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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영수
1952년 서울 출생. 1990년 제1회 현대소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 『착한 사람 문성현』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이 있음. yeongsuyoon@hanmail.net
이인 소극(二人笑劇)
눈썹가위로 파운데이션 튜브를 반으로 자른다. 가위날이 곡선이라 튜브도 비뚤배뚤 우습게 잘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남이 볼 것도 아니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찍어 쓰고 스카치테이프로 봉하면 몇번은 더 사용할 수가 있다.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아 잘 짜지지 않으면 호기롭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줌마가 되었다는 얘기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아줌마가 된 게 아니라 돈이 궁하면 자동으로 되는 게 아줌마다. 파운데이션을 바른 후 금방 분을 두드리면 화장이 뭉칠 염려가 있다. 막간을 이용하여 앞머리에 감았던 롤 풀기.
“지금 외출하시려고……”
콩나물 쟁반을 들고 주춤주춤 방으로 들어서는 당신의 모습이 화장대 거울에 잡힌다. 뒤를 돌아보며 기다렸다는 듯 호통을 친다.
“방에는 왜 따라 들어와? 콩나물 발이나 끊으라는데!”
단숨에 넋이 나간 당신은 그대로 문지방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마폭과 방바닥에 쏟아진 콩나물들을 녹슨 양철쟁반에 그러담다가는 또다시 바닥에 엎고 허둥지둥 나물 허리를 분지른다.
“아까운 콩나물을 아주 요절내느먼. 되다 만 화상이 주제도 모르고 시시콜콜 참견은. 내가 나가면 왜, 같이 단장하고 따라나설 거여?”
큼직한 빗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나는 당신의 시어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나의 할머니. 홀며느리 손에 대소변을 맡기신 후에도 온갖 까탈과 호령이 변함없던 할머니.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여. 음식에 간 하나를 제대로 맞출 줄 알어, 저고리 동정 하나를 반듯이 달 줄 알어. 친정에서 뭘 배워 온 거여.”
“죄, 죄송해유 엄니. 지가 잘못했어유, 노염 푸셔유 엄니.”
당신은 콧물을 훌쩍이며 용서를 청한다. 애꿎은 콩나물이 당신 손에서 망가지는 동안 나는 열심히 머리를 매만진다. 앞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거울에 머리를 비춰본다. 나는 당신의 시어머니, 당신은 나의 변변치 못한 며느리. 연극. 이인소극.
등장인물은 물론 두 명이다. 소매 짧은 보라색 티셔츠에다 허벅지에 꼭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이지만 눈밑에는 벌써 눈주머니가 그려지기 시작한 마흔의 노처녀 박진희, 올 풀린 하늘색 스웨터에 월남치마를 받쳐입은 일흔둘의 노파 김금례. 금방이라도 허물어져내릴 듯한 살림살이들 사이로 사람 길을 뚫어놓고 앉고 서고 돌아서는 딸, 그 딸의 뒤를 쉴새없이 따라붙으며 앉고 서고 돌아서는 늙은 어미.
당신이, 당신이 먼저 시작한 연극이었다. 내가 아니었다.
얘 좀 봐. 장롱엔 왜 올라가고 그래. 진희년 보면 무슨 애먼 소리를 들으려고.
당신이 목소리를 죽여가며 내 등뒤에서 먼저 그렇게 속삭였었다. 나는 잠깐 당신이 말실수를 했지 싶었다. 재봉틀 의자에 올라서서 장롱 위에 얹어놓은 여행가방을 내리던 중이었다.
진희년 들어온다니께. 장롱 위는 왜 뒤져? 그 위로 달구새끼 올라갔어?
닭 얘기를 듣고서야 나는 이모를 떠올렸다. 대전 근교에서 양계장을 하는, 수건을 머리에 들쓰고 밤이나 낮이나 중얼거리며 닭을 키우는 당신의 여동생. 당신은 당신의 딸인 나를 동생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머리에 두른 수건 때문이었다. 금방 샤워를 하고 난 후라 마르지 않은 머리에 달 묵은 먼지를 들쓰기 싫어 궁여지책으로 세숫수건을 두른 참이었다.
진희년이 보면, 제년이 나한테 어쩔 건데. 한마디만 해봐. 제년 모가지를 배틀어버리지.
여행가방을 방바닥에 내려 여름옷들을 꺼내면서 나는 천연덕스레 이모의 말투로 대꾸했다. 몸의 뼈마디를 빗대어 욕을 해대는 것이 이모의 버릇이었다. 모가지를 채어 홱 배틀어버릴라. 다리몽뎅이를 잡아서 오독오독 분질러버리지. 갈비짝 뼈를 망치로 부숴버릴라. 물 한솥 크게 잡아 뼈를 고을 놈들.
그래, 가져가라. 갖다가 경자 경애 다 입혀라. 진희 저 미친년, 옷들은 언제 이렇게 사모았다니. 그런데 경수댁은 아직두 소식 없는겨?
무슨 소식?
빈 가방에 겨울 스웨터들을 챙겨넣으며 내가 되물었다.
계집년이 시집을 왔으면 새끼를 낳아야지. ……네가 허구헌 날 달구모가지 비틀어대니까 부정탄 거 아니여. 삼신할머니 노하신 거 아니여.
도대체 어떤 년이야? 조동아리를 망치로 바숴버릴라. 내가 달구모가지 돌리구 싶어 돌려?
진희년이 그러지.
나는 기가 막혀 당신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살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눈을 내리까는 당신. 경수오빠네 큰아들이 대학을 삼년째 낙방하고 군에 입대했다는 소리를 들은 지가 벌써 오래 전이었다.
애먼 헛소리 하지 말고 진희 말이나 들어요. 괜히 달구새끼처럼 졸졸 쫓아다니지 말고!
이왕 걸걸한 이모가 된 김에 나는 당신에게 한마디 각지게 일렀다. 당신이 나를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당황스러웠다. 나를 알아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시치미를 떼었다. 연극배우 박진희 아닌가. 이 나이 먹도록 내가 할 줄 아는 일이 연기뿐 아닌가. 연극무대에 선 지 16년, 웬만한 역할은 감독의 별도지시 없이도 척척 소화해내는, 말하자면 연기는 수준급인데 마스크와 몸매가 받쳐주지 않아 비중있는 배역을 맡을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서글픈 따라지이기는 하지만.
진희년 자꾸 따라붙기만 해봐. 나한테 혼찌검 날 테니까. 성, 내 성질 알지? 달구모가지 돌리는 건 일두 아냐.
효과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감정을 싣는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웬일로 당신은 꼼짝하지 않았다. 여행가방에 겨울옷을 다 챙겨 다시 장롱 위에 얹는 동안 당신은 세운 무릎을 두 팔로 감싸안은 채 방 한쪽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느때 같으면 어림없었다. 옷가지를 하나하나 들추고 헤치며 어디서 났느냐 입어봐야지 한바탕 법석을 떨 양반이었다. 더럭 겁이 났다. 딸인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엄마, 어디 아파?
당신의 이마를 짚으며 내가 물었다. 무릎 위에 얹은 두 손을 얌전히 포개며 당신이 나를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느이 이모는?
다행이었다. 딸인 나를 알아보니 큰 걱정은 없었다.
그애는 왜 그렇게 성깔을 부린다니? 정신 사나와 죽겄어.
당신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너무 기뻐도 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물벼락이라도 맞은 병아리처럼 나는 부르르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우리집 위로 쌓인 4층 일곱 가구의 집채들을 마치 애들의 조립식 장난감집처럼 한꺼번에 반짝 들어내고, 이 곰팡내 나는 반지하방의 구석구석을 환한 햇빛으로 거풍하는 기분이었다. 등허리에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신화 속의 노인네를 다른 이의 등에 잠시 옮겨놓고 꿈처럼 기적처럼 허리를 펴는 느낌이었다.
