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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한국문학의 오늘,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도
도전과 기회 사이에서
최근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
하정일 河晸一
문학평론가. 원광대 국문과 교수. 저서로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등이 있고, 『창작과비평』 2001년 봄호에 평론 「새로운 출발점에 선 민족문학론」 발표. jungil@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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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어 민족문학(론)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듯하다. 백낙청(白樂晴)의 고군분투를 제외하면, 10여년 동안 민족문학(론)이 침체의 미로를 헤매어왔는데, 이제야 조금씩 길을 찾아가고 있구나 싶다. 민족문학적 관점에서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해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저런 논의들이 아직 분명한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이 여전히 모색기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언가 가능성은 보이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모색기에 필요한 것은 섣부른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고 어떤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섣불리 해답을 제시했다가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피하면서 민족문학론의 길 찾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그래서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던 터인데, 마침 『창작과비평』 올 가을호에 민족문학론에 관한 필자의 구상을 비판하는 김명환(金明煥)의 글이 실렸다. 김명환은 몇년 전에도 필자의 글을 비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 글을 읽었다.1 필자가 민족문학론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것은 90년대 들어 민족문학이 맞이한 일대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이른바 ‘청산’과 ‘전향’이 속출하고 탈근대 담론의 도전이 날로 위세를 더하면서 필자 역시 여러모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차적으로는 이념적·학문적으로 흔들리는 필자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자기점검 차원에서 민족문학론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문학론을 지지하는 동학(同學)의 조언을 받아 필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김명환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필자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고, 한국근대문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민족문학론에 대한 인식이 일면적이었다. 성실한 독서는 비판의 윤리에 관한 문제니까 논외로 치더라도 뒤의 두 문제는 민족문학론의 길 찾기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더구나 그것들은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에 직결된 공안(公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김명환의 비판을 반박하면서 그를 통해 민족문학론의 쟁점과 과제를 정리해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못하더라도 쟁점과 과제만이라도 명확히할 수 있다면 그 나름으로 민족문학론의 발전에 무언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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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의 비판은 주로 분단체제론에 대한 필자의 견해에 집중되어 있다. 김명환은 필자의 민족문학론이 분단문제를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만 다룸으로써 “분단극복을 중심과제로 설정”해온 기왕의 민족문학론에서 이탈했다고 혹평한다(1996, 298면). 또한 그는 분단체제론에 분단 이후에 대한 구상이 불분명하다는 필자의 평가에 대해 “분단 이후의 체제에 대해서 미리부터 무슨 그림을 그려놓을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2001, 223면)하다고 단정하며, 계급문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치한 비판적 분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2001, 224면).
김명환의 비판을 접하면서 느낀 첫번째 소감은 분단체제론에 대한 완강한 집착이었다. 완전무결한 이론이란 없는 법이다. 더구나 분단체제론은 지금도 ‘형성’중인 이론 아닌가. 분단체제론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에 좀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응대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필자 역시 분단체제론 지지파이다. 하지만 김명환 식의 옹호와는 좀 맥락이 다르다. 필자가 최근 80년대의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재확인한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는 80년대 중반 사회구성체 논쟁이 이후 민족문학의 향방과 관련해 결정적인 고비였다는 사실이다.
