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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사이쇼 히로시 『아침형 인간』, 한스미디어 2003
아침형 직장인 되기의 서글픔
김경태 金庚泰
창비 편집부 ima@changbi.com
직장인 김씨가 『아침형 인간』(稅所弘 지음,최현숙 옮김)을 선물 받은 것은 그 책의 유명세가 좀 시들해질 때쯤이었다. 그래도 지난 몇달 동안 그 책에 대해 워낙 여기저기서 떠들어댔던 터라 김씨 정도의 갑남을녀 직장인이라면 ‘아침형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대충은 주워들어 알고 있었다. 사실 김씨는 제목부터 도대체가 맘에 안 들었다. 물론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읽을 생각조차 없었다. 어쩌다 인터넷에서 ‘아침형 인간 되기 커뮤니티’라도 발견하면, 주위에서 그 책을 들고 있는 것만 보면, 아예 대놓고 빈정거렸다. 왜 애꿎은 아침한테 화풀이냐고.
웬만한 실용서는 하나같이 싸구려 처세서라고 깔보는 알량한 지적 허영과, 남들 다 하는 짓은 괜히 하기 싫은 얄팍한 ‘비주류’ 근성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김씨의 무지막지한 거부감은 ‘아침’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숨막히는 건전함, ‘새마을’다움, ‘애국조회’스러움에 있었다. 굳이 아침형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직장을 전전했던 김씨의 지난 5년간 직장생활에서도 아침 하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몇몇 있긴 했다. 새벽같이 회사에 나와 그저 하는 일이라곤 9시 정각에 섬세하게 출근하는 젊은 부하직원을 가자미눈 치켜뜨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밖에 없던 김씨의 상사들이었다. 뭐, 죄다 외로운 인간들이었다.
이 모양으로 심사가 뒤틀려 있었건만, 김씨는 정작 책을 펼치고 나서는 단숨에 읽어내고 말았다. 김씨 자신도 좀 어이가 없었다. 처음엔 무슨 되도않는 소리로 사람들 홀리는지 보자고 건성으로 책장을 후루룩 넘겼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잘난 김씨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솔깃했다. 성공과 건강을 위해 일찍 일어나라. 주제는 간단명료했다. “아침형 인간이 되면 자신의 생활과 인생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신체와 정신이 조화로운 하루, 에너지가 충만한 하루를 갖게 된다. 둘째,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셋째, 긍정적인 생활자세를 갖게 된다. 넷째, 건강한 삶, 장수하는 삶을 누리게 된다.”
흠, 제법 현혹적인걸, 하며 김씨는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은근슬쩍 책을 다시 펼쳐들었을 때는 좀더 구체적인 지침들을 숙지하기 위해서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투기를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 따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아니다. 뭣보다 돈 한푼 안 든단다. 그저 혼자서 일찍 일어나보라는데, 밑천으로 아침만 있음 된다는데, 그러면 성공과 건강이 손끝에 간질간질 잡힐 수도 있다는데, 한번쯤 귀가 쫑긋해지지 않을 직장인이 있을까. 화끈하게 성공하고 오지게 건강해지지는 않더라도, 그 언저리까지 가다가 주저앉는다고 해도 그게 어디냐 싶은 것이다. 책 허리춤에 두른 띠지의 문구처럼 “단지 아침을 바꾸었을 뿐인데…… 당신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가 다가온다!”는데 말이다.
구태여 작정하고 이 책을 비난할 맘은 없어졌다. 어차피 김씨 같은 화이트칼라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애당초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주의적인 사명을 띠고 태어난 기획상품 아닌가. 그러니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벽부터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불평도, 아침이건 저녁이건 사람마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음을 주장하는 어느 소설가의 비판도 이 책이 해명해야 할 몫은 아닌 것이다. 겨우 200면 남짓한 책 한권에다 대고 이 복잡다단한 사회구조의 병폐를 어쩌면 그렇게 쉽사리 민초들의 아침잠과 바꿔먹는지 조목조목 따지는 것도 소용없는 짓이다. 그래봤자 저자는 맑고 티없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을지 모른다. 어쩌라고? 떼돈 버는 투자기법을 치사하게 알려주는 재테크 책이 있듯이, 이 책은 그저 직장인들의 전략적 시간관리용 시테크 책인 거다.