수건을 머리에 쓴 이모의 등장으로 나는 당신 앞에서 슬쩍 비켜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인물을 데려온다면. 당신이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를 당신 앞에 내세운다면. 이를테면 닭모가지를 비트는 이모, 모진 말만 골라 하던 할머니, 말로만 들었지만 착하고 자상하다던 외할머니.
아침, 내가 눈을 뜨기 전부터 내 머리맡에 앉아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당신. 하루종일 방으로 주방으로 욕실로 나를 따라붙는 당신. 온갖 잡사에 참견하고 휘젓고 어떤 형태로든 당신 식의 뒷갈망을 해야 속이 풀리는 당신. 그런 당신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임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었다. 4천만원, 당신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돈도 이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돈의 행방을 추궁하는 형사, 경찰을 등장시킨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분장도 의상도 필요없었다. 인물의 특징만 살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라도 불러낼 자신이 있었다. 미국으로 날아가버린 작은오빠, 필요하다면 허망하게 죽어간 큰오빠까지도 무덤에서 끌어낼 용의가 있었다. 제 식구들 앞에서 시연하는 마술사처럼 편안하게, 비둘기와 토끼와 만국기를 차례대로 끄집어내었다가 제자리에 도로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두운 객석을 향해 잠깐 나와보라고, 같이 연기하자고 손짓만 하면 기꺼이 올라오는 관객들.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대는 작게, 촛점을 바짝 당겨서. 중앙에는 주방, 왼쪽에는 주방만한 크기의 방 한칸, 그리고 오른쪽에 주방 반만한 욕실. 높이 달린 창문 바깥으로 동네 쓰레기봉지들이 놓여 때때로 악취가 스며들어오는, 너저분하면서도 딱히 버릴 수 없는 살림살이들로 사람이 대신 밀려날 듯한 이 폐쇄된, 밤낮으로 켜대는 형광등 불빛 아래 무대보다 더욱 무대 같은. 이모가 있는 대전 쪽을 향해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 집으로 합친 지 넉달째, 바로 달포 전의 일이었다.
“워째 너 같은 화상이 우리집에 굴러들어왔는지 몰러. 살림을 가르쳐주면 제대로 알아듣길 허나, 그렇다고 부지런하길 허나. 해가 중천에 걸리두룩 자빠져 요분질이나 해대면 다여!”
“잘못했어유 엄니. 용서해주셔유.”
당신은 드디어 울먹이기 시작한다. 나는 열심히 손을 놀린다. 뺨에는 볼터치를, 눈밑에는 좀더 밝은 톤의 아이섀도우를. 한숨이 나온다. 눈밑으로 드리워진 검은색의 반원을 화장으로 감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세월이 가는 것일까. 이대로 사그라져 폐품이 되는 것일까.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릿…… 휴대폰이다.
─나야, 경은이.
오경은, 이번 연극에서 나와 함께 동네여자 역할을 맡은 배우다.
─나 여기, 극단에 도착했는데, 오늘 너랑 나랑은 연극연습 없대. 주연들 연습이 너무 안되어서. 집에서 아직 안 떠났으면 오지 말라고.
“그래? 잘됐네. 그러지 않아도 귀찮았는데. 그깟 두세 마디, 안 맞춰본다고 소화 못 시키겠니.”
말은 그리 하면서도 맥이 빠진다. 이 집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을 터이다. 그녀가 나처럼 독신이라면 만나서 실컷 떠들기라도 할 텐데. 그녀는 바쁘다. 강남의 소아과 개업의인 남편과 음악을 전공하는 딸 둘 뒷바라지가 보통이 아니라는 자랑 비슷한 신세한탄을, 상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해댄다. 자신이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 연극사를 바꿔놓았을 것이라는 투의 반농담을 하지만 그녀도 이 바닥에서는 나와 똑같은 따라지 신세다. 하기야 주부로서는, 비중이야 어떻든 현역 연극배우라는 명함은 코에 걸고 다니기에 꽤 그럴싸한 장식품일 것이다.
─그런데 금방, 이용훈이란 사람한테서 전화왔어. 너한테 연락이 안된다고 해서 네 휴대폰 번호 가르쳐줬는데, 괜찮지? 얘, 이용훈이면, 옛날의 그 심리학 박사 아니니? 그때 너, 그 사람하고 왜 끊어졌지?
“아아, 성격이, 성격이 워낙 안 맞아서. 나이 먹어서 짝 찾기가 어디 쉽니.”
적당히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는다. 이용훈. 가짜 심리학자, 가짜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녀석이 무슨 일로 내 연락처를 묻는가.
“빨래가 이게 뭐여. 속옷은 그때그때 삶아야 될 것 아녀. 너는 도대체 할 줄 아는 일이 뭐여?”
아뿔싸.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나선다. 당신은 플라스틱 세숫대야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야무지게 스위치를 돌려대고 있다. 허겁지겁 대야를 들어 욕실 바닥에 가져가 내동댕이친다. 당신이 몸을 떨며 발을 구른다.
“이년, 시에미를 뭘로 보고!”
당신과 나, 이 이인극의 단점은 장면 자체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2,3분, 배역 설정을 재확인시켜주지 않으면 당신은 어느새 당신이 바라는 장면으로 돌아가버린다. 호시탐탐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장면은 지금부터 8년 전. 당신으로서는 평생을 통해 가장 행복했었을, 중풍으로 고생하던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오빠 내외와 함께 살며 손녀의 재롱을 즐기던, 며느리를 손발처럼 부리며 살림을 가르치던 그 시절이다.
“엄마, 나하고 둘이서 같이 죽을 거야? 정신차리라니까. 플라스틱 대야를 불에 올리면 어떡해!”
나는 그대로 욕실 문턱에 주저앉는다. 다행히 대야가 우그러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봐라, 민지 에미 또 없어졌다. 즈이 남편 퇴근할 때가 다 되었는디.”
망연히 서 있던 당신은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연극은 잠시 막을 내린다. 현실, 이 답답한 감옥.
“가스불 만지지 말랬지?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뭐가 어찌 되었다구 어미에게 포악을 떨어?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툭하면 시집은. 아닌 소리로 나 시집 가버리면, 엄마 혼자 살 수나 있어? 도대체 왜 이리 나를 괴롭혀?”
“나 생각해주느라 시집 못 가느먼. 터진 입이라고 말은, 얼빠진 년.”
시집이든 어디든 가고말고.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주고말고. 돈만 찾아낸다면. 당신 돈 4천만원만 손에 쥔다면!
집주인 여자만 원망할 일도 아니다. 주인여자의 전화를 구원의 메씨지로 알아들은 내가 어리석었다.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냈어요.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연락할 곳이 따님밖에 없더라구요. 자꾸 딴소리를 하시고, 새벽 네시에 삼층, 사층에 올라오셔서는 자는 사람들을 다 깨워놓고. 아니면 집 앞 골목에서 그냥 주무시려 하고. 한편으로는 속도 상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친정엄마 같아서 안되셨고. 이제는 따님이라도 모셔야……
주인여자의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창을 열어주신단다, 우리의 자애로운 신은.