1980년을 전후해 민족문학론은 민족주의를 내부로부터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발단은 제3세계론이었는데, 제3세계론의 수용과 재구성 과정에서 ‘전지구적 전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일국중심의 민족주의적 관점에 대한 자기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좀더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즉 민족주의를 역사화하려는 다양한 작업이 벌어졌다. 가령 역사학계에서는 민중적 민족주의론이 등장했고, 문학 쪽에서는 제3세계문학론이 그러한 역할을 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창작과비평사 1981)를 비롯한 번역서도 활발히 간행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민족문학이 민족주의의 포로라는 항간의 비난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가 다시 한번 증명되거니와 그 당시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백낙청이었다. 그러나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상황은 달라진다. 1985년 『창작과비평』 57호에서 벌어진 박현채와 이대근의 논쟁을 계기로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대 주변부자본주의론의 이론투쟁이 격화되었고, 대세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정확히 말하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압도적 우세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제3세계론─종속이론─주변부자본주의론으로 이어지던 70년대 후반 이래의 흐름이 꺾이게 된다. 이후 논쟁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약칭 신식국독자론)과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약칭 식반자론) 사이에서 주로 벌어지는데, 주변부자본주의론(약칭 주자론)은 식반자론의 변종쯤으로 취급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식국독자론으로부터 노동자계급문예론이나 노동해방문학론이, 식반자론으로부터 민족해방문학론과 주체문예론이 나왔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80년대를 되돌아볼 때, 주자론이 변방으로 내몰리지 않았다면 민족문학(론)의 방향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90년대 민족문학의 상황도 달랐을지 모른다. 90년대 민족문학의 침체가 자본주의의 ‘전지구화’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에서 비롯된 바 크기 때문이다. 80년대의 통념과는 반대로, 주자론은 식반자론의 변종이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신식국독자론과 식반자론이 그렇게 대립적인 관계도 아닌데,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신식국독자론과 식반자론이 똑같이 일국주의적 전망에 사로잡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양자가 모두 식민성과 신식민성의 관계에 대해 착종된 인식을 했다는 점이다. 신식국독자론이나 식반자론 공히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음에도, 정작 『제국주의론』 특유의 ‘전지구적 전망’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국 중심의 사고에만 맴돌았다. 그와 더불어 식민성과 신식민성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점을 세우지 못했다. 가령 신식국독자론은 ‘지배’라는 연속성을 무시했고, 식반자론은 신식민주의적 불연속성을 볼 수 없었다. 그 결과 신식국독자론에서는 식민성이 신식민성에 포섭되고 신식민성은 다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해소되며, 식반자론에서는 신식민성과 자본주의가 몽땅 식민주의로 해소된다. 그리하여 신식국독자론은 국가와 독점자본만 쓰러뜨리면 된다는 쪽으로 나가고, 식반자론은 미국만 타도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발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민족주의의 진정한 극복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주변부자본주의론은 유통주의적 편향이라든가 중심/주변의 단순구도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 전망 속에서 민족과 자본주의 문제를 바라보려는 일관된 노력을 보여주었다. 민족주의의 본질이 일국주의 혹은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점에서 주변부자본주의론은 민족주의의 진정한 극복과 맞닿아 있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의 전지구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하지만 80년대의 잘못된 논쟁구도로 말미암아 그 싹이 꺾이고 말았으니, 그렇게 보면 90년대 민족문학의 침체는 일부 논자들의 주장처럼 문학이 사회과학에 종속된 탓도 크지만, 그 이전에 사회과학적 인식이 잘못되었던 점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 빛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계보학적으로 보면, 분단체제론은 제3세계론─종속이론─주변부자본주의론을 잇고 있다. 세계체제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의 친연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실제로 80년대에 월러스틴은 주변부자본주의론자로 소개되었다), 분단체제론 곳곳에서 제3세계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분단체제론은 주변부자본주의론의 복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이제는 적어도 분단체제론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세계체제론의 유효성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분단체제론의 의의는 이처럼 7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진보적 지성사의 거시적 흐름 속에서 볼 때 비로소 제대로 짚어질 수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전지구적 틀을 바탕으로 민족문제와 자본주의 문제라는 80년대의 양대 화두를 결합했다는 점, 그럼으로써 70년대 민족문학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민족주의적 편향(일국주의와 통일지상주의)을 떼어냈다는 점, 그리하여 한국 민족문학을 세계문학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것이 분단체제론의 지성사적 의의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분단체제론에 대해 제기한 의문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이 역시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당시 주변부자본주의론에 대해 제기된 비판들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분단체제론이 아직도 주변부자본주의론의 문제점을 시원스레 해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분단체제론이 한반도 내부의 특수한 역학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중심/주변의 단순구도를 일정하게 극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내적 구조, 특히 자본-노동 관계에 대한 분단체제론적 관점에서의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분단체제론이 민중해방을 지향하는 이론이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극복을 궁극적 목표로 삼은 이론일진대 한국사회의 자본-노동 관계가 당연히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일국 단위의 자본주의에서 출발해 제국주의 세계체제로 확장해나간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좋은 본보기일 터이다.
