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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타이완·마카오·홍콩·션젼을 다녀와서

 

 

박명규 朴明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근대국가 형성과 농민』 등이 있음. parkmk@plaza.snu.ac.kr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양이다. 지난 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간 타이완·마카오·션젼(沈圳)·홍콩을 여행하면서 나는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상,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과 마카오의 모습, 중국과 타이완 양안(兩岸)관계의 실상 등은 정말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봄으로써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의 중국’과 ‘다양한 중국’

 

이번 여행기간에 네 번의 입국심사를 거쳤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출입국’이라 하기 어렵겠지만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연한 국가간의 이동에 속하는 것이었다. 타이완과 중국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과 마카오, 그리고 션젼 간에도 출입국에 준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실제로 나는 네 국가를 다녀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모두가 ‘중국’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홍콩은 1997년에, 마카오는 1999년에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여전히 주권국가임을 강조하는 타이완조차도 국제적으로는 중국과 별개의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중국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을 내세워 국제적으로 중국의 단일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와 함께 타이완과 단교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중국의 정책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NICs라 부르던 동아시아 신흥국가군의 명칭이 NIEs로 바뀐 이유도 홍콩이나 타이완을 독립적인 국가로 볼 수 없다는 중국의 주장 때문에 ‘country’를 ‘economy’로 바꾼 것이었다고 하니, ‘하나의 중국’ 정책의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결국 나는 ‘하나의 중국’ 속에 존재하는 여러 ‘이질적인 공간들’을 가본 셈이다. 하나의 국가 속에 이처럼 상이한 제도와 문화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단일한 체제, 동질적 문화, 유일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국민국가적 틀로부터 벗어나 좀더 유연하고 복합적인 정치공동체의 출현이 예견되는 21세기를 염두에 둔다면, 이질적 공간들을 수용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매우 새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기간 내내 남북한이 장차 지향해야 할 통일국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것도 이곳에서 새로운 모델이나 가능성을 읽어보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중국의 이런 현실 자체가 국민국가 형성의 실패가 낳은 산물이었다는 역설이다. 수세기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마카오의 존재는 차치하고라도, 영국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이 남긴 홍콩이라는 유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국공내전, 그리고 뒤이은 냉전체제의 작동이 산출한 타이완의 모습 등은 모두 중국의 근대국가 형성의 실패와 짝해 있는 현상이다. 그런만큼 홍콩과 마카오의 통합은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로서가 아니라, 좌절되었던 중국의 근대적 희원을 뒤늦게 성취하는 모습으로 이해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 나는 몇사람들에게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중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것인가를 질문했는데, 거의 공식적으로 ‘그럴 리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중국이 점점 강력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강한 중국을 부르짖으며 타이완에 대한 통일의지를 피력하는 정치적 태도와, 역사적으로 구성된 다양한 체제와 유산들을 포용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하는 사회문화적 조건 사이에 어떤 미래가 열릴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다양한 역사적 시간성을 지닌 이질적 공간들을 내포하면서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중국—이것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싶었다.

 

 

일국양제론의 실상

 