연극대사를 읊조리며 나는 희한한 타이밍에 정말 신이 계신 게 틀림없다고 찔끔거리기까지 했다. 그러지 않아도 전전긍긍해하던 차였다. 가뭄에 콩나듯 맡는 극단의 엑스트라 수입으로는 극단에 오가는 교통비조차 해결되지 않았고, 그나마 일정 수입으로 부식비가 해결되던 연극학원 강사자리도 학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얼마 되지 않는 현금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밤잠을 설치던 중이었다.
내가 깔고 앉은 오피스텔 전셋돈을 빼어 그러지 않아도 부담스럽던 은행융자를 갚고, 나머지 돈을 손에 쥐고 당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합치면 만사 오케이. 다른 이가 보기에도 의지가지없는 노인네와 혼자 사는 딸이 합치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흐뭇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밑져야 본전, 당신 집에 들어가 적당히 얹혀살다가, 당신이 정 버거우면 당신 집의 전셋돈을 빼어 적당한 요양기관에 넣어드리면 될 일이었다.
5년 동안의 독신생활도 외롭고 지겨웠다. 극단의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도 그때뿐, 제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뒤에서 불러세우는 것만큼 짓쩍은 일도 없었다. 25층 오피스텔 건물을 덮은 수백 수천의 유리창 중 하나, 정확히 어느 것인지 짚어낼 수조차 없는 22층의 창문 하나가 가지는 왜소함, 의미없음 또한 수십번은 마주쳤을 경비 아저씨의 ‘어디 가십니까’와 함께 더이상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어머니의 잔소리, 귀찮기 짝이 없는 참견이 한편으로 그립기까지 했다. 전화통화만 몇번 나누었을 뿐 당신 얼굴을 본 지도 1년이 넘었다.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허공 대신 감나무 단풍나무 가지가 창을 가리는 남향집 2층, 스물네 시간 덜컹대는 차들의 소음과 그것들이 뿜어대는 매연 대신 어린아이의 졸린 울음,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곳. 당신 쪽에서 나를 거부할까봐 도리어 걱정이었다.
내가 왜 딸년하고 같이 살어. 혼자 산다고 나갈 때 네 몫 다 챙겨갔지 않어. 내 집 넘보지 말어. 이 집은 내가 죽고 나면 느이 작은오래비 몫이여.
이삿짐과 함께 들이닥치면 당신인들 어쩌겠는가. 방 두 칸 중에서도 안방, 햇볕 잘 드는 큰방에 내 짐을 부려야지, 혼자 벙긋벙긋 웃어가며 서둘러 용달차 조수석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고는 이 꼴이었다. 비만 오면 마당의 빗물이 방문 앞으로 고여 오갈데없는 섬이 되는 반지하방, 아슬아슬 쌓아올린 살림살이 때문에 발 한번 힘주어 내딛기가 조심스러운 이 비좁은 공간에서 검버섯 핀 얼굴의 당신이 나를 알아보고 눈부셔했다. 주인여자가 계약서를 들고 나와 한바탕 연설을 해댔다.
그동안 어머니를 안 들여다보셨지. 이층에서 이리로 이사한 지가 벌써 열 달이에요. 전세금 오천에서 사천오백을 돌려드렸죠. 보증금 오백만 남기구요. 여기, 다 써 있잖아요. 이천년 유월 삼십일, 오백에 월세 십오만원. 맞죠? 싸게 드린 거예요. 이 동네에 요새 이런 방 없어요. 욕실 있고 부엌 있고 현관문 따로 있고. 우리집에서 사시던 분이니까 믿고 드렸죠. 월세까지 밀리고 이러실 줄은 몰랐어요. 워낙 심성도 착하고 그러시니까.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용달차를 되돌릴 수도 없었다. 은행융자금을 상환하고 챙겨든 돈 천여만원으로는 방을 얻어봤자 꼭 이 정도의 반지하방이 고작이었다. 그날부터 이 쳇바퀴 도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셋돈을 받아 어떻게 했느냐고 당신을 어르고 다그치고, 당신은 횡설수설 알아듣지 못할 말만 되풀이하고. 내 짐을 풀기도 전에 온 집안 살림살이들을 뒤지고 헤치고 도로 싸고, 당신은 어미 쫓는 병아리처럼 내 뒤를 따르고.
한두 푼이 아니었다. 손가락 셈으로도 4천만원이 간데없었다. 방 윗목의 발재봉틀 서랍에서 나온 당신의 은행통장에는 달랑 19만원, 월세는커녕 그대로 굶어죽을 판이었다.
젖은 내복들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내가 싣고 온, 살림살이 중 가장 새것이라 할 수 있는 세탁기는 욕실 앞 보일러실에 놓여 있다. 4층 전체 여덟 가구의 보일러 시설들 옆에 벽돌을 괴어 덩그러니 모셔놓은 세탁기를 보고, 주인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보일러를 바꿨나 눈이 둥그레졌다. 욕실 문을 열고 세탁기 배수파이프를 걸쳐놓으며 나는 한바탕 푸념처럼 이번 연극에서 맡은 동네여자의 대사를 읊기 시작한다.
“아이들이야 빨래 만드는 기계라 할 수 있죠. 어쩌겠어요, 그게 다 이 어미 일인걸요. 그래도 우리 막내 이반의 까아만 눈동자, 발그스름한 뺨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이 봄눈 녹듯 사라진답니다. 어떻게, 수프를 더 드시겠어요?”
내 뒤를 따라 보일러실에 내려선 당신은 뒷짐을 진 채 반쯤 몸을 틀고는 당신 분의 대사를 읊조린다.
“귀여운 걸로 치자면 우리 민지만한 아이가 없지유. 딸아이라도 즈이 애비 인물을 빼다 박았구먼유. 즈이 애비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게? 사내아이라도 살결이 뽀얀 것이.”
나는 목소리에 감정을 넣어 또 한마디 대사를 외운다.
“내일 아침에는 서리가 내릴 것 같아요. 물고기의 번득이는 비늘처럼, 온몸에 솟는 소름처럼, 온 산과 들에 서리가 하얗게 돋아나겠죠.”
당신은 소리높여 웃음을 날린다.
“우습기도 해라, 이 춘삼월 꾀꼬리 우는 시절에 서리라니. 시집 못 간 처녀가 한이라도 품었는개비네. 하기사 그렇기도 하겄지, 세상 이치가 다 음양이 들어맞아야 편안한 것이니께.”
─열무 한 단에 천원 고구마 한 봉지 이천원 감자 한 봉지 천원 무우 한 단에 천원……
야채 행상의 스피커 소리가 철대문을 훌쩍 뛰어넘어 지하 공간으로 뛰어든다.
“배추장수 왔네?”
당신은 힁허케 집을 빠져나간다. 당신을 따라나서는 일은 단념한 지 오래다. 따라나선들 다른 이들 앞에서 당신을 제지하기도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두 손에 무언가 한아름 사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당신. 갈치 한 상자, 배 한 상자, 소금 한 포대, 두부 한 판.
두부 한 판이 뭐이 많어, 식구가 몇인디. 소금이야 썩길 허나 김장하려면 당연하지.