이 문제는 “온전한 의미의 ‘노동자계급’은 세계경제를 단위로 해서만 논할 수 있고 그 차원에서는 아직도 형성중인 계급”(백낙청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창작과비평』 2000년 봄호 228면)이라는 설명만으로 끝낼 사안은 아니지 않나 싶다. 계급관계 나아가 사회적 생산관계는 어떤 이념형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싯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생생한 운동이다. 계급 패러다임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부단히 생성되는 사회적 생산관계를 해명하고 현실운동의 방향을 짚어주는 실천적 지침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백낙청이 계급을 관계 개념보다는 실체 개념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물론 “‘민중’이 실은 목하 형성중인 전지구적 노동계급의 실체”(같은 글 228면)라는 구절로 보아 백낙청이 노동자계급의 선험적 본질이 있다고 여기는 실체론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의구심을 표명하는 까닭은 백낙청 식으로 계급을 규정할 경우 의도와는 무관하게 계급문제의 제기가 계속 지연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도식화하면, 계급문제는 세계체제 차원으로 돌려지고(그럼으로써 괄호쳐지고) 민족국가 단위에서는 분단문제만 남는 이론구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필자가 분단문제를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 떨어뜨렸다는 김명환의 비판으로 넘어가보자. 그 말은 맞다. 필자는 분단문제를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나 분단체제까지도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분단체제란 계급·민족·분단·성·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는 복합체제이다. 그러므로 분단체제의 극복은 제반 사회적 모순의 총체적 해결을 가리킨다. 분단의 극복은 그러한 총체적 해결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기왕의 민족문학론이 분단극복을 중심과제로 삼는 데 합의했다는 김명환의 주장은 일방적인 추정일 뿐이다. 만약 그런 민족문학론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70년대에 많이 보았던 전형적인 민족주의문학론이다. 따라서 김명환의 주장은 분단체제론의 논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백낙청에게 중심과제는 분단의 극복이 아니라 분단‘체제’의 극복이다. “분단체제(강조는 인용자)의 극복만이 현존 세계체제에 좀더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백낙청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비평사 1994, 33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필자의 민족문학론이 ‘기왕의 민족문학론’에서 크게 이탈한 게 아님이 해명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민족문학론이 굳이 하나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실제로 민족문학론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다양한 민족문학론‘들’이 존재해왔다. 임화, 안함광, 최일수, 백낙청, 임헌영, 구중서 등등. 이들은 시공을 넘어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민족문학론을 일궈왔다. 그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민족문학이 70년대 이후가 아니라 근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으며, “역사적 개념인 민족문학이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에서 비롯된다”(1996, 298면)는 김명환의 설명이 그야말로 특정한 시대에 국한된 ‘역사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것이 더욱 바람직한 민족문학론이냐에 대한 토론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하나의 민족문학론만을 중심에 놓고 그것과 다르면 ‘공허’하다고 일갈하는 태도는 ‘대화적 갈등’을 원천봉쇄해버린다는 점에서 민족문학론의 발전을 위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김명환의 비판 중 의미있는 것은 분단 이후의 체제와 관련된 대목이다. 김명환은 분단 이후의 체제에 대해 미리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진정한 분단극복의 관점에서 몇가지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따름”(2001, 223면)이라고 말하는데, 그러한 진술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원칙만 세워놓고 나머지는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하지만 분단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기에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필자는 분단 이후의 체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는 ‘진정한 분단극복’의 경로를 설계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흡수통일은 췌언이 필요없지만, 가령 백낙청도 때때로 언급한 바 있는 연방국가(혹은 복합국가)로의 통일 역시 여러가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만약 김대중정부의 구상처럼 현존 남북한 체제가 그대로인 채 통일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연방국가는 현존 체제의 지속을 보증해주는 안전판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면 통일 이전에 남북한 각각의 변화가 필요해지는데, 이 경우 어떠한 방향으로의 변화여야 하는지 어느 수준까지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점검이 빠질 수 없다. 그런데 통일 이전 남북한의 변화 방향과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려면 다시금 분단 이후의 체제가 문제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관계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의 편입도 아니고 이탈도 아닌 혹은 편입이자 이탈인 절묘한 줄타기를 가능케 해줄 수 있는 체제는 어떤 것이냐가 쟁점일 터인데, 연방국가라는 형식에서 이러한 줄타기가 가능할지가 또 의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현격히 다른 상황에서 두 체제의 지배세력간에 그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민중이 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분단극복 과정에서 남북한 민중이 통일의 주체로 자리잡지 않고서는 어렵다. 요컨대 남북한 민중이 주체가 되는 것이 진정한 분단극복의 선결과제인 셈이다. 하지만 남북한 민중이 분단극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민중이 주체가 된 통일한반도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세워진 통일한반도가 어떻게 다를지 하나하나 따져져야 하므로, 분단 이후의 상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불가피해진다. 필자가 분단 이후의 체제가 “통일의 방식이나 통일국가의 형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소명출판 2000, 81면)라고 말한 참뜻이 이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를 설계해두지 않고서는 분단극복의 주체, 방식, 과정을 올바로 기획하기 어렵다는 데 분단 이후의 체제에 대한 해명이 긴요한 소이(所以)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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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론과 함께 김명환의 주된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이 근대극복 문제에 대한 필자의 입장이다. 김명환은 필자가 근대극복이라는 과제에 대해 소홀하거나 무관심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996년 글에서는 필자의 민족문학론이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에 투항할 위험이 있다고 혹평하더니, 이번 글에서는 “면밀하고 성실한 자기점검이 불가결하다”(2001, 223면)는 정도로 수위가 조금 낮아졌다는 점이다.