이처럼 이질적인 단위들을 하나의 중국으로 묶는 논리로 내세워진 것이 ‘일국양제’이다. 원래 타이완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에서 나온 개념이었다고 하는데, 홍콩반환에서 구체적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홍콩과 중국은 ‘일국’이지만 ‘양제’가 인정되며, 따라서 홍콩의 독자적인 제도와 문화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흔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상이한 제도가 정치적으로 하나의 중국 속에 공존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중국이 상당부분 자본주의적인 개발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치적인 대의민주주의와 공산당 지배체제의 ‘양제’가 더 핵심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나는 ‘일국양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남북한 관계를 두고 간간이 논의되던 ‘일국가 이체제’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일국양제의 개념에 비해 한반도에서 이야기되는 ‘일국가 이체제’는 분단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분단현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개념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다시 말하여 일국양제론이 실제 홍콩과 중국을 통합시키는 정책적인 구상으로 구체화된 것이지만, 한반도의 경우는 그에 비할 만큼 구체적인 통합구상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같이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두 체제가 하나의 정치단위가 되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체제를 내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틀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절실히 요청되리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적용되고 있는 일국양제의 실상을 통해 이런 틀의 일면을 확인해보려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일국양제든, 일국가 이체제든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양제’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일국’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일국’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그 정치적 내용은 크게 달라진다. ‘양제’를 기초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부문을 중심으로 ‘국가’의 틀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 어느 한 곳을 ‘일국’으로 삼고 제도의 다양성을 ‘용인’해주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현재 홍콩에서 실시되는 일국양제는 어디까지나 후자에 속하는 것이어서 연방국가 구상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홍콩기본법에 의하면 뻬이징정부는 홍콩정부에 대하여 비상사태선포권, 행정수반 임명권, 홍콩기본법의 수정·해석권 등과 같은 배타적이고 주권적인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홍콩은 결코 ‘일국’을 구성하는 동등한 부분주체가 아니었다. 일국은 어디까지나 뻬이징정부이고 홍콩은 다만 고도의 자치를 부여받은 한 지방정부에 불과한 것이다(실제 홍콩의 공식명칭은 특별행정구역이다).

따라서 동등한 주권적 존재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타이완인들이 일국양제 원리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타이완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일국양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반대의 핵심적 이유는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가 동등한 주권적 지위를 전혀 보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타이완의 지식인들은 ‘통일’이라는 논제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통일론은 곧 ‘하나의 중국’론과 연결되고 그것은 타이완의 주권적 지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독립’을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민진당(民進黨)이 독립론을 주장하면서 집권하였지만, 실제로 타이완인들은 다수가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타이완 대륙위원회가 제시한 통계에 의하면 80% 정도의 타이완인이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완으로서도 통일론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은 중국이 타이완에 대한 통일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대내외적인 압력을 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들어 타이완의 쳔 슈이뼨(陳水扁) 총통은 통일 대신 ‘통합’(integra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고 ‘방련(邦聯)’이라는 복합국가 개념도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일국양제식의 통일이 아니면서, 동시에 별도의 국가로 독립하지도 않는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설명되는 모양이다. 타이완행정원에서 만난 한 담당자는 통합이나 ‘방련’과 같은 통일방식은 국가연합 또는 연합국가의 틀과 유사할 수 있겠지만, 그 구체적 형태는 미래로 열어놓는 방식이라고 설명하였다. 현실적인 조건을 인정하면서 열린 가능성을 모색하는 탄력성과 여유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거대한 중국의 부상 앞에서 통일도 독립도 강조하기 어려운 타이완인의 어려운 입지와 모호함의 반영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탈식민화,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민족주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날, 중국은 지난 시대의 민족적 수치를 이제야 극복하게 되었다고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과거부터 영토의 확장이야말로 국가의 자부심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으리라. 실제로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은 과거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수탈과 침략의 역사를 바로잡는 의미를 갖고 있는만큼 동아시아지역의 탈식민화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음도 분명하다.

중국의 힘 때문이든 유럽의 쇠락 때문이든, 제국주의적 유산이 정리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홍콩과 마카오의 반환에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가 어떠한 역사적 전환과 연결되는가는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혹시 중국의 국가주의나 불균등 발전전략을 강화하는 논리만이 강조됨으로써 다양성에 대한 상호이해와 공존의 틀을 만들어낼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는 중국이 발전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불균등 지역발전, 연안의 거점도시 중심의 발전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된 듯이 보인다. 여기에는 홍콩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계산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백영서(白永瑞) 교수가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홍콩반환과 그 이후」, 『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 일국양제의 실험으로부터 국민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제3의 체제구상이나 이념이 나오리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양제의 틀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상당부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 자체가 새로운 변화의 원천으로 작용할 개연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홍콩과 마카오는 오랜 역사적 유산인 그들만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반환 이후의 변화 사이에서 여러가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타이완의 경우, 독립론이 약화되면서 중국인 정체성과 구별되는 타이완 정체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 정체성의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타이완 대륙위원회의 당국자는 타이완인이 문화적·인종적으로 중국인임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곧 정치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재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려 하였다. 정치적 범주와 문화적·인종적 범주가 상이할 수 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체성의 위기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정체성의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데, 과연 그런 갈등이 다양성을 확장하는 시민적 민주주의의 동력이 될 것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해 보였다. 장기적으로 정치적 통합의 영향력과 사회문화적 이질성의 결과가 각기 어떠할지는 미지수일 것 같다. 거대한 중국의 국가주의적 영향 아래 내부적 다양성과 이질성은 약화되거나 부차화할 수도 있고, 역으로 사회적 다양성이 중국의 국가주의적 성격 자체를 다르게 만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19세기적 부국강병국가로서가 아니라, 다양성과 이질성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공동체로 변모하는 것이 중요할 터인데, 여기에는 한반도의 미래가 또한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의 대비