내게 빼앗길세라 재빨리 소금 포대를 뜯고 두부판 한가운데에 암팡스레 손을 박는 당신.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린다. 빌어먹을 놈의 사기꾼 이용훈. 이모의 표현으로 ‘물 한솥 크게 잡아 뼈를 고을’ 녀석. 녀석만 아니었어도 내 팔자가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다. 녀석이 내게 사기를 치지만 않았어도 이 음습한 반지하방에 들어와 노망난 어미와 사사건건 핏대를 세우는 일은 없었다. 입 가벼운 걸로 치자면 둘째 가기 서러운 오경은이 그의 실체를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심리학 박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이용훈. 나는 그를 서른여덟에 만났다. 나는 그에게 몸도 돈도 다 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빤한 사기행각이었는데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신문에 사기사건이 보도된 후에야 비로소 그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캐나다의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것으로 사칭,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십여억원의 금품을 사취한 이 모씨를 구속…… 강남구 서초동에 심리상담연구소를 차리고 종교단체, 일반 주부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강의를 해왔으며 청소년상담연구소 건물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수강생들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기부금을…… 그의 실제학력은 중학 중퇴, 정신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
바보 박진희. 유일한 내 재산이었던 오피스텔 전세비 오천만원 중 삼천만원을 나는 내 손으로 그놈의 입에 밀어넣어주었다. 연구소 건물을 짓는 중인데 당장 돌릴 현금이 없다는 그의 한마디 말에 지체없이 은행융자를 내어 가져다준 것이다.
나는 담담히 경찰의 조사를 기다렸다. 사실 그대로 다 밝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락이 없었다. 기부금을 낸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경찰수사가 벌어졌다는데 내게는 확인전화 한통이 없었다. 영수증 없는 삼천만원 정도는 수사대상도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돈을 되찾기는 그른 일이었다. 흥분하면 할수록 나만 망신이었다. 내 권유로 그의 심리학 강의를 들은 극단의 몇 친구들, 그 친구들이 신문 사회면 한쪽에 난 그 기사를 보지 못하기를, 혹 보더라도 그 장본인이 내가 소개한 이용훈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가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얘, 이것 봐라. 저 옴팡눈 녀석이 이제 장사 그만둘라나부다. 이걸 다 주며 나더러 공짜로 가지란다. 저거 돌았지? 제정신 아니지?”
배추겉대를 담은 큼지막한 봉지를 내게 들어 보이는 당신은 온 얼굴을 깨뜨리며 환히 웃는다. 그러고도 또다른 손에는 양파 한 자루와 감자 한 봉지. 배추겉대들을 욕실 바닥에 부리며 히히대는 당신을 뒤로 하고 나는 양파자루와 감자를 들고 골목으로 나선다.
“요전에 산 게 있어서요.”
“예에. 그래서 제가 일부러 안 부서지는 걸로 드렸어요.”
양파와 감자를 되받는 옴팡눈 야채장수도 이제는 당신이 어떤 상태인 줄을 알고 있다. 장사꾼들은 덕분에 유료 쓰레기봉지에 수거할 쓰레기들을 우리집에 한아름씩 부려놓고 간다. 과일장수는 얼크러지고 뭉개진 상한 과일들을, 생선장수는 생선 내장과 대가리를 모은 봉지를.
야채트럭에서 돌아서는데 옷을 갖춰입고 나가는 주인여자와 맞닥뜨린다.
“아아, 예, 나왔어요? 그, 저기.”
올해로 예순을 넘긴 그녀는 예순넷 나이에도 직장에 나가는 남편과 아직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과 함께 맨 위 4층에서 살고 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을 그녀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마흔이나 된 여자를 ‘처녀’라 하기도 낯간지럽고 그렇다고 시집 안 간 여자에게 ‘아줌마’라 부르기도 그렇고. 내가 먼저 입을 떼기로 한다.
“쓰레기들을 왜 자꾸 우리집 모퉁이에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맞은편 전봇대 밑에 두면 되는데. 방 창문으로 냄새가 들어오거든요. 그렇다고 창문을 닫고 살 수도 없고.”
“그러게 말예요. 바깥에 좀 써 붙일까봐요. 우리 아들한테 컴퓨터로 써 붙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직접 쓰셔서, 사람이 쓴 글씨가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냄새가 집으로 들어온다고 그렇게 직접, 그건 그런데……”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안다. 밀린 월세 다섯 달치 75만원. 이것 역시 내가 먼저 답을 주는 수밖에 없다.
“아직 돈을 찾지 못했거든요. 찾으면 얼른 해드릴게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그대로 철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자기 이익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로야 뱃속의 창자라도 내어줄 듯 친절한 주인여자도 갈수록 밀린 월세에 대해 눈치를 준다. 그렇다고 내 통장의 돈을 빼어 메워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들어온 이후의 월세라도 또박또박 챙겨주는 게 어디인가. 맨 처음,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내게 전화했을 때 밀린 월세 이야기를 같이 했더라면 나는 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2층에서 내려와 반지하방으로 옮겼다는 소리 한마디만 내비쳤어도 나는 이 집에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당신 말대로 ‘키워봤자 말짱 헛것인 딸년’이, 고정수입도 없이 하루종일 방구석을 헤매는 딸년이 무슨 책임을 얼마나 진단 말인가.
─텔레비전 냉장고 컴퓨터 헌 카펫 내놓으세요, 헌 옷 헌 이불 헌 신발 내놓으세요.
야채장수의 스피커 소리가 멀어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고물수집장수다. 당신은 또 한들한들 집을 빠져나간다.
“고물장수 왔잖어, 뭐 있나 봐야지.”
고물장수는 당신을 잘 안다. 그는 천천히 트럭을 몰 뿐 절대로 당신 앞에 전을 벌이지 않는다. ‘이놈이 내 걸 훔쳤다니까. 분명해, 우리 민지 에미 해온 거!’ 지난달, 다른 곳에서 싣고 온 헌 카펫을 쥐고 당신이 한바탕 소리지르는 바람에 그는 단단히 학을 떼었다.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트럭 꽁무니를 뒤쫓다가 하릴없이 돌아설 당신.
주방과 욕실에 떨어진 배춧잎들을 줍는다. 쓸 만한 배춧잎들을 골라 씽크대에 올리고 나머지를 쓰레기봉지에 담기 시작한다. 앞일을 생각하면 정말 막막하다. 모아둔 돈도 없이 내 나이 올해로 마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당신이야 이러구러 남은 세월을 메운다 쳐도 홀로 남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희한하다. 아무리 찾아도 돈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4천만원은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일까. 추측대로 작은오빠에게 건너간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당신이 혹 깨끗하지 못한 정신으로 돈을 건네주었더라도 오빠가 얼씨구나 그 돈을 받을 수는 없다. 당신은 앞으로 어찌 살라는 말인가. 오빠가 당신을 모실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작은오빠 쪽에서 돈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사람 속은 모른다. 미국의 오빠집 전화가 불통인 것은 오빠가 돈을 받은 후에 일부러 전화번호를 바꿨다는 얘기다. 아니면 왜 전화가 되지 않는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번호가 바뀌었으면 오빠 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영학을 전공한 작은오빠는 대학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경기불황으로 회사가 망하자 유학비자를 내어 미국으로 훌쩍 날아갔다. 거기서 멕시코계 여자와 결혼하여 시민권을 얻었다고 연락이 온 지가 2년이다. 오빠가 그랬을까. 살면서 성품이 바뀐다 해도, 상황이 아무리 사람을 내몬다 해도 오빠가 그렇게 야비한 짓을 했을까. 큰오빠의 착한 성품까지는 따라가지 못해도, 적어도 나보다는 행동거지가 바르고 사리가 분명하지 않았던가. 전화가 되지 않으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닌 소리로 큰오빠처럼, 하루아침에 비명횡사라도 했다는 말인가.
당신이, 당신이 어째 얌전하다. 방을 들여다보니 당신은 장롱에 기대앉은 채로 끄덕끄덕 졸고 있다.
“똑바로 누워서 자.”
어깨를 잡는 내 팔을 당신은 거칠게 밀어붙인다.
“자기는! 내가 잠자는 거 봤냐.”