먼저 분단 이후도 그림그리기 어렵다고 하면서 근대 이후에 대한 구체적 전망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다. 말꼬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를 전망하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근대극복 문제에 대한 필자의 입장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근대극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면밀하고 성실한 자기점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두 가지 사항이 문제다.
우선 근대와 자본주의의 관계이다. 필자는 비판대상이 된 책의 여러 곳에서 근대와 자본주의가 겹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관계임을 서술한 바 있다. 요컨대 근대의 물질적 토대가 자본주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대가 자본주의로 몽땅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근대는 다양한 근대‘들’이 경쟁하는 장이고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시대이다. 자본주의는 그 가운데 헤게모니적이긴 하지만 유일한 것이 아닌 한 부분일 뿐이다. 근대와 자본주의를 동일시한다면 근대극복은 이론적으로 간단해진다. 자본주의의 극복일 테니까. 하지만 근대와 자본주의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그래서 필자는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은 말할 수 있지만 근대극복은 쉽게 운위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막연한 슬로건으로서의 근대극복이 아니라 ‘제3세계 민중의 관점에서의 근대극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민족문학 내부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근대와 근대 이후의 관계도 어려운 문제다. 가령 기왕의 탈근대 담론들은 대부분 근대와 근대 이후를 단절적 관계로 바라본다. 김명환이 문제삼은 「근대성과 민족문학」(1994)은 그렇게 보는 것이 근대의 복잡성을 몰각한 단순논리임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글이다. 맑스주의를 제외한 서구의 주류 탈근대 담론에는 근대는 부정하면서 정작 근대의 헤게모니적 영역인 자본주의는 묵수(默隨)하는 듯한 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탈산업사회론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모더니즘론들이 그러하고, 근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대표하는 탈구조주의나 해체론 또한 자본주의라는 괴물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만다. 자본주의의 극복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감히 근대극복이라니!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의 위력을 너무도 오랜 동안 체험한 제1세계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제3세계야말로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유력한 지역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절론적 탈근대 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근대를 ‘하나의 상’으로 고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니까 놀랍게도 진보와 보수가 어느새 똑같아지는 것 아닌가. 이러한 마술이 가능한 것은 근대에서 자본주의 항목을 슬그머니 제쳐놓은 덕분이거니와, 그럼으로써 비(非)자본주의적 기획들이 근대라는 단일한 망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것이다. 탈근대 담론의 이론적 마술에 대한 민족문학측의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 백낙청의 근대극복론이었음은 물론이다. 근대극복론의 강점은 기존 탈근대 담론의 단절론적 시각을 뛰어넘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동시적 지향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필자 또한 여기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백낙청론’(「시민문학론에서 근대극복론까지」)에서도 지적했듯이 근대극복의 구체적 경로를 어떻게 잡을 것이냐가 문제다. 필자는 근대극복이란 자본주의 극복을 포함하되 그것보다 더욱 포괄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근대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넓이와 두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의 구체적 상을 그리기 힘든 것은 그래서이다. “근대성이라는 경험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근대 이후에 대한 구체적 상을 인식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민족문학사연구소 편 『민족문학과 근대성』, 문학과지성사 1995, 477면)라는 필자의 반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근대극복은 근대의 “해방적 가능성을 극대화시켜나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졸저 93면)이 된다. 