, 이런 식이었다. 카나리아에게 물과 모이를 주고 새장을 청소하면서 뉴스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부상자들의 이름이 밝혀졌지만 P의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P가 그 열차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집요한 생각에 시달렸다. 병원으로 전화를 하면 (임시로 고용된 것이 분명한) 사람들은 그에게 P의 이름과 키와 몸무게와 인상착의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동행은 있었는지 물으며 오랜 시간 메모를 한 다음에 지금은 상황이 복잡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으니 좀더 사태가 파악되면 알려주겠노라고 친절하게 약속했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P의 이름을 바싹 마른 입술 사이에서 굴리듯이 불러보았다. 병원에 전화를 하면서 그가 P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스러워졌다. P를 세 글자의 이름으로 생각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P가 지금 이 시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P가 그 열차를 탔든 타지 않았든 P가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삼십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은 단 한번의 연락도 없이 지냈고 아마 이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에게 P의 생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 문제란 말인가. 이제 죽음은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빛과 어둠처럼 분명한 경계도 아니고 고통이나 나락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P에 대해서 이제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불빛을 어둡게 한 전등 아래서 몇 안되는 편지 꾸러미들을 모아놓은 바구니를 뒤적거렸다. P의 편지가 있었다. 비쳐 보이는 종이에 펜으로 쓴 P의 편지는 짧았다. 그는 이것을 버려야 하리라. 그가 죽은 뒤 누군가 이것을 발견한다면 P나 그에게 불명예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치게 결벽한 사람이라 육십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손끝 한번 스쳐보지 못했고 오십오세가 되어서야 간신히 점심식사를 한번 같이했을 뿐인 여인 P에 대해서 유난한 경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몇 안되는 P의 편지는 짧고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이어서 친척 누이나 유료 양로원의 간호사가 보내는 안부편지와 다르지 않았다. 신기할 것도 없는 날씨 얘기며 어느 상점에서 산 케이크가 맛있다는 얘기, 주말에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큰길가로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P는 마지막 편지에 썼다. 늦은 봄날 마당을 서성이는 개의 눈빛이 이상하게 고독해 보인다고. 그 고독이라는 단어가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걸렸다. P는 그런 단어를 편지에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게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단어다. 그러나 그는 바구니 안의 편지를 뒤적거리며 편지를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고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편지를 써보낸 P가 그 열차를 탔든 타지 않았든 P가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복잡한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의 전화기는 시치미를 떼고 침묵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P에게서 마지막 편지를 받은 것은 일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기증 때문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P에게서 언제 마지막 편지를 받았는지, 마지막 전화가 언제였는지 하는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몇년 전부터 부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주체할 수 없는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최근 몇개월 전부터는 그 빈도와 강도가 상상도 못할 만큼 높아졌다. 두통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를 덮치고 그를 억누르고 예감 없는 강렬한 통증으로 다가왔지만 현기증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검은 어둠으로 그의 모든 감각기관에 서서히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순간 밝은 태양빛 아래서도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귀는 이명으로 가득 차고 입에는 침이 고인다. 몸은 서서히 무감각해지고 목 뒤쪽이 조이는 듯이 굳어온다. 이윽고 머리 한가운데가 쪼개지는 듯이 아프다. 그러면서 그의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며 곧 칠흑처럼 깜깜해진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이 되면 그는 위협을 느끼고 벽에 기대거나 소파나 침대에 눕거나 버스나 지하철의 좌석에 몸을 웅크려야 한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의 발 아래 대지가 어느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구토증이 몰려온다. 구토증은 위장을 도려내는 듯이 맹렬하다. 대지의 회전은 점점 가속이 붙고 마침내는 멈춤장치가 고장난 세탁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사고나 감각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그의 머리가 신이 오른 광대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도저히 가눌 수가 없을 정도다. 