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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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ppp337@hanmail.net

 

 

 

겨울 둥지

 

 

1

 

지렁이처럼 마른 손으로

서로를 꼬옥 부둥켜안은 까치집,

세상을 둥글게 내려다보고 있다

 

 

2

 

포플러나무 위로 눈 내린다

야근이 없어진 귀금속공장 정문 앞에

보름달 대신 빈 까치집이 멀겋게 띄워진다

반지를 세공하다 새벽녘에 지친 김씨,

힘 좋게 오줌싸다가 올려다볼 일도 없는데

저만 혼자 떠 있다

마구 파고드는 송곳바람

힘겹게 힘겹게 참아내면서

 

눈이 멈춘 휴일 아침

빈 둥지는

부화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가

공룡알처럼 큰 알을 깊게 품고 있다

 

어미까치는 뵈지 않는데

햇살에 눈부신 흰 껍질이 깨어진다

후드득,

포플러나무 밑동을 밟는 겨울의 태동

 

 

 

민둥머리새

 

 

어디서 굴러먹다가

강변으로 터를 옮겼는지 민둥머리만 반짝였다

홍수가 시작될 때쯤부터 날아들기 시작한 녀석들은

강물 일렁이는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

볕이 좋은 날은 도란도란 모여 해바라기를 했다

그러다가 햇발이 단걸음에 산을 넘어가고 나면

검게 그을린 몸을 뉘어

좁쌀 같은 별을 앞다투어 쪼아댔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그 녀석들은 비가 오는 날에야

빗방울에 뭉툭한 부리를 닦는 정도였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조차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을 뿐

날개를 움직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듬성듬성

뿌리를 뻗은 이불 같은 갈대가 없었다면

녀석들은 진작에 얼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강변에 썰매를 타러 온 몇몇 아이들이

녀석들을 발견하곤

살얼음이 낀 강으로 휙휙, 날려보냈다

녀석들이 휘이잉휘이잉 울며 살얼음을 치고 날아갔다

그랬지만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조금 전에 날려보낸 것이

민둥머리새라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날개도 없이

살얼음 위에 둥둥 떠 있는 저 민둥머리새들,

봄이 오면 하구로 하구로 물살에 떠밀려가다가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좀더 매끈해진 민둥머리를 내밀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선물할 민둥머리새 한마리를

바지주머니에 넣고 강변을 벗어난다

 

 

 

싸라기밥풀

 

 

싸라기눈이 윙윙거리다 닭장 속으로

주걱의 밥풀처럼 달라붙는다

숯검정 같은 오골계 두 마리가

진짜 싸라기밥풀인 줄 알고

허겁지겁 떼어먹는다

별똥별 주워먹으러 강길을 거슬러가다가

긴 해 허기지게 떼어먹던 나처럼

 

그래,

그 싸라기밥풀 눈 더 떼어먹으렴

별로 손해볼 건 없잖아?

뭔가를 굳게 믿고

육신을 바삐 움직일 때가 좋은 법이지

물먹는 셈이지만 어쨌든

허기진 배는 채울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