당신은 잠을 자기 위해 똑바로 눕는 법이 없다. 정신이 말짱할 때에는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가도, 정작 잠이 온다 싶으면 얼른 일어나 앉아 머리를 내저으며 잠을 쫓는다.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은 또 있다. 올케, 당신의 큰며느리. 그녀는 재가를 하고도 내게 가끔 전화를 하여 끄윽끄윽 울음을 삼킨다.
잠을 못 자겠어요. 자꾸 오빠 꿈을 꾸어요. 온몸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누운 채 꼼짝 못하는 오빠가 나더러, 너는 행복하냐고…… 불을 끄지 못하겠어요. 건물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깜짝깜짝 놀라서요. 선생님도 물론…… 싫겠지요. 미치겠어요. 잠이 들면 그대로 죽을 것 같고.
큰오빠는 죽었다. 6년 전, 강남의 백화점 붕괴사고 때 천여명의 다른 혼들과 함께 그는 저승으로 떠나버렸다. 다섯살배기 딸과 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내를 두고. 울보 며느리는 몇년을 두고 울다가 작년 이맘 때 시어미 곁을 떠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을 들러리로, 마침 홀아비였던 딸아이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과 재결합하여 완전히 남이 되었다.
“무겁다니께. 온몸이 눌리고. 왜 자꾸 덮는 거여, 안 덮는다니께!”
자신의 잠꼬대에 소스라쳐 놀라는 당신.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장롱에 다시 다가앉는다.
백화점의 영업부 팀장이었던 오빠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서 열사흘 만에 발견되었다.
전혀 부패되지 않았더라구요. 우리가 구조하던 그날 아침, 아니면 구조하는 그 순간에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어요. 안심하면 긴장이 풀리니까.
구조단원은 생존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기자들은 또하나의 토픽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에 오빠의 이름을 계속 들먹이며 시신을 공개했으나 오빠의 갈라진 손톱, 문드러진 손가락들은 오빠의 상체를 덮었던 석고보드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뇌 속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신의 장난으로 깊이깊이 아로새겨졌다. 그 긴 열사흘, 삼백여 시간 동안 오빠는 건물 더미에 깔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족들이 눌러대는 삐삐 소리를 들으며 오빠는 신을, 이 세상의 모든 신을 불렀을까.
“이리 와, 금례야. 어미하고 자자.”
당신의 자상한 친정어미가 되어 당신의 어깨를 보듬는 나. 당신은 어느새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어 내 품을 파고든다.
“엄니. 옥례가, 내 밤을 다 뺏어서는 모두 제 호주머니에……”
새우처럼 꼬부린 당신의 몸피는 이제 대여섯살 먹은 어린아이의 것에 불과하다. 머리 무게가 느껴진다. 내 무릎을 벤 채 당신은 드디어 잠에 빠져든다.
당신의 머리를 베개로 옮기기 전에 나는 또 몇번이나 뒤져본 당신의 치마 속 고쟁이 주머니를 더듬는다. 다른 것은 없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작은오빠의 옛 전화번호가 적힌 빛바랜 메모지, 그리고 어디서 주웠는지 알 수 없는 한복가게 명함 한장이 들어 있을 뿐이다.
“왜, 왜 이려요 남세스럽게. 엄니 들어오시누만.”
킥킥대며 온몸을 움츠리는 당신. 젊은날의 아버지라도 만난 것일까.
우리 삼남매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 철물가게를 하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큰오빠가 대학교 3학년, 작은오빠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스무살 청상으로 외아들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살던 할머니는 아들의 죽음이 순전히 며느리 탓인 양 때도 없이 며느리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내 아들 살려내어, 이 야차 같은 년. 내 뭐렸어. 네년 눈빛이 호안이라 사내 잡아먹을 눈이라 안혔어. 나도 잡아먹어라 이년, 이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년.
주방에 나아가 씽크대 서랍을 몽땅 빼어본다. 서랍 밑 공간에도 역시 없다. 언제 죽은지 모르는 바퀴벌레 세 마리가 시위라도 하듯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씽크대 옆에는 냉장고, 조립식 정리장에 올려놓은 전자레인지, 칸막이 하나가 빠진 책장 겸 장식장, 세로로 세워놓은 자개상, 상다리에 얹어놓은 감자, 양파, 파 봉지. 살림살이들 틈서리를 또 한번 우비고 파본다. 상다리 밑 공간에 무언가가 새로 만져진다. 유리컵. 또 있다. 국자, 커피잔 받침.
몰러유. 돈이라뉴, 나는 몰러유. 내가 안 훔쳤슈.
돈의 행방을 알기 위해 형사 역할을 몇번 한 이후로 당신에게는 이상한 버릇들이 붙었다. 모든 물건을 어딘가로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부엌의 그릇들, 유리컵들을 이불 틈서리에 쑤셔박는 당신. 문앞의 신발을 세탁기 안에, 욕실의 비누와 칫솔과 텔레비전 실내 안테나를 보일러실 계기판 뒤로 밀어넣는 당신.
하루에도 몇번씩 순사가 와서 온 집안을 뒤진다니께? 너 없을 때 왔다니께? 쌀이고 놋그릇이고 보이는 대로 집어가. 네가 못 봐서 그려. 긴 칼을 차고, 말을 타고.
찬장 앞 길쭘한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두 팔에 얼굴을 처박는다. 나도 작은오빠 따라 미국으로나 가버릴까. 하다 못해 슈퍼, 햄버거가게 점원이라도…… 그런데 그놈의 잘난 미국은 직업이 분명치 않은 독신녀에게는 관광비자조차 내주지 않는다.
느이 작은오래비야 미국으로 잘 떠났고말고. 그 나라에 빨갱이가 있어 난리가 나겄냐, 집을 잘못 지어 무너지길 하겄냐. 사람들 인심도 여기하구는 달러. 휴전하고 미군 안 들어왔으면 우리나라 가난한 백성 다 굶어 죽었어. 밀가루에 옥수수에 옷에 신발에, 그이네들이 우리헌테 안 준 거 있남.
드러누운 눈높이에 보이는 것은 찬장 아래쪽에 꽂힌 큰오빠의 법서들이다.
버리기는! 오래비 책에 손만 대봐. 손모가지를 분질러버릴겨.
짐에 눌려 사람이 쫓겨날 상황인데도 당신은 오빠의 책을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오빠의 이십대를 살라버린 그 회색의 꿈. 느지막이 결혼을 하고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던 법관의 꿈을 이제는 노망든 당신이 지키고 있다. 형법, 민법, 형사소송법, 헌법, 민사…… 책표지들을 읽다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소리내어 묻는다.
“오래비 책에 손대지 말라고? 왜? 거기 뭐가 있길래?”
한권씩 책을 꺼내어 후르르 넘겨본다. 이따금씩 끼여 있는 빛바랜 오빠의 메모들. 낯익은 오빠의 글씨에 새삼 가슴이 저려온다. 착한 오빠.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늠름하려 애쓰던 오빠. 언제나 담담히 미소지으며 큰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던 오빠. 영수증 쪽지도 한장 끼여 있다. ‘남자 한복 상하, 사모관대. 여자 한복 상하, 활옷, 족두리. 안동포. 180만원 중 30만원 영수함. 잔액 150만원. 2000년 7월 12일.’ 2000년?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이 영수증은…… 오빠가 살았을 때의 것이 아니다. 작년이다. 작년 7월. 7월이면 당신이 2층 전셋집을 내놓고 반지하방으로 내려온 직후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당신이 영수증을 이 책에 넣어놓은 것이다. 남자 한복 상하…… 그제서야 앞뒤가 이어진다. 명함, 당신 고쟁이 속에 들었던 한복집 명함! 혹시 그 집에서 한복을?
