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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평

 

옌뼨, 동아시아의 빛과 그늘

 

 

이욱연 李旭淵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노신의 소설 창작과 기억의 서사」 「중국 지식인사회의 새로운 동향–––‘신좌파’를 중심으로」 「1990년대 중국의 탈식민주의 비평」 등이 있음. gomexico@sogang.ac.kr

 

 

변경의 도시 옌지(延吉)는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1952년 9월 3일 옌뼨(延邊) 조선족 자치구(1955년에 ‘자치주’로 승격)가 탄생해 50주년이 되는 것이다. 탄생 당시,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벌이던 기간이었고, 55개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였다. 옌뼨 조선족 동포들로서야 당연하겠지만, 중국 정부로서도 50주년의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옌뼨 조선족 자치주가 중국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시험무대가 되어왔다는 점, 한중수교(韓中修交) 이후 중국 정부가 조선족들의 동향에 더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념일을 앞두고 옌지 시내는 대대적인 가로 정비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념행사에 집단체조를 선보이기 위해 평양에서 집단체조 전문가 세 사람을 초빙했다고 한다. 중국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창궐하는 안마시술소들이 시장경제 확산과 남한 자본주의 침투로 생긴 옌지의 상처를 상징처럼 보여주었고, 거리에는 붉은악마 셔츠가 많이 눈에 띄었다. 월드컵 때 옌뼨대학 체육학과의 한 교수가 중국 관영 CCTV의 편파 보도에 항의하다 그만 뇌일혈로 숨을 거둘 정도로, ‘대〜한민국’ 외침은 옌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해마다 7, 8월이면 늘 그렇듯이, 각종 학술회의와 백두산 관광을 위해 쏟아져 들어온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넘쳐났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탈북자 단속에 나서면서 동포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 긴장의 한편에는 이른바 ‘기획망명’ 흐름을 안타까워하는 옌뼨 동포사회 특유의 정서도 섞여 있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양쪽 동포들의 삶이라는 것이 문화대혁명 때도 그러했듯이 서로 어려울 때면 강을 넘나들며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부 탈북자들의 ‘영웅주의적 행동’(?)으로 그런 오랜 삶의 관행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탈북자가 총기 살인사건을 일으킨데다가, 서울에 와서 쓰라린 실패와 수모를 겪었던 일부 동포들이 지니고 있는 반한 감정, 그리고 관광철 등이 맞물리면서 치안은 더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가운데 이제는 옌뼨지역 동포들의 빼놓을 수 없는 일상으로 자리잡은 한국 텔레비전 시청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위성 텔레비전 설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그런 옌지에서 한중수교 10년을 생각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재중 조선-한국 문학연구회’와 창작과비평 공동주최로 7월 10일 옌뼨대학에서 열린 “중한(中韓) 문학·문화 교류의 역사와 전망” 씸포지엄이 그것이다. ‘재중 조선-한국 문학연구회’는 작년 12월 기관지 『조선-한국 문학연구』 창간호를 발간하는 등, 중국 각지의 동포 문학연구자들을 하나로 묶는 최대 문학단체이다. 옌뼨의 정신적 지주이자 옌뼨문학의 상징이라 할 김학철·정판룡 선생은 이제 떠났지만, 그분들을 이어 옌뼨정신과 옌뼨문학의 갱신을 모색하는 동포문학인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고, 그들과 창비의 만남이 한중수교 10주년을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만남이 하필 한중수교 10주년을 계기로, 그것도 서울이나 뻬이징이 아니라 옌뼨에서 이루어진 것이 엉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옌뼨이라는 변경 공간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차피 한중수교란 것이 단순히 중국과 남한 사이의 수교라는 차원을 넘어,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아시아 구도에 변화를 가져온 일대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다. 옌뼨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힘의 결절점이자 각축장인 동시에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상징일 수 있다면, 옌뼨만큼 동아시아 문제를 사고하는 데 풍부한 시좌(視座)와 역사적 상상력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또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학술회의는 그런 옌뼨이란 공간의 의미를,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하는 자리였고, 그런 옌뼨이란 공간의 신생을 위해 고투하는 재중 동포 문학인들의 열정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런 옌뼨의 의미를 반영하듯, 이번 회의에서 발표된 총 9편의 논문은 우선 연구 대상에서부터 남과 북의 문학, 옌뼨문학, 한중문학 비교, 한중교류, 동아시아 문제 등을 망라하였고, 남북문학의 현재와 미래, 민족문학과 재외 동포문학의 관계, 한중문학의 유사성과 차이, 한중교류의 현황과 전망,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한중관계 등과 관련하여 두고두고 숙고할 만한 ‘화두’들이 발표와 토론에서 두루 제출되었다. 특히 옌뼨대학 교수들의 발표는 중국과 남과 북을 두루 조망하는 가운데 발현되는 옌뼨의 연구적 개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백낙청 교수가 인사말에서 언급한 대로 “일부에서 민족문학의 위기를 거론하지만, 한반도 분단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반도 전체에 걸쳐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문화를 건설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민족문학의 과제는 여전히 귀하다”고 할 때, “중국 국민으로서의 처지에 충실하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옌뼨동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넉넉히 실감하는 기회였다 하겠다.

