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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현수 李賢洙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199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1997년 『문학동네』 신인공모로 등단.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가 있음. hyunsu415@hanmail.net
토란
1
그녀는 평생 자기 부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다. 젊어서는 시집살이를 했으니 당연히 시어머니의 부엌이었고, 살림을 따로 난 후에는 셋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터라 그 또한 남에게 빌린 부엌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부엌이 생겼지만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부엌을 부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부엌을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 그녀의 방에서 모델하우스 광고지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을 때도 노인네의 별스런 취미 정도로만 여겼다. 그녀가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의 주방을 신발이 닳도록 보고 다닌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요리의 달인인 그녀에게 부엌이 없다는 건 대장장이에게 대장간이 없는 것과 같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그녀만의 부엌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 그녀, 즉 나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화해를 해야만 가능했다.
“속창시 빠진 인간이 비오는디 차를 몰고 너희 성 회사까지 갔다왔디야. 쓸쓸하고 고독혀서 못살겄다고. 이 시상 인간들 중에 고독하지 않은 인간이 워디 있간디.”
버럭, 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물방울 위에 오롯이 맺혀 있다. 처진 눈밑에 세로로 잡힌 주름과 길쯤한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 그를 욕할 때마다 보이는 의치까지.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 떨어진 물방울들을 하나씩 문지른다. 오늘따라 손톱이 이물스레 느껴진다.
“팔자가 늘어져서 안 그냐아. 지난달엔 김제로, 익산으로, 정읍으로 한 바꾸 돌고 왔디야. 그람서 뭐라는 중 아냐? 추억여행이랴. 풍신에 허고 다니는 짓이 빌어먹을 짓만 골라서 헌다니께. 때마침 친구들이 집엘 왔는디, 누가 그 꼴난 사진을 보자고 했간? 히히히, 웃음서 거그 가서 찍은 사진을 꺼내놓는디 억장이 탁 맥혀야. 너희 성 회사에 갔다오던 날, 빗길에 또 사고낼 뻔했다누만.”
물 끓는 소리가 젖 보채는 애보다도 성가시다. 벌떡 일어나 들썩거리는 냄비뚜껑을 열고 끓는 물에 시금치를 넣었다가 찬물로 헹궈낸다. 시금치는 잘 데쳐졌다. 시금치를 데치는 법도 그녀에게서 배웠다.
“시금치 데치기가 쉬워 보이쟈. 알고 보면 시금치를 데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어야.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금을 한줌 집어넣고 시금치를 넣었다가 금방 찬물로 헹궈야 써. 백지 익혀야 헌다고 휘휘 젓다가는 물러터져 못쓰는 것이 시금치여. 끓는 물에 넣었다가 금방 찬물로 헹구려면 불안허쟈. 과연 시금치가 익었나 싶기도 허고. 시금치란 것은 가만둬도 제물에 익는 것이여. 지 성질을 못 이겨 파르르 넘어가는 자발없는 사내를 생각하면 돼야. 안 있냐? 느 시아버지 겉은 사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비유가 어찌나 현란한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유의 종착지가 언제나 그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느 시아버지가 워떤 사람인 중 아냐. 머언 일을 시작하면 석달을 못 닝기는 인간이 바로 그 인간이여. 시금치보다 더하면 더했제 덜할 인간이 아니랑게.”
그렇게 말할 때의 그녀는 투우 같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붉은 보자기를 쳐든 투우사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소. 그와 그녀가 견원지간이 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오늘 저녁 두 사람은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바위처럼 단단해진 그와 그녀의 마음을 한꺼번에 녹일 묘약은 없는 것일까. 작은 틈새라도 보이면 얇은 모시바늘이 되어 두 사람 사이를 들락날락하겠건만…… 시금치를 건져내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2
요리는 그녀의 종교다. 요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탄성이 새어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불꽃 앞에 선 그녀. 빨갛고 파란 가스레인지 불빛이 수시로 그녀를 비추고, 불꽃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열 손가락들. 양념의 배합을 어떻게 해야 맛이 나는지, 어떤 순서대로 넣어야 하는지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녀는 먹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는 어떤 노고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처음 그녀에게 타박을 맞은 것이 파전과 알타리무 김치를 상에 낼 때였다. 흔히 총각김치라고도 부르는 알타리무 김치는 통째로 들고 아작아작 씹어먹는 게 별미인지라 나누어지기 쉽게 무에 칼집만 내서 상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통째로 내놓으면 먹기가 꺽정시럽지 않겄냐. 이런 것은 한입에 싹 들어가게 탐박탐박 썰어 올려야 혀.”
그녀가 말한 ‘이런 것’들 중엔 둥글게 부쳐서 그대로 내놓은 파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전이란 따뜻할 때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먹는 게 아니던가. 뜨거운 전을 네모 반듯하게 썰어보면 쉽게 썰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기름기가 묻은 칼과 도마를 씻어내는 일 또한 잔손을 요하는 일이었다. 알타리무 김치와 파전을 통째 상에 낸 데에는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는 사람은 파전을 젓가락으로 찢는달지 알타리무 김치를 이로 잘라 먹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된다는 내 심술도 얼마간 작용한 게 사실이었다.
“요리를 맹그는 사람의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기 있는디, 그건 말이여, 먹는 사람이 황제다, 허는 맴을 갖고 있으믄 돼야. 그러면 요리는 지절로 되는 것이여.”
그런 그녀에게 기름기 묻은 칼과 도마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히 말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 요리가 그녀의 종교인가 하면 아무리 식구가 없을 때라도 상을 차리기 위해 상 앞에 서게 되면 대강이 없기 때문이다. 먹어줄 누가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한줌의 힘과 시간과 정성을 알뜰히 긁어모아 상을 차렸다. 남편은 이런 그녀를 말하지 않고 어째서 수박 깨는 그녀를 말했을까. 결혼 전, 어머니는 어떤 분이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수박을 깨던 그녀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여덟살쯤 되었을 때라니까 그녀는 삼십대 초반이었겠다. 수줍고 고운 기가 남아 있던 한 시절, 그녀는 무슨 투사처럼 수박을 시장바닥에 패대기쳤다. 코흘리개 두 아이에게 먹일 수박을 벼르고 별러서 샀더니 수박 속이 분홍색이었던 것. 수박을 바꾸러 다시 시장으로 간 그녀. 그날따라 매상이 시원찮았던지 수박장수가 깐죽거리며 염장을 질렀다. 이래도, 이래도 안 익었냐구? 그녀가 수박의 한 귀퉁이를 도려내 분홍색인 걸 확인했는데, 수박장수는 수박의 다른 쪽을 세모꼴로 도려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눈이 있으면 봐. 어디 와서 생떼야. 수박장수가 내민 빨간 수박 속을 보고 어린 남편은 가슴이 졸아붙는 것 같았단다. 수박을 실은 리어카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편은 그만 갔으면, 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젊은 그녀는 자신의 머리보다 큰 수박을 치켜들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더란다. 여기저기로 튀어 흩어지는 수박의 분홍색 파편들. 이래도 익었어? 두 손을 탁탁 터는 그녀. 새로 한 덩이 갖고 가슈. 맥빠진 수박장수의 말에 씩씩한 그녀의 대답. 일없어. 남편은 그 말이 서운했다고 한다. 분홍색 수박이라도 한 쪽만 먹었으면 했는데. 코흘리개 아들의 마음을 뻔히 아는 젊은 어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없어.
