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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뉴라운드와 한국농업
박진도 朴珍道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농정연구쎈터 소장. 저서로 『한국자본주의와 농업구조』 『경제발전과 이농』 등이 있음. jdpark@cnu.ac.kr
1. 2001년 가을은 우리 농민들에게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었다. 애지중지 지은 쌀이 과잉이라는 이유로 판로가 막혀 값이 폭락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산지에서는 정부 수매가 16만 7720원(80kg 한 가마)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산지가격인 16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15만원에 쌀을 팔려고 해도 팔 곳이 없었다. 쌀은 농업소득의 52%, 농가소득의 24%를 차지하는 작목이기 때문에 쌀값의 폭락은 가뜩이나 빚에 허덕이는 농민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농민들은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군청이나 농협 앞에서 쌀 야적 시위도 벌여보았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수만명의 성난 농민들은 또다시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지난해 12월에 두 차례나 서울로 상경하여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이 애매한 전경들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에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카타르의 도하에서 쌀을 비롯해 주요 농산물의 시장개방을 가속화할 WTO(세계무역기구)의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도하 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로 명명된 뉴라운드는 농업분야의 협상목표를 “시장접근의 실질적(substantial) 개선, 모든 형태의 수출보조금의 단계적 삭감과 폐지, 무역왜곡적 국내보조금의 실질적 감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협상의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앞으로 구체적 협상과정에서 ‘실질적 개선과 감축’이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질지는 선언문에서 밝힌 대로 “협상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도하라운드는 지난번의 우루과이라운드보다 우리 농업에 훨씬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우루과이라운드는 그동안 가트(GATT)체제에서 예외로 인정했던 농업분야를 자유무역의 큰 틀 속에 흡수하고, 국내 농업정책에 대해서도 통일적인 규칙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은 형식적·제도적으로는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기본이념으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각국에 상당한 재량을 허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예를 들면, 각국은 비관세장벽을 관세화하면서 관세 상당치(tariff equivalent)를 매우 높게 설정하여 실제로는 수입을 제한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농업협정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국내보조금을 감축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삭감부담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이 부정적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당초 염려했던 정도는 아니었다.
따라서 농산물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의 결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와같은 농산물 수출국의 불만이 도하라운드에서 농업분야 협상의 목표를 ‘실질적 개선과 감축’으로 설정하도록 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질적 개선과 감축’이 양적으로 어느 정도일지는 협상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에 비해 시장개방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수준에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우리나라는 그동안 WTO 농업협상에서 농산물시장 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 혹은 비교역적 역할(Non-Trade Concerns)을 내세워 농산물 수출국의 공세에 농산물 수입국들과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여 농산물 수입국 가운데서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하라운드 선언문에서는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을 협상과정의 고려사항 정도로 처리하고 있다.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은, 농산물 수입국과 수출국의 대립, 그리고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립 등을 고려할 때 실제 협상과정에서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도국 우대와 관련해서도 선언문이 협상의 핵심적 요소의 하나임을 분명히하고는 있지만,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난번 우루과이라운드처럼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고소득국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는 선진국처럼 개방지향적인 공격적 자세로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농업분야에 대해서만은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것이 다른 나라들에는 옹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달리 그야말로 우리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개도국 지위 유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2. 뉴라운드의 출범과 맞추어 정부는 지난해 12월 21일에 국회에서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직속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약칭 농특위)를 발족하기로 하였다. 