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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한국문학의 오늘,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도
풍경 뒤에 숨은 고통의 텍스트
이성선·최하림·김영무의 시를 읽고
염무웅 廉武雄
문학평론가. 영남대 독문과 교수.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등이 있음.
유유자적 한가롭게 내딛는 발걸음의 먼 배경으로서건 세상살이의 고통과 혼탁에 대비된 상징적 공간으로서건 자연은 오랜 옛날부터 서정시의 핵심적 구성요소였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의 생존을 규정짓는 근원적 바탕이자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의 테두리이며 인간의식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절대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대하고 유구한 자연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변형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모든 사람들에게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또 동일한 강도로 의식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자명한 일이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그의 삶의 문제 전체의 반영일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그 시대의 객관적인 여러 조건과 각 개인들의 구체적인 이해관계와 경험세계에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연의 의미, 다른 말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미지 즉 자연관이라고 일컫는 것도 어떤 추상적인 사유의 소산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에서 태어난 하나의 역사적 형성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략한 전제를 가지고 근년의 우리 시를 살펴볼 때 현저하게 눈에 띄는 사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연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시인들이 무시로 자연을 소재로 삼는데, 시인들이 이처럼 자연을 주목하게 된 경위와 그들이 자연을 노래하는 방식은 물론 천차만별이다. 산업화·도시화의 반자연적 성격에 항거하면서 의식적으로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그와 달리 현실운동으로부터 내면적 성찰의 자세로 전회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만난 시인도 있다. 농촌생활의 일상을 구성하는 현재적 자연풍경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도시적 삶의 공허와 인위성을 드러내기 위해 과거의 자연경치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데 몰두하는 시인도 있다. 어떻든 이제 자연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는 인간생존의 기반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으며, 지구행성 위에서 인간의 정상적인 삶이 계속될 수 있느냐의 여부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없음도 명백하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올 가을 창간 10주년을 맞은 『녹색평론』 같은 잡지의 꾸준한 노력과 줄기찬 호소가 커다란 역사적·현실적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같은 생태적 관점 내지 환경의식의 확산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생활방식과 사회의 소비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주의’가 다 그렇듯이 생태주의도 그 본연의 것으로부터 이탈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이미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품목도 적지 않은 듯하며, 때로는 단순한 정치적·도덕적 명분에 불과하게 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생태주의 자체가 독재와 독선의 심리적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거룩한 신념도 그것들이 태어나는 순간의 생명력과 순정성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그와 반대로 불교나 유교의 역사에서 보듯이 거듭된 타락과 경직의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계승자들에 의해 더욱 풍요롭고 심오한 것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과도한 비유를 들었는데, 어쨌든 『녹색평론』이 견지하는 일종의 근본주의가 그 현실정합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이 불신의 시대에 외롭게 빛나 보이는 것은 그 초심(初心)에 대한 이러한 비타협적 충실성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생태주의라든가 생태적 상상력 같은 개념이 문학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론적 도구로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도 이 시대 자본주의 체제의 엄청난 탐식성과 놀라운 잡식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대조차도 자본주의 체제의 타격으로 되기보다 그 체제의 먹잇감으로 소모되는 상황에서는 생태주의의 얼굴을 그대로 둔 채 그 몸통 속에 상업주의의 영혼을 주입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이론화된 생태주의를 그냥 받아들여 적용하기보다(때로는 그럴 필요도 있겠지만) 오히려 생태적 관점이 싹트고 성장해가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사물을 보고 문학을 대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생태주의적일지 모른다.
1
이성선(李聖善)은 널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고 크게 주목받는 시인도 아니지만 소수의 독자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시인이었다. 금년 5월 초순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더욱이 유언에 따라 일절 부고도 하지 않고 몇몇 친지와 유족들만 장례에 참석하여 그의 화장한 유골을 백담사 계곡에 뿌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허망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시집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성선이 오랫동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예감하고 준비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선집 『빈 산이 젖고 있다』(미래사 1991)에는 하나의 주제를 두 가지 방식으로 노래하여 「불타는 영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묶어놓은 작품이 실려 있다. 다음은 그 작품의 둘째 부분인 ‘불의 노래’ 전문이다.
