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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세계사 다시 읽기와 유럽중심주의

A.G.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를 중심으로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식민지·근대와 세계사적 시야의 모색」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유럽중심주의’의 극복문제는 이제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아주 낯익은 화두가 되어 있다.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논단을 구성하는 세 편의 글, 김경현(金炅賢)의 「검은 아테나 여신: 오늘의 미국과 고대 그리스」,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의 「근대를 다시 본다: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에릭 밀런츠(Eric Mielants)의 「유럽과 중국의 비교사」는 각기 주제와 시각은 다르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복권시켜 새로운 근대 역사상을 모색하는 미야지마와 밀런츠의 글이 유럽중심적인 역사서술에 대한 전형적인 문제제기라면, 서양 고전문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적 뿌리를 갖고 있었다는 마틴 버널(Martin Bernal)의 저서 『검은 아테나 여신』(Black Athena)을 다룬 김경현의 글은 이제 세계사 서술에서 유럽중심적인 편향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이 주제와 시대에 관계없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 가운데서도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미야지마의 「근대를 다시 본다」였다. 기존 역사교과서의 부당한 유럽중심주의 서술방식을 적절하게 비판한 부분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같은 유럽중심적 세계사에 대한 거시적 대안을 모색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근대를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한 시도는 의미있게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그가 A.G.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에 제시된 전지구적 세계체제론 등을 적극 원용해 동아시아 근대의 기점이나 근대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필자로선 그러지 않아도 프랑크의 최근 작업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미야지마의 글을 접하면서 스스로 한번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오리엔트』1는 올해 국내에 번역, 소개된 뒤 상당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이제껏 나온 그 어떤 저작보다도 전면적이고 근원적인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데다, 그간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의 극복을 자임한 브로델(F. Braudel)이나 월러스틴(I. Wallerstein) 등의 견해에 대해서 어딘가 유럽중심주의의 낌새를 느껴온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만한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효제(趙孝濟)는 『리오리엔트』가 ‘일방적’ 세계체제론에서 ‘보편적’ 세계체제론으로 나아간 점에 주목하기도 했고, 최근 출간된 이성형(李成炯)의 저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역시 프랑크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아시아가 19세기에 유럽중심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2

프랑크는 이 책에서 전지구적 시각에서 세계사를 서술한다는 야심찬 기획을 표방하는데, 지금까지의 세계사가 유럽중심주의 역사라면 자신의 작업은 그에 도전하는 ‘인류중심적’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그간의 세계사 인식에 스며 있는 ‘서구 대 나머지 타자’의 구도를 벗어나 전지구적 세계체제 안에 유럽을 설정하는 한편 유럽중심적인 역사학에서 과소평가되어온 아시아의 역사적 위상을 복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프랑크가 제시하듯, 유라시아 세계 안에서 유럽의 위치를 상대화시켜보자는 인식은 분명 과도한 유럽중심 서술에 대한 바로잡기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간 역사인식에서 망각되거나 시야에서 제쳐진 비유럽 지역사들을 복원해 균형잡힌 세계사를 재구성하는 것 또한 소중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리오리엔트』에 제시된 대안적 역사상이 과연 전지구를 범위로 하는 인류중심적 전체사를 지향한다는 목표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더 나아가 유럽중심주의적 역사학을 해체한다는 기치 아래 새로운 유행처럼 등장한 여러 시도에서도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어 보인다. 프랑크가 제시하는 세계사 재해석은 기존 발상의 근본적 전환에 대한 요청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근래의 경제사 연구성과를 활용한 많은 재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둘러싼 논란이 있으며 그 쟁점을 두루 검토하려면 전문적인 연구성과들을 섭렵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구체적 논점에 대한 쟁론은 각 방면의 전문가들의 몫으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리오리엔트』의 전체적 역사인식틀에 촛점을 맞추어 몇가지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려 한다.

