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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참된 시정신을 찾아서

이오덕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권태응 동요 이야기』, 소년한길 2001

 

 

김제곤 金濟坤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회원 jegon@chollian.net

 

 

1977년에 나온 이오덕(李五德) 선생의 『시정신과 유희정신』(창작과비평사)은 분단 이후 우리 아동문학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일깨우고 개선하려는 비평서였다.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책이 지닌 의미는 유효한 바가 적지 않다.

그 책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채 현실을 등지고 이른바 ‘짝짜꿍’ 동요만을 양산하던 동시단에 내린 엄한 채찍인 동시에 우리 아동문학이 헤쳐나가야 할 길을 또렷하게 제시하는 길잡이 구실을 하였다. 그 책이 나온 뒤로 적어도 아동문학에 관한 한 그보다 더 적절하고 의미있는 시론집이 나온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그 책에 기대어 지나온 길을 반성하고 앞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직도 게으른 우리 아동문학인들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차에 우리는 또 한번 선생에게 무거운 빚을 지게 되었다. 바로 얼마 전 나온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는 책 때문이다.

책의 부제가 이미 말해주듯 이 책은 ‘권태응 동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다시피 권태응(權泰應, 1918〜1951)은 해방기에 활동하며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동요 「감자꽃」을 지은 시인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병마에 시달리다 짧은 생애를 마감한 시인이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 아동문학사에서 빛나는 전통을 세운 시인으로 손꼽힐 만하다. 이오덕 선생은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에서 바로 이 시인이 품고 있던 귀한 시정신을 조곤조곤한 이야기로 풀어 보이며, 오늘날 문학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글쓰기 태도를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은 권태응의 동요가 가지는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다. 1부에서 우선 맛보게 되는 것은 시인이 지녔던 글쓰기 태도와 시정신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권태응 시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농사꾼과 농사꾼 아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유일한 시인이다. 책머리에 지은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농사꾼들의 삶과 마음, 농사꾼 아이들의 세계를 이런 정도라도 보여주고 노래해 보인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아무도 없”(7면)다고. 1부는 말하자면 그런 지은이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지은이는 한편 한편 작품을 예로 들면서 농사꾼의 삶을 ‘정직하게’ 그린 시인의 미덕을 꼼꼼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113-3762부에 실린 글은 ‘자연’ ‘나라와 겨레’ ‘사람다운 마음’을 주제로 작품을 나누고 그것에 숨어 있는 순정하고도 올곧았던 시인의 마음 바탕을 열어 보여준다. 살기 좋은 시대가 아니라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시대에 건강한 몸으로가 아니라 병들어 죽어가는 몸으로 시인은 그 누구보다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삶,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삶, 인간다운 따스한 마음씨를 헤아리는 삶을 시 속에 담으려고 애썼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1,2부가 시의 내용에 대한 글이라면 3부는 시의 외형에 관한 글이라 할 수 있겠는데, 지은이는 이곳에서 권태응 동요 속에 온갖 형태로 나타난 운율, 우리말의 보고라 할 만한 시어들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덕들을 자상하게 지적해주고 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그런 미덕과 아울러 ‘옥에 티’라 할 수 있는, 시 몇편에 드러난 잘못된 말법, 상투와 통속으로 떨어진 내용과 표현을 어김없이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지은이는 시인이 남긴 짤막한 산문에 대한 해설과 시인의 연보를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선 확인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권태응 동요가 지닌 참다운 시정신이다. 권태응 동요의 이런 시정신은 농사꾼들의 삶을 정직한 태도로 바라보려는 마음과 그것을 깨끗한 시어로 담아내려고 한 자세,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시인 권태응의 미덕일 뿐만 아니라 지은이 스스로가 평생에 걸쳐 가꾸어온 글쓰기 정신과 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은이는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통해 일찍이 우리 아동문학이 나아가야 할 올곧은 길을 제시했을뿐더러, 『일하는 아이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들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글쓰기 교육을 앞장서 실천해오고 있다. 또한 『우리말·글 바로 쓰기』를 통해 줏대없는 언어관과 비뚤어진 글쓰기 행태로 자꾸만 오염되어가는 우리말·글을 바로 세우기 위한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는 우리 문학과 교육 그리고 겨레의 말·글에 대한 그의 철학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라 할 만하다.

지은이는 오늘날 우리 농촌이야말로 ‘소설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문학인들이 이것을 쓰려고 하지 않고 “글감을 찾아 아프리카로 가고 남미로 가고 인도로 유럽으로 중국으로 가는 얼빠진 노릇”들을 하고 있다고 일갈한다(7면). 또한 권태응의 대표적인 동요 「감자꽃」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우리 평단이 “농촌 아이들의 삶의 현실, 삶의 체험을 떠나 방안에서 머리로만 생각하여 그 시를 엉뚱한 관점으로 해석해왔다”고 공박하고 있다(92면). 이를테면 이러한 비판은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일뿐더러, 그가 일관되게 지녀온 글쓰기 정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새삼 해방기 동요시인 권태응의 시정신에 감복했으며, 그릇된 글쓰기 버릇에 물든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다만 몇가지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권태응이 깨끗한 우리말로 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를 쓰게 되기까지 그를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다. 권태응이 탁월한 시정신을 지니게 된 것은 다만 그의 타고난 재능과 자질 때문이었나? 해방기 그의 동요는 구전동요와 일제시대에 나온 창작동요·동시 들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았겠는가? 그런 자상한 탐색이 좀더 곁들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