지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불이 되리 하늘의 불이 되리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를
죽어서도 끝내 굵은 밧줄로 다시 묶어
땅속에 버려둘 수는 없어
하늘로 가는 문인 아궁이에
장작처럼 누워
온몸에 불을 댕겨
어두운 땅 한번 환하게 빛내고
하늘로 가리
불이 되어 불이 되어 하늘로 가리.
이 「불타는 영혼의 노래」가 언제 씌어졌는지(또는 발표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아마 『몸은 지상에 묶여도』(시인사 1979)에 실렸던 기억으로 미루어 70년대 후반일 것이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여기 보이는 바와 같이 이성선이 상당히 오래 전에 자신의 죽음의 광경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성선은 거의 전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죽음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문면상의 이미지는 「불타는 영혼의 노래」와 대척적이지만(즉 불과 얼음의 극단적인 대비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신적 지향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맹세하듯 다짐하기도 한다.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
가장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
그곳에서 모두를 하늘에 되돌려주고
한 송이 꽃으로
가볍게 몸을 벌리고
우주를 호흡하리.
산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목숨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꺼이 거기 몸을 묻으리.
─「절정의 노래 1」 전반부
내 생각에 이성선 시의 인식론적 출발은 자신의 육체적 삶이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있다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라는 시의 제목에 요약되듯이 그의 의식은 세속의 오욕과 지상적 한계에 구속된 자신의 존재조건에 의해 끝없는 모멸감을 경험한다. “최초 땅속에 허리 구부리고 살던 벌레는 어둠에서 나와 땅 위를 기어갑니다. 몸 구부렸다 폈다 하며 지구의 한 부분을 기어갑니다.”(「序詩」 앞부분)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야말로 그의 내면적 영상에 그려진 자신의 왜소한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성선은 시인생활의 초기에 이미 자신의 정신적 귀의처를 제약과 속박에서 벗어난 초월적 영역으로 옮긴다. 몸은 비록 세속의 번뇌에 묶여 있을지라도 영혼은 조만간 안식과 평화의 나라로 갈 것이라고 그는 되풀이하여 노래한다. “드디어 그는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 안의 나를 파괴하고 한 마리 나비로 완성되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우주를 소유합니다.” (「序詩」 끝부분) 벌레에서 나비로의 번신(飜身)을 통해, 즉 부정적 자의식의 재부정을 통해 그는 ‘한 송이 꽃’과 같은 찬란한 긍정에 도달하여 달·풀잎·이슬·산·바람들과 교감하며 우주를 호흡한다. 사실 이성선은 1970년에 시인으로 데뷔하여 작고하기까지 30여년 동안 우리 문단의 누구보다도 줄기차게, 시집 『별까지 가면 된다』(고려원 1988)의 해설에서 오탁번씨가 지적했듯이 ‘단조롭기 그지없다’고 할 만큼 일관되게 자연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에 의해 갖게 되는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이성선은 풍경화를 그리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풍경과 동식물은 인간사의 고통과 유한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때그때 동원된 비유이며 시인의 정신적 수련을 거들기 위해 채택된 일시적 가면이다. 이제 드디어 그는 비록 시적 영역 안에서일 뿐이지만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를 획득한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티벳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 부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미시령 노을」 전문
이성선의 모든 시들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순수정신의 세계로의 휴거(또는 휴거의 환각)는 그러나 이 시인의 현실감각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시를 쓰는 동안, 숲속을 걷고 산길을 오르는 동안, 그는 초월의 환상에 잠길 수 있다. 하지만 곧 그는 현실로 추방되고 지상으로 추락한다. 그리하여 그는 또다시 비상의 연습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현세적 삶에 대한 이런 처절한 부정과 바닥모를 비관주의는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근년에 간행된 시집 『산시(山詩)』(시와시학사 1999) 연보에서 이성선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력을 약간 밝히고 있는데, 거기 따르면 그의 부친은 6·25 때 자진 월북을 하였고 그래서 대학 진학시 모친의 강권으로 말썽많은 문과를 포기하고 농과대학에 갔다고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이 없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시절부터 그의 집안은 이 남한체제에 용납되기 어려운 살벌한 금기의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었던 것 같다. 열 권이 넘는 시집들 가운데 명시적으로 아버지를 노래한 시는 두 편밖에 되지 않는데, 『절정의 노래』(창작과비평사 1991)에 실린 「눈물」부터 읽어보자.
