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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

 

무지의 충돌

 

 

에드워드 싸이드 Edward W. Said

1935년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이던 예루살렘에서 출생.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더불어 실향민이 되어 이집트로 이주.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린스턴, 하바드 등에서 영문학 전공. 현재 컬럼비아대학 석좌교수(비교문학). 저서로 『오리엔탈리즘』(1978) 『문화와 제국주의』(1993) 등이 있음. 본지 89호(1995 가을)에 「중동 ‘평화협상’─현혹적인 이미지와 야만적인 현실」 발표. 원제 “The Clash of Ignorance”(The Nation 2001.10.22).

The Nation 2001/한국어판 ⓒ창작과비평사 2001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the October 22, 2001 issue of The Nation

 

 

쌔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논문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지 1993년 여름호에 게재되자 즉각적으로 놀랄 만한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의 의도는 미국인들에게 냉전종식 이후 세계정치의 ‘새 단계’에 대한 독창적인 명제를 제공하려는 것이었으므로, 헌팅턴의 논지는 매우 과장되고 대담하며 심지어 계시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가 정책입안 분야의 경쟁자들, 가령 지구화와 부족주의의 시작과 국가소멸을 찬양해온 다수 논자들은 물론, ‘역사의 종말’ 개념을 제시한 프랜씨스 푸쿠야마(Francis Fukuyama)와 같은 이론가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은 아주 분명했다. 그들은 이 새 시기의 몇가지 측면만을 이해했을 뿐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는 “다가올 여러 해 동안 일어날 법한 세계정치의 향방”의 “중대하고, 참으로 핵심적인 한 측면”을 공표할 참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갈등의 기본적 근원은 주로 이념적인 것이거나 경제적인 것이 아니리라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인류를 갈라놓는 커다란 경계선과 갈등의 유력한 근원은 문화적인 것이 될 것이다. 국민국가들은 여전히 세계정세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자로 남을 테지만, 전지구적 정치역학에서의 주요 갈등은 상이한 문화를 지닌 국가나 집단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 세계정세를 지배할 것이다. 문명들간의 단층선(斷層線)이 미래의 전선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여러 면의 논의 대부분은 헌팅턴이 ‘문명적 정체성’이라 지칭한 모호한 개념과 “일곱 혹은 여덟〔원문 그대로임〕 개의 주요 문명들간의 상호작용”에 의거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두 문명, 즉 이슬람과 서구 간의 갈등이 그의 관심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이렇듯 호전적인 사고에서, 그는 노련한 동양학자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가 1990년에 쓴 한 논문에 크게 의지하는데, 루이스의 이념적 색깔은 「무슬림 분노의 뿌리」(The Roots of Muslim Rage)라는 논문제목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두 논문 모두에서 ‘서구’와 ‘이슬람’이라 불리는 거대한 실체들은 거침없이 의인화되는데, 정체성과 문화처럼 고도로 복잡한 문제들이 펼쳐지는 세계가 마치 뽀빠이와 블루토가 인정사정없이 서로를 후려갈기며 언제나 더 선량한 복서가 상대방을 제압하는 그런 만화 같은 세상인 것처럼 그려진다. 확실히 헌팅턴이나 루이스 모두에게는, 각 문명의 내적 동력이나 다양함, 혹은 대다수 현대문명들에 있어 주된 논쟁이 각 문화의 정의나 해석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나, 대개의 대중선동과 뻔한 무지가 하나의 종교 혹은 문명 전체를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매력 없는 가능성 따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천만에, 서구는 서구이고 이슬람은 이슬람일 뿐이다.

