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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생극론의 독자성과 탈유럽중심주의의 함정

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 지식산업사 2002

 

 

설준규 薛俊圭

한신대 영문과 교수 jksol@hucc.hanshin.ac.kr

 

 

『세계문학사의 전개』는 『한국문학통사』(전6권, 1판 1982~89)에서 비롯되어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2001)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학문적 여정의 도달점이면서, 본격적 세계문학사 저술의 “기본설계”(14면)라는 점에서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온갖 해체주의가 최신 학문조류의 이름을 달고 횡행하는 세태에서 세계문학사의 방대한 체계 구축에 매진해온 조동일(趙東一)교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면서, 책을 읽으며 품었던 몇갈래 생각을 적어본다.

첫째, 저자는 동아시아 철학의 “유산을 재창조한” 생극론(生克論)에 입각해 세계문학사를 기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생극론은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둘이 상극으로 이룩되는 발전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데 맞서서, 상극이 상생이고 상생이 상극이며, 발전이 순환이고 순환이 발전임”(21~22면)을 밝힌다고 한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변증법과 생극론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생극론의 역사관도 유물론의 나선형적 역사관과 썩 달라 보이지 않는다. 생극론이 철학적 원리로서 변증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할 처지가 못되는 필자로서는 『세계문학사의 전개』의 서술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띠는가를 살핌으로써 생극론의 실상을 가늠해볼 따름이다.

117-452생극론이 관철되는 역사적 실례로 저자는 근대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중심부였던 서유럽의 사실주의 소설이 한계에 봉착했던 19세기 말, 유럽의 변방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탁월한 사실주의 소설의 성취가 이루어졌다거나, 제1세계 문학의 창조적 가능성이 소진되어갈 때 제3세계 문학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는 경우 등을 빈번히 들고 있다. 문학사에서는 선진이 후진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되는 경우가 되풀이된다는 것인데, 이런 발상법은 루카치(G. Lukács)의 소설 논의에서 일찍이 개진된 바 있거니와 국내에서도 70년대부터 제3세계문학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고방식으로 문학사의 전개과정에 관한 변증법적 사고방식의 전형이므로 딱히 생극론의 독자성을 예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술의 실상을 보아도 생극론의 독자적 원리가 관철되는 양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별 여러 갈래 문학의 전개양상은 대체로 나열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생극론을 입증하는 구체적 실례로 거론되는 경우들도 단편적인 경우가 많다. 가령 근대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유럽 변방의 분발”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사회 발전의 후진성 때문에 의식 각성을 위해서 더욱 분발해 후진이 선진”(397면)이 되는---굳이 생극론을 들이대지 않고도 설명이 가능한---사례들이 길게 제시되지만, 그 사례들이 생극론의 틀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 『세계문학사의 전개』 저술의 주목적은 문학사 기술에서 유럽문명권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대상을 넘어서려면 우선 그 대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근대의 전개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이 차지해온 세계사적 비중을 고려할 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영미문학의 진상을 엄정하게 대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미의 주요 작가들에 대한 평가를 간략히 짚어보자.

저자는 17세기 영국혁명을 근대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근거로 혁명 이후에도 라틴어문학이 존속했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17세기 영국시인 밀턴(J. Milton)이 “자국어 시보다 라틴어 시에서 더욱 개성적이고 생동하는 표현을 했다”(247면)는 것인데, 초기 서정시에서 만년의 서사시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작품을 영어로 지었던 밀턴에 대한 언급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나아가 『실낙원』(Paradise Lost)에 대해서 저자는 “영문학 작품이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 서사시의 새로운 전범인 것처럼 평가되고 있다”라고 정리하는데, 영국혁명의 대의에 동참했던 시인이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실명의 고통 속에서 혁명 실패의 원인과 역사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 장대한 서사시에 대한 평가로서는 퍽 인색하다.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작품의 경우 저자는 『햄릿』(Hamlet)을 유일하게 거론하면서 왕에 대한 복수가 지연되는 이유, 햄릿이 미쳤는가 여부, 햄릿의 나이 등이 논란거리가 되면서 문제작의 증거로 활용되어 과대평가를 낳고 있다(312면)고 지적한다. 사실 그런 논란은 『햄릿』의 역사적 측면에 무관심한 보수적 평자들을 중심으로 집요하게 이어져왔는데, 결국 저자는 『햄릿』을 영미학계의 비역사적·보수적 해석에 기대어 평가절하함으로써 이 작품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해버린 셈이다. 『햄릿』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주요작품들이 근대 여명기의 격변하는 역사적 조건을 냉철하게 점검하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라고 보는 해석이 나온 지는 사뭇 오래인데, 아쉽게도 그같은 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셰익스피어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세계문학사의 전개』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대 영국소설에 대한 평가도 일면적이다. 조이스(J. Joyce)의 『율리씨즈』(Ulysses)에 대해 “소설을 부정한 소설이고, 문학을 우롱하는 문학”(387면)이라고 단호히 규정한 것도 논란거리지만, 조이스와 대비되는 작품 경향을 보이면서 현대문명의 문제성과 그 극복의 길을 발본적으로 탐구했던 로렌스(D.H. Lawrence)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세기 미국소설의 독보적 경지를 연 멜빌(H. Melville)의 『모비딕』(Moby-Dick)을 두고 “뱃사람들의 투지를 그려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했다”거나 해양모험문학의 절정(429면)이라고 하는 것은 상투적인 해석이다. 이 소설이 미국식 이상주의에 잠재한 파괴적 이중성에 대한 서사시적 탐구로도 읽히는 사정을 저자는 의식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탈유럽중심주의가 내실을 지니려면 유럽의 계급지배 및 식민통치의 역사가 문학작품에 부정적으로 투영된 측면을 가려내어 비판하는 한편, 그같은 역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유럽사회 내부의 고민과 그 성과도 유심히 살펴야 마땅할 텐데, 적어도 영미문학 영역에서 보면 『세계문학사의 전개』는 이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섬세한 비평적 점검에 기초해야 할 평가가 소재적 측면과 표면적 메씨지에 치우친 표피적 정리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문학사가는 원칙적으로 서술대상 작품을 비평가적 안목으로 직접 검토해서 균형잡힌 평가를 내놓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방대한 문학사를 저술하는 경우 저자 개인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적 식견을 쌓기는 어려우므로 전문분야별로 축적된 성과에 기대는 것은 어느정도 불가피하다. 이렇게 보면 『세계문학사의 전개』의 오류 중 일정부분은 국내 외국문학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원로 국문학자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학문적 성과의 얼개를 뜸들여 살피는 동안, 서양문학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심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