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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내 마음 속의 군사분계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인문학부 교수, 영어영문학
올 가을 대학가에선 단연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가 화제였다. 결국 나도 “영화 얘기가 하고 싶어 수업시간을 잠시 빌린” 어떤 학생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된 셈이니까. 물론 매체마다 넘쳐나는 ‘추천사’를 백퍼센트 믿은 건 아니었다. 「쉬리」에 적잖이 실망하고 「간첩 리철진」을 보고도 아쉬웠던 터라, 영화에서 분단 얘기 나와봐야 뻔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앞섰던 것이다.
되도록 기대를 접자고 다짐했건만 「JSA」는 생각보다 더 허술했고, 심하게 말하면 좀 허술해야 흥행이 된다는 은밀한 공식에 들어맞는 듯했다. 총격전 장면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열심히 계산해보면 말은 되지만 어쩐지 밋밋한 미스테리 같은 플롯,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음향과 카메라 구도, 군기 세다고 유명한 JSA에서 굳이 ‘…해요’체를 쓰는 남성식 일병, 공동경비구역의 깊은 밤 들판에서도 맘놓고 피워대는 오경필 중사의 멋진 담뱃불, 허술하게 내팽개쳐진 초소, 억지로 덧붙인 소피장 소령의 가족사…… 이렇게 수습이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모를”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뮤직비디오나 보려고 두 시간 동안 앉아 있다? 그래도 대학생 또래로 보이는 관객들은 처음 3분의 2는 낄낄거리며, 나중 3분의 1은 숙연하게 영화를 보고는, 뭔가 깊이 느낀 바 있다는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그리고 정작 더 큰 문제는 ‘말이 잘 안되네……’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나도 어느새 주위 사람들에게 이걸 한번 보라고, 본 다음에 얘기하라고 권하고 있는 거였다.
이런 내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리하던 끝에 뒤늦게 이 영화의 원작소설 『DMZ』(박상연 지음)를 읽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자 갑자기 「JSA」에 대한 느낌의 정체가 확실해졌다. 일단 영화가 원작의 비장미나 심리묘사의 깊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에 반박하고 싶어졌으며, 도리어 이 영화가 내디딘 맹랑한 그 한걸음에 더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DMZ』에서 「JSA」를 만들어낸 것은 우리 영화의 빛나는 승리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녀왔던 우리의 편견이, 나아가 이 분단체제가 조금씩 무너지는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DMZ』는 남북한의 네 병사들을 분단의 이념에 길들여진 채 조금의 자극에도 미친 듯이 반응하는 ‘삐블로프의 개’로, 총격사건을 수사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지그 베르사미 소령을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후예로 설정하고, 어떻게 해도 치유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 모든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분단의 ‘상처’에 대한 ‘토론’에 작품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반면 「JSA」는 이러한 원작의 설정을 과감하게 떨쳐버린다. 그리고 바로 이 과감함이야말로 영화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몸담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진실’을 담는 데 기여한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적’과 나누는 목가풍의 우정이란 감상적인 허구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들의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모든 냉정한 정치적 판단과 복잡한 사고를 잠시 보류해두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분단을 느낀다.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야, 이 조그만 지구 어디라도 맘대로 오가는데 왜 우리만, 우리만 이러고 있나, 하는 것을 가슴 뭉클하게 상기시킨다. 마지막 장면의 흑백사진이 오래도록 남는 「JSA」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정확하게, 가차없이 건드려주는 것이다.
「JSA」는 또한 전투경찰 손에 들린, 옛 동지를 겨누는 ‘봉’이 동족을 향해 겨눈 ‘총’보다는 차라리 낫더라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 바쳐진 영화이기도 하다. ‘적’으로 생각했던 그들과 도대체 우정이란 걸 나눌 수도 있다는 생각,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꼭두각시도, 빠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오경필 중사처럼 아찔하게 매력적인 ‘형’이며, 정우진 전사처럼 사랑스런 ‘동생’이며, 또한 고귀한 영혼을 지닌 존엄한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은 「JSA」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 영화에 거리낌없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 속 현실의 논리는 엄정하다. 공동경비구역에는 오로지 “빨갱이와, 빨갱이를 미워하는 사람만” 있으므로 참극은 정해진 결론이다. 진실은 덮이고, 죽은 자를 제외한 모든 것은 ‘원위치’된다. 그래도 이 영화는 살아남은 오경필의 ‘상처’를 강조하진 않는다. 「JSA」는 『DMZ』의 ‘상처받은’ 인물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오히려 「JSA」가 지니는 힘은 우정을 나누었던 이들끼리 총을 쏘아대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DMZ』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에 대한 순진하고도 강한 믿음이 고집스럽게 지켜진다는 데 있다.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이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총격전과 대질심문 장면은 그야말로 인간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눈부시게 보여주지 않던가. 배신과 좌절로 점철된 분단의 역사에서 그래도 믿을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한걸음씩 내디뎌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군사분계선을 성큼 넘어서보자고, 그리고 그 당돌한 위반의 순간 분단의 장벽은 이미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JSA」는 조용히, 그렇지만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듯 단순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면, 정교한 영화이론이나 높은 수준의 정세분석에 입각하여 이 영화의 허술함을 비난하는 것이 당장 유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 영화가 우습게 보일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