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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시우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종이거울 2003

인간은 작은 별이다

 

 

소광섭 蘇光燮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kssoh@phya.snu.ac.kr

 

 

붓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들이 별을 노래했으며, 시인이 아니라도 밤하늘에 쏟아지듯이 빛나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우주의 신비에 깊은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이같이 별은 감성의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또한 지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과학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근대과학의 원조는 천문학이다. 별을 헤던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행성들의 운동을 관찰해 규칙을 발견하고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의 천문학체계를 수립했다. 이어 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케플러―갈릴레오―뉴턴에 의한 만유인력의 운동체계가 확립되어 근대과학의 시대가 열린다. 현대의 천문학은 전우주의 시간, 공간의 대파노라마 속에서 태어나고 만나고 멸해가는 별들의 일생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예측하는 최첨단 과학분야가 되었다. 이처럼 별은 인간지성(과학) 발달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

별이 인간의 감성과 지성에서만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라 영성의 측면에서도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별을 보고 신화를 만들어냈던 옛 사람들은 이미 별에서 삶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절의 한쪽에 모셔 있는 칠성각은 전통과 미신의 잔재가 아니라 하늘의 별로부터 삶의 근원적 원리에 관한 메씨지를 전해받던 그 마음이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다. 부처님께서 긴 수행의 정점에서 샛별을 바라봄과 더불어 깨침이 있었음은 우연의 소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나투어진 큰 영성이 전우주와 하나로 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드러남이었을 것이다.

하늘의 별들은 비록 말없이 빛날 뿐이지만 인간 역사의 단순한 배경만은 아니다. 지상의 생태계와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기상의 대변이에 의한 공룡의 전멸은 지구가 큰 운석을 만나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 유럽의 개혁도 작은 규모의 유성들에 의한 기상재해에 그 뿌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을 인간의 삶과 무관한 역학체계로 보고 그 피상적 수량화에만 눈을 돌리기 쉽다. 현대 천문학이 단순한 물질의 과학이 아니고, ‘하늘 금강경’이요 ‘하늘 화엄경’이라고 갈파하는 깊이있고 지혜가 충만한 천문학 안내서인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는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저술이라 하겠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는데, 각기 별의 세계, 은하의 세계와 우주, 태양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현대 천문학이 밝혀낸 하늘의 과학적 사실들을 정확하면서도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전체상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한 점에서 교양과학서로서도 보기 드문 예이다. 곁들여진 사진자료들의 색감과 질도 독자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도표와 그림들도 적절하여 어려운 과학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히 배치했다.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내용만 잘 이해하면 현대 천문학의 전반적인 성과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인데, 교양서적으로 이만큼 전체를 아우르는 책을 쓰기란 쉽지도 않거니와, 실제로 국내 과학저술 중 이만큼 높은 수준의 책도 흔치 않다.

특히 I부 ‘별의 세계’는 이시우(李時雨) 교수의 40년에 걸친 관측천문학자로서의 일생에서 얻어진 전문지식과 수행자로서의 통찰력이 함께 녹아든 압권이라 하겠다.‘별을 보는 마음, ‘별은 어떻게 태어날까?, ‘별도 진화한다, ‘별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하늘의 섭리란 이런 것이다’로 된 각 장의 제목만 보면 마치 별에 관한 통속적 내용에 재미를 적절히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천문학 수준으로도 대학교 고학년에 해당하며, 인간의 삶과 연관지어 과학적 사실을 해석하는 통찰의 측면에서도 불경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제1부 ‘별의 세계’와 같은 통찰과 지혜가 넘치는 자연과학 교양서적은 드문데, 서양의 과학과 동양의 종교철학을 통합해 인기가 있는 교양과학서들은 많은 경우 과학적 내용에서 신뢰하기 어려우며, 상상의 비약이 심한 편이다. 이 책의 저술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의 철저한 학문정신과 수행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히 예불을 올린 후 마음으로 별을 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 머릿속에는 그동안 수집한 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 있다. 이것들을 끌어내어 서로 비교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살펴보고 또 인간세계가 우주법계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39면)

별이 인간의 감성·지성·영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것은 사실 어느정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 또한 별이 만들어낸 것이며, 나아가 인간의 물질적 구성요소 자체가 별과 같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인간의 몸은 흔히 하늘과는 질적으로 떨어진 흙으로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통념인데, 신체를 구성하는 원소를 보면 흙보다는 오히려 별의 구성요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태양과 인간 및 박테리아에서 함량이 가장 많은 원소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 등의 순서로 태양이나 인간 모두 똑같다. 비록 인간과 태양 사이에 이들 원소의 함량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같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태양이 형성된 물질과 같은 물질에서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 물질은 지구에서 온 것인가?

인간이나 박테리아의 구성 성분은 지구의 땅(주로 산소, 철, 규소 등)이나 대기(주로 질소, 산소)의 구성 성분과는 전연 다르다. 이 사실은 인간의 씨앗이 지구의 흙이나 공기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혜성의 성분을 조사해보면 태양의 성분과 같다. 혜성의 본체는 태양계가 형성될 때 생긴 작은 미행성이다. 그리고 행성이나 위성의 표면에는 먼 과거에 미행성들에 의한 충돌 흔적이 무수히 많다. 지구에도 먼 과거에 수많은 혜성 충돌이 있었고 이때 지상에 흩어진 혜성의 잔해물질에서 생명이 탄생되었다. 즉 원시 태양계 물질에서 태양과 행성, 위성, 혜성 들이 생기고 또 이 물질 속에 이미 들어 있던 생명의 씨앗이 혜성을 통해 지구에 들어와서 지상에 생명체가 태어나도록 했다는 것이다.

원시 태양계 물질의 성분은 별이나 성간 물질의 성분과 같기 때문에 결국 우리 인간도 우주 내에서 하나의 작은 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제4세대의 성간 물질에서 4세대의 별, 태양, 인간이 모두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우주에서 제4세대의 별인 셈이다.(262~63면)

 

여기에서 제4세대란 우주의 초기부터 현재의 태양이 생기기까지 네 번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반복이 있었다는 뜻이다. 우주 초기에는 거의 수소뿐이었는데 이들이 자체 중력으로 뭉치어 이곳저곳에 별이 생겼다. 이 별들은 빛을 발하면서 점점 타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탄소, 질소, 산소, 철 등의 무거운 원소들이 생성된다. 그리고 점점 강하게 응축되면서 마침내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때 별을 이루던 물질들이 재처럼 뿌려진다. 이 흩어진 별의 재들이 다시 뭉쳐서 새로운 별을 만드는데 이것이 제2세대의 별이다. 현재의 태양은 이런 과정이 네 번 반복되어 태어난 별이란 것이다. 생물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원소 구성비율로 보건대 지구와 충돌한 혜성의 잔해물질로부터 생명이 잉태되었다고 한다.별은 우리가 바라보면서 느끼고(감성), 생각하고(지성), 깨침을 얻는(영성)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원천임을, 즉 우리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월과 성신은 천지만물의 정령이다’란 선성(先聖)의 말씀이 결코 헛이야기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을 소개하는 흔한 교양서적이 아니다. 과학이 인간의 삶과 정신문화의 일부임을 사실과 통찰력으로 설득력있게 제시한 귀중한 저술이다. 과학은 인간적 인식활동의 소산이며 삶과 연관되어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결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만의 집합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내용으로 국한되었으나, 지상의 모든 과학에 대해서도 인간 정신이 중심이 되는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인간중심의 과학, 사회와 문화의 일부로서의 과학을 전문과학자들이 천착해간다면, 생태계 및 환경문제 등 기계적 과학이 불러온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지혜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