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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다산, 탁월한 시인
박석무·정해렴 편역주 『다산시 정선』 상·하, 현대실학사 2001
송재소 宋載卲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skjisan@hanmail.net
『목민심서』 『경세유표』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시인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실제로 다산은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2500여수의 시를 남긴 탁월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동안 사상가로서의 비중에 눌려 그 문학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다산의 시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씌어진 다산의 시가 오늘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민족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그의 시가 당대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포함하여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일생을 보냈지만, 그는 생의 어느 한순간에도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금도 다산의 시를 읽고 벅찬 감동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필자가 1981년 다산의 시 260여수를 어설프게 번역하여 『다산시선』이란 이름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출판했을 때, 이 땅의 시인들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 것도 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필자의 번역서 이외에도 그동안 몇종의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로 보아 다산 시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었다고 하겠다. 김상홍 교수가 『유형지(流刑地)의 애가』(1981)란 이름으로 137수를 번역한 바 있고, 박석무 선생이 주로 유배기의 시를 모아 『애절양(哀絶陽)』(1983)을 상재하기도 했다. 드디어 1994년에는 민족문화추진회에 의하여 다산 시가 완역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박석무(朴錫武)·정해렴(丁海廉) 두 분이 다산의 시 741수를 새롭게 번역하여 『다산시 정선(茶山詩精選)』 두 권을 내놓았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서들이 가지지 못한 여러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741수의 시를 8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다산의 생애를 따라 시대순으로 묶음으로써 시의 이해를 돕자는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또 치밀한 다산 시 연보를 작성하여 다산의 생애는 물론 다산 시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다산 시 연보는 다산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하 각권 말미에 수록된 인명·서명 해설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다산 시 2500여수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명과 서명에 일일이 해설을 붙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역자들은 이 일을 해냈다. 또한 역자들은 기존의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다산 시 십수편을 찾아내어 수록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번역한 책에 대해 평해야 하는 필자의 처지가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자타가 공인하는 다산 연구의 전문가와 편집·교열의 제1인자가 힘을 합쳐 만든 책을 두고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는 믿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펴본 결과 느낀 몇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시의 제목 붙이기. 제목은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시의 내용을 고려하여 평이한 우리말로 달았는데, 대체로 무난하지만 좀 어색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147면의 「고시(古詩) 24수」를 「시로 쓴 역사 인물론」으로 제목을 단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24수의 시가 모두 역사 인물론이 아닌만큼 그냥 「고시 24수」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742면의 「늙은이의 즐거움」 제하의 6수의 시에 원시에는 없는 「대머리」 「합죽이」 등의 소제목을 달아놓은 것도 좀 어색하다.
다음은 선시(選詩)의 문제이다. 예로부터 “선시가 작시(作詩)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거니와, 시를 가려뽑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다산의 생애를 여덟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을 비교적 무리없이 뽑았다. 그러나 1801년의 작품인 「고시 27수」가 빠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 시는 다산의 사상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 도착해서 지은 첫작품으로 추정되는 「객중서회(客中書懷)」를 비롯해서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작품들이 누락된 것에 대해서도 약간의 불만을 제기하고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주(註)를 줄이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참으로 옳은 자세이다. 그러나 한시(漢詩)의 특성상 주석이 불가피한 경우가 허다하다. 주석을 달지 않고도 독자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는 한시의 경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주를 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498면의 “보배로운 솥은 솥발이 넘어져야 고귀한 것이고”라는 구절에 아무런 주석이 없는데, 이것은 『주역』의 관련 문구를 들어 설명을 해야만 뜻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또 718면의 “또한 그의 오원도(烏圓圖)는”이라는 구절의 경우에도 ‘오원도’에 대한 주가 있어야 한다. 주를 달지 않으려면 ‘고양이 그림’으로 번역했어야 하지 않을까? 234면의 ‘이칙(夷則)’과 ‘임종(林鐘)’에도, 음악의 십이율(十二律)의 하나라는 정도의 간단한 주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57면의 “오릉중자(於陵仲子) 작은 청렴 내 아니 달갑네”에서, 오릉중자는 인명·서명 해설에 나오지만 불충분하다. 청렴의 대명사인 오릉중자의 청렴을 왜 ‘작은 청렴’이라 했는지, 그리고 왜 오릉중자와 같은 청렴을 다산이 달갑지 않다고 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맹자』의 관련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주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번역의 문제인데 비교적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일반 독자를 의식한 나머지 설명조로 길어진 곳이 가끔 보인다. 498면의 “한 줄기 기운이 반드시/최씨(崔氏)·노씨(盧氏)의 뱃속만 늘 의지해 섬길 리 없지”와 같은 부분이 그 예이다. 여기서 ‘최씨·노씨’에 대한 주가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未必一道氣 常抵崔盧腹”을 이렇게 번역한다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감이 든다. 더이상 예를 들지는 않겠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시의 원제(原題) 색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그야말로 옥에 티일 뿐이다. 티가 없으면 옥이 아니지 않은가? 인문학을 외면하는 척박한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한국고전 번역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두 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