시집에 첫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그녀의 화사한 홈드레스나 고개를 숙일 때 얼핏 드러나던 진주목걸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만 보였다. 그리고 파편처럼 튀는 수박 쪼가리들, 푸른 겉껍질 속의 핏빛 수박살이 그녀의 얼굴 저편으로 어른어른 비치는 거였다.
그녀에 비하면 그의 인상은 부드러웠다. 낯선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난 내게 그가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했다. 엉거주춤 다가앉는 내 손을 잡고 느닷없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시를 읊조리는 게 아니고 외웠다. 당신의 급한 성정 탓에 어찌나 시를 빨리 외우던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줄줄 외우는 구구단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시에는 나름대로의 맛이란 게 있다. 특히 「국화 옆에서」 같은 시는 굵직한 목소리로 힘을 주어 천천히 읊어야만 시 본래의 맛이 살아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그리도 시를 빨리 외워 뜻이 이상하게 변질되어 들리는 와중에도, 아하 지금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외우고 있구나 하고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가 그 유명한 시를 모를 리야 없겠지만 장래 며느릿감 앞에서 시를, 다른 것도 아니고 시를 줄줄 외울 줄이야. 시를 다 외운 그가 한결 깊어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널 보려고 그 긴 세월을 살았는갑다.”
그에게 난 한송이 노란 국화꽃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생채기가 나지 않은 노오란 꽃잎. 무서리 내리는 긴긴 밤을, 천둥과 먹구름 속을 헤쳐온 그에게 기어코 다가가고야 마는. 결혼식장에서 그를 본 친정 백부님은 “베레모를 빼딱하게 쓴 것이 우째 좀 걸리더라”며 시아버지 자리를 두고 내내 찜찜해하셨지만 나는 「국화 옆에서」를 외우던 그를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시를 아는 것과 직접 외우는 것의 차이는 크므로. 그는 다른 아버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뒷날 그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른 것이 시를 외우는 것 외에도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렇게, 그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 반면에 그녀의 인상은 최악이었다. 남편에게 수박 깨던 얘기를 미리 듣지만 않았어도 인상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라고 어찌 투사 같기만 했으랴.
“어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간 요리학원이 한두 군덴 줄 알아.”
그랬다. 젊은 그녀, 그에게 넌더리를 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장롱 서랍에 착착 개켜진 채로 들어 있는 앞치마들. 그땐 어땠을까. 색색의 앞치마를 준비하고 상 앞에 앉을 황제를 위하여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요리학원을 드나들었을 그녀.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양볼이 발갛게 물들었을 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시방 생각혀봐도 차암 어리석었어. 우째 혼사를 결정함서 신랑을 보지 않았일까. 느 시할아버지의 소문난 인품만 믿은 것이여. 그 하나뿐인 아들인게 여북 닮았을 꺼이냐고 그러고 시집갔어야. 신랑을 볼 생각은 허들 않고. 뭣에 씌었는개비. 안 봐도 한낱두 껄쩍지근허지 안터먼.”
그녀의 입에 붙어버린 이 푸념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데친 시금치는 물기를 짜내고 나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나물은 상에 올리기 직전에 무쳐야 씹는 맛이 있다. 다음엔 새우를 손질할 차례다.
“바가지 쓰기 질로 좋은 것이 대하여. 시장에 나온 생물 대하는 백이면 백, 냉동새우를 녹인 거라고 알면 돼야. 생물이 더러 있기야 있겄지만 잡은 즉시 유명 음식점으로 빠져버린게 우리 손에 들어올 턱이 없는 게 대하라는 물건이여. 아예 첨버텀 냉동새우를 사는 게 현명한 일이제.”
재료구입도 그녀의 충고대로 하면 싸고 좋은 걸 살 수가 있다. 새우의 내장은 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등에 붙어 있다. 등 쪽으로 이쑤시개를 밀어넣어 내장을 뺀 새우를 접시에 담는다. 내장을 지고 다니느라 고단했을 새우. 내장이 털린 열 마리의 대하가 접시 안에서 각각 등을 돌리고 꼬부장하게 누워 있다. 새우의 누운 모양새가 눈에 거슬린다. 저녁 잘 먹고 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고 받고 싸우다 등돌리고 자는 형제 꼴이 아닌가. 열 마리의 대하를 꼬부장한 등이 바깥쪽으로 향하게끔 나란나란 누인다. 그제서야 사이좋은 형제들 같다. 한 사람 앞에 두 마리씩, 오늘 저녁 주요리는 대하쌜러드로 낼 참이다. 저녁 상차림이 그녀의 마음에 들기나 할는지. 시집은 희한하게도 기름냄새를 내지 않고 상을 차린다. 색감부터가 화려하다. 친정은 고명이라고 해봐야 기껏 실고추나 지단이 전부인데, 시집에서는 상추를 몇잎 깔고 브로콜리와 얇게 돌려깎은 당근을 요리의 옆이나 위에 곁들여 꽃단장을 해야만 제대로 된 상차림으로 쳐준다. 다른 집은 모양보다는 음식의 맛에 비중을 두지만 시집은 맛보다는 모양에 비중을 둔다. 그 모양 때문에 찌그러진 남편과 시누이의 얼굴. 머잖아 나도 그들의 얼굴과 비슷해질 것이다.
3
씻어 건진 양상추를 바람이 잘 통하는 뒷베란다에 두려고 문을 여는데, 유리볼에 담긴 토란이 나부터 손봐달라고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것만 같다. 여전히 친해지지 않는 토란 뿌리. 쌀뜨물에 가라앉은 토란의 외양만 보고 만만히 다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토란 뿌리는 먼저 면장갑을 끼고 팔목까지 올라오는 긴 고무장갑을 덧낀 다음에 만져야만 그 독한 성깔을 이겨낼 수가 있다. 보잘것없는 알뿌리라고 우습게 여기고 맨손으로 만지면 쐐기에 쏘인 것처럼 손이 화끈거리고 가려워서 밤잠을 설치게 된다. 토란요리를 하면서부터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무턱대고 가갸거겨만을 외우던 아이가 어느날 자음과 모음의 조화를 한순간에 알아내듯이.