화진포 물 위에 갈대로
혼자 누워 울고 싶어라.
새들은 일찍 떠나고
금강산 그림자만 내려와
이 물밑길로
아버지 오시어
내 어깨에 얼굴 묻으면
멎으리라. 흐느낌도
그때 멎으리라.
오랜 그리움 잊고 잠들리라.
이성선 시의 고유한 정신주의도 내적 초월의 환각도 여기에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형이상학적 위장을 벗겨낸 뒤의 감정의 단순성 자체가 이 시에서는 절실한 울림을 발한다. (이성선이 태어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신선봉은 설악산 바로 북쪽에 있어 설악산이 훨씬 더 가깝지만 예로부터 금강산의 맨 남쪽 봉우리로 쳐왔다.) 최근의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세계사 2000)에 수록된 「새와 풀꽃의 면회소」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아버지는 비무장지대 너머에 계시다
강원도 고성 금강산 속
작은 마을
또는 원산에
아버지는 계시다
외금강과 해금강의 외로운 길
논둑의 풀대 끝이나 길가 가지 위에
구름 되어 머물고 비로 흐느끼고
이미 육신은 땅에 다 털어버린 후
바람으로 아들을 부른다
설악산 아래 찾아와 밤 지새다 떠난다
아홉살 때 가신 아버지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며 가신 얼굴
그때부터 비무장지대는
남북을 가르는 띠가 아니다
아버지와 내가 찾아가 꽃으로 떠서
서로를 들여다보는 강물이 되었다
비무장지대는 지금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아들이
만나 대화하는
새와 풀꽃의 면회소가 되었다
90년대 들어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전되고 특히 김대중정부의 출범으로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된 사실이 이런 시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분단현실의 최전방에서 제도화된 반공폭력의 가장 살벌했던 한 시대를 숨죽이며 견뎌야 했던 이성선 같은 착하고 소심한 시인이 오랜 의도적 망각의 노력 끝에 그러나 마침내 아버지와의 이별의 장면을 이처럼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감동적이다.
그러나 물론 이 시들은 이성선의 문학에서 극히 예외적인 것이고, 정신주의적 초월의지야말로 그의 시의 변함없는 주제였다. 그는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시의 소재를 구했지만, 그러나 그는 자연의 객관적 실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일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그는 쉬지 않고 구름·바람·달·산·풀잎 따위들을 노래했지만 그의 시선은 그런 자연적 사물 자체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언제나 그 너머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고 자연풍경의 객관성에 머리를 숙이는 겸허함이 없었다. 후일 그의 이런 태도에 약간의 변동이 온 것은 사실이다. 1996년 그는 그 지역 환경운동연합의 공동의장이 되었다. 생태적 위기는 이제 이 완고하게 닫혀진 정신주의자를 마침내 정신적 자연 아닌 현실적 자연의 문제에로 눈뜨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가 동경해 마지않았고 자기 시의 귀결점으로 생각했던 인도에서의 감당하기 힘든 문화적 충격도 그의 정신주의적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결국 그의 시적 사유와 육신의 삶은 그 소실점에서 만나고 말았다.
2
시집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지성사 1998)와 『풍경 뒤의 풍경』(문학과지성사 2001)에서 최하림(崔夏林)은 이성선과 극히 대조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관심을 쏟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성선에게 자연풍경은 그 자체로서 자기목적적인 관찰의 대상이 아니고 시인의 내면을 투사하는 외재적 표지이자 그의 정신적 각성과 내적 수련을 위해 차용되는 임시적 방편일 뿐이다. 달·산·풀잎·벌레 따위들이 이성선에게 30여년 동안 탕진되지 않는 소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 사물들이 시인에 의해 한번도 치명적인 공격을 받은 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냇물을 다 건너기 전에는 뗏목을 떠날 수 없듯이 이성선은 끝내 화두이자 방편으로서의 자연을 버릴 수 없었다.
