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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두석 崔斗錫
1955년 전남 담양 출생. 1980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대꽃』 『임진강』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등이 있음. pinus@hanshin.ac.kr
청띠제비나비
세파에 시달리다
스스로 누추해지고 비참해져
버러지 같다 하는 누이야
그런데 버러지도 하찮게 살지 않아
모든 애벌레는 허물을 벗어
온몸으로 허물을 벗고 또 벗어
날개를 다는 거야
서남해 난바다 홍도에는
청띠제비나비가 살지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위를 날아
진초록 후박나무숲에 이르는
나비의 비행을 상상해봐
후박잎을 먹고 자란 애벌레가
빛나는 비취빛 띠를 두른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기까지
온몸으로 허물을 벗고
또 허물을 벗는 모습 떠올려봐.
고향 들녘에서
술래 술래야
굼실굼실 무논의
벼포기 사이를 옮겨다니던
우렁이를 찾아봐라
우렁이를 맛있게 찍어먹고
고개들어 울던
키다리 황새를 찾아봐라
황새 그림자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개구리를 찾아봐라
황새 발걸음에 놀라
저리 숨고 이리 숨던
미꾸라지를 찾아봐라
술래 술래야
발등이 붓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찾아봐라
다 어디로 가서
꼭꼭 숨었지?
고란사 고란샘
이 상큼한 샘물 마시고 강 건너
꿈속의 연인 만나러 간 이 있으리
이 해맑은 샘물 마시고 강 건너
깨달음의 불 밝히러 간 이 있으리
이 시원한 샘물 마시고 강 건너
역사의 수레바퀴 굴리러 간 이 있으리
가만히 고이지도 않고
세차게 흐르지도 않는
바위틈에서 하염없이 새어나오는 물맛 음미하며
예로부터 이 샘물 마시고
백마강 탁류를 건너간 이들이 흘린
눈물 섞인 땀과 피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