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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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1954년 춘천 출생.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모래인간』 『그로테스크』 『회저의 밤』 『세속도시의 즐거움』 『대설주의보』 등이 있음.

 

 

오후의 익사체

 

 

흐린

속에서 며칠

넥타이를 맨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와이셔츠에 흙물이 들었다.

우렁이 껍질 같은 눈,

헤벌어진 입이

송장의 미소를 흘리고

혁대는 뚱뚱한 복부를 조르고 있다.

발기는 끝이 났다.

발기로 인한 방황, 초조, 헐떡거림, 그리고

허망함도 마무리가 되었다.

콧등에 붙은 우렁이 새끼가 보인다.

두 팔은 늘어져 있다.

뜻밖의 푸짐한 공짜 먹거리를 만난 것처럼

게아재비, 물장군, 똥방개, 소금쟁이 들이

오후의 익사체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다리를 움직인다.

그들은 조그만 입으로 물어뜯으려고 애쓴다.

몇시나 되었을까.

콧구멍 속으로 우렁이 새끼가 들어간다.

 

 

 

유령 같은 현실

 

 

미궁의 화살표 같은 책들을

따라가다 보면

두개골을 더 깊은 미궁에 처박는 말들이 있다.

아무것도

그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낮의 뜬눈이 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간다.

어마어마한 유령 같은 현실,

찢을 수도 없고 꿰맬 수도 없고

붕대로 목을 졸라

죽여버릴 수도 없는.

 

 

 

내쫓겼으나 밤의 한 구석에 붙어 있는 것

 

 

쓰레기자루가 또 골목에 놓였다. 모래와 바람의 장엄함도 없는 대도시 한 구석에서 쓰레기를 밥으로 먹는 것은 눈알이 巫女처럼 이글대는 도둑괭이와 아름다운 詩의 사원에서 내쫓겨 쓰레기탁발승처럼 늙어가는 나, 그리고 화대라면 무덤에서라도 기어나와 썩은 몸을 내다팔면서 우글거리는 창녀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