가령 ‘재중 조선-한국 문학 연구회’ 회장인 김병민 옌뼨대 부총장이 발표한 「연암(燕岩) 소설과 노신(魯迅) 소설의 비교문학적 고찰」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김교수는 18세기 중국은 왜 연암과 같은 작가를 배출하지 못했고, 20세기 초 한국에서는 왜 노신, 즉 루 쉰과 같은 작가가 나오지 못했는지를 묻고는, 연암이 지닌 화하(華夏)문화 중심주의를 탈피한 주변부 문화의식과, 루 쉰이 시도한 중화중심주의의 해체와 자체문화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그 답을 찾았다. 중화중심주의라는 자력에서의 이탈이 동아시아 문학의 중요한 생장점이었음이 김교수의 발표로 거듭 예증되었다.

그런가 하면, 리광재 옌뼨대 교수는 「90년대 중·한 여성소설문학 소고」에서 폭넓은 텍스트 읽기를 통해 90년대 두 나라에서 동시적 현상으로 떠올랐던 여성문학의 특징과 의미를 해부했고, 김호웅 옌뼨대 교수는 「우리 문학의 산맥---김학철옹」을 통해 “김학철 문학 수업의 정신적 기둥은 중국 쪽으로는 루 쉰이고, 조선 쪽으로는 홍명희다”라고 정리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문인인 루 쉰과 홍명희가 절묘하게 통합되는 김학철 문학의 경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인 것이다. 사실, 종합토론에서 최원식 교수가 지적한 대로 김학철 문학의 민족문학사로의 귀환은 속지주의적 한국문학 개념에 충격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민족문학계에 엄중한 연구적 과제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임규찬 교수가 발표한 「김학철 소설에서의 역사성과 문학성」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임교수는 특히 옌뼨지역 문학의 특수성에 주목하면서 일반적인 “재외동포문학이 아닌 ‘옌뼨문학’으로 보통명사화하여 지칭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하는 한편, 김학철 소설의 서사구조가 지닌 ‘민족적 민중미학’과 관련하여,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 망각상태에 놓여 있는 전통적 서사양식이 김학철 소설에서 소생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것을 촉구했다. 김학철 문학에 내장된 루 쉰적인 것과 홍명희적인 것을 풀어내는 일이야말로 일종의 디아스포라(diaspora)적 공간인 옌뼨에서 산출되는 옌뼨문학의 진경에 다가서는 일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학철 문학을 민족문학의 전통과 견주는 한편 중국문학의 전통과도 견주는 일은 향후 민족문학의 연구과제이자 한중 비교문학의 연구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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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학과 관련하여 임형택 교수는 「21세기에 즈음한 북조선의 문학적 진로」라는 발표를 통해 최근에 대두된 ‘선군(先軍)혁명문학’의 양상과 특징을 점검하면서 ‘북조선’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었다. 토론에서 임교수가 제기한 ‘북한’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제안은 “북조선 문학의 특수성을 낯설다 하며 타기해버리거나 아니면 남한의 기준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그 실태를 파악하고 그렇게 된 사정을 가능한 대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라는 발표문의 근본 취지와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허휘훈 옌뼨대 교수는 「북한의 해방세대 대표시인 김순석과 그 민주주의 시풍」이란 발표에서 김순석의 대표시 「어랑천」과 「귀향」에 주목하면서 향토애와 인도주의적 문학성향 때문에 ‘북조선’ 문학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경위를 현대사의 배경 속에서 추적하였다. 남북문학사를 아우른 나희덕 시인의 「남한과 북한에서의 소월시 수용 비교」는 남과 북에서 이루어진 소월시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한 것으로, 남과 북을 막론하고 그동안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해온 국민국가적 기원의 미의식을 넘어서는 일이 개별 작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도, 온전한 민족문학사를 쓰는 데도 더없이 긴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한중 10년의 한중 문학·문화 교류를 검토한 본인의 「한류(韓流)와 화류(華流)를 넘어」와 한중관계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간의 갈등을 근대극복과정에서 해결할 것을 제안한 백영서 교수의 「연변,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로」 등의 발표는 최근 월드컵을 계기로 돌출된 한중 갈등문제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유도했다. 한중 갈등의 일차적 원인으로 중화주의, CCTV의 편파보도, 원래 유럽 축구팬이 많은 중국 축구계의 현실, 한중간에 근대 이래 형성된 상호 오도된 선입견 혹은 편견의 문제 등등이 지적되었다. 