초인종이 길게 울린다. 그녀다. 그녀가 우리집으로 출발했다는 시누이의 전화를 받은 지 다섯시간이 지났다. 천안 시누이 집에서 우리집까지는 넉넉하게 잡아도 두시간 이십분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두시간 사십분 동안 그녀는, 미처 가보지 못한 또다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보고 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유심히 보는 거실이나 안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부엌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 앞 공터에 모델하우스가 새로 들어섰거든. 어제 엄마 뒤를 밟았더니 짐작대로 거길 가시더라구. 다른 데는 보지도 않고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더라. 씽크대라고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쓸어보고 만져보고 서랍도 열었다가 닫았다가…… 부엌에서만 한시간이 넘게 그러고 계셨어.”
시누이에게 그 말을 들은 지 벌써 일년이 지났다. 신발에 흙이 묻은 걸로 보아 오늘은 한창 개발중인 신도시 어디쯤엘 다녀온 모양이다. 그녀가 보고 온 부엌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저녁 준비는 잘되어가냐?”
부엌을 살피는 그녀의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대하랑 토란도 다듬어놓구요. 나물도 데쳐서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이제 요리만 하면 돼요.”
“어디 쪼까 볼꺼나.”
뒷베란다 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베란다와 부엌 사이의 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는다. 등이 수척하다. 본디 살이 푸근하게 붙은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구부린 그녀의 등이, 살을 발라먹고 남은 생선 뼈다귀처럼 앙상해 보인다.
“쩌기, 저놈은 뭐다냐?”
세탁기 옆, 수퉁맞게 생긴 고무통에 담긴 고들빼기를 가리키며 그녀가 물었다.
“고들빼기 김치를 할까 하고 소금물에 우렸는데, 아무래도 생일상에는 못 올릴 것 같아요.”
“왜애? 아범은 고들빼기 김치라면 환장을 허는디.”
“쓴맛이 덜 우러난 것 같은데 언제 담가 상에 올리겠어요. 맛도 들어야 할 텐데.”
“고들빼기 김치는 금방 담은 거 먹어도 괜찮여. 어디……”
시험지를 받은 학생처럼 등이 뻣뻣하게 굳는다. 긴장 탓이다. 언제쯤이면 그녀 앞에 두 다리 쭉 뻗고 앉아질까.
“되얐다. 자알 우려냈구먼. 소금물도 슴슴허니 지대로 풀었구. 인자 너두 선수가 되야뿌렀구만.”
고들빼기는 제 본래의 푸른빛을 버리고 누리끼리하게 탈색이 되었다. 그녀는 고들빼기의 색깔만 보고도 쓴맛이 어느정도 빠졌는지 안다.
“암만 갈쳐도 모리는 사람이 있어. 사람은 죽기 한허고 배우야 쓰는디 말이여. 암만 갈쳐도 모리는 사람은 요리에 소질이 없는갑다, 첨엔 그리 생각했는디 살다봉께 그기 아니여. 모든 일에는 관심이여, 관심. 뭔 일이든 관심만 두면 못헐 일이 없은게. 관심이 없어 겉으로 허성허성 들으닌게 못허게 되는 것이제, 애초버텀 소질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 그런 점에서 너는 요리에 관심이 있어야.”
시집와서 처음 듣는 칭찬이다. 바쁜 통에 기쁜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말갛게 씻은 고들빼기를 스테인리스 함지에 붓는다. 그녀가 고들빼기를 버무리기 위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는 동안에 나는 양념통을 일렬종대로 진열했다. 고들빼기는 양조간장과 멸치젓갈로 간을 맞춰야 한다. 멸치젓갈 양조간장 고춧가루 파 마늘 설탕 깨소금, 그녀의 지휘에 따라 양념통을 차례대로 건네준다. 양념통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의 재빠른 손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 같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평생 동안 남의 부엌에서만 서성거렸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저렇게 신바람이 나서 요리를 하고 있지만 여긴 엄연히 내 부엌이질 않은가.
“얘야, 간 쪼까 봐라.”
그녀가 버무리던 고들빼기를 집어 입에 넣어준다.
“간이 맞냐, 어찌냐?”
고들빼기의 쌉싸름한 맛이 입천장을 자극해 침이 가득 고인다. 모든 음식은 저마다 여타 음식이 넘볼 수 없는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 고들빼기의 맛과 고들빼기라는 이름이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어느 누구도 고들빼기의 쌉싸름한 맛에다가 고들빼기 외에 다른 이름을 붙이지는 못하리라. 그러고 보면 모든 야채는 저마다 가장 적합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기 손처럼 앙증맞게 생긴 쑥갓의 포르스름한 잎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 쑥갓같이 생겼다. 다시마는 또 어떠한가. 다시마라고 부를 때 혀끝에서 부드럽게 말리는 발음, 쑥갓과는 다른 깊디깊은 암갈색. 그 기품있는 암갈색이 다시마라는 이름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맛으로 다가와 대번에 쓰린 속을 달래준다. 석양이 이우는 저녁나절에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 냄비 앞에 서서 미나리를 손으로 뜯어넣고(모든 야채는 칼을 대면 맛이 반감된다) 있노라면 냄비 속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게 보인다. 물론 그건 다시마다. 여러 야채와 생선들이 어우러져 제 맛을 내는데, 다시마만 퉁퉁 불은 몰골로 국물 속에 어중간하게 떠 있다. 내가 가진 바다의 맛을 모두 주었으니 제발 건져달라고 통사정하는 얼굴이다. 기꺼이 씹히지 못하고 국물 맛을 내는 데에만 잠깐 사용되다 버려지는 다시마는 그래서 그 이름이나 맛에 비릿한 슬픔의 기운이 감돈다.
“고들빼기는 슴슴한 소금물에 얼마큼 잘 우려냈는가 허는 것에 따라 맛이 달라져부러. 지대로 우려내지 않으면 너무 써서 못씨고, 그렇다고 매 우려내문 쓴맛이 다 도망가서 지 맛이 안 나는 기 바로 고들빼긴게. 쓴맛이 혀끝에 살큼 감기드끼 남어 있어야 고들빼기의 본맛이 나오제. 시집살이도 이치를 따지고 보문 고들빼기와 한가지여. 시엄니가 초장부터 메누리에게 시집살이를 맵게 시키문 워티기 되는 중 아냐? 서리 맞은 배추맹이로 매가리없이 물크러져 못씨고 이쁘다고 위해바치면 뒤둥그러져 못씨쟈. 글서 시집살이도 고들빼기맹이로 쓴맛이 혀끝에 살큼 감기드끼 남어 있겠끄름 다뤄야 메누리가 늘 긴장하기 돼야.”
무릎을 칠 만큼 기가 막힌 비유나 넋두리를 들어도 이젠 아무 느낌이 없다.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다보면 물리는 법이니까. 귀를 건성으로 열어둔 채, 내 마음은 딴데 가 있다. 오늘 우리는 그와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겉으론 남편의 생일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초대지만 우리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에겐 그녀가 온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녀에겐 그가 온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두 사람 모두 저녁식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만 무사히 넘기면 절반은 성공한 셈인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요리는 말여, 재료를 잘 사야 혀. 아무리 좋은 양념과 음식솜씨를 지니고 있어도 재료가 말라뻔졌거나 벌레먹었던가 혀서 시원찮으면 전부 헛것이여. 인간도 마찬가지제. 애저녁에 싹수없는 인간한테 천날만날 공들이며 군불 때봐야 방구들 뜨실 중 아냐. 말짱 도루묵이지야.”