반면에 최하림의 시가 묘사하는 것은 제한된 화폭 안에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그의 감각적 실존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들은 일체의 초월적·형이상학적 전제를 배제한 사물과 풍경의 인상주의적 재현이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재현의 노력 자체가 치열하고도 밀도높은 언어적 집중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시는 외관상 그러한 것과 달리 깊은 정신성을 성취한다. 세기전환기에 잇달아 간행된 최하림의 두 시집은 차라리 한권의 시집으로 묶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질 만큼 강한 연속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가.
최하림은 그의 네번째 시집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문학과지성사 1991)의 머리말에서 몇해 동안 5월 광주에서 비롯된 죄의식에 시달렸음을 고백하면서 “자연과 나누는 감정의 지극한 평화”를 통해 어떤 실체적 진실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는 시집의 뒤표지에서도 “내가 너를 보고, 너에게 보여진다고 하는 것은 풍경의 객관화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과 나누는 감정의 평화’와 ‘풍경의 객관화’가 작품 속에서 어느정도 실현되는 것은 근년의 두 시집에서이고, 그것을 의식적인 목표로 삼았던 네번째 시집 자체는 목표에 이르고자 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시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시집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에는 「죽은 자들이여, 너희는 어디 있는가」처럼 70년대의 최하림을 연상시키는 지사적 단순어법으로 광주의 참상과 시인의 자의식을 노래한 시가 있는가 하면, 「방」 「겨울 초상화」처럼 그가 좀체 입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의 심연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다. 무엇보다도 「시」 「이 말 저 말 시인」 「시에게」 「말에게」 「내 시는 시의 그림자뿐이네」처럼 시론적(詩論的)인 작품들이 여러 편 있어 그가 자신의 시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그의 시인적 생애에 중요한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 전환의 계기는 개인적 불행의 얼굴을 하고 돌연하게 그를 찾아왔던 것 같다.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의 머리말에서 그는 1991년 여름 “몸과 맘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었고, 그래서 “다시 시를 쓰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과의 싸움’이라는 오직 한가지 뜻만을 염두에 둔 채 ‘누에가 실을 뽑듯이’ 한편 한편 시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는 10년 동안 두 권 분량의 시들을 써낼 수 있었다. 이 시들에 대해 최하림 자신은 ‘관성적인 시쓰기’였다고 겸양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는 이들 시집에서 비로소 지난날의 이러저러한 관성과 상투형으로부터 벗어나 최하림의 이름으로만 통용되는 드문 독창성에 도달하는 것 같다.
어떤 점에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와 『풍경 뒤의 풍경』은 시의 형식으로 씌어진 하나의 투병일지이다. 그러나 「병상일기」 「병상에서」 등 두세 편을 제외하면 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병을 다룬 작품들에서도 그는 도덕적 견인주의자의 엄격함을 가지고 자신의 육체적 불편과 심리적 고통을 통제한다. 즉, 그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자신의 구차한 모습조차도 감상주의가 개입할 여지없이 냉정하게 서술한다.
나도 베드에서 잔다
어쩌다 베드에 똥을 누기도 한다
똥누는 일은 홀로 한다 모두 홀로 한다 다친 영혼이 몸을 떨며
창가에서, 휘파람새들이 기웃거린다
휘파람새들이 지금은 아프다
─「病床일기」 끝부분
환자가 베드에 똥을 누는 일과 다친 영혼이 몸을 떠는 일이 아무런 정서적 매개 없이 동일한 평면에 병렬됨으로써 육신의 질환과 영혼의 상처는 하나의 사물적 연쇄를 형성한다. 시인은 차원이 다른 두 고통을 그렇게 병치시킬 뿐이고 거기에 더이상의 감정적 윤색이나 관념적 해석을 부가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고통은 고통의 생성지점으로, 즉 그 시초의 본래적 단순성으로 회귀한다. 이때 시쓰기는 질병에 굴복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을 견지하려는 정신력의 싸움인 동시에 그 상황을 언어적으로 객관화하려는 표현의지의 싸움이 된다.