서구 정책수립자들의 난제는 서구를 더 강력하게 만들고 여타 문명 전부를, 특히 이슬람을 확실히 몰아내는 일이라고 헌팅턴은 말한다.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모든 일상적 애착과 숨겨진 충성관계 밖의 높다란 자리에서 전세계를 조망하는 그의 전망이야말로 올바른 것이고, 자기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미 발견해놓은 해답들을 찾아 허둥대고 있는 꼴이라는 식의 헌팅턴의 가정이다. 사실, 헌팅턴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며, ‘문명들’과 ‘정체성들’을 그것들의 실제가 아닌 모습으로, 즉 인간역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수세기 동안 그 역사로 하여금 종교간의 전쟁과 제국주의적 정복을 봉쇄할 뿐 아니라 교통과 문화간의 교류, 그리고 공유의 역사가 되게끔 만들어준 그 무수한 흐름과 역류는 말끔히 제거된, 폐쇄되고 밀폐된 실체들로 만들려는 인물이다. ‘문명의 충돌’론이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그 우스꽝스럽게 찌부러지고 압축된 전쟁을 부각하려는 성급함 속에, 눈에 훨씬 덜 띄는 이 역사는 황급히 무시되어버린다. 1996년 같은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을 때, 헌팅턴은 그의 논지를 좀더 섬세하게 만들려 노력했고 더 많은, 정말 많은 각주를 달았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곤 스스로 혼란에 빠지고 자신이 얼마나 서투른 필자이며 우아하지 못한 사상가인지를 입증한 것뿐이었다.

(냉전시대 대립공식의 재현인) 서구 대 나머지 지역이라는 기본패러다임은 고스란히 남았고, 9월 11일의 끔찍한 사건 이후 논의에서, 흔히 은밀하고도 암시적으로 주장된 것도 바로 이 패러다임이다. 소규모의 광기어린 호전적 집단에 의해 자행된, 주도면밀하게 계획되고 병적인 동기에서 나온 가공할 자살공격과 대량학살이 헌팅턴의 명제를 떠받치는 증거로 돌변하게 된 것이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범죄적 목표를 위해 한줌의 미친 광신자들 무리가 거대 이념들(나는 이 단어를 엄밀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을 장악·활용했다는 사실 그대로—보는 대신, 파키스탄의 전 수상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와 이딸리아의 수상 씰비오 베를루스꼬니(Silvio Berlusconi)에 이르는 국제적 유명인사들은 이슬람의 골칫거리 운운하며 거드름을 피웠고, 후자의 경우 ‘우리’에겐 모짜르트와 미껠란젤로가 있는데 그들에겐 없다는 둥 헌팅턴의 발상을 빌려 서구의 우월성에 대한 호언을 늘어놓았다. (베를루스꼬니는 이후 ‘이슬람’을 모욕한 데 대해 마지못해 사과했다.)

그러나 파괴성이란 면에서 그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데이비드파(Branch Davidians, 텍사스주 와코Waco에 있던 기독교 근본주의 종파로서,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David Koresh의 아동학대 등을 이유로 자신들의 사원에 진입한 연방경찰과 1993년 2월 28일에서 4월 19일까지 대치, 80여명이 사망한 바 있음—옮긴이)나 가이아나의 짐 존즈(Jim Jones) 목사의 신도들, 혹은 일본의 옴 진리교 같은 종파들과 오사마 빈 라덴 및 그 추종자들 간의 유사점에는 왜 주목하지 않는가? 심지어 통상 온건한 편인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조차 9월 22-28일호에서 이슬람에 대한 헌팅턴의 “냉정하고 포괄적이지만 참으로 날카로운” 관찰에 대해 그를 엄청나게 칭찬하면서 (이슬람에 대한—옮긴이) 광범위한 일반화를 이끌어내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잡지는 어울리지 않게 엄숙한 투로 “오늘날, 전세계 10억 가량의 무슬림들은 ‘그들 문화의 우월함을 확신하고 그들이 가진 힘의 열등함에 집착하고 있다’”는 헌팅턴의 말을 인용한다. 그가 1백명의 인도네시아인과 2백명의 모로코인과 5백명의 이집트인과 50명의 보스니아인을 면담해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표본이 되겠는가?