그녀가 ‘싹수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때, 이를 갈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목소리를 극도로 높였기 때문에 알루미늄 호일로 유리창을 문대는 것처럼 심한 쇳소리가 났다. 그녀에게 행여 당신이 말씀하시는 도루묵이 오늘 저녁에 오신다네요,라고 한다면 유리창을 긁는 듯한 쇳소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고 싹수없는 인간이 우짠 일이대여. 이날 입때껏 지 입 지 몸만 생각허는 인간이 자슥 생일을 다 챙겨야? 하이고오, 신문 날 일이다아.’
그런 그녀임을 아는지라 그가 온다고 말하지 않았다. 저녁때 일은 그때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 ‘싹수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때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 ‘싹수없는 인간’의 비화를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말이 나왔은게 말인디. 그 인간이 워떤 인간인 중 아냐? 니 서방이 갓난아그 적 야긴디, 아그가 밤낮이 바뀌어서 밤에 잠을 통 안 자야. 하루는 밤에 경기 들린 드끼 우는 거여. 아그가 울어쌓는다고 그 인간이 우쨌는가 허먼 말이다.”
격한 감정에 휘말렸는지 한동안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더니 마침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려문 잇새로 나오는 그녀의 말은 중간중간 끊겼고, 턱없이 힘을 주어 듣고 있던 나까지 덩달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아그를 포대기째 들어 마당에다 내던진 거여. 고데 입술이 시퍼레져가지고 눈을 까뒤집고 넘어가는디 난 그때 니 서방 잃는 중 알었다. 아그헌티 그렇게 해놓고 무신 낯짝으로 용돈은 꼬박꼬박 받아쓰는지. 이날 입때꺼정 애비 노릇을 헌 기 머가 있어야 말이제. 속터져야. 새색시 적엔 그리 생각허고 살었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맹글 제는 머언 쓸모가 있응게 이 세상에 냈겄제 허고 말이여. 암만 지달려두 인간다운 디라구는 손톱만치도 없어야. 글고 보문 인간도 아니제에?”
이런 부분, 이런 대목에서는 도망가고 싶어지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동조를 구하는 그녀의 눈빛을 모르는 체 끝까지 묵묵부답이면 괘씸죄에 걸릴 일이요, 그렇다고 그녀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며 그의 험담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시부모 싸움에 며느리는 어디까지나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 밉든 곱든 법적으로는 엄연히 남편인 그를 자신이 흉보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며느리까지 옆에서 헐뜯고 나서면 듣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질 않겠는가. 어떡하나? 울화가 뻗쳤는지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둘 데가 없어 쇠수세미로 애꿎은 개수대 바닥만 북북 닦아내고 있는데 때마침 열린 문으로 시누이가 들어선다. 시누이 등뒤로 엇비스듬히 보이는 밤색 베레모,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녀의 눈은 이미 화등잔만하게 커진 상태였다.
“저 인간이 누구엿!”
그녀의 큰소리를 신호탄 삼아 나와 시누이는 동시에 등을 싹, 돌렸다. 내가 그녀의 등을 밀고 부엌으로 들어간 시간과 시누이가 그의 팔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간 시간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피나게 연습한 결과였다. 내 동작이 조금 굼떴거나 시누이가 한발 늦었다면 그녀의 입에선 가시돋친 말들이 폭포처럼 흘러나왔을 것이고, 그는 옆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마구 고함을 질러댔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순 없다. 손에 닿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던져, 그 물건이 동강나고 으스러져야만 분이 풀리는 그들이다. 오디오 위에 장식품으로 얹어둔 청동 조각상이 힐끗 보였다. 묵직하고 끝이 날카로워 언제든 흉기로 변할 수 있는 물건이다. 치운다고 해놓곤 깜박 잊었다. 청동 조각상을 서랍 속에 밀어넣고 부엌으로 와보니 그녀는 산소가 부족한 사람마냥 헉헉거리며 가슴을 치고 있다. 무치다 만 시금치를 한움큼 집어 입안에 욱여넣었다. 일단 두 사람을 떼어놓았으니 산 하나는 무사히 넘은 셈이다. 시누이는 안방에서 나오자마자 얼음냉수부터 찾았다. 시누이의 얼굴도 화톳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붉다. 별일 아니라는 듯 나는 시금치를 우적우적 소리나게 씹으며 냉수에 얼음을 넣었다. 고백컨대 난 시금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집의 ‘시’자가 시금치의 첫머리에 들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시금치의 덤덤한 맛이 입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올케도 많이 늘었네. 시누이는 얼음냉수를 벌컥벌컥, 쉬지도 않고 한번에 끝까지 들이켰다.
4
“또 커피 끓인다냐.”
그녀가 오만상 찌푸린 얼굴로 묻는다.
“커피가 뭔 보약이간디.”
어쩌다 한번 입가심으로 커피 한 스푼에 프림과 설탕을 두 스푼씩 고봉으로 넣어 역전다방 스타일로 뻑뻑하게 마시는 그녀는, 하루 석 잔씩 멀건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커피 마시는 행위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빌어먹을 짓’에 해당된다. 아닌게아니라 제삿날이나 명절에 그의 커피 시중을 들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식후 삼십분에 약 먹듯이 시간을 정해놓고 커피를 마신다. 생각해보라. 제삿날이나 명절의 식후 삼십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다. 남은 음식을 거두랴, 발치 아래며 개수대에 수북하게 쌓인 빈 그릇들을 씻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식후 삼십분이 되어가기 마련이다. 다른 일에는 느슨해도 먹고 마시는 일에서만큼은 엄격하고 절도가 있는 편인 그가 시계를 보지 않고 있을 리 만무하다. 미끈거리는 고무장갑을 억지로 당겨 벗게 되면 고무장갑에 묻은 비누거품이 얼굴로 가슴으로 사정없이 튄다. 행주질도 하지 않은 교자상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 커피잔을 꺼낸다, 물을 끓인다 수선을 떨면 그녀는 빼먹지 않고 한마디씩 톡톡 쏘아붙였다.