 

 

2. 『리오리엔트』와 유럽중심주의

 

『리오리엔트』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근대 초기의 세계경제사를 재구성해보려는 시도이다. 프랑크가 무엇보다 비판하는 역사학적 통념은 자본주의적인 세계경제가 근대 초기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아시아는 19세기에야 이 체제에 통합되었다는 인식이다. 그는 이런 통념이야말로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 신화의 일부라고 공박한다. 유럽중심의 근대 세계시장이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유라시아의 교역망을 통해 방대한 세계시장이 이미 가동되고 있었고, 근대 초에 해당되는 16세기에도 유럽을 주변부로 삼는 유라시아 세계시장에서 중심부는 아시아였다는 것이다. 거의 5천년에 걸쳐 유라시아(혹은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전지구적 차원의 세계경제가 성립해왔으며 광범위한 원거리 무역망을 통해 작동해온 이 체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세계체제’(월러스틴의 ‘world-system’과는 다른 전지구적 ‘world system’)의 작동과 기능을 보는 전지구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크에 의하면 1400(때로는 1500)~1800년 동안 근대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특히 중국에 있었고 유럽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아시아에 빌붙어 있는 존재였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시장경제를 주도하고 세계경제를 움직였던 중국은 생산력·인구성장·생산성·기술 등 모든 면에서 우월했으며 이런 상황이 적어도 1800년까지는 계속되었다. 1500년 이전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아메리카 정복 이후 노예무역과 은(銀)의 탈취로 아시아중심의 세계경제에 겨우 동참할 여력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아메리카의 정복에 따라 유럽중심의 세계경제가 형성되어 팽창했다는 것도, 유럽이 세계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도 전적으로 허구라는 것이다. 아메리카 정복에 따른 유럽의 팽창 자체가 15세기초 이후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 팽창기의 부수적 결과이며, 대략 1800년까지 유럽의 팽창에서도 아메리카가 ‘자극’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팽창의 ‘기반’은 유럽보다 부유한 아시아에 있었다(539면).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역전이라는 세계경제의 판도변화는 19세기에야 실제로 가시화된 것이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싸이클에서 하강하고 유럽이 후발주자의 잇점을 살려 신흥 공업경제권으로 떠오르면서 사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유럽은 처음엔 아시아 경제열차의 3등칸에 간신히 탔다가, 이어 한 객차를 차지하더니, 19세기에는 아시아인을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한 것이다. 그 3등칸 표의 구매도 아메리카 정복 이후 유입된 은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오늘날 아시아에서 역사의 재반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서양은 기껏해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200년간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을 우위에 놓는 세계사 해석이 지배적인 것은 바로 이 200년 동안 우리 모두가 유럽 사회과학자들이 발명해낸 유럽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세계와 구별되는 유럽의 독특성이나 예외성을 강조하는 기존 통념이야말로 이같은 유럽중심주의의 전형이다. 그리하여 프랑크는 자본주의가 유럽의 경제적 성공이나 세계제패를 설명해주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유럽을 만들었다”(58면)는 관점에서 굵은 줄거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가고 있지만 워낙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하다보니 『리오리엔트』는 세부사실·통계자료·추론의 근거에서 숱한 논란거리를 낳을 수밖에 없다. 프랑크의 입론은 사실상 최근 역사학계의 연구성과,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사 연구의 성과에 힘입은 바 크며, 이를 토대로 대안적인 세계사의 윤곽을 제시하는 점에서 유럽중심주의 역사인식의 탈각을 꾀하는 뜻깊은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및 다른 지역을 아예 시야에 두지 않는 타성적인 역사서술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에 공감을 갖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시아가 지나치게 피동적으로 취급되어 있다는 문제제기는 종종 나온 바 있다. 가령 카와까쯔(川勝)가 유럽적 세계체제가 형성되는 주요 역동성이 유럽과 아시아의 원거리 무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3

하지만 근대 초 아시아의 경제력과 농업생산력이 유럽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유럽이 1800년 이후에 더 빠르고 더 맹렬하게 경제성장을 했을 뿐 산업혁명 이전에 “세계무역의 해상로를 통제한 덕분에 전지구적 세력균형이 이미 유럽에 유리하게 급격히 기울었다”4는 견해를 지지하는 논자들도 있고, 전근대 시대 아시아 경제의 활력 내지는 우위 이론이 어느 정도까지 적절한지는 지금도 논란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시아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것과 아시아가 긴밀히 상호관련된 유라시아 단일체제 안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전자를 지지하면서 후자에 반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인구동향이나 농업생산성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18세기 이전 아시아경제의 비교우위는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단일한 세계경제의 실재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프랑크가 말하는 유라시아 세계시장에서도 각 지역권을 연결짓는 연결망의 긴밀도나 통합 정도는 여전히 쟁점이 될 수 있다. 『리오리엔트』의 주요 비판대상인 월러스틴의 주장도 근대 초 유럽적 세계체제(world-system)를 논할 때 아시아는 아직 그 체제 밖에 있었다는 것이니만큼, 유럽적 세계경제의 존재를 인정하는 주장 자체는 아시아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하는 것과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초의 세계사에서 유럽중심이냐 아시아중심이냐의 쟁점이 아니라, 프랑크가 말하는 것처럼 이 시기 유럽의 팽창에 아시아가 더 중요했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월러스틴처럼 “자본축적을 이야기하든 정치구조·가치체계의 발전, 혹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야기하든 유럽에 이 시기 아시아는 확실히 아메리카보다는 훨씬 덜 중요했다”5고 볼 것인가의 쟁점이 문제가 된다.