 

타이완의 쳔 슈이뼨 총통은 작년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듣고 ‘부러움’을 표했다고 한다. 다른 타이완의 지식인이나 정치인들도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남북한의 정치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의지와 냉전구조 해체의 노력을 알아주는 듯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양안간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는 점점 더 회의적인 생각이 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양안관계에서는 정치적 통일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엄청난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 관계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타이완국립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진의 설명에 의하면,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중국방문이 허용되었는데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배경으로 성사된 금강산관광사업조차 표류상태에 처해 있는 우리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회경제적 차원의 교류 확대가 반드시 통일의 가능성을 높여주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회적인 교류와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정치적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설사 어떤 정치적 타협을 이루어낸다 하더라도 사회적 통합에는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양안관계는 오히려 남북한 관계에 비하여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아마도 타이완의 지식인들이 독립이나 통일 모두를 반대하고 ‘현상유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 ‘현재 상태’란, 정치통합 없이도 이미 실질적 교류와 협력이 상당정도 또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자유통행, 우편교류 그리고 상호통상 등이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피차의 존재에 결정적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형편에서 굳이 정치적 주권문제를 내세워 갈등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 상호간의 교류와 공존을 유지하자는 것이 이들의 ‘현상유지론’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현상유지’론은 한반도에서의 분단유지론과는 그 성질이 매우 다른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한반도의 현상유지론은 상호적대적인 긴장과 갈등을 전제로 남북한 각각의 내부통합을 높이고 권위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도 사실 양안관계 정도로만 상호교류와 인정이 이루어진다면, 통일에 대하여 좀더 여유로운 구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션젼의 경제특구를 보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북한도 땜질식 단기대응이 아닌, 체제개혁을 동반하는 내부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싯점이기 때문에 중국식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진·선봉과 같은 경제특구가 이미 실험중이고 개성공단을 비롯한 여러 안들이 언급되고 있다. 션젼경제특구는 놀랄 정도로 번화하고 깨끗했다. 마치 강남의 테헤란로 주변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진 도시 같았다. 최첨단 빌딩, 넓은 도로, 잘 정비된 도시시설, 화려한 네온싸인 등 머릿속에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넘었다. 중국정부가 특구를 지정하여 자본주의를 실험하고 그 효과를 서서히 중국 전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상당한 효과를 얻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족하였다.

현지 기업인의 이야기로는 중국이 시도한 5개 경제특구 가운데 성공한 곳은 그러나 션젼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경제특구와 달리 홍콩의 자본과 기술이 션젼과 연계됨으로써 션젼은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션젼의 성공이 홍콩이라는 지역과의 근접성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라면 북한에 이런 식의 경제특구가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실제로 현재 나진·선봉의 특구는 실패로 평가된다고 한다. 아무런 주변 배후지를 갖지 못한 채 외따로 떨어진 지역을 행정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성공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할 것은 명확해 보였다. 이런 점에서 어느 기업인은 현대가 추진하는 개성공단의 경우는 다소 성공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이라는 배후지의 영향을 기대하기 때문일 터인데, 서울이 개성공단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또 한국사회 자체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래 저래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만의 문제로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임을 느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