미칠 듯한 내장의 비틀림. 그는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헐떡거리고 사지를 부르르 떨게 된다.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거나 움직였다가는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는 대지의 힘에 의해서 그의 몸이 산산이 원심분리될 정도이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참기 위해 계속해서 혀를 깨문다. 식은땀으로 그의 온몸이 흥건히 젖는 것을 느끼며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그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현기증의 예감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온몸으로 그 공포와 고통을 겪어내는 것 이외에는. 혈관이 수축되고 균형감각이 상실되고 온몸의 피가 미세한 붉은 가루로 변해 검은 우주공간으로 사라져간다.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내장과 안구가 춤추며 돌아다닌다. 심한 발작이 일어날 때면 그는 거의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처음에 그 현기증의 발작을 경험했을 때 그는 죽음이 이윽고 다가온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발작이 아닐지라도 그는 노쇠해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여 잔에 따를 때 사기잔이 심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목욕을 마친 뒤 그의 피부가 거북등처럼 조각나는 것이 보였다. 심하게 각질이 생긴 피부는 팔꿈치 안쪽이나 무릎 뒤편부터 갈라지기 시작해 찢어진 살 사이로 벌건 피하조직이 드러났다. 그는 아직 보통 남자의 평균수명에 미치지 않는 나이였지만 가까운 친척 중에 장수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유난스러운 선병질로 사십대를 넘기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와 외가 쪽 사촌형제들은 심장질환을 앓았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와 형제들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건강의 기준을 무슨 특별한 병을 앓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분명히 그랬다. 거기다가 그의 경우는 스포츠에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그의 형제들은 아직까지 단 한명만이 순환기 계통의 병으로 죽었을 뿐이다. 그러나 친척들의 부음을 받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오래 살고 있다는 수치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뚜렷하지는 않으나 자신은 분명히 병들었으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술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것이며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진 채 느릿하게 가는 것이며 한밤에 잠을 깨는 일이며 엉덩이 부분에 진한 핑크빛으로 살덩어리가 뭉쳐져 올라오는 증상이며 아침마다 혀가 붓고 검게 딱딱해지는 것이며 그리고 그 현기증을 생각해볼 때 그가 병들었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찾아가야 하나. 그는 언제나 망설이게 된다. 그는 이미 육신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린 것이다. 허물만 남은 몸으로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 그는 곰곰 생각해본다. 생명이라는 것은 분명히 어떤 종류의 에너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파나 속도나 온도, 진동이나 빛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측정되는 기운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움직이고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밥을 씹고 국을 뜨고 쓰레기를 버리고 배설하는 행위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지와 기억으로 인한 관성일 뿐이다. 그것은 그림자이고 남아 있는 성질일 뿐이지 생명 자체는 이미 아니다. 오래 전부터 아니다. 자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아닌 죽음과 종말일 뿐이다. 그 자신의 자아와 존재는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는 의사를 찾아가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턴가 그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들이 나타나면 실제로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이 얼굴에 홍조가 피었다. 그에 반해서 세상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P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P가 그 열차를 탄 것이 아니고 다른 열차를 탔다는 사실을 방송국이나 병원을 통해서가 아니고 P의 아들인 해균이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해균의 편지를 받은 것은 열차사고가 난 지 이틀 뒤였다. 해균은 몇년 전부터 매년 그의 생일 즈음에 편지를 보내왔다. 해균은 편지의 마지막에 “어머니는 올해도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오시고 맛난 복숭아를 많이 드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에게 안부를 전해달라시더군요. 어머니는 열차사고가 난 바로 이틀 뒤에 서울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명륜동 집에 혼자 계십니다. 선생님과 바로 이웃해 사셨다는 그 집 말입니다. 