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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신영배 申榮倍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namoo1029@hanmail.net
물혹
부풀어오르는 봄산을 바라보며
그녀를 생각해
자궁 속에 태아와 물혹을 함께 가지고 있는 여자
태아와 물혹은 함께 자라고 있다네
팔과 다리가 생기고 코와 입이 생기고
물혹이 계속 커진다면 태아는 위험하다네
여자는 울고 있네
엄마 뱃속에서
물혹을 안고 놀던 기억
쌍둥이 자매처럼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던 물덩어리
엄마 몸속으로 들어가 찾으면
지금도 물컹물컹 만져질 물혹
엄마는 자궁근종 제거수술을 받으시고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여태 걸어오시네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배
아이가 물혹과 함께 놀고 있어
물혹이 커지고 커져 나는 아이를 지워야 하네
메슥거리는 슬픔 갈아 마시고 아이를 지우네
물혹은 커지고 커져
달을 채우고
봄날 나는
매끄럽게 쑤욱 물혹을 낳고 싶네
시같이 맑은 아이를 한덩이 낳고 싶네
오후 두시
사무실 창문은 너무 높아
책상을 끌고 그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올라서야 해
A4용지 두장만한 창문
밖에는 안테나가 보이고
더 높은 빌딩의 창들이 빼곡하고
굵은 전선이 하나 걸쳐 있어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가
책상 위로 올라가 의자 위로 올라가
힐 위에 기우뚱하게 서 있어
창문에 매달려 있어
더 높은 빌딩의 썬팅된 창들이
그녀가 매달린 창문을 집어삼키고 있어
굵은 전선이 그녀의 가슴을 동여매고
안테나가 그녀의 치마를 찢고 있어
하늘은 보이지 않고 오후 두시
힐 아래 여자들이 힐 위의 그녀를
끌어내리고 있어 안간힘으로 창에 매달리는 그녀
몸이 발개지고 식은땀이 나는 그녀는
여자들이 발밑에 지르는 불을 상상하며
뜨거운 오후 두시
여자들에게 당할 윤간을 상상하며
초조한 오후 두시
여자들과 살이 닿는 방식을 모색하며
사무실 공중에 붕 떠 있는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