그런데 근대의 해방적 가능성을 키워나가려면 근대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것이 해방적인 것이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 테니까. ‘복수의 근대’란 용어는 그런 문제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용어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와 ‘연결된’ 것도 틀림없으며, ‘불분명하다’는 김명환의 판단과는 달리 ‘분명히’ 입장의 차이도 있고 표현상의 차이도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김명환이 필자의 책을 조금만 더 꼼꼼히 읽어주었더라면 ‘근대성의 성취를 통한 근대극복’이란 문제의식이 ‘최근’의 것이 아니라 ‘백낙청론’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을뿐더러 다른 글들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민족문학이 근대성의 실현을 위한 문학이념”(졸저 105면)이라거나 “민족문학의 장래는 근대성의 구현에 성공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졸저 116면)고 필자가 주장할 때의 ‘근대성’이 근대의 해방적 가능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것이 근대극복과 무관하지 않음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분명하다고 느끼도록 만든 것은 필자의 필력 부족 탓이겠지만, 일관된 입장이 없다면 모르되 나름대로의 일관된 입장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 명확한 의미를 밝혀주는 것도 평자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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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원식(崔元植)은 리얼리즘/모더니즘 회통론을 제창한 바 있다. 이 문제가 얼마 전에 벌어진 모더니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데다 민족문학론을 갱신해나가는 데 중차대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2년 전에 그간의 모더니즘 논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진정석(陳正石)의 ‘모더니즘 재인식’론을 비판하는 글(「모더니즘 논쟁과 20세기 한국문학」, 『한국문학평론』 1999년 겨울호)을 쓴 적이 있다. 사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모더니즘을 민족문학적 관점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진정석의 「모더니즘의 재인식」(『창작과비평』 1997년 여름호)을 관심깊게 읽었는데, 그의 견해는 안타깝게도 ‘한국’ 모더니즘의 역사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리얼리즘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곳곳에서 보여주었다. 더구나 90년대가 모더니즘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판단에 이르면 그의 입론은 모더니즘 재인식론이라기보다는 ‘모더니즘 대안’론이 되고 만다.
최원식의 이른바 ‘회통’론은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진지하게 숙고한 좋은 사례이다. 그가 “통상적 모더니즘과 통상적 리얼리즘을 가로질러 그 회통(會通)에 도달”(『문학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1, 52면. 이하 면수만 표시)한 본보기로 김수영을 설정한 데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모더니즘의 성취와 한계가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통찰될 수 있었고, 다른 한편 리얼리즘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짚어질 수 있었다. 특히 80년대 이후의 민족문학운동이 김수영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대신 “신동엽적인 것이 압도하는 형국, 다시 말하면 신동엽의 범속화가 대세를 이룸으로써”(53면) 자기갱신을 이룰 기회를 놓쳤다는 해석은 거듭 경청할 만하다. “모더니즘에 의한 리얼리즘의 극복이란 근본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형용모순의 명제가 아닐 수 없다”(56면)는, 진정석과는 정반대의 진단 또한 한국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역사성에 대한 날카로운 점검에 바탕을 두고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그런 점에서 ‘회통’의 문제는 온갖 탈근대주의 문학의 도전을 너끈히 이겨내고 민족문학이 21세기에도 유력한 문학이념으로 거듭나기 위해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화두라 할 수 있다.