불편하실 텐데도 이사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결혼으로 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이 살을 베어낸 것처럼 허허로왔고 그 집에서만이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건강하시니 다행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계시는 필라델피아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도 한때 계셨던 곳이죠. 독립기념일부터 한 일주일간 그곳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여행을 싫어하시고 가까운 사람에게 냉정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칩거의 생활을 선택하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멀고 더욱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초조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젊음도 짐이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날이 선 편지지를 원래대로 접어 봉투에 넣고 편지함에 넣어두었다. 해균이 보내오는 편지는 거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해균은 언제나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고 여름휴가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보냈으며 한번도 답장을 보내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른살 되던 해부터 매년 일정한 시기에 편지 보내는 것을 잊거나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는 해균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P는 해균이 소년시절에 스케이팅에 재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같이 식사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삼십팔년 만에 만난 날이었다. 그는 P가 그 말을 하면서 유난히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느꼈다. 불편해져서 그는 흠흠 기침을 했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명륜동에서 이웃해 살던 그들은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학교 대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던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그 말을 한다는 것은 고급옷을 입은 부인네의 행동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 일 이후 해균이 편지를 보내왔다. 아마도 P가 그러라고 시켰을 것이다.
밥을 일일이 지어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일단 마켓에 가서 야채와 고기와 양념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요리를 해야 하고 식탁을 차려야 하고 밥을 먹은 다음 설거지를 해야 하고 주방을 청소해야 한다. 그는 두 번의 결혼경력이 있지만 유학생활을 포함해서 꽤 긴 독신생활을 했다. 그는 그 나이의 보통 남자들과 달리 스스로 의식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다. 이 점은 그에게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도 그의 가족은 그 이전이나 다름없이 운전수와 가정부, 그랜드 피아노와 침모와 아이 보는 계집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물을 데우거나 방을 청소하거나 운동화를 빨거나 자신의 옷을 정리하거나 이불을 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 자랐다. 심지어 연필을 깎아본 적도 없었다. 저학년때는 책가방을 들어주는 하인이 있었고 추운 겨울이면 방안에서 세수를 했다. 그런 그가 혼자 살게 되자 자신의 공간에 다른 사람이 얼씬하는 것에 대해서 극도의 예민함을 보였다. 그가 첫번째 아내의 존재를 끝내 견딜 수 없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단출한 부부만의 생활이란 방을 같이 쓰고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 대학생이던 그의 목을 조여오는 듯했다. 그의 첫번째 아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계획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는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아직 한번도 가정부를 고용한 적이 없다. 나이든 남자가 손수 찬거리를 준비하고 바느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것이 당사자보다도 주변사람들을 더욱 질색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그 자신도 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가정부와 한 공간에서 잠시라도 있고 싶지 않았고 가정부의 손이 닿은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첫번째 결혼 후 아내한테서도 같은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슬픔과 충격을 느꼈다. 그는 타인의 시중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란 사람이었지만 그 결혼 이후 고용인이 없는 생활을 고집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불결감이라기보다는 타 존재에 대한 거친 이물감이었다. 아내의 시중을 받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챙기다보니 나중에는 아내 이외의 타인도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나이도 어리고 결혼이란 중대사를 치른 충격으로 좀 멍해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틀린 생각이었다. 첫번째 아내에 대한 불편함은 그후에도 지속되어서 그는 점점 폐쇄적이 되어갔고 마침내는 다른 누구와 한 이불에서 잠자는 것이라든지 다른 사람과 같은 욕실을 쓰는 것 정도도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도저히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 그는 그 원인이 여자에 대한 애정문제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렸다. 즉 연애관계가 없는 결혼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그 당시 다른 모든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자유연애의 유혹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구습에 의한 결혼은 거의 무조건 나쁜 것이고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내성적인 그도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년 뒤 두번째 결혼을 감행할 수 있었다. 대학 동기였고 연애기간을 거친 두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십이년이나 지속되었으나 거의 대부분을 별거한 상태로 보냈으며 동침한 횟수도 손에 꼽을 만했다. 혼자가 되었을 때 그는 다시 태어난 듯이 홀가분했다.