방으로 뛰어든다. 곤히 잠든 당신 몸을 거칠게 뒤집어 고쟁이에 손을 넣는다. 당신이 부시시 일어나 무어라 중얼거린다. 상관없다. 명함, 명함에 씌어진 한복집 전화번호. 430-XX47. 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린다. 제발, 제발 이 집에서 뗀 영수증이기를. 남녀 사모관대, 활옷. 당신이 작은오빠 내외에게 해 보낸 것이 틀림없다. 기막힌 노릇이다. 멕시코 여자에게 무슨 놈의 족두리, 베이불! 하여간 한복과 이불을 부쳤다면 당신은 작은오빠의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작은오빠가 당신의 전셋돈을 빼어간 것이다. 참 대단한 작은오빠. 천하의 불효자, 후레자식.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깔고 앉은 전셋돈을 어떻게 빼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어려서부터 뺀질거리던 깎은선비, 그 차갑던 눈빛. 입에 발린 인사말 한마디야 건넸을 터이다. 미국에서 같이 살자고.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큰일날 소리 말어. 절대로 너랑 같이 안 살어. 이 에미 눈이 호랑이눈이라 네가 다친다니께. 누가 그러긴? 점쟁이가 그러지. 느이 할머니도 노냥 안 그러셨남.
웬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작년 칠월, 남녀 결혼 예복을 해간 집’이라고 떠듬떠듬 내 쪽을 소개한다.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영 신경이 쓰인다. 자기들끼리 나누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남녀 결혼 예복……’ 모르는 눈치다.
“안동포요, 혼수 이불도 해가고요. 백팔십만원!”
수화기에 대고 크게 소리지른다. 제발, 그들이 알아야 한다. 꼭 이 한복가게여야 한다. 작은오빠 주소를 알아야 한다. ‘안동포, 작년 칠월, 아아 그 아주머니.’ 한복집 주인이라는 여자가 전화를 넘겨받는다.
─오금동인가, 혹시 그 아주머니네 아녜요?
“맞아요. 오금동요. 제가 그분 딸이거든요.”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나는 수화기를 두 손으로 움켜잡는다.
“그때 그, 신랑신부 주소 혹시 가지고 계신가 해서요. 집에 적어놓았던 게 없어졌거든요. 미국으로 부치셨죠?”
─미국요? 아뇨. 어디더라, 절로 가져가셨잖아요? 관악산이라든가, 무슨 산 쪽에. 왜요, 어머니가, 어떻게 되셨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색시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하기야 잠깐 서울에 나와서……”
─흰 사모관대, 흰 활옷 수의 해가신 분 아녜요? 안동포 고급으루다. 오금동 아주머니, 키가 자그만하시고.
“수, 수의요?”
─아드님 돌아가셔서, 영혼결혼식 해드린다고……
영혼결혼식. 죽은 사람들끼리 맺어주는 결혼식. 흰 사모관대에 흰 활옷, 흰 족두리. 작은오빠가 아니라…… 큰오빠다. 큰오빠를 다시 결혼시킨 것이다. 머릿속에 그림이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 큰오빠는 그렇다 치고, 멀쩡히 살아 있는 올케를 어떻게? 올케의 인형이라도 만들어 죽은 오빠의 관에 넣었다는 말인가.
─그 절에, 돈도 몇천 내신다고 하던데. 아드님 극락 가시게 재도 크게 지내고. 모르셨어요? 그럼 그걸 아주머니가 혼자 다 하신 거예요?
“몇천…… 몇천 내셨대요? 우리 어머니가 몇천 내셨대요? 언제요, 그, 그 결혼식 때요?”
─그런 얘기야 다 믿을 수는 없는 것이, 노인분들이야 원래 그런 소리를 황되게 하시니까. 그때 아주머님이 벌써 이상하시더라구요. 하신 말씀 하시고 또 하시고. 가족분들하고 전혀 의논이 없으셨구나. 그래도 뭐, 돌아간 아드님한테 좋은 일 하셨으니까. 나쁜 일은 아니니까.
나는 급히 침을 삼킨다. 가슴을 가라앉힌다.
“그 절요, 그 돈을 기부했다는 절이 어딘지 아시겠어요?”
─관악산 쪽 어디 절인지, 굿당인지. 내가 헷갈리는 게 아니라, 그때 아주머니가 이랬다 저랬다 하시더라구요. 비구니 스님이랬다가 만신님이랬다가…… 그런데 거기, 무당집이 한두 집 아니라던데, 무당들이 한데 모여 온 팔도 굿을 매일처럼 한다던데 찾으실 수 있을라나 몰라.
전화를 끊고 나는 미친 듯이 당신을 흔들어댄다. 이 노망난 노인네. 일은 혼자 다 벌여놓고 당신 편한 대로 잊을 것만 골라 잊어버리는 이 지긋지긋한 할망구.
“일어나. 일어나라구! 이게 말이 돼? 일어나 당장!”
당신은 이미 잠에서 깨어 있다. 등을 깔고 똑바로 누워, 마치 죽은 바퀴벌레처럼, 뻔뻔하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당신의 멱살을 잡아 장롱에 기대어 앉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산 사람 입에 거미줄을 치면서 죽은 오빠 결혼을 새로 시켜? 사천만원을 누구를 줘? 엄마 미쳤어? 어떡할 거야, 돈도 없이 이제 어떻게 살아갈 거야!”
당신의 눈이 번득거린다. 두 어깨를 누른 내 손을 매몰차게 뿌리친다.
“그럼 느이 오래비를, 그 불쌍한 민지 애비를 혼자 살게 두어? 민지 에미년도 제 살길 찾겠다고 가버리고, 그럼 느이 오래비는 누가 수발해주냐. 교통사고 난 처자가 있다고 만신님이 소개해줘서, 내가 혼백끼리 혼인시켰다. 그걸 네가 나한테, 왜 꼬치꼬치 따지냐!”
“그건 그랬다 쳐. 말도 안되지만 큰오빠 위해 그랬다 쳐. 나머지 돈은 어쨌어? 무당한테 고스란히 갖다바쳤어? 왜 말 안했어? 내가 그렇게 물어도, 전셋돈 뺀 거 어쨌는지 생각 안 난다고, 왜 나한테 시치미뗐어!”
“이, 이…… 개백정 같은 년.”
당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두 주먹을 쥐어 가슴팍에 붙인 채 부르르 몸을 떤다.
“그 돈이 어떤 돈여. 느이 오래비 몸판 돈을 에미가 갉아먹어? 불쌍한 내 새끼. 그게 맏이 노릇하느라, 죽어서도 자기 몸 팔아, 시집 장가 안 간 동생들 뒷돈 대주고 즈이 에미 집 장만해주고. 너는, 그 돈 받고 집 튀어나가며 만면에 희색이 돌더구나. 죽일 년, 이 개, 개백정만도 못한 년.”
피를 토하는 듯한 당신의 서슬에 내가 그만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래. 느이 오빠 하늘나라 가서 집 한칸 장만하라고, 내가, 내 눌러앉았던 돈 빼어 오래비한테 되보냈다. 네년이 무슨 상관여. 그 돈 있으면, 내가 네 입에 고이 처넣어줄 듯싶더냐! 이년, 이 오래비 잡아먹은 년. 오래비 몸값 받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 해먹으니, 그래, 네년 목구멍으로는 그 음식이 척척 넘어가더냐!”
그랬던가. 지금껏 부린 노망은 모두 거짓이었던가. 큰오빠가 비명에 죽고 작은오빠가 미국으로 떠나간 일, 당신이 처한 현재의 난감한 상황, 이 모든 것을 당신은 또렷이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와의 연극을 계속했단 말인가. 순식간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당신.