이 책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나니 김씨에게도 에라, 한번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 개조하여 맘잡고 새 인생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불뚝 치밀어올랐다. 김씨가 성공과 건강에 목마른 타고난 승부사라서 그러는 건 분명 아니다. 김씨가 책 속에서 반갑고도 눈물겹게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두 글자였다. 매일매일 자기 맘대로 주무르고 떼었다 붙일 수 있는 뭉텅이의 시간, 바로 내 것의 시간이었다. 딱히 성공과 건강에 인생을 올인할 마음도 능력도 없는 김씨 같은 고만고만한 직장인들에게는 그 여유로운 자기시간이라는 것만큼 절실하고 애틋한 게 있을까. 몇시간만 일찍 일어나면 칭얼대는 가족도, 갈궈대는 회사도 없는 오롯한 내 시간이 생긴다니! (그것도 아침의 1시간이 낮의 3시간이란다!) 그 순간 김씨에게 ‘아침’이 마지막 보루로, 좀더 거룩하게 말하자면 ‘희망’으로 두둥실 떠오른 것이다.
그렇담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뭘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산책을 좀 하고, 교통지옥을 피해 일찍 출근하고, 그날 업무를 위한 준비를 일찍 시작하라는 것인데…… 결국 업무시간을 새벽까지 쭉 잡아당겨 늘려놓는 꼴 아닌가. 김씨는 좀 막막해졌다. 사실 그 아침에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김씨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저 혼자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하겠는가 말이다. 굳이 성공과 건강의 쌍지팡이를 짚고 인생 한번 제대로 일으켜보겠다는 의지가 없다 해도 뭐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으니, 아침시간의 목표를 건강과 성공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있더라도 죄다 빤히 정해져 있는 어떤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 아침이라는 금광에서 금쪽같은 시간을 캐내서는 일상을 지배하는 이 무지막지한 씨스템에 다시 공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 뭐 김씨도 ‘그 짓’밖에는 모른다는 것, 그건 잠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보다 훨씬 더 서글픈 일이었다. 허긴, 언제, 나의, 시간이, 진정으로, 나의, 것인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김씨가 못마땅해했던 것은 이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을 둘러싼 어떤 의심스러운 현상인 것 같았다. 벌써부터 김씨의 친구들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마치 지금까지 직원들이 늦잠을 자서 사업이 안되고, 전국민이 아침잠이 많아서 경기가 안 좋다는 듯, 『아침형 인간』 독후감 사내공모를 하고 조찬모임을 신설하고 아침미팅을 제도로 만들고 슬쩍 직장인의 ‘0교시’를 공표해버렸다.(그러면서 죽어도 퇴근은 일찍 안 시키더라.) 아침 몇시간만 투자하면 인생역전될 거처럼 호들갑 떨며 곤한 아침잠을 깨워놓고는 기껏 회사로 끌어들여 바로 이런 것이 아침형 인간의 부지런하고 건전한 삶이라고, 너희들이 바라는 게 이런 성공의 지름길 아니냐고 세뇌시키는 이 어처구니없는 분위기 속에서, 김씨처럼 그저 개인시간이 있었음 좋겠다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욕구는 그렇게 ‘아침형 인간’ 식의 ‘성공’과 ‘건강’의 칼날로 네모반듯하게 깍뚝썰기되어 지독한 자본의 양념으로 시뻘겋게 한데 버무려지고 만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다. 김씨는 왠지 억울해져서 부아가 치미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러고는 잠시나마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업무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도를 닦든, 해장술을 퍼먹든, 모닝파마를 하든, 그건 ‘즈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느그’들이 참견할 문제는 아니란 거다. ‘느그’들이 직장인의 무구한 아침잠을 개발되지 않은 아마존 밀림쯤으로 보고 전기톱 그르렁거리며 날을 세우고 있는 한, 김씨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보겠다는 한순간의 결심을 무기한 유보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아침을 뜬눈으로 내주느니 잠으로써 지켜내기로 한 것이다. 대신 언젠가 ‘느그’들이 김씨의 시간에서 손 떼고 마음 접는 날이 오면(오긴 올까?) 그땐 기꺼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뒷산이라도 어슬렁어슬렁 올라보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직장인 김씨, 2004년 어느날, 이 시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인을 대표하여, 새벽잠 없는 노모를 증인 삼아 홀로 비장하게 아침잠 투쟁을 선포하고는, 매일 아침 출근 직전까지 이불속 1인 시위에 들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