물론 한국쪽의 문제도 거론되었다. 한국이 아시아의 자부심이 되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번 월드컵이 아시아의 자부심을 드러낸 계기가 된 점을 좀더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는 옌뼨대 김병활 교수의 의견이나, “한일 파트너십을 강조하다보니 한일이 합쳐 아시아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해석되면서 중국의 견제심리가 발동할 여지가 있었다”면서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이번 월드컵을 아시아의 축제로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부분은 사실이다”라는 백낙청 교수의 지적이 그것이다. 월드컵 때 표출된 중국인들의 감정을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김상환 교수의 해석이 좌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우정·사랑·연대감이 생길 때 미움의 감정도 같이 생기기 마련이듯이,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생겼다는 점에서 이를 볼 수 있고, 한중간의 기존의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변화하면서 일어나는 현상, 액체가 기체로 승화되듯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등현상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럴 때 옌뼨 또는 재중 동포사회는 한중,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지닐 것인가. 그 건설적 역할을 위해 재중(在中) 동포사회가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쟝춘(長春)에서 발행되는 문학지 『장백산(長白山)』이 종합지로 변신하면서 한중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그러했다. 7월 8일 쟝춘에서 열린 『장백산』과 창비의 간담회에서 『장백산』의 남영전 사장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우리 민족문학의 만남의 장, 교류의 장을 만드는 데 힘쓸 것”이며, “중한 우호돈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잡지로 만들겠다”고 한 것도, 『장백산』이 재중 동포들의 문학지를 넘어 이제는 한중교류, 나아가 남북 민족교류와 동아시아 교류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잡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재중 동포 자신들만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옌뼨을 비롯한 재중 동포사회는 위기로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학철 선생도 지난해 『우렁이 속 같은 세상』(창작과비평사) 후기에서 “재중 190여만 동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비탄해하지 않았던가. 작년과 올해 『장백산』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문학의 「조선족 대개조론」도, 내용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쳐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일면 그러한 재중 동포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재중 동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중화주의와 남한 자본주의라는 막강한 구심력에 재중 동포사회 특유의 이중의 정체성이 해체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그 위기는 비단 재중 동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촉발된 동아시아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중 동포들의 문제를, 옌뼨의 문제를, 동아시아 공동의 문제로 그러안는 동아시아인들 공동의 노력이 절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옌뼨을 자신의 체계 속으로 수렴해 또하나의 (내부)식민지로 만들려는 국가주의적 경쟁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 그런 흐름을 제어하면서, 근대 국가주의적 전통이 유난히 강한 동아시아에서 옌뼨을 하나의 초국가적 공동체라는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옌뼨이 본디 지니고 있는 동아시아 변경적 정체성을, 어느 일방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넘나드는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면서 동아시아에 초국가적인 시험공간을 창출하는 일에 동아시아인들이 공동의 지혜를 모으자는 것이다. 그럴 때, 옌뼨은 더이상 동아시아 국가주의의 각축장이 아니라, 식민/제국의 역사와 냉전의 그늘을 넘어 동아시아 새로운 역사를 이끄는 빛으로, 동아시아 평화의 실험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옌뼨을 옌뼨으로! 이는 벌써 동아시아의 새로운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