“무얼 빤히 쳐다보냐, 이년. 이 호랑이눈으로 내 아들 잡아먹은 년.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년. 나도 잡아먹어라. 세상에 야차 같은 년.”
어느새 검질긴 할머니가 된 당신. 손아귀 힘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머리칼이 다 빠지는 듯하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당신을 그러안아 나도 당신의 머리채를 맞잡는다. 당신의 여린 머리칼은 잡기도 안되었다. 힘을 주면 그대로 뭉턱뭉턱 살점째 떨어져내릴 듯하다. 그렇다고 놓을 수는 없다. 당신의 뾰족한 손톱이 내 머리통을 속속들이 파고든다. 어떻게 이리 되었는가. 당신과 내가 왜 이 모양으로 엉켜야 하는가. 한참 동안 승강이를 벌이던 당신은 돌연 마른 지푸라기처럼 바닥에 쓰러진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추스려 무릎을 꿇는다. 머리 위로 손을 올려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한다.
“잘못했어유, 엄니. 머리채는 그만 잡으시고요…… 제가 잘못했다니께유. 다시는 안 그래유, 엄니. 화 푸셔유. 제가 죽일 년여유, 엄니.”
당신의 울음 섞인 목소리. 어느새 다소곳한 며느리가 되어 시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당신. 당신은, 당신은 지금 연극을 하고 있다. 16년 경력의 나보다도 더 대단한 연극배우가 되어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며 자기가 맡은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뛰어난 연기, 뛰어난 연극배우.
“엄니, 엄니 자리가 척척한데도 안 바꿔드려서 정말 죄송해유. 엄니가 애들 앞에서 오줌 안 싼 척, 그렇게 체면차리시는디, 지가 그게 얄미워서, 번연히 알구두 모른 척했슈. ……지가 죽일 년여유. 멀쩡한 남편 잡아먹구두 모자라, 아들까지 잡아먹었슈. 그 불쌍한 민지 애비가 열사흘이나 갇혀, 생짜로 그 힘든 길을 떠나는디…… 지는 그동안 잠 잘 자고 세 끼 꼬박꼬박 다 찾아먹고…… 워쩐대유. 이년의 팔자, 죽어서두 엄니 앞에두 못 서고, 애아부지 앞에두 못 서고, 지는 워쩌믄 좋대유.”
당신은 목놓아 곡을 한다. 눈물샘조차 말라 항상 벌건 눈에 꾸덕꾸덕 피 같은 물이 고인다.
그랬었던가. 연극이, 당신에게는 고해의 수단이었던가. 그토록 혹독했던 시어미를 다시 대하면서 당신은 그때마다 당신 스스로를 단죄했던가. 어린날 헤어진, 꿈에 그리는 친정어미 앞에서 당신은 당신의 외롭고 민망한 영혼을 위로받았던가. 누구도 대신 져줄 수 없는 삶의 곤고함, 허망함, 부질없음, 연극을 통하여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가.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릿 미. 누구야! 벌컥 짜증이 난다. 연극을 관람하기 전에 휴대폰을 끄는 것은 상식 아닌가. 찍어놓은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단 한번의 잘못 올린 손끝에 가슴을 떠는 연극배우의 진중한 연기가 펼쳐지는데 이 무슨 교양없는 짓들이란 말인가!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돌아본다. 무릎 꿇고 울먹이는 당신, 당신을 둘러싼 낡은 티크장, 자개 경대, 텔레비전, 이미 골동품 반열에 오른 발재봉틀, 쌀통.
끊겼던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한동안 울먹이던 당신도 이제는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이것은 현실이다. 연극이 아니라 현실, 배우가 배역을 버리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맞닥뜨리는 답답한 현실. 쌀통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백에서 나는 휴대폰을 꺼낸다.
─연극하시는 박진희씨? 나, 이용훈입니다.
사기꾼 이용훈, 가짜 심리학 박사. ‘물 한솥 크게 잡아 뼈를 고을’ 녀석. 이 사람이 내게 왜 전화를 한 것일까. 새로운 사기극이라도 벌이려는 것일까.
“아, 예. ……안녕하세요.”
물론, 그가 안녕했을 리가 없다. 구속, 수사, 사무실 폐쇄, 건물 앞에 웅기중기 모여 있던 수강생들의 수군거림. 나쁜 놈, 몸 망친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잖아. 그런 죽일 놈은 영영 감옥에서 살려야 하는 것 아냐?
─목소리가…… 옛날처럼 너무 예쁘시네요. 어떻게, 하시는 연극은 잘 돼가십니까.
그의 목소리야말로 옛날과 전혀 다름이 없다.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웃음소리. 그 속에 감춰둔 사기꾼의 날름대는 혀. 2년, 아니, 정확히 말해서 1년 11개월 만이다.
─연락이 안되더라구요. 이사를 가신 모양이죠. 겨우 전화번호를 알아내었습니다. 극단에 연락해서요. 그저께 귀국했거든요.
귀국? 감옥으로부터의 귀가? 풀썩 웃음이 난다. 사기꾼 이용훈. 이 사람 역시 연극을 꿈꾸는가. 반지하방의 이 무대, 음습하고 구차한 이곳에 그도 우리처럼 올라서고 싶은가.
─……진희씨, 듣고 있어요? 내 말 들려요?
“예. 엄마가 같이 살자고 해서요. 지금 엄마 집이거든요.”
─원더풀, 그레잇풀! 아직 결혼하지 않으셨다는 얘기네요. 맞습니까?
“예, 결혼은 아직.”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진희씨가 워낙 매력 넘치는 분이라. 만나도 되겠네요.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는 자신이 관객들을 완전히 속인다고 믿는다. 배역의 분장을 하고 배역의 대화를 입에서 토해내는 순간, 현실의 자신은 사라지고 자신이 맡은 배역으로 새로 태어나 관객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알고 있다. 그가 단지 연극을 하고 있음을, 맡은 배역을 해낼 뿐 연극 속의 인물이 아님을.
“저도, 박사님이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어요. 사무실도 잘되시죠?”
─보스턴하고 미네소타에서 강의를 맡았었거든요, 캐나다 학회 일로 거기서도 계속 날아다녔고. 괜히 협회 사무총장 일을 맡아 얼마나 바삐 돌아쳤는지. 게다가 서울 전화번호들을 넣어둔 전자수첩이 고장났잖아요. 그게 일제 쏘니……
“너, 누구하고 전화 거냐. 민지 밥 안 먹이고.”
당신이 내게 들러붙는다. 내 휴대폰에 귀를 대고 어떻게든 얘기를 엿들으려 안간힘을 쓴다.
─……생각 많이 했어요. 연극하시는 분이라 정열적이던 것도 인상적이었고…… 우리가 사실 서로, 그냥 잊혀질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속는 사람은 관객이 아니다. 관객은 그저 가늠해보고 있는 것이다. 배역과 전혀 다른, 현실에 꽁꽁 묶여 사는 한 인간이 배역의 삶을 얼마만큼 흉내낼 수 있는지. 배우의 연기에 속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연극배우 자신뿐이다. 연극을 하는가.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는가. 그는 현실 속의 추루한 자신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고름투성이 과거를, 보잘것없는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아량이 없는 것이다.
“너, 민지 애비헌테 죄 이를겨. 외간남자하고 시시덕대었다고. 누구여, 도대체 워떤 놈이 남의 안사람한테 전화질이여.”
당신을 피해 보일러실 세탁기 뒤로 들어서는 나.