P가 그 열차를 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눕기 전에 그는 다시 한번 소리내어 중얼거려보았다. 잠잘 시간이 아닌데도 문득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그런가 하면 불을 끄기 전까지 흐르는 침을 닦지 못할 정도로 졸음에 휘말리다가도 불을 끄고 눕는 즉시 수천가지 생각들이 미친 듯이 춤추면서 그의 의식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너무나 수많은 기억들이 동시에 명료해지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열일곱살 난 그와 P가 기차역에 서 있다. 싸늘한 겨울 새벽 공기와 안개 때문에 기침이 나왔다. P는 검은 스타킹에 검은 구두를 신은 학생복 차림이다. P는 아직 소녀이다. 그가 생각하는 소녀란, 단지 나이가 어린 여자를 말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존재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귀한 육체와 정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꿈속에서도 차마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미완의 불안정한 형태를 가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줄 것만 같이 섬세한 정말 소녀 말이다. 기차는 보이지 않지만 기적소리가 짙은 안개 사이로 환청인 양 들려온다. P는 부산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방학을 보내기 위해 내려가려고 하는 중이다. 그는 P의 짐을 들어준다는 구실로 그녀의 곁에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일행은 여러 명이다. P의 언니와 여동생과 P의 집에 머물면서 그와 같은 고교를 다니고 있던 P의 사촌과 P의 형부가 있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다. P의 여동생은 유리병에 든 사이다를 마시면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손바닥에 끈적끈적한 사이다가 묻었기 때문에 손수건을 찾고 있었다. P의 언니는 임신중이었다. 새벽의 습하고 매캐한 안개가 그녀의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P의 형부는 신경쓰고 있었다. P의 사촌은 그의 옆에 서서 자신이 앞으로 가게 될 공과대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은 공업 후진국이다. 공과대학에 들어가서 학위를 따려면 미국에 가서 공부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삼촌인 P의 아버지에게 그것마저 부탁한다는 것은 지나친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닐까. P의 사촌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P는 언제 돌아올까. P가 돌아오면 그는 실내 스케이트링크에 놀러 가자고 말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P의 사촌과 P의 여동생과 모두 함께이다. 그는 P에게 멋지게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기차는 너무나 빨리 도착했다. P는 키가 컸고 성숙한 몸매를 하고 있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 소녀였다. 그날 안개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내리깐 P의 옆모습은 지금도 뚜렷하다. 일행들의 모습은 안개 사이에 스며들어 마치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희미하고 투명할 따름이었다. 그는 거센 상상에 사로잡혔다. 사실 이 배웅은 그 혼자만의 것이다. 그는 P를 위해서 홀로 기차역에 나왔고 사방에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었다. 그가 P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만큼 P도 그러할 것이다. P는 단연코 여성이며, 여성이란 (이 부분에서 그는 심하게 얼굴을 붉히지 않았는지 스스로 걱정스러웠다) P와 같은 엄선된 온갖 고귀한 정수를 갖춘 존재를 말하는 것이지 세속적으로 여자 남자를 말하는 그런 일반적인 여성이란 그에게는 어림없는 말이었다. 그는 P의 사촌과 함께 짐을 자리에 가져다주고 P에게 잘 다녀오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기차에서 내렸다. P는 그때 조금 웃은 것도 같았다. P는 한달만 머물다 돌아올 예정이었다. 손을 흔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들은 삼십팔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가 형제들과 절교한 것은 일천구백팔십구년이었다. 사촌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에게는 단명한 조상과 (미미하지만) 친일의 경력 때문에 할아버지가 국가에 기부한 땅 문제와(사촌들은 그것이 기부가 아닌 권력의 협박에 의한 불법몰수라고 주장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해결된 유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가 두번째 아내와 확실하게 헤어지는 계기가 된 일천구백팔십년과 일천구백팔십육년의 법정싸움도 모두 유산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가 그의 생각대로 유산상속을 포기하면 그의 아내에게 이혼 위자료를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내는 그를 대신해서 소송에 참가했다. 