그런데 두 시집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투병일지와 같다고 지적한 데서 이미 암시되듯이 극히 미미하나마 병세의 진행과정이 책장을 넘기는 데 따라 조금씩 감지된다. 그동안 많은 시인들이 병마에 시달렸을 터이고 특히 그 이름으로 최하림에게 문학상이 주어진 이산(怡山)의 경우 병으로 쓰러진 다음에야 『성북동 비둘기』 같은 명편을 낳기도 했지만, 그러나 최하림의 이번 시집들처럼 병에 걸렸으되 병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독립적 정신이, 즉 병을 제어하고 관찰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든 시를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시인이 서서히 병에서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최근에는 아내를 자동차에 태우고 짧은 드라이브를 하게 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번 시집들은 단일한 시간적 플롯 안에 다양한 풍경들을 배치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구성적 뼈대일 뿐만 아니라 개별 작품 안에서도 흘러가는 인상과 사라지는 풍경을 고정시키는 액자의 구실을 한다. 짐작컨대 관찰자이자 시적 화자인 시인은 거의 정해진 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말하자면 카메라는 일정한 위치에 붙박여 있다. 이 공간적 단조로움을 시각적 다채로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은 바로 시간적 범주의 도입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최하림의 모든 시들에서 시간은 생동하는 추진력을 부여받는다. 어떤 점에서 시간은 시인에게 구원이자 저주이며 상상력의 날개이자 벗어날 길 없는 감옥이다. 여기 한 편만 예시하기로 하자.
노을 속으로 그림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지구는 어느 때보다도 힘겹게
어스름을 끌어당기며 밤 속으로 들어간다
내 것이 아닌 추억들이 소리지르며 일어선다
주민들은 입을 다물고 가만가만 발길을 옮긴다
주민들은 침실로 들어간다 한밤에는
빗줄기들이 세차게 이파리들을
때리고 풍경은 길게 숨을 내쉬고
나는 두렵다 나는 눈뜨고 있다
내 앞에는 아직도 검은 시간들이
뭉텅뭉텅 흘러가고 있다
─「황혼 저편으로」 전문
이 작품에서 나 개인에게는 ‘주민들’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그 말은 시의 화자가 마을에서 외지인임을 부각시키는데, 실제로 최하림이 아무 연고도 없는 충북 영동에서 투병과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의식을 굳이 언표하는 것이 나에게는 지나친 객관주의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 시는 황혼으로부터 밤의 어둠으로의 시간의 추이에 따른 명암의 교체를 서술하면서 그 어둠의 검은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긴장과 두려움을 조형하고 있다. 나무 잎사귀들을 때리는 빗줄기, 길게 숨을 내쉬는 풍경, 도망치듯 사라지는 사람들, 가라앉히려 해도 가라앉지 않고 일어서는 지난날의 기억들,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어둠은 더욱 불온하게 죄어온다. 표현주의 영화의 장면과도 같은 음산한 그림들이 풍경 뒤에서 빠르게 지나간다.
물론 시간적 범주를 구성하는 것은 시각적 영상만이 아니라 청각이고 오히려 소리야말로 시간이 자기를 표현하는 기본적 형식이다. 다만, 집안 마루에 서서 또는 의자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관찰하는 자에게 청각은 차단되기 일쑤이며 시각적 영상의 끝없는 가변성만이 시간의 지속을 증거한다.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인이 모처럼 기운을 차리고 야외로 나가 풍경 속으로 들어선다. 이때 그에게는 오래 억제되었던 청각이 다른 감각들을 압도하면서 마침내 소리들의 축제를 연출한다.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가을날에는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컨대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메뚜기들은 떼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마른 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소리들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멀리
사과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 후두둑 하고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가을날에는」 전문
물론 이 시는 단지 청각만의 축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들의 연쇄반응은 가을날 황혼녘의 들판을 구성하는 풍성한 자연경치와 동식물들 사이로 얽혀들어 눈부신 시각적 장면들로 전화된다. 그 한가운데로 시적 화자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가 가끔씩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본다. 걸음걸이의 조심스러움이 건강과 관련되어 있을 터인데도 벌레를 밟거나 풀을 꺾지 않으려는 극진한 마음의 발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시의 자연묘사가 그만큼 조화롭고 평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고 정의됨으로써 황혼에 뒤이어 어둠이, 가을날에 뒤이어 겨울이, 그리고 소리와 빛깔들의 축제 다음에 깊은 침묵이 도래할 것임을 예고한다.