“허는 꼴을 볼작시면 어딜 가나 딱 빌어먹을 인사랑게.”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허둥지둥 커피를 내가면 시간은 얼추 식후 삼십분에 가깝다. 고향이 전주와 김제로 같은 사투리를 쓰며 자란 두 사람인데도 그는 완벽한 표준말을 구사하고 그녀는 여태 사투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남편이 중학교 일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니까 이십년이 넘는 세월인데 그동안 서울말을 배우지 않은 건 순전히 그녀의 고집 탓이다. 그는 어디서 배웠는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부터 표준말을 했다고 한다. 흔히 사투리를 쓰던 사람이 표준말을 하게 되면 억양은 그대로인 채 말끝만 이상하게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억양조차 완벽했다고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야갖고 헌다는 짓이 뜬구름 잡는 일만 허고 돌아다님서 서울 산 지 월매나 됐다고 간살시럽기 서울말이나 입에 올리고.’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미워서라도 더욱 굳건히 사투리를 지키기로 작심했을 것이다. 도대체 부부란 무엇인가? 적인가, 동지인가. 그와 그녀의 관계를 단적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명백히 동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적으로 단정하기에도 다소 의아한 데가 있다. 둘이 싸워서 한쪽이 지면 이긴 다른 쪽이 진 쪽을 보고 쾌감을 느껴야만 적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데 이들의 양상은 다르다. 싸움 끝에 벌렁 나자빠진 상대를 보면 그 남루한 꼴이 보기 싫고 미워서 다시 싸우고 상처받고 또 싸우고…… 그들은 싸우기 위해 태어났고 싸우기 위해 맺어진 부부처럼 보였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와 맞붙어 싸우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달린 그녀가, 직장 다니는 딸의 부엌살림이나 거들어주겠다며 천안 시누이집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나와 남편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시부모 싸움 뒤치다꺼리에 등골이 빠지게 생겼으니.
“올케, 내가 뭐 도울 일 없어?”
“왜 도울 일이 없겄냐. 천지가 일이제.”
그녀가 시누이의 말을 기다린 것마냥, 시누이가 빈 커피잔을 놓고 부엌에서 나갔더라면 어깨춤이라도 잡아끌어 일을 시켰을 것처럼 단박에 시누이의 말을 잡아챘다.
“취나물 쌈을 할 팅께 그것 쫌 씻어라.”
천안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시누이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킬 만큼 부엌일이 쌓인 것은 아니다.
“여긴 어머님과 저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녀, 서 있더래도 넌 여그 있거라. 내가 시집 산 거이 하도 원통해서 안 그냐아. 느이 시할머니는 우째된 기 말만한 딸들한티 통 일을 안 시키더라. 집에서 일해 버릇하면 시집가서도 일구덩에 매인다고 말여. 시할머니허고 나만 꼴짝나게 일을 헌 거여. 생리 때가 되면 우쩐지 아냐? 느이 여섯 고모들은 한꺼분에 묶어서 생리를 허드라고. 사람 눈에 안 띄는 뒤뜰에 기저귀를 빨아 널면 두 줄이 가뜩 차야. 징글징글허드먼. 지 서답은 지가 조물락거려서 빨면 워디가 워떻다고 그런 것도 내놓는가 말이다아. 그건 느이 고모들이 나빠서 그런 거이 아니고 할머니가 안 시켜서 그런 거이제. 그때 내 명심했구먼. 이담에 메누릴 보면 딸허고 똑같이 일을 시키기루……”
“올켄 좋겠어. 좋은 시어머닐 둬서.”
취나물을 씻던 시누이가 돌아보며 웃는다. 웃는 얼굴에 가시가 송송 박힌 것 같다. 자격지심 때문일까. 과민한 탓이리라. 요 며칠 저녁초대 문제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국자로 육수의 거품을 걷어내던 그녀가 내게 양념으로 쓸 파를 가시라고 한다. 그녀의 가시다,라는 사투리를 헹구라는 뜻으로 해석한 적이 있었다.
“요놈 쪼까 가셔줄텨?”
그녀가 내민 무를 받아 계속 물에 씻고 있는데 “야가 왜 이리여. 가시라니께” 하며 내가 씻고 있던 무를 빼앗아 채썰기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살던 고장에서는 가시라는 말이 분명 헹구라는 말이었는데. 이젠 두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파를 채썰면서, 그녀는 왜 하고많은 쌈 중에서 유독 취나물 쌈만 선호하는지 궁금해진다. 요리박사인 그녀가,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 산더미처럼 쌓인 쌈거리를 보지 않았을 턱이 없다. 청경채, 치커리, 신선초, 참나물, 케일. 때깔부터가 다르다. 살짝 데쳐도 시커멓게 변하고 마는 취나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뭐니뭐니 혀도 쌈에는 취나물이 최고여.”
“난 취나물 맛을 모르겠던데.”
시누이도 취나물 쌈이 마뜩찮았나보다.
“너도 사십줄에 들어섰으니 서서히 취나물의 맛을 알게 될 꺼이다. 한 시상 살며 인생사 이 굽이 저 굽이 넘노라면 절로 쓴맛이 입에 맞기 돼야. 밥맛이 떨어졌을 때도 글타. 단 게 땡길 중 알쟈? 천만에. 쓴 걸 입에 물어야 밥이 넘어가는 벱이여. 원래 십대나 이십대는 단맛이 입에 맞고, 삼십대와 사십대는 신맛을 좋아허게 되어 있는 것이여. 오십 고개를 넘어야 취나물의 맛을 알게 돼야. 취나물의 씁쓰레한 맛이 우리네 인생살이 맛이거든.”
“에이, 그건 아니다. 요즘 젊은애들 하나같이 커피 마시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해야 허우?”
“쓴맛 중에서도 여러 쓴맛이 있는디 커피는 호들갑시럽기만 허지 지대로 된 쓴맛이간디. 은근허고 깊은 쓴맛이 아니여.”
쓴맛. 그녀는 저 심오한 쓴맛을 서울살이와 비교하고 있을 게다. 그와 그녀가 함께한 길고 긴 서울살이. 궂은일 힘든 일은 하기 싫고 어디에 내놔도 번듯해 보이는 일만 하고 싶어하는 그. 조금만 힘이 들면 시부저기 손을 놓아버리는 그. 그가 그리 된 데는 시할머니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흔해터진 여섯 딸도 아까워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시집을 보냈다는데 외아들에게 바친 정성이야 오죽했을까. 아마 닳을까봐 쳐다보지도 못했을 게다. 시골의 논밭이며 산을 하나씩 팔 때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기어코…… 그는 수없이 맹세했다고 한다. 그의 맹세에 가족 모두는 헛된 꿈을 걸었다. 그러다 그녀가 부르르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이고, 이번에도 기어코…… 그러면 남편과 시누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일이 슈퍼마켓이었다. 슈퍼마켓도 그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다. 망하기만 하는 손위 처남을 보다 못한 셋째 시고모부가 자신의 상가 일층을 빌려주며 권했다는 거였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슈퍼마켓을 했는데 목이 좋아 돈을 솔찮게 벌었다고 했다. 그를 내버려두면 하는 일마다 망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종국에는 기까지 꺾여 사람 구실도 못할 것 같아 장사 잘하고 있는 사람을 모지락스럽게 등 떠밀어 내보냈다고 했다.