모두들 길고 지루한 소송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열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일에 종사하다가 주말이면 골프 코스를 돌거나 무심한 얼굴로 교회에 갔다. 소송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렇다고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일의 진전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아내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두번째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유산상속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다지 돈을 많이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그에게는 은행에서의 수입과 살아갈 수 있는 연금과 약간의 저축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강력하게 권리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는 조건부로,라는 단서를 달아 유산상속 포기원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조건부란 아내에게 주는 위자료이다. 최종 판결이 났을 때 그의 아내는 푼돈을 받게 되었다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일시적인 발작증세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겨우 사십대였으나 그때부터 그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은행에 나가지 않았다. 체중이 점점 빠지고 흰머리가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관절이 삭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온몸이 이상한 각도로 휘었다. 등은 구부정해지고 목은 오른쪽으로 비틀리고 걸음걸이는 이상해졌다. 빠른 속도로 체액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의 몸이 주름잡히고 건조해졌다. 집에 와서 그는 잠을 잔 다음 바지를 꺼내서 뜯어진 곳을 꿰매기 시작했다. 눈앞이 가물거리더니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빛이 어룽거리며 그를 쏘아댔다. 그는 이제 간신히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을 뿐인, 가족 하나 없는 병들고 왜소한 중늙은이일 뿐이었다. 일천구백팔십구년 음력 팔월 십오일, 그는 형제들과 사촌들에게 이제 다시는 집안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
그가 눈을 떴을 때 창밖의 뜰은 비에 젖고 있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최초로 떠오른 생각은 병원으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병원이나 방송국으로 전화해서 P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P가 탄 열차가 탈선했으며, P가 불에 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는 성급하게 침대 곁의 전화기를 들었다가 메모지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메모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을 켜고 파자마를 여미고 슬리퍼에 앙상한 맨발을 꿴 다음 그것을 찾기 위해 안경을 찾았다. 그러다가 전날 그 메모지를 휴지통에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버린 게 기억이 났다. 왜 버렸을까.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숨을 헐떡였다. 창밖으로 으르르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의 붉은 협죽도가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 그는 메모지를 버렸고 그것은 P가 무사하다는 해균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허둥대는 것을 멈추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아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 그는 입밖으로 그 말을 낼 뻔했다.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 그도 잘 알지는 못했다. 그와 P는 겨우 일년에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을 뿐이고 아마도 이제 그가 죽는 날까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터였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경계가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는 그였다. 그러므로 P가 죽는다는 것은 그에게 이제 커다란 충격이 아닌 것이다.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그처럼 한 발을 죽음의 영역에 들여놓고 사는 사람에게는 사물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형태도 달라지는 법이다. 마치 그의 뺨에 갈색 반점이 점점 커지면서 그 부분의 피부가 두꺼워지고 그 반점 한가운데서 시든 풀포기처럼 회색빛 털이 한줄기 길게 올라올 때, 욕실 거울을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희미한 눈빛처럼 그렇게.