미국과 유럽의 이름있는 신문과 잡지마다 이런 거대주의와 종말론의 어휘에 새 단어를 추가하는 사설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이런 말들이란 독자를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일원인 독자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선동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를 증오하고, 약탈하고, 파괴하는 분자에 대항하는 전쟁이라는 처칠(W. Churchill) 식의 수사가 서구의, 특히 미국의 자칭 투사들에 의해 부적절하게 남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환원을 허용하지 않는 복잡한 역사들, 우리 모두를 분리된 병영 안으로 갈라놓는다는 그 경계선을 넘어서며, 그 과정에서 한 영역으로부터 다른 영역으로 스며들었던 복잡한 역사들은 거의 무시된 채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쉽사리 분류되거나 무력화될 수 없는 혼란스런 현실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도하고 혼란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이슬람·서구와 같은 무지몽매한 이름표가 갖는 문제점이다. 1994년 웨스트뱅크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칠 무렵, 청중석에서 일어나 내 사상이 ‘서구적’이라고, 그가 신봉하는 엄격한 이슬람사상과 배치된다고 공격하던 한 남자의 말을 가로막았던 일을 기억한다. 내게 떠오른 첫 대꾸는 “당신은 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나요? 그것도 서구적인 것인데요”라는 것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자리에 앉았지만, 9월 11일 테러분자들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할 때 이 일화가 떠올랐다. 세계무역쎈터와 펜타곤에 자살테러를 가하는 데 필요한 그 모든 기술적 세목들과 탈취한 항공기를 다루는 기술을 그들이 어떻게 습득했단 말인가? ‘서구적’ 기술과 베를루스꼬니가 단언한 바대로 ‘근대성’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이슬람적’ 무능 간의 경계선을 어디에다 그을 수 있단 말인가?

쉽사리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이름표와 일반화와 문화적 주장들은 궁극적으로 부적절하기 그지없다. 가령 어떤 수준에서는 원초적 열정과 복잡미묘한 지식이 결합되면서, 이의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정체성이나 민족성 같은 개념 자체는 물론이요, ‘서구’와 ‘이슬람’, 나아가 과거와 현재, 우리와 그들 사이의 확고한 경계선이란 거짓임이 입증된다. 모래에 금을 긋기 위해, 십자군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의 선으로 그들의 악에 맞서기 위해,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그리고 폴 월포비츠(Paul Wolfowitz)의 허무주의적 어휘로 표현하자면 국가를 완전히 사멸시키기 위해 일방적 결정을 내린다 해도, 이러한 가상의 실체들을 이해하기란 조금도 쉬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결정은 우리가 실제로 다루고 있는 그것, 즉 ‘그들의 것’이자 ‘우리의 것’인 수많은 생명들의 상호연관에 대해 숙고하고 조사하고 분별하는 일보다는 집단적 열광을 동원하려는 목적으로 호전적 발언을 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단순한 일임을 보여줄 뿐이다.