“처남,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매달려보세요. 단골도 잡혀 있고 목도 좋아 눈을 뜨고 있기만 하면 장사는 그럭저럭 될 터이니.”
매제가 신신당부하며 시작한 일을,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자리가 잡히면 달라는 그야말로 거저먹기나 다름없는 일도 삼년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배달이 많은 슈퍼마켓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계산에 어두운 그녀로서야. 그는 잠시도 슈퍼마켓에 앉아 있지 않았다. 슈퍼마켓을 하는 삼년 동안 하루 수차례씩 상가 지하에 있는 다방에 들락거리며 커피만 마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커피 마시는 일에 대해 ‘빌어먹을 짓’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슈퍼마켓조차 손털고 나자 여섯 시고모들의 질책이 애먼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가 없는 셈치고 그녀라도 야물게 장사를 했으면 그리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시고모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두 눈 뻘겋게 뜨고 있는 사람을 우째 없다고 생각하라는지 참말로 폭폭혀서 못살겄더라.”
여섯 시고모들은 거기서 멈추질 않고 그녀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유일하게 남은 전셋집에서 하숙치기. 그녀의 솜씨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터여서 더없이 좋은 일거리 같기도 했다. 그녀는 하숙생들의 밥을 열심히 해댔지만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밥상 앞의 그녀. 하숙생들의 밥상도 황제의 상처럼 차려냈을 터이니. 옆에서 약국을 하던 첫째 시고모부는 애가 타 그녀의 부엌을 지켰더란다.
“내가 그 인간 땜에 겪은 고초를 생각하문 시방도 이가 갈려. 약국 고모부 있잖냐. 약국이 한가하문 허구헌 날 정지문 앞을 지키는디, 이건 숫제 죄인 취급이여. 찰떡을 허면 찹쌀금이 월맨디 찰떡을 허느냐고 기어이 떡을 해야 쓰겄으면 쪼까 더 싼 멥쌀로 흰무리를 쪄라 하고. 결혼 잘못한 죄루다 시누 냄편한티 그런 말꺼정 들어야 했으니 수모도 그런 수모가 없었구먼. 그러니 내가 그 인간 얼굴만 보면 피가 거꾸로 올라오지 않겄냐.”
손큰 그녀만 보이고 빼어난 음식솜씨는 보이지 않던 시절. 그 시절을 돌이킬 적마다 그녀의 얼굴은 도화지처럼 하얘졌다. 그녀가 좁쌀영감 같은 약국 고모부의 잔소리에 얼마나 질렸을 것인지. 약국 고모부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녀는 흰무리를 찌지 않고 기어이 찰떡을 하고야 말았으리라. 그토록 고집스럽게 한 찰떡을 한 조각 먹어보면 소태처럼 쓰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녀는 쓴맛이 좋다고 한다. 밥이 넘어가지 않을 때는 쓴 걸 입에 물어야 밥이 넘어간다고 한다.
5
배를 갈라 넓게 편 오징어에 5밀리 간격으로 일정하게 칼집을 넣는다. 칼질을 하는 그녀의 손놀림을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신이 오른 무녀의 손이 저러할까. 칼이 지나간 곳마다 조각작품 같은 마름모가 수없이 만들어진다. 과연 저 오징어를 입에 넣을 수나 있을는지.
“나도 첨버텀 요리에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여. 신산허게 살다봉께 자연히 요리박사가 되고 말더라. 그 많던 전답을, 씨만 뿌리면 숭굴숭굴 잘도 열매가 열리던 오진 땅을 느 아버지가 한나씩 팔아먹을 때마다 나는 머했는 중 아냐? 도마질을 함서 속을 풀었어야. 젊어서는 대들 중도 모리고 부서져라 도마질만 혔던 것이제. 내 속도 지지고 볶고 도마질한 재료도 지지고 볶고 그렇게 밤새 지지고 볶다보면 어느새 날이 번히 새뻔져야.”
사연 많은 도마질 소리가 토다닥 토다닥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누이의 손도 그녀의 손을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시누이는 그녀가 손질한 오징어와 죽순에 곁들일 쏘스를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됐는지 맛을 보라며 시누이가 쏘스 그릇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투명한 믹싱볼에 담긴 노르스름한 쏘스를 찍어먹기가 무섭게 눈물이 핑 돈다. 맵다. 코끝이 알알하고 재채기가 나오려고 한다. 겨자가 이렇게 독할 줄은 몰랐다. 이젠 시누이도 지쳤나보다. 진작에 자네가 떠맡았으면 좀 좋아.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시누이는 겨자를 뿌렸을 것이다. 난 출가외인이야. 꾹 눌러 짠 겨자를 두어 번 더 쳤을지도 모른다. 제발 나 좀 놔줘. 친정 일로 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는 거야. 겨자 향엔 부모에게 지쳐버린 딸의 신경질이 묻어 있다. 강하게 넘어온 공은 강하게 받아쳐야 한다. 입술을 깨물고 다진 마늘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연다. 큰 스푼으로 다진 마늘을 움푹 퍼, 쏘스에 섞는다. 딸은 자식이 아닌가요. 형님, 저희도 할 만큼 했어요. 어머님은 형님이 맡고 계시지만 아버님은 저희 몫인 걸요. 다진 마늘만으로는 겨자의 톡 쏘는 매운 맛을 당해낼 수가 없다. 오며가며 아버님이 드실 밑반찬을 해다 나르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윗선반의 한쪽 문을 잡아당긴다. 양념통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오른손으론 다진 마늘과 겨자가 든 쏘스를 젓고 나머지 왼손으로는 양념통을 더듬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식초병이 한손에 답삭 들어온다. 아쉽다, 빙초산이 제격인데. 별안간 시누이의 눈매가 새치름해진다.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건가. 아무려면 어때. 식초병을 거꾸로 들고 주르륵 붓는다. 누구도 두 분을 모시고 살 수는 없다는 거 형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시큼한 식초향이 부엌 가득 퍼진다. 제 아무리 매운 맛도 마늘과 식초 앞에서는 사족을 쓰지 못한다.
“오메, 무신 쏘스 맛이 이렇다냐. 맵고 시고 떫기꺼정 허네.”
그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야들이 파토 내기로 작정을 했구먼. 이걸 워쩐다냐. 사과를 갈아서 넣어볼까나. 독한 맛을 중화시키는 데는 사과 이상 가는 기 없은게.”
그녀의 응급처방은 사과였다.
“느들 하라는 요리는 안허고 여태꺼정 쏘스로 장난질만 치고 있었냐아?”
