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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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金允植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북어 2』 등이 있음. eoeul@hanmail.net

 

 

 

낙지의 발

 

 

슬픔일 수도 절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간절함 같은 것, 숨막히는 아름다움 같은 것이란 생각도 했다.

 

적막하게 맨발로 걸어온 먼지 이는 어느 황혼. 먼 고독. 생을 몸부림치며 사랑했던 적이 있었던가. 끝없이 사랑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둡게, 어둡게 최후를 움직이고 있는 바다.

 

허무일 수도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쥐치포

 

 

갈대밭을 기어가는 느린 사행천(蛇行川)처럼 생은 그렇게 지나갈 테니까 오늘은 바짓가랑이에 묻는 모래알 같은 하얀 햇빛을 툭툭 털어내보고, 소리없이 물밑에 가라앉는 지친 봄날도 목놓아 들여다보다가 불현듯 세상 사는 법처럼 납작해진 네 살이나 찢고 있겠지. 가랑잎 같은 망각을 위해서, 권태의 둑 위에 그림자처럼, 구겨진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김제의 홍어

 

 

다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김제에 홍어가 먼저 와 있다.

오월 늦봄이 꽃잎을 깔고 앉아 바다 냄새를 피운다.

홍어는 아래께가 유명하다지.

금산사 가는 입구

무어라고 내게 극락 같은 김제벌 물길을 묻는가.

일어서다 말고 그 처녀 뒷모습을 물결처럼 잠시 돌아본다.

떠나올수록 무엇인가 너울너울 뱃전처럼 흔들린다.

왜 홍어가 떠올랐는지.

부처가 앉았다가 일어나도

옷에서 이렇게 쓰라리고 고독한 냄새가 풍길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