프랑크는 아시아-유럽 간 원거리 무역망의 존재로 상호관련성을 설명하지만 실제로 그 상호관련을 16세기 이래 서유럽-동유럽-아메리카의 연결망과 같은 차원의 것으로 보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5천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는, 사치품이 주종인 원거리 무역망이 과연 해당 지역의 착취방식 및 생산체제간의 밀접한 관련성이나 특정형태의 노동분업을 규정했던 16세기 세계경제의 연결망과 같은 수준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난점을 피해갈 길이 하나 있을 수는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생산양식이니 자본주의니 하는 사회과학의 통상적인 개념들을 폐기해버리는 길인데, 프랑크는 바로 이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런 개념들은 세계경제를 분석하는 데는 아무 쓸모없는 개념들이고, 오히려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세계경제에서는 온갖 유형의 생산관계들이 세계 전체의 차원뿐 아니라 어느 한 ‘사회’ 안에서도 광범위하게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유념한다면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유럽을 만들었다”는 프랑크의 주장에는 경청해야 할 대목이 있는 한편 경계해야 할 면도 있다. 우선 유럽이 그리스, 로마에서 르네쌍스로 이어지는 자기 완결적 발전을 통해 독자적으로 근대문명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 유럽의 흥기를 경제사적으로 장기적인 세계경제의 구조적 흐름을 타면서 모종의 계기를 포착한 데서 보자는 취지 자체는 수긍할 만한 것이다. 프랑크의 입론은 그간 세계사의 낯익은 유럽중심주의적인 가정, 근대의 특성이 유럽 내부에서 출현하여 열매를 맺었다는 가정을 전복시킨다. 그런 가정에서는 근대가 유럽과 비유럽 지역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럽 내부의 결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비단 경제사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사회과학의 인식틀 자체가 특정 가치나 제도 들이 왜 근대 서구세계에 출현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왜 불가능했는가 하는 식의 질문체계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블라우트가 말한 타자의 ‘공백의 신화’(myth of emptiness)도 이를 지칭한 것인데 애당초 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를 지워버린 신대륙 ‘발견’이란 용어가 주민집단의 공백을 이미지로 구성해냈듯이 유럽의 세계인식에서 비유럽은 시야에서 배제되어 있다가 유럽과 관련될 때만 잠시 나타나는 피동적 존재로 구성되었다.6 유럽 내부에서 자라난 근대성이 전지구로 전파되었다는 소위 ‘확산론’은 이러한 유럽중심적인 사고의 전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성의 역사는 서구의 내적 논리에 따라 자기완결적으로 씌어질 수 없다. 이 점에서 『르네쌍스의 어두운 면』의 저자 미뇰로의 지적은 함축적이다. 그는 근대성에 관한 버먼(M. Berman)의 잘 알려진 저서인 『근대성의 경험』에는 근대성의 “한층 어두운 면, 전세계의 남녀가 공유하는 공간과 시간, 말과 글쓰기의 각기 다른 경험들이 없어 아쉽다”고 평하면서 “우리 인간은 모두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모든 이가 같은 영토에 사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7 근대성을 순전히 유럽적인 것으로 설정해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가정은 그간 타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두쎌이 적확히 표현했듯이 “유럽의 근대성이란 독립적이고 자기생산적이고 자기지시적인 체제가 아니라, 세계체제(world-system)의 일부이며 사실은 그 중심인 것이다.”8