─……괜히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나? 진희씨, 듣고 있어요?
바보 박진희.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여자 박진희. 왜 이 터무니없는 전화를 단호하게 끊지 못하는가. 속이 빤히 들여다뵈는 이 사기꾼에게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의 목소리, 되도 않은 그의 달콤한 말이 흘러나갈까 다른 쪽 귀를 한껏 틀어막는 나. 보일러실 파이프 뒤, 해묵은 먼지가 거미줄 위로 두툼하게 올라앉은 구석을 향해 자꾸자꾸 몸을 들이미는 나.
“거기 누가 있다고 기어들어가는겨. 너 거기, 그 안에, 샛서방 숨겨논 겨? 이리 나오지 못혀?”
─……건물이 거의 올라갔거든. 당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직원도 확보해야 하고, 전국적으로 회원관리도…… 거기 어디였지? 한강변의 우리 만났던 곳, 왜 그, 분위기 좋았잖아. 뒤에 그, 좀 쉬는 데도 있고.
욕실의 샤워기를 튼다. 열심히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온몸을 샅샅이 씻어낸다. 미사리의 까페 이탈리아노. 뒷문으로 나가면 그대로 전망좋은 러브호텔이 이어지는 곳. 나는 그에게 뭐라 말했는가.
그러지 않아도 의논드리고 싶었어요. 한 오륙천만원, 어디에 투자할까 생각중이었거든요. 일이천은 지금 현금으로 있고, 물론이죠, 오늘이라도 은행에서 찾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한 사천은…… 곧 들어올 거구요. 누구한테 잠깐 맡겨놓았거든요. 요새 은행이자도 별것 아니고 해서요. 박사님이 맡아 운영해주시면, 저야 좋죠.
관객 역시 속고 싶다. 배우의 어설픈 연기를 시시콜콜 들추는 관객 역시, 무대 위에서 쩔쩔매는 배우만큼 속상하다. 왜 확실히 속아넘기지 못하는가. 왜 확실히 속아지지 않는가. 어떤 증거로도 어떤 역설로도 속임수임을 밝힐 수 없는 허구,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 부른다.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큰 거짓말,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큰 사기, 큰 협잡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황,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은 속는데도 유독 속아지지 않는 나 자신, 쓸데없이 괴까다로운 나 자신이 우리는 너무나 원망스럽다. 우리는 모두 속고 싶다. 허황한 무지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안고 하루하루 잠자리에 들기, 행여나 다른 날일까 조심조심 눈떠보기.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는 모두 한바탕 멋들어지게 속아넘어가고 싶다.
“나도 목욕허야지. 몸이 왜 이렇게 찌뿌득헌지.”
맨몸의 당신이 따라들어온다. 앙상한 팔다리, 휘우듬한 어깨, 똑바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늘어진 뱃살 껍질. 현실을 똑바로 볼 능력을 잃고 싶은 당신, 잃은 척하면 혹시 잃어질까 안간힘 쓰는 당신.
“이리 와라 금례야, 엄마가 씻어줄게.”
나는 당신의 어깨에 따뜻한 물을 끼얹고 부드러운 비누거품을 내기 시작한다. 당신은 좌변기 위에 다소곳이 앉아 앙상한 팔과 다리를 번갈아 내민다. 어미에게 몸을 맡기고 살포시 눈을 감는, 당신은 이제 착하고 순진한 어린아이가 되어 있다.
“엄니, 우리 워디 가는겨? 시장 가서 맛난 거 사주는겨?”
오래오래, 정성을 다해 당신의 몸을 씻긴다. 당신은 천진한 어린아이, 나는 당신의 푸근하고 자상한 어미. 당신은 무대에서 내려서면 안된다. 순식간에 거덜이 날 얕은 사기를 치며 세상에 또다른 오물을 보태려는 어리석은 딸년이 있는 한, 어쭙잖은 한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당신의 마지막 돈 한푼까지 철저히 홅아내려는 사악한 딸년이 컴컴한 무대 밑에 도사리고 있는 한 당신은 무대에서 절대로 내려서면 안된다.
사내를 만나기 위해 화장품을 처바르는 나. 하룻밤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양쪽 겨드랑이에 향수를 묻히는 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을 크게 떠 본다. 앞으로 옆으로 몸을 뒤척이며 얇디얇은 속치마를 꿰어입는다.
“엄니, 나 예뻐? 이 옷 입으니까 예뻐?”
내가 입고 나갈 밝은 치자색 원피스를 걸치고 틀니를 온통 드러내 보이는 당신.
핸드백을 열어 약을 꺼낸다. 강남의 그 오피스텔 생활, 잠 안 오는 밤이면 삼켰던 수면제 반알. 한개, 한개, 또 한개. 나는 수면제 세 알을 물컵과 함께 당신에게 내민다.
“이걸 먹으면 몸이 튼튼해진단다. 우리 금례, 얼굴도 더 예뻐지고.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천진한 어린아이인 당신은 주저없이 알약 세 알을 입에 넣는다.
나는 당신의 어미.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당신이 내게 주문한, 지상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영광스런 배역. 당신의 어머니는 순전히 무심코, 뚜껑을 닫지 않은 약병을 당신에게 맡긴다. 삼십 알, 혹은 오십 알. 당신은 행복하다. 당신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천상에 마련해놓은 안락한 집, 사랑하는 큰아들과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 무대에 선 당신은 행복하다. 당신이 길을 편히 떠날 수 있도록 채비를 차려주는 자상한 어머니가 함께 있다. 알약 한알 한알을 초콜릿 주워먹듯 즐길 당신.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약속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약병을 통째로 넘겨준 사람은…… 내가 아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가스의 주 밸브를 잠그는, 씽크대 깊숙한 곳에 성냥을 숨기는, 외출한 동안 잠이 들 어머니의 안락함을 위해서 난방을 약하게 틀어놓는, 이 여자가 나다. 모든 채비를 끝내고 핸드백을 든다.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화장을 점검한다. 휴지를 한장 뽑는다. 너무 번들거리는 붉은 입술은 자칫하면 여자를 싸구려로 보이게 할 염려가 있다.
장롱에 기대앉은 당신은 마구 고개를 내저으며 잠투정을 시작한다.
“엄니, 눈이 무거워. 자꾸 눈이 감겨서…… 옥례가 내 밤을……”
“누워 있으렴. 약 먹으면 원래 자리에 눕는 거야. 그렇지. 그래야 엄마가 맛있는 것 사다주지.”
철대문이 닫히며 내는 금속성 소리에 당신의 딸은 결국 진저리를 친다. 다섯시 사십분. 손목시계를 보며 당신의 딸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온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이상하다, 그녀의 마음은 더더욱 조급해진다.
……이상스레 자기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더라구. 어떤 멋있는 경치를 보아도, 거기, 진희씨가 서 있는 거야. 이 세상 여자가 그리 많아도, 내 품에 안을 여자는 단 한 사람, 자기밖에 없어. 진희씨, 내 말 듣고 있어?
하이힐을 신은 발로 그녀는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불편한 구두를 신고 나왔을까, 그녀는 갑자기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이깟 일로 돌아설 수는 없다. 그가, 그녀에게 청혼한 그가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저만치 보이는 버스정류소까지는 기껏해야 오십여 미터, 그러나 그녀의 굽 높은 구두로는 너무나 멀고 아득하다. 손에 들었던 핸드백을 어깨에 멘다. 땀 찬 손바닥을 원피스 자락에 문지른다. 멀리, 이곳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그녀를 싣고 내빼줄 버스에 그녀는 어서 빨리 올라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