몇달 전 아직 여름이 찾아오기 전에 그는 친구 K의 부음을 받았다. K는 그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백살도 넘게 살 듯이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좀 놀랐다. K와도 몇년째 만나지 못했다. K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한 친구였다. K는 이화동에 살았고 그의 집은 명륜동이었으므로 지금의 조선일보사 뒤편에 있던 학교에서 하교하는 길이 같았다. K는 젊은 시절부터 스포츠맨이었고 하루에 10킬로미터 이상씩을 반드시 뛴다고 들었다. 과음도 하지 않고 담배는 한번도 피워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K 자신이 심장 전문의가 아닌가. K는 일생 동안 스트레스를 가장 덜 받은 사람들 중의 한명으로 꼽힐 것이다. 낙천적이고 배포가 큰 성격 탓도 있고 순탄하고 러키했던 그의 인생항로 탓도 있고 부유하고 화목했던 가정생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K가 죽었다. 영원히 행복할 것 같던 K가 죽었다. 그는 전보를 한손에 들고 집안을 서성였다. 죽음이 자신을 찾아왔어야 하는데 우연한 실수로 K를 데려가버린 듯이 느껴졌다. 그와 K가 다닌 중학교는 지금 폐쇄되었다. 그는 차고에서 버려진 채로 있는 박스들을 뒤져 중학교와 고등학교 앨범을 찾아내었다. 일천구백육십년과 일천구백육십삼년. 각각 A. 까뮈와 T. 헉슬리가 사망한 해이다. 일천구백육십년에는 선거와 혁명이 있었고 육십삼년에는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물론 그들은 어렸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뿐이었으며 K는 비틀즈와 에디뜨 삐아프의 음반을,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레이 찰즈의 음반을 사모으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죽음은 결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비록 친지의 죽음이라 해도 그랬다. 그것은 천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한없이 길고 음울한 예식을 알리는 촛불과 향의 예감이었다. 대개 죽는 것은 노인이며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더라도 병자의 얼굴빛은 검고 눈동자는 누르스름하여 노인의 것과 다르지 않았고 불빛은 어둡고 집안의 여인네들은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개는 마루밑에 들어가고 밤이 되어도 불을 끄지 않으며 흐느낌 소리는 밤낮으로 이어지고 모든 죽은 자의 소지품을 태웠다. 죽음이란 그들에게 바로 몽환적이면서도 규격화된 예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려우나 호기심의 대상이고 예술에서 치명적이고 극단적인 아름다움이 필요할 때 종종 등장하는 것이고 영원하고도 긴 잠이고 문서에 이름이 기록으로 남는 일이며 존중과 예의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죽음은 서사적이고 연속적인 것이어서 서서히 존재 안으로 스며들어온다는 것을 그때 그들은 차마 깨닫지 못했다. K는 이제 몇년만 지나면 은퇴할 수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서 요트를 구입하고 항해술을 배워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말년이 가까워오면서 K는 종종 자신에게 진정 자유로웠던 시기가 일생에 한번도 없었노라고 주장하곤 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K가 지나치게 자유로워서 권태스러워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좀 쌀쌀하게 K의 전화를 끊었다. K의 한탄이 격에 맞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서로 가깝게 느끼고 말하지 않은 것도 이해해주는 관계가 있는 반면에 서로를 서먹하게 느끼게 되는 친구도 있는 법이라면 그들은 후자에 속했다. 아마 그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통화한 것이.
홀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마 거의 확실히 그러하겠지만, 그에게 공포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죽음의 순간은 두렵지 않았지만 닫힌 문 안에서 부패해갈 것이 신경쓰였다. 대학시절 친구 한명이 뜨거운 여름날 여배우와 함께 도망가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곳으로 가서 말이다. 그렇듯 한때는 죽음이 퇴폐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설사 여배우와 함께 죽는다 해도 말이다. 이제 자신의 죽음이 미의 상징과는 확연한 거리가 있음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죽게 될 공간의 닫힌 문! 폐쇄된 실내! 그는 P와 삼십팔년 만에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 P를 향해서 몸을 숙여 인사하는 순간 P의 목덜미에서 풍기던 향수냄새를 생각했다. 사향과 여인들의 분냄새를 섞어놓은 듯한 육감적이고 관능적이고 달콤한 향기였다. 그러나 그 향기는 너무 진했다. 그가 언제나 생각하던 여성의 진수 P에게 어울리는 향기가 아니었다. P는 두려움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향수를 뿌렸던 것이다. 단지 씻고 닦는 것만으로 없앨 수 없어 그도 천박한 향수에의 유혹을 느끼곤 했기 때문에 슬픈 마음으로 P를 용서했다. 그도 P처럼 열차사고로 죽는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 그러면 저 가엾은 카나리아는 어떻게 되나. 그는 둥근 새장에 걸려있는 카나리아를 측은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특급열차에 카나리아를 데리고 탑승할 수 있는지 철도청에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굶어죽는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테니 말이다. 식탁에 컵을 놓고 우유를 따르다가 다시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그렇지. P는 열차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난 그 열차를 타지 않은 것이다. 왜 자꾸 착각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감사하는 마음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P가 죽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과연 무엇이냐. 그리고 열차사고로 죽는 것과 다른 재난이나 질병으로 죽는 것이 P에게 과연 무엇이냐. 그는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P가 열차사고로 죽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신 이제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열차사고가 있었던 것이 하루 전인 것도 같고 일년쯤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 만일 그렇다면 그 열차를 탔든 타지 않았든 이제 P는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P가 그날 그 열차를 타고 있었나 하는 문제는 공허한 질문이 될 것이다. 