하지만 프랑크가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데는 유럽이 자본주의를 주도했음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곧 유럽중심주의라고 굳게 믿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의 근대세계 정복을 냉엄한 사실로 인정하면서, 유럽이 자본주의의 착취적 성격과 형태, 작동방식을 형성해내는 데 주역을 담당했다는 뜻이라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의롭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라면, 그것을 과연 유럽중심주의라 치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동시대의 다른 체제나 문명을 파괴하는 데 막강했고 세계의 어떤 문명이나 체제도 여기에 대항하지 못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관철된 유럽중심 자본주의의 세계제패야말로 근대가 그 이전 세계, 즉 다양한 문명들이 느슨한 관계 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하며 부분적으로 의존 또는 침투하던 세계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구적 지평에서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작업은 세계사 인식의 지리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세계의 특성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거기서 비롯된 해방과 억압의 이중성을 직시하는 가운데 유럽중심의 불평등한 세계를 역사적으로, 이론적으로 넘어서는 복합적인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유럽중심주의 극복이 실제로 유럽중심적 세계에서 성취한 자산과 가능성을 활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현실 자체가 이 작업의 복합적인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3. 자본주의와 근대성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근대 특유의 성격에 대한 물음은 19세기 이래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중심의제였다. 하지만 프랑크에게는 그 물음 자체가 유럽의 성공요인을 자본주의에서 찾고 그 예외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유럽중심주의적 물음일 수밖에 없다. 그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뿐 아니라 봉건제·발전·근대화·종속 등등 그간 사회과학이 활용해온 개념들은 모두 세계사를 분석하는 데 아무 쓸모없는 공허한 범주들이라고 비판한다. 다양한 생산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현실에 자본주의니 봉건제니 하는 잘못된 명칭을 붙임으로써 유럽의 예외성에 과도한 비중을 두게 되며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지구적 세계체제(world system)의 구조와 과정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508~16면).

프랑크의 『리오리엔트』가 주요 표적으로 삼는 자본주의관은 다른 무엇보다 월러스틴의 독특한 자본주의관이다. 월러스틴은 사회과학계 주류에서 상정하듯이 시장경제라든가 임노동, 상품생산, 자유경쟁, 자본축적과 자본가의 존재 그 어느 것도 다른 체제와 구별되는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보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다양한 역사적 체제들에서도 광범위한 상품생산, 이윤추구,생산자와 상인들, 그리고 임노동자들까지 다 존재했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세계체제가 다른 체제와 다른 점은 그저 자본축적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끊임없는’(endless) 자본축적이 체제의 주된 동력이 되었다는 데 있다.9 하지만 프랑크는 월러스틴이 지목하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과정 자체, 더 나아가 시장경제, 헤게모니 경쟁, 주기적 변동, 계서제(階序制) 모두 오래 전부터의 단일한 유라시아 세계체제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16세기든 어느 시기든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나 ‘발생’ 같은 것은 없었으며 존재한 것은 세계체제의 연속성 아래서의 경제의 주기적 변동이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기원을 규명하려는 근대 역사가들의 부단한 탐색은 비금속을 황금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연금술사의 집착과 다를 바 없으니 “자본주의의 뿌리와 기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며, 보편사의 현실로 우리의 탐구방향을 돌려야 한다”(510면)는 것이다. 자본주의 같은 건 아예 없으며, 혹 있다 해도 우리가 늘 살아왔던 체제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근대 특유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보편사의 관점이 각 시대의 생활양식을 비롯해 가치관과 문화 등 질적으로 다른 것들을 판별하는 원근법을 어떤 식으로 가질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역사현실에서 동일성과 차이, 연속성과 변화를 판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결국 범주의 현실 설명력과 실천력일 텐데, 프랑크의 이론을 따르면 유럽중심적인 세계사는 혹 해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의 특질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의 모색은 불가능해진다. 그가 상정하는 단일한 전지구적 세계체제는 단수의 체제이기에 그 존속기간은 지구의 파멸 같은 것이 없다면 엄청나게 길 것이다. 따라서 『리오리엔트』에서 시대구분의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적 성장과 쇠퇴의 싸이클, 헤게모니의 이동말고는 없다. 끊임없이 변전하는 사회적 관계가 재구성되면서 특정한 역사적 체제가 싹트고 쇠하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능동적 대처를 사고하는 것 역시 역사학의 소임일진대, 그의 이론에서는 오늘날 세계자본주의의 성장주의적 전망과 다른 대안적 체제에 대한 상상과 실천적 문제의식이 자리잡을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16세기든 어느 싯점이든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종말에 이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월러스틴이 냉소적으로 비꼬듯이,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저항해 시위하는 무식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망상이라고 일깨워주어야 한다.10