농특위는 뉴라운드의 협상시한인 2004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면서 뉴라운드 협상에 대한 대책, 농어업·농어촌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정책방향, 경쟁력 강화 및 복지증진 방안 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농특위에 대한 농업계의 기대는 매우 크지만, 실제로 농특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반 국민들 가운데는 “농업·농촌부문에 대한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 “42조원 투·융자사업에 농특세 15조원까지 57조원을 투자했는데, 달라진 것이 뭐냐”는 불신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러한 불신의 상당부분은 인식의 잘못에 기인하지만, 그 나름대로 근거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정부는 그동안 거의 매년 수많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였고, 가깝게는 1994년에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우리나라의 농어업과 농어촌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농어촌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했다. 그럼에도 농업·농촌문제는 해결은커녕 날로 악화되고 있다. 농정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불신이 “우리나라 농업은 가망 없는 것 아니냐”는 숙명론 내지는 농업포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수많은 농정대책을 수립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농업과 농촌에 투자하였다. 그럼에도 식량자급률은 나날이 낮아지고,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격차는 확대되며, 농가부채는 급증하고, 도시와 농촌의 생활환경 격차는 더욱 벌어져 그 결과 이농이 급증하면서 농촌지역의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혹자는 그 원인을 WTO체제하의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외적 요인 탓으로 돌리지만 이는 타당치 못하다. 그 원인은 외압보다는 그에 잘못 대응한 농정의 실패, 즉 농정이념과 농정 추진체계의 잘못이라는 내적 요인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은 농산물시장의 전면개방을 전제로 한 경쟁력지상주의, 즉 국제경쟁력이 있는 농업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농업예산의 대부분을 농업구조 개선사업에 투자했고, 정부가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선택한 농작물과 농지, 농민을 대상으로 규모확대·시설화·현대화를 지원했다. 그런데 정부의 농업구조 개선정책은 농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보다는 농가에 상환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90〜2000년에 농가소득은 1103만원에서 2307만원으로 약 2.1배 늘어난 반면에 농가부채는 473만원에서 2021만원으로 4.3배 가량 증가했다. 더욱이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농가소득과 농가자산은 모두 감소하는데 농가부채만 증가하는 매우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업구조 개선정책은 중앙집권적으로 추진되었다. 정부는 전업농어가 15만 호의 육성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설정하고 그 기준에 합치하는 농민과 농작물, 농지에 정책적 지원을 집중하는 설계농정을 펼쳤다. 경쟁력지상주의를 이념으로 한 중앙집권적 설계농정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정부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농업투자의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농업경영 규모의 확대와 현대화를 지원하였다. 정부 지원은 보조금과 저리융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특혜로 인식되어 정책자금을 둘러싼 경쟁까지 연출되었다. 이와같은 중앙집권적 설계농정은 천문학적 숫자의 농가부채만을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농민들은 농가부채는 농정실패의 산물이므로 정부가 탕감 내지 경감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농민을 달래기 위해 주기적으로 농가부채 대책을 수립한다. 결국 중앙집권적 농정은 한편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쓰고 다른 한편에서는 농가부채 대책이란 부메랑을 얻어맞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오고 있다.
정부는 말로는 지방농정 혹은 자율농정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왜 중앙집권적 농정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중앙정부의 관료주의를 탓할 수 있을 것이다. 관료들은 오랜 통제행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율농정이라 해서 자신의 권한이 약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관료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치논리이다. 1980년대 이후 정부는 수많은 농정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들은 장기적 비전과 계획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심각한 농촌문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거나 집권당의 농촌지지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농민 길들이기 혹은 환심 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정부는 실현될 수 없는 각종의 장밋빛 슬로건을 내걸고, 대통령의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해 무리한 투자계획을 세워 집행하기도 했다. 즉, 정치적으로 생색을 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농정을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처럼 중앙집권적 농정은 선거라는 정치논리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3. 지금 우리 농민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따라서 농심을 달래기 위한 긴급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농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쌀값 안정과 소득보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쌀값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긴급원조와 국내 빈곤층에 대한 식량원조를 통해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과잉재고를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농가의 소득보장을 위해서는 쌀값 폭락에 따른 소득하락분을 보상할 수 있는 긴급 소득지원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다른 선진국에서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본은 2000년에 우리 돈으로 1조원을 사용해 북한에 350만석의 재고미를 긴급 지원하였고, 미국은 2001년에 해외 식량원조 및 국내 빈곤층 지원 등 국내 농산물소비 확대를 위해 농무성 전체 예산의 약 절반을 사용했다. 그리고 미국은 농산물가격의 하락으로 농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농가보조금을 1996년의 73억 달러에서 2000년에는 232억 달러로 3배 이상이나 늘렸다.