난 좀 쉬어야 해. 그는 생각했다. 난 휴식이 필요해. 난 쇠약해졌고 잠시 동안의 산책에도 땀이 흠뻑 흐르고 밤새 미열에 시달린다. 난 지친 거야. 그는 전날 무엇을 먹었나 생각해보았다. 우유 두 잔에 우유를 탄 홍차와 우유를 넣고 끓인 죽이다. 그리고 연하게 탄 커피 작은 잔으로 한잔. 삼십팔년 만에 만난 그와 P는 두부요리를 먹고 헤어졌다. 그는 지팡이를, P는 양산을 들고 있었다. 나이 들었지만 P는 여전히 우아했고 조심성을 잃지 않았고 자신이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치 잊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는 감탄했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 때 향수냄새가 그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는 마치 시궁창에서 상한 두부냄새를 맡았을 때처럼 황급히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P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와 P는 사실은 죽음을 은폐하면서 살아가는 시간의 허물에 불과하다. P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삼십팔년 만에 이렇게 만난 것은 실수였다. 젊은날, 엄지손가락 뼈를 일부러 부러뜨린 일이 있는데 마치 그때와 같은 아픔이 몰려왔다. 그는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P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헤어지면서 말했다. 해균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겠다, 해균도 당신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침이 되었으나 날은 밝아지지 않았다. 비 때문이다. 그는 아침 산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터덜거리며 걷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쓸쓸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흠칫했다. 쓸쓸하다는 단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해서 주체의 의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허용되는 단어였다. 마치 P가 편지에 썼던 것처럼 개의 눈빛이 ‘고독해’ 보인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럴 만한 입장이나 자격이 아닐 때 그런 표현을 남용하는 것은 불쾌함을 자아내는 무례한 행위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불쾌와 무례가 비록 대상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쓸쓸할 수 없고 P는 그를 향해서 고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P의 영역을 넘어서는 단어인 것이다. 그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쓰면 그것은 잘못 흘린 눈물처럼 과잉되거나 부조리하거나 철면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죽음의 예비자이고 그의 욕망의 잔여분은 그가 그의 죽음에게 존재를 내어준 이래 이미 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가 그를 향해서 고독하다는 단어를 내뱉은 것은 어쩔 수 없는 P의 욕망의 발현이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이유에서 P가 그 욕망을 숨기거나 억제하지 못했다면 P는 참으로 저급한 영혼을 가진 것이다. P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나 지혜롭지는 못하다. P가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거나 아니면 젊은 시절, 그가 미숙하게 판단한 것보다는 우둔한 여성이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시취(屍臭)를 느낄 때 이성(理性)이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카나리아에게 물과 모이를 주고 새장을 청소한 다음 우유죽 반그릇을 앞에 놓고 검소한 식탁에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전화는 거의 울릴 일이 없다. 100퍼센트 잘못 걸린 전화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전화벨 소리를 무시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새장에서 카나리아가 울었다. 영리한 새여서 그가 식사를 할 때면 언제나 피리소리를 내주는 것이다.
“병원입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되고 있는 목소리는 병원의 임시직원인 전화비서의 목소리였다. 그는 우유죽을 반쯤 뜨다 말고 응답기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문의하신 환자에 관한 것입니다. 오십대 여자, 신원 미상의 사망자가 있습니다. 화상이 심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는데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전화 문의한 내용을 종합한 결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가장 근사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여자분의 신체적인 특징, 불에 타기는 했지만 옷차림이나 반지나 목걸이 등이 사망자의 것과 유사합니다. 철도청과 역 어디에도 이 사망자에 대한 서류나 정보는 없으니 저희로서는 선생님의 진술이 유일한 자료가 될 듯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병원에 나오셔서 확인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오늘중에 나오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곳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아주 좋지 않아요. 저희로서도 한시라도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습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사망자에게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습니다. 