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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신화적 상상력과 음란한 상상력

『천국의 신화』 유죄 판결을 지켜보며

 

 

박인하 朴仁河

만화평론가

 

 

조금 들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낮의 꿈처럼 허무했다. 정보혁명의 바람과 함께 찾아온 영상이미지의 역사적인 복권과 첨단 컨텐츠로 각광받는 만화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계급적 환골탈태를 거듭했다. 어린이·룸펜·청소년·여성 등 사회문화적인 약자들과 함께했던 만화가 일약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꿈의 산업이 되었다. 변변한 평가나 이론조차 없던 만화는 담론을 생산하며 무서운 속도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했다. 멋지게 치장된 씸포지엄 장소에 만화와 관련된 이름이 내걸리기도 했고, 국내 최고 전시장에서 만화와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해마다 오월이면 불량만화를 퇴치하자는 관제데모를 열던 정부는 해마다 한국만화대상을, 분기별로 좋은 만화를 뽑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에는 만화와 관련된 학과가 생겨나기도 했다. 만화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갔다. 사람들은 만화의 표현이 공권력에 의해 규제받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21세기는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성숙한 수용이 가능해진 문화적 다양성의 시대로 받아들여졌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21세기 문화강국을 주장하였다.


109-391이런 시기에 나온 이현세(李賢世)의 『천국의 신화』 유죄 판결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사법부가 이번 판결을 통해 문화적 표현물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했다는 점이다. 마광수(馬光洙)·장정일(蔣正一)의 소설, 그리고 영화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논쟁에 대해 사법부는 『천국의 신화』 유죄 판결로 규제강화의 의지를 천명했다. 공권력이 문화를 판단하고 재단하겠다는 대단히 무섭고 파쇼적인 발상이다. 둘째, 잘못된 만화 독해에 대한 문제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재판부의 만화 오독을 지적해야 한다. 재판부에서 문제삼은 『천국의 신화』는 ‘청소년용’이다. 재판부는 청소년용 『천국의 신화』에 “집단강간이나 수간 장면이 나오는 등 음란성과 잔혹성”이 있어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의 잘못된 행동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청소년용 『천국의 신화』는 사전에 집단강간이나 수간 장면 등을 모두 삭제해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이 없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한 장면들, 그러니까 1998년 『천국의 신화』가 처음으로 문제가 되었을 당시 검찰의 고발에 등장한 집단강간이나 수간 장면 등은 모두 ‘성인용’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천국의 신화』의 유죄 판결은 성인용 만화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청소년용 만화를 보았을 때만 가능하다. 이렇듯 잘못된 독해를 통해 판결을 내리면서 재판부가 음란성과 폭력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일반인들의 정서’였다. 소설이나 영화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재판부는 작가나 평론가, 교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이를 근거로 심리를 진행했다. 그러나 만화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무시한 채 ‘일반인들의 정서’라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무시한 모호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행위는 결국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아무리 만화가 빛나는 위치에 오른 것처럼 보여도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기득권을 지닌 높으신 분들에게 만화는 여전히 ‘넘버 3’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과거에도 사람이 있고 일상이 있었다. 역사는 그것을 질료로 단순화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사건을 선택하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의 상상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질베르 뒤랑(Gilbert Durand)은 “역사는 상상력의 세계가 열어놓은 영역”이라고 했다. 『천국의 신화』는 역사보다 훨씬 더 상상의 세계에 가깝게 가 있다. 상고의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천국의 신화』는 기록된 신화를 토대로 다시 그것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했다. 특히 신화의 환상성을 당대의 일상과 접목시키려 한 점이 돋보인다. 『천국의 신화』는 태초와 상고시대를 크게 두 축을 통해 구축한다. 하나는 역사를 바라보는 과학적 추리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 전승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과학적 추리는 상고시대의 인간을 약육강식의 세계, 생존본능과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무리로 그린다. 신화적 전승은 인간을 반대로 생존본능을 벗어난 이성의 존재로 그린다.

약육강식의 세계,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 이현세는 음식과 성을 주된 표현의 소재로 썼다. 본능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서다. 물론 성인용에만 존재하지만 원시인들의 난교 장면은 역사 해석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러한 원시인들의 난교장면 등은 당대의 일상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적 선택이지 독자들의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와 함께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청소년 보호라는 대의가 과연 민주적인가 하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청소년 보호가 매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인가 하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공권력이 편의적으로 가장 실적을 보이기 좋은 매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 문제의 근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붕괴된 학교교육을 바로세우고, 비민주적이고 비정상적인 사회·경제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 아들에게 거대한 부를 상속하고 사회적 탈선을 일삼는 재벌들의 모습은 『천국의 신화』보다 더 음란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만화는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번 사건은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사상누각처럼 허약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만화는 주변의 부추김에 들뜨지 말고 허약한 체질을 강화하는 자기 성숙을 이루어내야 한다. 시장과 작품, 이론 등에서 한 단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번이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