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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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高雲基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등이 있음. poemsea@dreamwiz.com

 

 

 

칠성당들!

 

 

강화 보문사 칠성당 뒷벽에

물고기등을 뚫고 솟아오른 낙락장송 탱화를 보러 가는 길에

웬 어쭙잖은 ? ? ? 같은 한떼의 갈매기들을 만났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따라

요쪽조쪽 가까운 바다를 건너다니는 자들이다

눈치없는 자 하나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내게로 와 기웃 들여다본다.

가까이서 보니 엄청 크고 징그럽다.

완강한 부리가 더욱 밉살스럽다.

저리 가!

쫓아도 자꾸 붙는다.

 

잠깐 바다 건너는 일이 이렇게 억머구리다.

 

비탈을 오른다. 비탈에서는 곧추서기가 힘겹다.

온몸으로 비탈을 안고야 발이 떨어진다.

거친 숨 사이로, 아버지가 번역하신 妙法 蓮華經이 보인다

오를수록 산은 멀고 山徑만 가득하다.

 

절 한쪽 구석에 낡고 초라한 칠성당이 보인다

물고기의 등을 뚫고 솟아오른 낙락장송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있다 고통으로 뒤틀린 채 허공으로 뛰어오른 물고기!

칠성당 뒷벽은 여전히 고통으로 가득하구나

 

언젠가 나는, 잔등을 뚫고 나간 落落長松 때문에

온몸이 뒤틀린 물고기들이 지하철 바닥에서

더러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든 것을 보았다

 

네거리에는 잔등에 한 바다를 짊어진 칠성당들이

하염없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不和

 

 

그는 끊임없이 무슨 말인가 하고 있다 바로 앞인 것 같기도 아득히 먼 곳인 것 같기도 하다 들리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내가 소리 지르자 그는 그만 죽어버린다 죽어 동백이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동백 한송이가 피어오른다 또 누군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모기만한 소리로 앵앵거린다 더 크게 이야기할 수 없느냐고 소리쳤더니 금방 날아가버린다 모기 날개 하나가 비틀 날다가 떨어진다 또 한 사람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소리가 너무 커서 들을 수 없다 방안이 소리로 꽉차서 터질 듯하다 어디선가 유리창 터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너무 크다고 소리치니 그는 더 큰 소리로 소리친다

그만해!

내가, 그가,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공중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털썩 떨어져 방바닥에서 퍼드덕거린다 가만히 보니 낯익은 얼굴이다

 

눈을 뜨니 수족관 같은 유리 너머로 수양버들이 수초처럼 흔들린다 그 사이로 목잘린 동백이 둥둥 떠 있다 모기 날개 같은 햇살이 비틀비틀 날고 있는 오후!

 

 

 

거울놀이

 

 

벽이 온통 거울인 건물들의 첩첩산중

공중에도 엄청나게 큰 둥그런 거울 하나가 떠 있다

거울 속으로 구만리 장천이 다 보인다  

 

이파리 하나 없는 赤壁과 琉璃의 길로

수세기의 낡은 치마를 걸친 지상의 마지막 짐승들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