가령 얼마 전에 출간된 황석영(黃晳暎)의 『손님』(창작과비평사 2001)에서도 그러한 회통의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손님』을 기법적 측면에서만 보면 그야말로 모더니즘적이다. 현실과 환상의 공존, 시점의 다양한 이동,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 등 모더니즘의 첨단기법이 두루 동원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손님』을 두고 모더니즘 작품이라고 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밑바닥에는 “근대에의 투항”(56면)이라는 모더니즘의 한계가 아닌, 근대성의 성취를 통한 근대극복의 가능성에 대한 리얼리즘 특유의 모색이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의 첨단기법들도 그러한 모색의 소산이다.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분단의 과거와 현재, 분단의 원인과 결과, 분단과 제국주의의 연관성, 분단극복의 가능성 등 분단 이후의 한반도 현대사를 ‘총체화’하고자 하는 의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실험을 위한 실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손님』에서 모더니즘을 껴안으면서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리얼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화해를 꾀하고 있는, 그리하여 계급적 대립이라는 문제가 상당부분 가려지고 마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손님』은 최원식의 ‘회통’론이 불가능한 구상만은 아님을 실증해주는, 즉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동아시아 고전문학의 전통을 민중적 관점에서 해체, 재발견, 쇄신하는 한국발(發) 대안의 모색”(59면)의 사례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회통’론에 담긴 진중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최원식의 글에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어째서 대립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 양분법이 낳은 폐해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백낙청의 지적처럼, 그것은 모더니즘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바 크다.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추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문학이념이 무엇이냐”(백낙청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창작과비평』 2000년 봄호 226면)는 고민이 낳은 대립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양분법은 “상상된 또는 창안된 표지”(57면)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구체적 역사가 만든 실제이다. 물론 “두 계열의 정전(正典)들은 정연하게 정렬되지 않는다.”(57면) 서로 부단히 넘나들고 있을뿐더러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양분법이 실제 역사인 것은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로 규정하느냐 모더니스트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문학적 지향이 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대한 자의식이 문학사 속에 실재해왔고, 그 자의식이 만들어낸 차이 또한 엄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회통’이 자칫 민족문학이 그간 이루어낸 혹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를테면 최원식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근대의 성취와 근대의 극복이라는 이중과제를 추구하는 데 모더니즘과의 회통이 무슨 도움이 될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아서는 안될 터이다. 하지만 만리장성을 허무는 일이 역사적 차이마저 부정하고 내남없이 섞이는 것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연대가 야합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공통점의 도출과 함께 차이의 분별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원식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 점에서 그는 여타의 모더니즘 옹호론자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럼에도 굳이 ‘회통’을 얘기하는 것은 아마도 “어느 한쪽에 의한 다른 한쪽의 흡수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58면)는 소신 때문인 듯하다. 필자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의하기 때문에 오히려 차이의 분별이 불가결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흡수란 차이를 부정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차이가 최원식이 강조하는 이중과제와 관련된 차이일진대 차이의 분별은 민족문학의 이념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닐 수 없다.
‘회통’론에 대한 필자의 몇가지 우려는 때이른 감이 있다. ‘회통’론이 아직 체계적인 틀과 이론적 명제를 갖추지는 않은, 이제 막 시작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회통’론의 기본적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공감하는 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앞질러 우려를 표명한 까닭은 그것이 나 몰라라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라 민족문학이 함께 해법을 고민해야 할 현싯점의 중요한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여서다. 그런 마음으로 ‘회통’론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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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 대한 김명환의 비판을 중심으로 최근 민족문학론의 쟁점을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러다보니까 비판에 대한 답변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쟁점도 제대로 짚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무엇보다 김명환의 다른 비판들, 예컨대 분단체제와 세계체제 사이의 매개항이라든가 작품론의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작품론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변명 한마디 정도는 해야겠다. 꼭 최근 작품을 다루어야 민족문학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 실린 작품론들은 대부분 과거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과거를 현재화하는 작업도 민족문학론의 성숙을 위해 긴요하다는 마음가짐 아래 씌어진 글들이다. 거기서 다루어진 작가와 작품들이 곧 민족문학의 역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부실함이야 어쩌랴, 앞으로 계속 갈고 닦을 수밖에.
요즈음 민족문학이 또 한번의 고비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무시로 떠오른다. 도전으로서의 고비였던 90년대와는 달리 이번 고비는 기회로서의 고비이다. 최근 보여주는 황석영의 왕성한 창작활동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물론 이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90년대 내내 지속된 고통스런 암중모색의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족문학론도 새로운 기운에 부응해 전열을 가다듬고 쟁점을 정리하고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터이다. 기회란 좀처럼 다시 오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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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이 되는 김명환의 글은 「민중문학의 길 다지기를 위하여」(『창작과비평』 1996년 여름호)와 「90년대문학 성찰의 좌표를 찾아서」(『창작과비평』 2001년 가을호) 두 편이다. 본문에서는 연도와 면수만 밝히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