시 「가을날에는」에 묘사되듯이 가벼운 산책이라도 나설 수 있게 되기 전에는 그의 풍경은 암울한 절망감을 내장하고 있다. 소리는 지워지고 모든 사물은 납덩이 같은 무게에 눌린다.
눈이 내리니
나뭇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 휘어지다가
눈을 털고 일어나고,
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고 한다
오후 내내 그 일을 단조롭게
반복한다 우리가 날마다
아침을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것과 같으다
이런 날
하늘은 지붕 가까이
내려와 멈추고 세상 길도
들녘에서 모습을 지운다
나는 천근 무게로 눈꺼풀이
내려앉아 꿈속처럼 눈을 감는다
아이의 속뼈같이 여린 가지들이
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
떠올라 머나먼 마을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눈벌판을
마구 쏘다니고 싶지만
나는 결코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다 눈은 나를 덮고 또 덮으며
종일 내려 쌓인다
─「아무 생각 없이 겨울 풍경 그리기」 전문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이 제1연에서는 시의 제목처럼 단순하게 즉물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고요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내면이 무심하고 평정한 것은 아니다. 2,3연은 1연에 그려진 정물화적 표면을 까뒤집어 그 안에 감추어진 격렬한 감정과 비극적 정서를 얼마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시인의 절제심과 인내력은 그것이 어떤 파괴적인 폭발에 이르도록 방임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의 화자는 무겁게 눈을 감아 종일 내리는 눈이 자신의 몸뚱이를 덮는 광경을 환각처럼 떠올릴 뿐인 것이다. 그것은 “나는 아주 시쓰기를 멈추고 싶다”(「겨울 어느날」)고 말할 때의 그 쓰라린 체념이고 가혹한 자기억제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처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의 환각은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그를 어머니가 있는 고향집으로 데려간다.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
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
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
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
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
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 고요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
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 내 고요를
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집으로 가는 길」 전문
어디 잠깐 외출을 해서 말씀이 들리지 않는 듯이 묘사되는 어머니는 지금 어디 있는가. 수많은 시인들이 가장 외롭고 힘들 때 혼신의 힘으로 노래하는 것이 자신들의 어머니인데, 최하림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겨울 초상화」는 실로 절창이다. “과수댁인 어머니는/새벽 일찍 사립을 나서서 하룻밤 내지 이틀밤을/객지에서 밥먹고 잠자고 나무토막처럼 지쳐서/돌아왔는데…… 그런 어머니도 이제 가고, 그녀가 걷던/어둠의 강을 나는 걸으며 본다”(「겨울 초상화」)던 그 어머니를 만나러 화자는 걷고 걸어 고향집에 당도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써늘한 바람만 감돌 뿐이다. 그는 벌렁 마루에 눕는다. 여기서 고향집 마루는 물론 어떤 외재적 장소가 아니라 그의 적막한 내면세계의 은유이다. 위안도 해결책도 있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고요에 마침내 그는 도달한 것이다.
