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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감각과 비정(批正)―‘연구’의 중립성을 넘어서
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시인』, 문학동네 2002
윤영천 尹永川
문학평론가·인하대 국어과 교수 ycyoon@inha.ac.kr
서양 이론의 무잡한 모자이크식 개론서가 아직도 버젓이 횡행하는 척박한 풍토에 『문학이란 무엇인가』(1989) 『시란 무엇인가』(1996) 등의 소중한 씨앗을 착근시켜 문학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시교육의 든든한 토대를 마련해준 유종호(柳宗鎬) 교수가 이번에는 자칫 세상의 관심권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질 뻔한 4명의 ‘월북시인’들을 우리의 뇌리에 새롭게 각인함으로써 특히 지난 세기의 마지막 10년 이래 일종의 고질처럼 된 ‘연구’라는 중립주의적 타성에 혼곤하게 빠져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국문학계에 매우 생산적인 담론을 제기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시인’이란 표제에서도 드러나듯 통일문학사를 겨냥하고 있는 듯한 이 저술은, 한결같이 비참하고 쓸쓸한 생애를 살다 간 월북작가들의 시적 행로를 매우 섬세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이고 있다. 1953년 군사재판으로 처형된 임화, 6·25 전쟁중 폭사한 것으로 알려진 오장환, 『리용악 시선집』(1957)을 펴낸 이후 거의 시작(詩作)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1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용악, 그리고 1959년부터 궁벽한 시골의 국영협동농장 양치기로 종사하다 1995년 83세로 작고한 백석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시세계에 대한 저자의 기본적 관점은 시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 위주의 철저한 내용 분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작품외적 사실들을 통한 손쉬운 연역적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의 꼼꼼한 독해과정을 경과한 귀납적 평가태도, 즉 텍스트에 대한 ‘구심적 충실’이야말로 작품과 시인에 대한 진정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때 개개 시어 선택의 엄밀성, 작품 특유의 시적 형태나 구문, 시적 방법 등이 일차적인 검증대상으로 부각된다. 언어를 구성하는 여타 요소들과 동등한 위상을 획득하는 시에서의 구두점 활용 문제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이 점에서 언뜻 유종호 교수는 협애한 형식주의자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임화의 「현해탄」이나 이용악의 「낡은 집」 분석에서 여실한 ‘내적 텍스트성’(intratextuality)의 정교한 적용과 치밀한 ‘상호텍스트성’ 논의, 개개 작품을 당대의 문학사적·정치경제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시키는 데서 드러나는 일종의 문화주의적 시각 등은 그가 결코 단선적인 신비평론자가 아님을 잘 반증해준다. 그런가 하면, 서정주·오장환 등의 문학적 거점이었던 동인지 『시인부락』의 표제를 통해 ‘시인들이 모여 사는 피차별부락’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발굴하고 그들 의식의 심층에 내재한 ‘낭만적 허영’을 간파하는 예민한 감각, 백석의 절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일제강점기 소산이 아니라 해방 직후 작품임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견고한 실증정신은 이 저술이 풍부한 비평적 실감과 ‘연구’의 객관성을 행복하게 결합한 드문 사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저작의 핵심적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금껏 ‘평론가 임화’에 가려 ‘시인 임화’에 대한 본격적 천착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찍이 김동석은 “알짱 구체적이라야 할 데 가서는 추상적이 되어버리는 것이 시집 『현해탄』(1938) 전체가 지니고 있는 흠”(『예술과 생활』, 1948)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초기 임화 시는 짤막한 서정시에서 사회현실에 기초한 서사 충동을 추구함으로써 ‘정치시’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그의 정지용 비판은 이 연장선상에서 행해지는데, 그것은 ‘사회파 시인의 기교파 비판, 낭만주의자의 고전주의자 비판, 정치적 인간의 비정치적 인간 공격’의 의미를 지닌다. 해방 이후 그의 시는 독특한 예기와 박력을 지닌 짧고 간결하며 긴박한 호흡의 격문시(檄文詩)를 개발, 당대 좌파시인들(이용악·오장환·설정식 등)에 큰 시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장환은 김기림이 적절히 언명했듯 시집 『성벽』(1937)을 통해 ‘연옥을 통과하는 현대 지식인의 특이한 감정’을 노래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통념과 인습에 대한 사회적 외방인(外邦人)의 관념적 반항시편에 지나지 않는다. 뛰어난 리듬감각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헌사』(1939)의 시세계가 낭만적 허영을 통어하지 못함으로써 종종 시적 실패로 귀결되고 만 것도 바로 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외방인에서 사회 중심부로의 신분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오장환은 과거의 과장된 반역과 거부의 자세에서 전통적 가족주의로 회귀해, 당시 좌파 시단에서 ‘반동’으로 단죄될 만한, 그러나 20세기 한국 서정시의 조그만 승리라 할 수 있는 「다시 미당리」(1946) 등 일련의 일탈시편을 남겨놓았다. 일제 말엽 ‘연민의 시학’을 아름답게 노래한 「성탄제」(1939)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시적 성취이다. 그러나 월북 후 오장환의 친체제 시편들은 지난날의 시적 업적을 일거에 훼손해버린다.