유럽의 예외성을 부정하는 프랑크의 전지구적 세계체제론은 결국 역사의 질적 새로움을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S. 아민의 말대로 영원한 순환으로서의 역사가 남을 뿐이다.11 이 지구적 세계체제에는 온갖 유형의 생산관계들이 혼재해 있으므로 특정사회를 구분하는 구분선이란 이런저런 경제성장 능력에 달려 있다. 근대와 근대성, 자본주의의 문제가 모두 의제에서 밀려나고 경제성장과 공업화가 핵심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프랑크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합창에 합류한 것 같다는 G. 아리기의 비판도 그다지 과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12 끊임없는 자본축적, 헤게모니 경쟁, 주기변동, 계서제 등은 세계경제에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니, 기껏 문제의식이라고 한다면 아시아가 1800년 무렵까지 세계경제를 주도해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의 역학구조가 아시아 쪽으로 유리하게 재편되리라는 것이다.“과거가 경제발전의 단단한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면 아시아의 재부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전망 외에, 1800년 무렵 유럽이 NIEs로 부상했듯이 이제 다시 동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26, 282, 416면). 근대 이전에도 언제나 있었다는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거해 아시아가 다시 부상해 엄청난 성장경제권이 된다면, 그것이 헤게모니의 주기적 교체가 될지, 아니면 지구 자체가 감당 못할 생태계 파괴로 예기치 못한 파국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세계사 인식에 전지구적인 관점, 전지구적인 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를 감당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숱한 함정에 빠지기 쉬운 법, 야심찬 문제작에 틀림없는 『리오리엔트』 역시 이러한 함정을 피해가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심적 역사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랑크가 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전지구적 불평등에 대한 물음도, 생명친화적인 대안적 체제에 대한 바람도 제쳐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자기의 작업이 세계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교류하며 공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548면) 그 역사인식 틀의 내적 논리로 볼 때 그에 관한 실질적인 전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근대세계에 독특함이 없고 그것이 역사상 으레 있어온 것이라면 지금의 정황으로 볼 때는 생태계 파괴, 빈부격차 및 불평등의 심화, 기근의 확대 등은 계속 진전될 것이고 대안적인 다른 역사적 체제의 발생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의 세계사가 심상치 않은 국면에 다다랐다는 인식, 이제 미국이 쇠퇴하더라도 장기적 경기순환주기나 헤게모니 국가의 교체가 더이상 정상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에서 프랑크의 논의가 이처럼 무감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유럽중심의 역사를 해체한다는 것이 유럽의 독특함을 부정하는 가운데 근대 특유의 성취와 모순, 위기에 눈을 감고, 오히려 또다른 지역중심주의에 안주하고 만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4. 동아시아의 근대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에서 프랑크를 비롯한 최근 역사학 연구동향을 원용해 동아시아 근대를 재검토하고자 하는 미야지마의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야지마는 21세기 아시아의 장래에 대한 프랑크의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미래 세계상이 불투명한 만큼 앞으로 근대 문제, 국민국가의 문제, 국제질서의 존재상태를 재검토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하지만 근대를 재구성한다는 그의 구상은 프랑크의 역사인식 틀과 맥락이 비슷해 보인다.

미야지마는 기존 세계사 교과서에서 16~18세기에 대해서도 세계사의 주역을 유럽에서 찾고 있는 점을 비판하는데 이 점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사의 근대를 ‘웨스턴 임팩트’,19세기의 소위 ‘개항’ 이후로 설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근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는 개항을 기점으로 잡을 경우 유럽에서는 16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근대가 일본에서는 19세기 중엽에 시작된다고 하는 괴리가 생기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면서, 아시아가 16~18세기 세계시장의 중심일 뿐 아니라 “그러한 경제력을 가능하게 한 정치·사회체제까지도 포함해 동아시아가 유럽보다 우수했다”고 본다면 무언가 발상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시한다.13 얼마 전 한 심포지엄의 발표문에서도 그는 “근대는 무엇보다도 세계사 차원에서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또 말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근대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청한다.

