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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한국대중음악상에 바란다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김지영 金知永
한국일보 기자 koshaq@hk.co.kr
3월 17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KMA) 시상식이 열렸다. 상의 제정소식과 수상자들의 면면, 그리고 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잇따라 접하면서 한국대중음악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연대와 문화일보가 공동주최한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해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의 그래미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김창남(金昌南)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17인의 선정위원회가 ‘올해의 앨범’ 등 14개 부문 후보를 발표, 온라인투표와 합산해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의 앨범은 ‘더더’의 「The The Band」, 올해의 노래는 ‘러브홀릭’의 「Loveholic」, 올해의 가수는 휘성(남)·이상은(여)·빅마마(그룹), 올해의 신인은 정재일, 최우수 록음악은 코코어, 최우수 힙합·댄스는 데프콘, 최우수 R&B·발라드는 윤건, 최우수 크로스오버는 나윤선, 올해의 영화·드라마 음악상은 「스캔들」(이병우), 올해의 레이블은 플럭서스(Fluxus), 공로상은 이정선, 선정위원회 특별상은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과 전경옥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이전에도 한국대중음악에 관한 상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방송 3사가 연말마다 거창한 행사를 열면서 주는 상이다. 한국대중음악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상들은 대단히 폐쇄적이어서 상을 주는 범위와 대상이 명백하게 제한되어 있다. 물론 음반판매량이나 팬들의 투표 등도 하나의 기준이 되지만 상을 주는 측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나, 즉 TV출연 여부와 정도가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상이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이해관계가 없을 때 권위와 박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대중음악은 기형적으로 TV의존도가 높다.TV가 음악을 전달하는 여러 매체 중 하나가 아니라 TV에 나와 어떻게든 얼굴을 알려야 비로소 음반이 팔리는 식이다. 때문에 한때 TV출연은 곧 음악성을 포기하고 상업성을 좇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극단적인 이분법이 지금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다.TV에 대한 기형적인 의존은 TV의 구미에 맞는 음악의 양산과 방송의 주 시청자인 십대의 시장 장악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의 다양성을 가로막았고 몇몇 다른 요인과 결합해 음반시장에 극심한 불황을 불러왔다. 방송사가 주는 상은 이러한 구조의 상징적 의례와도 같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대중음악상의 제정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진작 이런 상이 있어야 했다. 처음부터 방송사의 가요시상식에 대한 대안시상식으로 논의가 시작된 한국대중음악상은 대중음악이 단지 소비자와 매체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대중문화의 한 영역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오직 음악 자체만을 평가하고 그중 최고를 가려 상을 주겠다는 것이고,최소한 취향에 관계없이 다수가 결과에 동의하고 인정하는 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제1회의 수상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수 위주인 방송사 시상식과 달리 올해의 앨범과 노래를 따로 두어 작품을 강조했고 그 기준은 음악성이었다. 올해의 앨범 「The The Band」는 머리곡을 포함해 수록곡 전부가 고른 완성도를 보였고, 올해의 노래 「Loveholic」역시 멜로디와 편곡, 보컬 모두 훌륭하다는 점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의 가수(여) 이상은은 음악을 추구하는 진지한 성찰이, 올해의 신인 정재일은 음악에 대한 고민과 깊이가 기성 가수들에게 충격을 줄 만했다는 평이다. 장르별로는 장르의 특성을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했는지에 따라 수상자가 가려진 것으로 보인다. 방송에서 외면받고 있는 밴드가 수상자의 다수를 차지한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왜 이 팀이냐”는 몰라도 “어떻게 이런 팀이냐”는 소리는 절대 나올 수 없을 만큼 음악성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음악인’들이다. 이런 이들을 가려내고 상이라는 형식으로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한국대중음악상은 분명 한국대중음악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은 몇가지 문제를 드러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대중음악상이 방송사의 가요시상식에 대한 역편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수상자들 중 이른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는 휘성, 빅마마 정도다. 대중에게 친숙한 가수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이 음악상 역시 한국대중음악이 처한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또는 다른 방향에서 이러한 이분법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한국대중음악이 주로TV출연을 기준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는 것은 분명하지만,적어도 ‘한국의 그래미’가 되려는 상이라면 둘 다를 아울러야 하리라 본다. 주류에 대한 대안으로 비주류를 택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음악만 있고 대중은 없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음악전문가가 거의 없으며 또 남의 음악을 평가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풍토이지만,17명이란 심사위원 숫자는 1년 동안 발표된 모든 음악을 심사하기에는 너무 적다. 소수에 의한 심사는 개개인의 주관적 잣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공정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평론가나 전문가의 평가와 대중의 기호 사이엔 어느정도 거리가 있게 마련이고, 특히 한국처럼 주류와 비주류가 극명하게 나뉘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 대중의 온라인투표를 실시했지만 이 문제를 온전히 보완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다. 이를 조율하고 상의 성격을 잡아가는 것이 앞으로 주최측이 할 일이라고 본다.2회부터라도 선정위원을 보강하고 그래미상 등 외국 사례를 연구, 응용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주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상이라면 상의 성격과 취지에 공감하는 대중음악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정석이다. 당장 그럴 만한 단체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또 처음인만큼 언론사와 공동주최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타사 사업에 인색한 우리 언론의 관행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실(失)이 더 많을 수 있다.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관련기사만 보더라도 문화일보와 다른 언론사 사이에는 양적·질적 차이가 꽤 심하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더 많은 음악을 대상으로 하며 여러 매체를 전략적으로 대할 때 한국대중음악상은 진정 그 이름에 걸맞은 관심과 권위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1년 뒤에는 수상자의 기쁨과 지켜보는 사람들의 인정이 배가되길 바란다.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