해방 이전 이용악 시세계는 ‘식민지 현실의 충실한 서정적 재현’으로 요약된다. 물론 「두메산골」 연작처럼 현실도피적 성향의 작품도 있지만, 그것 역시 현실부정의 계기로 읽힐 소지가 없지 않다. 요컨대 일제강점기 용악 시는 생활과 현실이 높은 수준의 서정력으로 형상화된 하나의 문학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나라에 슬픔 있을 때」(1946) 같은 시인 특유의 어법과 시적 위의를 갖춘 빼어난 정치시를 솜씨있게 빚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 점에서 그는 리얼리즘 시인들이 종종 범하기 쉬운 ‘기교 경시’와 소재주의에서 멀찍이 벗어난, “현실주의 시인은 현실주의자이기 이전에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20세기 전반의 최초의 사례”(222면)로 기억될 것이다.
「북방에서」(1940)에서 확연한 바이지만, 개인적 서정 토로가 곧장 집단적인 시적 파토스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백석은 단순한 서정시인은 아니다. 초기의 백석 시세계는 쾌락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유아기의 고향’이라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의 토로이자 그 복원의 절실한 호소에 다름아니다. 백석의 고집스런 방언 지향, 작품에서 쉽사리 간취되는 ‘심정적 표박(漂泊)’의 이미지 등도 잘 따져보면 이러한 ‘시원회귀 성향’의 문제의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그것은 자기 시대나 사회와의 순탄치 못한 관계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북한에 체재하면서 돌연 그는 시와 절연하고 러시아 작품 번역 및 아동문학 평론 활동에 주력한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이런 행위 자체가 체제와의 밀월을 스스로 거부한 하나의 특이한 방식이 아닌가 한다.) 1958년 들어 문득 몇편의 체제 찬양시편 발표를 마지막으로 그의 문학적 생애는 1995년 작고하기까지 40여년 가까이 실질적인 ‘죽음’의 상태로 일관하였다.
유종호 교수의 저술에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특정 개념을 원용하여 논의의 실감을 한층 드높였다는 점이다. 나찌즘이라는 희대의 문화적 재난을 자초한 독일정신의 정치적 무의식성과 관련하여, 임화의 정지용 비판에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비정치적 인간’을 적용한 것이라든지, 곰브리치(E.H. Gombrich)의 ‘예사로움’(sprezzatura) 개념을 빌려 백석 시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을 설명한 것, 그리고 샤흐텔(E.G. Schachtel)의 용어(‘원격감각·근접감각’)을 통해 백석 ‘기억 시편’들의 의미를 심도있게 고찰한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한국 근대시의 형태적 원류를 번역시에서 찾고, 그 계보를 임화·이상 등의 ‘직역된 번역시 모형’과 김소월·김영랑·정지용·서정주·이용악 등의 ‘의역된 번역시 모형’으로 양대별한 것은 하나의 논쟁적 이슈로 떠올릴 만하다. 앞으로 좀더 깊은 학적 탐구가 밑받침돼야 할 것이다. ‘모더니스트 백석’이란 통설을 바로잡은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김기림이 촉발하고 오장환에 의해 더욱 굳어진 이 논점이 단순한 시적 기법상의 친연성에 근거한 오류임을 밝히고, “백석은 반(反)모더니즘의 시인”(323~24면)으로 붙박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저술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임화가 과연 신동엽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치시·격문시’의 중심적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프로시가의 대중화가 강조된 1927년 이후 특히 30년대에 들어 이런 유의 시는 강한 경향성을 띠고 폭넓게 노래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오장환의 「고향 앞에서」(1940)의 ‘잿내비’를 시인 자신이 일종의 새이름으로 알았던 듯하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시적 현실과 실제 사실(한국에는 ‘원숭이’가 없다)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슬픔의 극대화’를 꾀한, 한시적 전통에 의거한 일종의 인유(引喩)적인 시적 표현이라 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 펴낸 『리용악 시선집』이 작품의 ‘대폭적 변개’를 시도한 것도 반드시 진진한 흥밋거리로만 볼 일이 아니다. 간혹 작품발표 연도를 명기하여 시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가령 ‘전면적 개고’라 할 수 있는 「거리에서」(1946)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명백한 ‘개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폭넓은 백석의 번역활동에 대해서도 한층 상세한 정보가 뒤따라야 그가 어째서 시와 절연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유종호 교수의 이번 노작에서 엿보이는 이같은 흠결은 그야말로 ‘옥에 티’에 지나지 않는다. 이 평론집 출간이 우리 비평풍토에서 시적 실체를 관통하는 올바른 작품주의적 비정(批正)에 굳건히 기반하여 ‘연구’의 중립성까지도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비평의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