3
오랫동안 영문학 공부와 시비평에 정진해오던 김영무(金榮茂) 교수가 쉰 가까운 나이에 처음 시를 발표하기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그것은 약간 장난스러운 외도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 권의 시집을 내놓은 지금에 이르러 살펴보면 그는 천성적으로 시인이다. 오히려 남의 시를 읽고 해석하는 평론활동을 했던 것은 자신의 아기를 낳아 키울 때를 대비하여 기저귀 빨래, 우유병 소독 따위 훈련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유감인 것은 훈련기간이 너무 길어서 자기 자식을 낳을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영무는 두번째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창작과비평사 1998)의 발문에서 김광규 시인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충분히 습득한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소박한 향토의 서정과 선인들의 지혜, 자연의 순리와 존재의 진상, 환경파괴의 현실과 공동체적 삶의 회복” 등을 “아름답고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발산되는 시적 관심들의 바탕에 있는 것은 말하자면 생명존중의 태도 또는 생태주의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하림의 경우 풍경과 시인 사이에는 일정한 단절이 개재하며 시적 화자는 얼마간 떨어진 자리에서 골똘한 눈길로 자연을 주시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들은 묵언수행(默言修行)에 들어간 스님의 그것처럼 냉정하고 엄격한 분위기에 싸인다. 최하림의 시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철저히 개인적 자연이라면 김영무의 자연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적 터전으로서의 자연이다. 무엇보다도 김영무의 시들은 경쾌한 유머와 재기넘치는 비유들에 의해 밝고 긍정적인 빛을 발한다.
골짜기 환하게 불 밝히던 단풍들이
재도 없이 꺼져버린 11월이 오면은
우리 집 호랑가시나무
푸른 발톱 잎새 사이사이
좁쌀 강냉이꽃 튀겨댄다
때아닌 향기 마당에 가득하니
멀리 큰 산이 작은 산 어깨 너머로
늦벌들 붕붕대는 뜰 안을 기웃거린다
찬비 온 뒤 물 넘쳐 연못 맑아지고
감나무 해묵은 가지끝
여름이 커다란 날개를 접는 하늘가
홍시들이 다투어 연등불 내다 건다
─「11월」 전문
흔히 11월은 음산하고 칙칙한 퇴락의 계절을 대표하는 달로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모든 불길한 조짐을 환하고 따뜻한 낙천적 이미지로 반전시킨다. 찬란하던 단풍이 졌지만 암울한 냉기가 찾아오는 대신 뜰 안의 호랑가시나무가 연신 좁쌀만한 꽃을 피워댄다. 꽃 모양이 강냉이 튀밥 같기에 ‘튀겨댄다’고 의인화한 것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꽃들은 향기가 진동하고, 그러니 벌들이 모여들어 붕붕댄다. 가을 하늘이 맑아져 멀리 있는 산들도 바짝 다가와 집안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찬비는 왔으나 낙엽을 지저분하게 적시는 대신 연못물을 넘쳐 맑게 한다. 여름이 물러간 푸른 하늘에는 홍시들이 다투어 열린다. 이처럼 이 시에 그려진 풍경은 마치 착한 모범생의 답안지처럼 동화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최근의 시집 『가상현실』(문학동네 2001)은 돌연한 질병의 내습과 여덟 시간의 수술 그리고 힘든 투병생활에 의해 섬뜩한 위험경보가 곳곳에서 울린다. 자본주의 산업체제의 침략적 팽창에 의한 전지구적 규모의 생태계 파괴는 이제 시인 개인의 신체적 위기로도 구체화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절박한 위기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영무 시의 어조가 침통하고 절망적인 가락을 띠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생 동안 다져온 깊은 신앙심과 영문학도다운 날렵한 위티씨즘(witticism)이 알맞게 조화를 이룬 그의 투병시들은 김승희 교수의 날카로운 해설에 암시되어 있듯이 열렬한 생태시이자 생명시이고 신랄한 문명비평적 시이기도 하다.
이제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수술」부터 읽어보자. 제1부는 벌거벗은 몸에 환자복을 걸치고 입원실을 떠나 수술실로 옮겨지는 과정이 마치 병원을 무대로 한 영화의 씨퀀스처럼 간결하고 담백하게 서술된다. 제2부는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을 다루는데, 물론 주인공은 마취상태이다. 그런데 시의 화자는 비몽사몽 속에 어떤 광경을 본다.
여기가 어디인가
가만히 내려다보니
누구네 집 마당에 잔치가 한창인데
푸른 옷에 푸른 마스크 쓴 사람들
수군대는 소리
술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리고
꿈속의 장면 또는 무의식의 영사막을 시적 화자의 또다른 자아는 남의 일 보듯이 멍청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두 개의 모티프가 겹쳐져 있다. 하나는 수술대 앞에 선 의사들의 수군거림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가 잔칫집에 가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을 행한 사건이다. 시적 화자의 무의식 속에서 의사들은 2천년 전의 예수시대로 돌아가 잔칫집 하인으로 변장하고서 항아리에 물을 채운다. 시의 제3부는 다음과 같다.