 

혹은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에서는 유럽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16세기 이후부터 적어도 18세기말까지는 서구보다는 동아시아 쪽의 경제성장이 앞섰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많은 연구자들도 이를 입증하는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종래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근대로 자리매김되어 온 16~18세기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14

 

그리하여 미야지마가 제시하는 새로운 가설은 유라시아 규모의 세계경제 틀에 내실이 형성된 16세기를 근대의 기점으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가 포함되는 세계사 차원의 근대론으로서, 세계경제의 형성을 추진시킨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대륙의 압도적인 부(富)였다는 프랑크와 같은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초기 근대가 16세기에 시작된다고 한다면 19세기 중엽부터 가해진 이른바 서양의 충격은 제2단계 근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15

근대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글에서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단 한번도 안 나오는 데서 보이듯이, 미야지마 역시 근원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요한 것은 이렇게 패러다임을 전환해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지, 또 16세기부터 지금까지의 동아시아 근대를 특징짓는 근대성은 무엇인지 하는 문제이다. 아직은 시론적인 성격의 글이라서 전체 사고틀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16세기 이후의 연속성이 상정됨으로써 2단계의 동아시아사회에서도 초기 근대의 각인이 강하게 새겨졌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각인에서 비롯되는 동아시아의 특징을 구미에 대한 후진성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는 점이 한층 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16 그렇다 하더라도 “근대는 무엇보다도 세계사 차원에서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또 말해야 한다”는 자신의 관점을 철저히 고수한다면, 16세기를 동아시아의 근대 기점으로 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유럽보다 앞섰다는 정도의 근거가 아닌 질적 차원의 변화를 구명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16~18세기가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으로도 변동기였음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제2기의 근대의 성격과 동질적인 그 무엇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야지마가 강조했듯이, 근대라는 용어 자체가 지금의 삶의 방식과 직접(상대적이긴 하나) 연관되어 있는 시대를 뜻한다고 할 때,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 세계시장으로의 타율적 통합이 아닌 별도의 기준으로 근대와 근대성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필자로선 의심스럽다. 물론 타율적 통합이라 해서 그것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전근대의 사회상황이 타율적 통합 이후에도 각인되어 있다는 인식을 마다할 이유는 없으며 거기서 오히려 다양한 모습과 복합성을 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근대의 독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유럽중심의 자본주의세계체제가 전지구를 통합해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으며 이는 우리 시대의 됨됨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작업으로 생각된다. 자본주의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프랑크의 유라시아대륙의 세계경제론으로는 오히려 미야지마가 논하는 “세계사 차원”의 근대와 근대성을 구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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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re Gunder Frank, 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이희재 옮김 『리오리엔트』, 이산 2003.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때는 괄호 안에 면수를 표시할 것임.
  2. 조효제 「동양중심 재구성한 세계체제론」, 『한겨레』 2003년 3월 1일자; 이성형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까치 2003, 158~59면, 310면 참조. 이민호의 「세계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역사비평』 2002년 여름호) 역시 프랑크의 이 책에 대해 아주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3. 사또시 이께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와 동-동남아시아의 역사」, 최원식·백영서 엮음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19-20세기』, 문학과지성사 1997, 98~100면.
  4. 에릭 밀런츠 「유럽과 중국의 비교사」,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282면에서 재인용.
  5. I. Wallerstein, “Frank proves European Miracle,”Review, no.3, Fernand Braudel Center 1999, 370면.
  6. J. Blaut, The Colonizer’s Model of the World, Guilford Press 1993, 1장 참조.
  7. W. D. Mignolo, The Darker Side of the Renaissance,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5, 317면.
  8. E. Dussel, “Beyond Eurocentrism:The World-System and the Limits of Modernity,” in F.Jameson & M.Miyoshi (eds.), The Cultures of Globalization, Duke University Press 1998, 3~4면.
  9. 월러스틴의 자본주의관에 관해서는 유재건 「맑스와 월러스틴」, 『창작과비평』 1996년 봄호 317~28면 참조.
  10. I. Wallerstein, 앞의 글 356면.
  11. S. Amin, “History Conceived as an Eternal Cycle,” Review, no.3, Fernand Braudel Center, 1999, 291~326면.
  12. G. Arrighi, “The World According to Andre Gunder Frank,” Review, no. 3, Fernand Braudel Center, 1999, 346면.
  13. 미야지마 히로시 「근대를 다시 본다」,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269~70면, 279면.
  14. 미야지마 히로시 「동아시아의 근대화, 식민지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 자료집』,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역사포럼 공개토론회, 41면.
  15. 같은 글 41~42면, 47면.
  16. 같은 글 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