사망자는 핸드백도 소지품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는 선생님에게 여러번 전화드릴 상황도 되지 못합니다. 오늘 나오시지 않는다면 사망자가 선생님이 찾는 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P가 죽었다. 얼굴에 화상을 입고 머리에는 재를 뒤집어쓴 채. 어떠한 기록이나 서류도 없이. 그는 죽을 뜨던 스푼을 접시에 툭 떨어뜨렸다. 아아, 고마워.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병원으로 전화할 때 그는 P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그들이 삼십팔년 만에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한 그날의 의상과 반지와 목걸이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그에게 다른 모습의 P란 잘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P란 존재는 언제나 불변이듯이 P의 반지와 목걸이와 엷은 여름 블라우스와 조심스러운 손수건도 마찬가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닫힌 문! 폐쇄된 실내!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이다. 더이상 적절한 말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불안한 경계의 나날은 지나갔다. 그는 이제 P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P의 생사나 P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부주의하게 말하지 않을까, P에게서 편지가 올까, P가 그 열차를 탔을까, 하는 걱정들. 이제는 P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 가야 하는가. 그는 시신을 확인하는 작업은 정말이지 하기 싫었다. 그러나 필요한 절차라고 한다면 눈을 질끈 감고 해치워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눈앞이 하얗게 바래져오는 것을 느끼고 숨을 삼키며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이 그를 점령했다. 그는 처음부터 P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야 했다. 삼십팔년 동안 그랬듯이 어디 있는지 모른 채 그렇게 살았어야 했다. 지금 그가 겪는 슬픔은 그날 점심식사에 대한 댓가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몫이다. 그는 울컥거리는 소리가 치미는 목을 잡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뜨겁고 비릿한 핏덩어리 같은 것이 가늘고 얇아진 혈관을 타고 터질 듯한 긴장으로 역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서서히 그가 깨어났다. 그의 의식은 선명해지고 시야가 분명해졌다. 내장의 불쾌감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식은땀이 식고 피가 순환하기 시작했다. P는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기억해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갔다. 편지 바구니를 뒤져 해균의 편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동작은 정상이 아니었다. 손놀림이 지나치게 느리고 정교하지 못했기에 그는 몇번이나 바구니를 뒤집고 편지들을 흩어놓았으며 눈앞에 보이는 큰 글자도 읽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의 손가락은 심하게 떨리고 팔은 부러진 것처럼 몸체와 따로 흔들거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극히 평화롭고 정상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유쾌하기조차 했다. P는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 해균이 분명히 그렇게 썼다. 자신이 자꾸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그도 인정했다. P가 죽은 것이 그에게 더 다행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열차를 타지 않아 P가 무사한 것이 다행인지 그 구분조차도 이제 무의미해졌다. 그에게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한 그에게. 그를 통해서 인식하게 되는 P도 마찬가지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P 또한 그와 같은 체계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P의 삶이나 죽음, P의 고통이나 안락은 실제가 아니라 그의 인식상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가 P를 몰랐다면, 이 세상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일이 없이 완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지냈다면 P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 존재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게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가 열차사고에 관한 뉴스를 보지 못했다면 그는 죽는 날까지 P의 생사여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녀를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P가 그 열차를 탔는가, 하는 문제는 의문 자체가 부조리한 것이다. 또한 죽음이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어서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며 살아 있는 듯 죽어 있으며(그의 경우) 죽어 있는 듯 살아 있기도(열차에 탔다고 가정한 P의 경우)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기호로 표현될 뿐인 삶과 죽음의 표피적인 결과에 그리 연연할 일은 아닐 것이다. 마침내 그는 간신히 해균의 편지를 찾아내어 다시 한번 더 그 내용을 확인하고자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