그러나 이러한 긴급대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뉴라운드의 출범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 농업과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정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발상을 대전환해야 한다. 우선 농정이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경쟁력지상주의 농정은 목표와 수단을 뒤바꾼 것이다. 즉 농업구조의 개선, 국제경쟁력의 제고 등은 농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이지 그 자체가 농정의 이념이나 목표가 될 수 없다. 농정은 농민의 관점에서는 소득 및 복지수준의 향상, 국민의 관점에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식량안보, 농촌지역사회의 유지·발전, 국토 및 환경의 보전, 전통 및 문화의 계승, 인간교육 등)의 극대화를 기본목표로 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농업구조정책과 가격·소득정책, 생산정책, 지역정책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농민과 일반 국민 사이에, 농민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편, 일반 국민은 농민의 경영안정을 지원하는 일종의 암묵적인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WTO를 비롯한 각종 국제농업협상에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국내적으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실현하기 위한 지원시책을 거의 강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중앙집권적 농정에서 탈피하여 민주적 농정체계, 즉 농민·농업관련단체·지방정부·중앙정부의 역할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업의 주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농민이다. 농민을 농정의 시혜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수립 단계에서부터 집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참여하도록 하는 농정씨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농민과 농촌주민 스스로의 자각과 주체적 노력이 없는 한 농업·농촌문제의 해결전망은 없다. 따라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농민이 주체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협동조합의 개혁과정에서 보듯이 협동조합을 그 주인인 농민에게 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통제력을 강화하는 등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라운드는 농산물시장의 추가개방을 상당수준 강요할 것이다. 그런데 뉴라운드가 예정대로 2006년부터 시행된다 해도, 이행기간을 감안하면 새로운 농업협정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2010년 이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뉴라운드에 대비한 농정의 틀은 2010년 이후의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새로 짜여야 한다. 2000년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40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6%이고,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농업인구의 비중은 10.5%,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농림업의 비중은 4.2%에 지나지 않는다. 1990년 농가인구가 전체 인구의 15.5%, 농업인구가 경제활동인구의 17.1%, 농림업이 국내총생산의 7.7%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농림업의 비중이 급감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나 선진국의 경험으로 보나 향후 10년 이내에 우리 농업의 비중은 지금의 약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농촌인구의 노령화 추세도 뚜렷하다. 15세 미만 농가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 농가인구의 비중은 5명당 1명 꼴인 21.7%로 5년 전의 16.2%에 비해 5.5%포인트 증가했다.
농가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는 피할 수 없겠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진행될 때, 2010년 이후의 우리 농업과 농촌 나아가서 한국사회의 자화상은 매우 암울하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농촌인구(군부인구)는 전체 인구의 26%에서 20%로 감소하였다. 선진국의 농촌인구가 대체로 25〜30%(예를 들어 일본의 군부인구는 약 28%)인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농촌이 얼마나 피폐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농촌은 선진국과 달리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농업의 쇠퇴는 농촌인구의 대규모 이농으로 나타나고, 이농으로 지역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최소의 인구기반이 붕괴되면서 농촌써비스 부문(교육, 의료, 시장, 문화 및 위락시설)이 위축되어 농촌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처럼 농촌지역의 소득과 복지수준의 상대적 낙후가 이농을 낳고, 그것이 다시 농촌주민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은 농촌사회의 유지·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다시 짜여야 한다. 농가인구의 감소가 반드시 농업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농가인구가 전체 인구의 2.4%이고, 농업인구는 경제활동인구의 2.2%,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의 0.9%이지만 세계최대의 농업국이다. 대체로 선진국에서 농업은 ‘2% 산업’이다. 그리고 농촌취업자의 대부분은 비농업부문에 종사한다(예를 들어 미국 농촌의 취업자 가운데 농업취업자는 7%이다). 즉 선진국의 농촌에서는 농업이 기간산업이지만, 농업뿐 아니라 그에 기초를 둔 가공·유통·써비스 부문이 발달했다. 우리 농촌도 장기적으로는 이와같은 방향으로 가야겠지만, 그 이행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다. ‘농업의 쇠퇴→농가인구의 감소→농촌지역사회의 붕괴’라는 최악의 씨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높다.
향후 10년간 우리나라의 농촌과 농업은 급속한 구조조정을 겪을 것이다. 그 구조조정의 방향은 결국 일반 국민이 우리 농촌과 농업에 대해서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것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우선 시장개방이 가속화되면 우리 농업의 식량공급 기능은 전반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지만, 환경 및 식품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안전하고 신선한 고품질 국내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농촌은 한편으로는 노령화의 진전과 도시와의 경제적 격차 확대로 활력을 잃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이 도시에 대해 지니는 우위성(안전성·건강성·쾌적성·연대성 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활기있는’ 농촌주민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고, 이들이 농촌의 주인이 될 것이다. 또한 농촌의 쾌적함(rural amenity)을 찾는 도시인도 증가할 것이다. 농촌지역의 발전이란 농촌이 도시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농촌다움(rurality)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농촌을 국민 전체를 위한 경제활동 및 삶의 공간으로서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