파키스탄의 유수한 주간지 『새벽』(Dawn)에 1999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실린 세 편의 탁월한 연재기사에서 무슬림 독자들을 상대로 글을 쓴 고(故) 에끄발 아마드(Eqbal Ahmad)는 그가 종교적 권리의 근본이라 칭한 것을 분석하고, 절대주의자들과 광신적 독재자들이 집착하는 개인 행동에 대한 규제가 “그것이 본래 지닌 인본주의, 미적 감각, 지적 욕구, 그리고 영혼의 헌신성이 제거된 하나의 형법으로 격하된 이슬람 질서를” 조장한다며 이슬람을 훼손시키는 그들을 엄하게 질책했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하나의 종교적 측면을 대개 맥락에서 떼어내어 절대적으로 주장하고 다른 것을 전적으로 무시함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종교를 왜곡하고 전통을 타락시키고 그것이 전개되는 어디에서건 정치적 과정을 꼬이게 만든다.” 이런 타락에 대한 하나의 시의적절한 예로서 아마드는 먼저 ‘지하드’(jihad)라는 단어의 풍부하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의미를 제시한 후, 나아가 현재 이 단어의 의미가 가상의 적들에 대한 무차별적 전쟁으로 국한됨으로써 “오랫동안 무슬림이 살아왔고 경험한 이슬람적인 것—종교, 사회, 문화, 역사 혹은 정치—을 인식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지적한다. 현대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영혼이 아니라 권력에, 민중의 고통과 열망을 나누고 덜어주는 일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을 동원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 그들의 목표는 극히 제한적이고 시간에 얽매인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아마드는 결론짓는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와 유사한 왜곡과 광신이 ‘유대적’이고 ‘기독교적인’ 담론세계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문명화된 런던과 ‘암흑의 심장’(the heart of darkness) 간의 구분이 극한의 상황에서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점과, 최고조에 이른 유럽문명이 아무 준비나 과도기도 없이 즉각적으로 가장 야만적인 관행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점을 19세기말 어느 독자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매우 예리하게 꿰뚫어본 이가 바로 콘래드(Joseph Conrad)였다. 그리고 『밀정』(The Secret Agent, 1907)에서 테러리스트의 궁극적인 도덕적 타락뿐만 아니라, ‘순수과학’과 같은 (그리고 확대하면 ‘이슬람’이나 ‘서구’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테러리즘의 친화력을 묘사한 사람 역시 콘래드였다.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명들 사이에는 우리들 대부분이 믿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한 유대관계가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니체는 둘다 조심스럽게 유지되고 심지어 감시 속에서 관리되는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교류가 어떻게 종종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고수하는 개념들에 관한 애매함과 회의로 가득 찬 이런 유동적 사고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적절하고도 실제적인 지침을 거의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슬람과 서구 사이의 대립이라는 헌팅턴의 근거없는 주장으로부터 확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전투명령들(십자군, 선 대 악, 자유 대 공포 등)이 추출되었고, 9월 11일의 공격이 있은 후 첫 며칠 동안 공식담론은 그로부터 어휘를 빌려 썼던 것이다. 그 이후로 이런 담론은 눈에 띄게 감소하였지만, 전세계 아랍인들과 무슬림 그리고 인도인들을 겨냥한 입법운동 기사와 더불어 (타인종에 대한—옮긴이) 증오에 찬 연설과 행동들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볼 때, 이 패러다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지속되는 또다른 심층적 이유는 유럽 전역과 미국에 무슬림의 존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프랑스, 이딸리아, 독일, 스페인, 영국, 미국, 심지어 스웨덴의 인구구성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슬람이 더이상 서구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부에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왜 그렇게 위협적인가? 집단적 문화 속에 깊이 묻혀 있는 것이 바로 최초의 대규모 아랍-이슬람 정복의 기억들인데, 7세기에 시작된 이 정복은 저명한 벨기에 사학자 앙리 삐렌느(Henri Pirenne)가 그의 명저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대제』(Mohammed and Charlemagne, 1939)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고대 지중해의 통일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기독교·로마 통합을 파괴하여 북구 열강(독일과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스)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북구 열강의 사명은 역사적·문화적 적들에 대항해 다시 ‘서구’의 방어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애석하게도 삐렌느가 빠트린 것은 이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때는 서구도 샤를마뉴 대제의 세계와 고전적 고대 사이에 이미 개입해 들어간 이슬람의 인본주의, 과학, 철학, 사회학, 그리고 사료편찬학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마호메트의 대적(大敵)인 단떼(A. Dante)마저 그의 『지옥편』(Inferno)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에 이 선지자를 배치했을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이슬람은 처음부터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루이 마씨뇽(Louis Massignon)이 적절히 이름붙였듯이 아브라함의 종교들인 일신교라는 지속적인 유산이 있다.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에서 시작된 이것들은 저마다 그 앞의 것의 기억에 시달리는 계승자들이고, 무슬림에게는 이슬람이 예언의 계보를 완성하고 완결지은 것이 된다. 모든 신들 가운데서 가장 질투심이 많은 신의 이 세 추종자들—그중 어느 하나도 단일하고 통합된 진영은 결코 아닌—간의 다면적인 경쟁에 대한 탈신비화나 변변한 역사란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진, 이들 모두의 피비린내 나는 현대판 수렴이 그들 사이의 그다지도 비극적이고 화해 불가능한 역사에 대한 풍부한 세속적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무슬림과 기독교도 양편 모두 흔히 우아하고 태연하게 유대교의 존재를 생략해버리고 십자군과 ‘지하드’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에끄발 아마드가 말하듯이, 이러한 구도는 “전통과 근대성이라는 깊은 바다 사이에 놓인 야트막한 섬 한가운데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우리—서구인이나 무슬림이나 다른 모든 이들—는 모두 그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이 바다는 역사라는 대양의 일부분이므로, 방벽을 만들어 갈라놓고자 해도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은 어려운 시대이긴 하지만, 일시적 만족이라면 몰라도 자기성찰이나 분별있는 분석은 거의 제공하지 못하는 거대한 추상적 개념을 찾아 헤매기보다 힘있는 공동체와 힘없는 공동체, 이성과 무지의 세속정치, 정의와 불의라는 보편적 원리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주제는 ‘세계들간의 전쟁’처럼 이 시대의 곤혹스런 상호의존성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아니라 방어적인 자존심을 강화하기에 더 알맞은 하나의 술수인 것이다.

〔姜美淑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