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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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孫宅洙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ststo70@freechal.com

 

 

斷指

 

 

간밤에 못물이 얼어붙고 말 것을

너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거다

 

못물 속에 잠긴 버들가지

손가락 하나가

얼음 속에 끼여 있다

 

피 한방울 통하지 않도록

움쭉달싹 못하게 꽉 조여져 있다

 

손가락이 반쯤 달아나다 만

버드나무, 허연

속살을 드러낸 생가지

 

뭉툭해진 끝에서

뚝, 뚝, 노을이 진다

 

입춘이 멀지 않았다

 

 

 

송장뼈 이야기

 

 

부스럼 딱지처럼 끈덕지게 붙어 있던 파리떼, 파리떼가 슬어놓고 간 알들이 머리 속을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려움을 참을 수 없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머리가 썩고 있는 게로구나, 이 어린것의 머리 속에 대체 무슨 삿된 생각이 들었담. 고약냄새가 고약하게 나는 할머니 말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심정으로 나는 되도록이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골똘한 생각 하나도 썩어서 꾸역꾸역 진물을 뱉어내는 것은 아닌지 어지간히 끌탕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화성군 어디 공사장을 떠돌던 아버지가 돌아왔던 것인데, 나는 속으로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지레 겁을 먹고 저만치 떨어져 있었던 것인데, 뒤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의 다른 한 손엔 밀어낸 공동묘지 터에서 주워왔다는 송장뼈가 들려 있었답니다. 무슨 생각에선지 할머닌 그 뼈를 곱게 빻아 머리 위에 골고루 뿌려주었고, 뿌려주며 무슨 주문 같은 것을 무당처럼 주워섬겼고…… 송장님네 송장님네 우리 아그 머리 속에 들어가서 부스럼 악귀를 몰아내주시구랴 멀리멀리 몰아내주시구랴 우리 아그 머리 속에 들어가서 한평생을 더 살다 가시구랴…… 그렇게 머리 위에 뿌려지던 뼛가루를 나는 또 무슨 구운 소금가루나 찹쌀가루쯤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인데, 신기하게도 몇년을 끌던 고질병이 감쪽같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져서 같은 병을 앓던 마을 아이들 몇이 더 병마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송장뼈 덕분이었습니다. 그후로 내 안으로 들어온 송장뼈와 함께 나는 별탈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누군가 다른 이가 들어와 산다는 생각을 하면 몸가짐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닌데, 요즘도 가끔씩 송장뼈 이야기가 나오면 숫제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버지는 자신도 머지않아 송장뼈가 될 거라 합니다. 송장뼈가 될 테니 잘 빻아서 두루두루 약으로 쓰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노망든 소리라고 타박만 하시고, 누이들은 어째 소름이 돋는다며 제 곁에는 얼씬도 않는데, 이 세상이 썩어서 아주 결딴이 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런 송장뼈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뼛가루가 되어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세상의 썩은 머리 속으로 한 됫박의 소금처럼 뿌려지는 송장뼈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죽지 않고 대대로 구전되는 송장뼈 이야기, 죽어서 명약이 된 그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가보로 품고 사는 나는 한 기의 무덤인 셈입니다. 살아 파릇파릇한 무덤인 셈입니다.  

 

 

 

대추나무 신랑

 

 

햇볕에 잘 익은 사내 아이의 불알

빨갛고 탱탱한 대추가 주렁주렁하다

여든 가깝도록 친손주를 보지 못한 외가댁

할머니의 할머니의 그

할머니가 심었다는 대추나무

고목은 예전처럼 올해도

씨알 굵은 외손주 하나를 장가보냈을까

촉촉이 젖은 그늘 속에 불쑥

꼬마신랑 잠지를 꺼내놓고

자라야, 자라야, 고개를 내놓아라

안 내놓으면 구워먹고 말겠다

가랑이가 더 잘 벌어지라고

가지 사이에 옹골찬 돌멩이도 하나 끼워주고

물오른 나뭇가지 하얀 속살을 살살 문질러주며

청상의 이모들은 남의 신혼방을 훔쳐보듯

풋, 풋, 풋, 풋대추 이파리처럼 마냥 하늘거렸을까

차르르 탬버린 소리를 내는 햇살 아래

동정을 받친 나의 신부, 한 그루는

이십수년 전 이심전심이 되어서

밤마실을 와서 자고 가던 이웃 할머니들처럼

박복한 신세타령으로 궁시렁 궁시렁거리다가

아가가 네가 내 서방이로구나, 새신랑이로구나

서로 품고 자겠다고 다투며 깨득거리다가

한정없이 꺼져들어가던 품속

그 애진 품속처럼, 빨면은 송아리 송아리

하얀 꽃잎이 비릿하게 맺힐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