냄비 속에 오징어를 집어넣던 그녀가 퉁명스레 내뱉었다. 오징어는 끓는 물을 만나기가 무섭게 칼집 넣은 부분이 벌어지면서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뒤집어진다. 끓는 물에 대한 오징어의 민감한 반응.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그녀를 한집에 살게 해야만 한다. 덩그마니 혼자 살고 있는 그의 행색도 말이 아니고 딸네 집에 얹혀사는 그녀의 신세도 편한 것만은 아니다. 말은 안했지만 시누이도 자신의 남편과 시집에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체에 간 사과즙을 믹싱볼 안으로 흘려넣는다. 몸속을 파고드는 향긋한 사과 냄새.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의 부엌을 모델하우스처럼 개조하면 그녀의 마음이 누그러질지도 모른다. 새롭게 바뀐 부엌을 보면 그를 위해 조석으로 따뜻한 밥을 짓고 싶을지 누가 아는가. 자신만의 부엌을 갖는 게 그녀의 소망이 아니던가. 저녁을 먹고 난 후 그와 그녀에게 부엌 개조에 관한 말부터 조심스레 꺼내볼 심산이다. 팜플렛은 시누이가 준비했을 것이다. 새하얀 씽크대와 수평을 이루는 최신형 가스레인지, 빨간 체리목의 원형식탁을 보면 그녀의 눈은 빛날 것이다. 씻어야 할 그릇들이 층층이 쌓인 개수대, 퉁퉁 불은 라면가닥과 여기저기 떨어진 김칫국물, 누렇게 변색한 밥이 담긴 보온밥통. 그도 새로운 주방에 관한 얘기에 귀를 기울일 테지. 바닥은 열전도율이 높은 원목으로 시공할 거라고 그와 그녀의 귀에 은밀히 속삭여야지.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우리는 생사를 걸고 그와 그녀를 유혹해야 한다. 따뜻한 부엌, 아름다운 부엌. 사과즙이 들어가 한층 부드러워진 쏘스를 젓기 시작한다. 남편은 기필코,라고 못을 박았다. 남편 또한 부모님을 편히 모시지 못한다고 시고모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도 들어가지 않으면 그때는 어찌하나. 택도 없다, 바람소리를 내며 팽 돌아앉는 그녀. 택도 없지, 팔장을 끼고 완강하게 버티는 그. 그도 그녀도 한데 섞어 버무리고 싶다. 쏘스를 젓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맛의 절정은 절묘한 배합에서 이루어진다고 그녀에게 배웠다.
6
혼자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심심했을 것이다. 서쪽 창으로 황혼이 물들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서 바빠서 그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부엌등이 켜지면서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거실에서 기타줄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남편도 즐겨 치는 곡이다. 고개를 빼고 연신 거실 쪽을 기웃거리던 시누이가 일손을 놓고 그와 합류했다. 기타는 시누이 손으로 넘어가고 그는 작은방에 있던 전자오르간을 가지고 나와 풍풍거리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이중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 종자라서 뭐가 달러두 달러.”
음악이라면 귀를 막고 사는 그녀는 거실을 향해 입을 삐쭉거렸다. 부엌에서는 끓이고 볶는 소리로, 거실에서는 기타와 오르간 소리로 아파트는 폭발 직전이다. 아래층에서 인터폰이 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데 그녀는 한술 더 떠 시끄럽다고 소리를 꽥 지른다.
“느 시아버지는 풍각쟁이가 되거나 약장시를 했으면 성공했을 꺼여.”
“하!”
볶은 콩처럼 연속적으로 터지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틀어막았다.
“시장바닥에서 쿵짝쿵짝 풍물이나 치고 사람들이 모이면 하루죙일도 얘기를 할 인간인게, 일찌감치 그짝 방면으루다 나갔으면 진즉에 대성했을 꺼이다.”
그녀의 말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바삐 몸을 움직였다. 손질해둔 새우를 살펴본 그녀가 쌜러드로 하지 말고 담백하게 구워내자고 했다.
“쌜러드를 만들자면 이것저것 쏘스도 뿌려야 쓰고 그러면 새우의 본래 맛이 감해져부러. 새우에 암것도 넣지 말고 맹탕으로 구워서 각자 입맛에 맞는 쏘스에 찍어먹게 혀봐.”
“그럼 호일에 싸서 구울까요?”
“호일에 싸지 말고 그냥 구워. 요리책에는 한마리씩 호일에 싸서 구우라고 씌어 있지만 그람 번거롭기만 혀. 새우도 크기가 각기 다른게 호일에 싸면 언제 구워졌는지도 모리고. 새우가 빨갛게 변하면 익은 것인게 그때 꺼내문 돼야.”
“새우를 좀더 살걸 그랬나봐요.”
“왜?”
“열 마리여서 겨우 한 사람 앞에 두 마리 꼴인데 부족하지 않겠어요.”
“요리가 어디 그것뿐이간. 어여 새우도 오븐에 넣고 토란탕도 불에 올려야제.”
장식장에서 접시를 한아름 꺼낸 그녀는, 그것들을 식탁 위에 죽 늘어놓기 시작했다. 골똘히 생각한 끝에 요리에 맞는 접시를 하나씩 간택할 것이다. 그녀의 미적 감각은 상을 차릴 때 단연 돋보인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음악에는 귀를 막고 살까 싶다. 그가 음악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귀를 막게 되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귀를 막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음악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그녀이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와 그녀가 만났으니 대판 싸우고 있겠거니, 지레짐작을 하고 들어오다가 때아닌 기타소리에 얼굴이 활짝 펴진다.
“얼른 씻고 와, 상 차릴 팅게.”
아들을 본 그녀의 얼굴도 환해진다. 제대로 씻기나 한 것인지, 화장실로 들어간 지 오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목에 수건을 두르고 나온다. 스킨을 바르는 것도 잊어버린 남편은 하모니카부터 찾아든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합주가, 야채 수프를 약한 불에서 오래 끓이면 뭉근해지는 것처럼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골고루 뒤섞여 부드러운 하모니를 자아낸다. 그녀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시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종자라서 뭐가 달러두 달러,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당신 아들의 하모니카 소리만 골라내겠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쟈를 어릴 제 피아노를 갈켰으면 백건우는 댈 것두 아녀.”
세상에…… 내가 듣기엔 전자오르간이나 기타나 하모니카나 비슷비슷한 수준이건만, 그는 약장수 수준이고 아들은 백건우에게 댈 것도 아니라니. 눈에 콩깍지가 씐 정도가 아니다.
“느이 남편이 초등학교 사학년쯤 되었을 것이여. 피아노를 사달라고 어찌나 졸라대던지. 눈치가 빤혀 조르는 거라고는 모르는디 오죽이나 피아노를 치고 싶었으면 그랬겄냐. 그때 피아노를 갈켰으면 백건우는 저리 가라여, 암만. 쟈가 혼자 익혔어도 못 다루는 악기가 워디 있깐디.”
그녀의 저 굳센 믿음. 꼬부라지지 않게 대나무꼬치에 등을 꿰인 열 마리의 새우가 오븐 속에서 빨갛게 구워지고 있다.