고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발광체, 찬란해라.
모르핀으로도 잠들지 않는 그 별빛 따라
갈 때와는 다른 길로 병실에 돌아온다
여덟 시간 만의 귀환, 귀향은 늘 새로운 아픔인데
그 항아리 물들 포도주로 변했을까
고통의 찬란함이라는 모순적 이미지는 가슴저리게 감동적인 작품 「불꽃놀이」에서 “연사흘 한 주일을 밤낮없이 지칠 줄도 모르고/계속되는 통증의 불꽃놀이”로 안타깝게 확장된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단순한 수사학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 운명에 관련된 문제이다. 늙고 병들어 갖가지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은 우리 모두의 피할 수 없는 노정인데, 누구나 너무 힘들지 않게 그 노정을 가기를 바라지만 시의 화자는 고통의 정체를 실물적으로 경험하도록 선택된다. 여기 어렴풋이 암시된 예수의 포도주 기적은 수술의 기적적 성공에 대한 염원의 반영이다. 수술실의 불안한 웅성거림과 잔칫집의 떠들썩한 활기는 근본적으로 상반된 것이지만 김영무의 상상적 세계에서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미지 안에 결합된다. 실은 두번째 시집에 실린 「탄생」에서 이미 시인은 생명의 잉태와 죽음의 탄생이 필연적 동시성 안에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아내의 자궁에 아기가 들어선 날
죽음도 함께 따라와 누웠다
죽음이 하얀 달걀만큼 자랐을 때
내 아기는 오리알만큼 커 있었다
─「탄생」 제1연
삶과 죽음의 동시성에 관한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과 그의 독특한 수사학적 방법은 『가상현실』에서 더욱 본격화되어 가령 「난처한 늦둥이」 같은 작품에서 쓰라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마니피카트」 연작시에 이룩된 것과 같은 심오한 통찰과 뜻 아니한 일상성의 전복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암이라는 병의 선고와 처녀임신의 고지를 연결지은 「마니피카트」는 김승희씨의 지적대로 ‘아주 놀라운 시’이고 질병과 종교와 문학이라는 세 층위의 통일을 달성한 작품이다. 최악의 절망과 믿을 수 없는 기쁨이 일체화되는 일은 범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김영무는 마리아에 대한 찬양의 노래라는 형식을 빌려 모든 재앙과 저주를 그 찬양의 음률 안에 용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절대자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고통의 현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김영무에게 있어 깊은 신앙적 태도는 마치 박해와 수난에 대해 그렇게 하듯이 육신의 통증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하는 바탕이 된다.
몸의 한복판을 찢어 열어놓은
아픔의 신천지
통증의 강고한 철권정치
─「불꽃놀이」 부분
어느새 불청객 암세포로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소리없이 스며들어
순결한 이 몸 능욕해놓고는
─「마니피카트 2」 부분
특정의 종교와 신념체계에 대한 금지와 박해가 역사적으로 항상 지배권력의 야심에 연관된 정치적 맥락을 가지고 있듯이 질병과 통증 또한 개인적 영역에만 국한된 단순한 불행이 아니다. ‘철권정치’ ‘능욕’ 등의 비유적 개념들이 시사하는 것처럼 질병은 제국주의와 독재정권, 가부장적 남성주의와 수탈적인 산업체제에 의한 복합적이고 다층위적인 폭력행사의 한 국면이다. 시집 『가상현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지닌 한 생태적 감성의 소유자가 오늘의 이 끔찍한 폭력문화에 온몸으로 맞서 언어의 번제(燔祭)를 올린 감동적인 기록이다. 부디 “아, 임이시여, 이 몸 업어다/강변 풀밭에 다시 뉘어 숫총각 삼아주오”(「탈옥수의 기도」) 하는 기도가 이루어져 김영무의 또다른 시집에 대해 논평할 날이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