7
이건 밥상이 아니라 잘 정돈된 누군가의 화원에 들어와 앉은 것 같다. 상 한가운데 둥근 연두색 키위가 꽃잎처럼 놓여 있다. 키위 안쪽에는 꽃술 모양으로 깎은 당근이 자리를 잡고 있어, 까만 씨를 품은 한송이 꽃이 식탁 위로 막 솟아오른 형상이다. 탕기 속의 토란도 언제 독한 성깔이 있었나 싶게, 양지머리를 넣고 푹 곤 육수에 잠겨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의 옆에 그녀까지 나란히 있어서 겉보기에는 참으로 평화로운 식탁이다. 그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는 그녀를 남편이 억지로 끌어다 그의 옆자리에 앉혔다. 오늘만큼은 못 이기는 척 져주자는 생각에서였는지 그녀는 의외로 쉽게 그의 옆으로 가 앉았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은 것 같아 우리는 흐뭇한 얼굴로 냅킨에 싸인 수저를 집었다. 음식 씹는 소리와 수저질 하는 소리만 들릴 뿐 식탁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가 토란탕 국물을 후루룩 소리나게 들이켰을 때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펴진 것말고는.
그는 흡족한 얼굴로 음식을 양껏 먹었다. 특히 구운 새우가 구미를 당기게 했는지 눈치없이 새우를 네 마리째 자신의 앞접시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녀는 그가 먹은 새우의 수만 옆에서 헤아리고 있었던 사람마냥, 그가 네 마리째 새우를 집어올리려는 찰나 잽싸게 자신의 포크로 그가 집은 새우의 등짝을 콱 찍어눌렀다. 새우에 박힌 그의 포크에 그녀의 포크가 딴죽을 걸듯이 부딪치면서 들려온 소리가 쨍강,이다. 너무도 생생하고 불경한 그 소리에 우리는 입에 든 음식을 씹지도 못하고 꿀컥 삼켰다. 오늘의 주요리를 담는 접시답게 테두리를 금박으로 찬란하게 두른 새우접시는 포크의 활극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눈에 띌 만했다. 그의 포크와 그녀의 포크는 대등한 힘으로 서로를 견제하며 한동안 움직이질 않았다. 두 개의 포크에 처참하게 찍힌 새우가 용케 제 형태를 유지하며 버틴다 싶더니 이윽고 새우접시가 지그재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자만 입이엿! 야들도 먹어야제.”
그녀의 거침없는 고함소리가 목언저리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갈 즈음, 공중으로 날아오른 새우접시가 죽순접시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말았다. 새우 한 마리가 시누이의 치마폭으로 뛰어들고 기우뚱 뒤집어지려는 죽순접시 위에 두 마리의 새우가 내리꽂힌 건 순식간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포크를 따악, 소리나게 상 위에 내려놓았고 남편과 시누이의 입에서는 어엄마, 비명이 터져나왔다. 새우접시가 죽순접시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동그라진 접시를 치우려고 일어선 게 아니라 참을 수 없이 손이 가려워서였다. 미끌거리는 토란의 진액이 손 전체를 덮은 것 같았다.
“엄마! 먹는 걸 가지고 그러면 어떡해요.”
시누이가 뒤늦게나마 수습을 해보려고 나섰지만 그와 그녀의 얼굴은 험악할 대로 험악해져 있었다.
“왜애? 평생을 팔풍받이로 헐렝거리며 돌아댕겼으면 늙어서 가마히나 들어앉든지 아무 헐 일도 없는 사램이 차를 몰고 댕기는 기 말이 되나 그 말이시, 내 말은. 그랑게 느 아버지 먹는 것만 봐도 오살허게 징그럽당게.”
“돈 못 벌어다줬다고 늙어 죽기 한허고 내게 저 난리를 친다만 너희들도 보다시피 안에서 저러고 초를 치는데 밖에 나가 뭔 일이 되겠냐, 되길. 뒤통수가 안 깨진 것만도 천만다행이지. 이제 와 말이지만 느 어머니란 사람은 돈을 벌어다줘봐야 헤퍼빠져 밑 빠진 독에 물붓기여.”
“뭐시여,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흐응, 코가 다 맥히네. 물을 붓긴 부어봤고? 월매나 부었간.”
점입가경, 이제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모양이다. 비바람이 불고 우르릉 쾅쾅, 사나운 기세로 뇌성벽력이 몰아칠 거였다. 그들과 무관한 제삼자라면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에 군침을 삼킬 싯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 귀엔 삿대질을 하며 맞고함을 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질 않았다. 손가락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토란독이 손가락 틈새로 속속들이 파고들어 살갗을 베어내도 가려움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손등이 부풀어오르고 불에 덴 듯 화끈거릴 것이다. 핏줄을 타고 손끝에서, 손등으로, 팔로 빠르게 올라온 독이 심장에서 둘둘 뭉쳐졌다가 이내 몸속 구석구석에 퍼져 온몸이 퉁퉁 부어오를 것만 같다.
“이제…… 더는…… 더이상은……”
울먹임인지 신음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가 내 입에서 가느다랗게 새어나올 무렵 열받은 압력밥솥 꼭지처럼 씩씩거리던 그녀의 손에 의해 교자상이 와장창 뒤집어지고 말았다. 상이 뒤집어질 때, 각종 요리가 엎질러지고 그릇이 깨지는 게 아니라 철근이 휘어지고 벽돌이 퉁겨져나가고 모래알이 흩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상이 뒤집어진 게 아니고 내 눈엔 그녀의 부엌이 산산조각 나는 것으로 보였다.
상이 뒤집어지자마자 선불 맞은 노루처럼 튀듯이 일어난 남편과 시누이가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맘껏 퍼붓지를 못해 그르렁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현관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제발 그만 좀 하시라는 남편의 볼멘소리도 뒤따라 들렸다.
전쟁의 포화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현장은 참혹했다. 엎어진 그릇들과 뒤범벅이 된 음식물들, 걸쭉한 국물이 벽지와 장식장, 거실바닥 할 것 없이 사방에 튀어 볼만하다. 보시기에서 흘러내린 김칫국물이 소리도 없이 양탄자로 스며들고 있다. 김칫국물이 배면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얼른 일어나 양탄자를 걷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손끝도 움직이질 못했다.
“아가, 어디 다친 데는 없니.”
갑자기 황당한 경우를 당해 그런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던 그가 뒤집어진 상을 바로 세우고 있었다. 아까와는 딴판으로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혼자 치워야할 텐데 욕보겠구나.”
발끝에 채는 그릇들을 주워 부엌에 가져다놓고 국물과 음식찌꺼기로 얼룩진 상을 행주로 대강 훔쳐냈다. 그런 후에 그는 탁자 위의 베레모를 집었다. 그가 베레모를 손에 들었다는 것은 집으로 간다는 신호였다.
“아, 아버님.”
그때서야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가는 그를 불렀다. 베레모를 들고 나가다가 휙 돌아보는 그의 눈은 차마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꿈을 잃은 자의 눈빛, 그것이었다. 등뒤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떨어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