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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변화하는 시민사회와 새로운 민중운동

 

한국농업과 동북아농업

새로운 시대의 의제와 전략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중국의 농촌개혁과 경제발전』 『개방화 속의 동아시아: 산업과 정책』(공저)『WTO로 가는 중국: 변화와 지속』(공저)『동북아 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 등이 있음. ilee@hanshin.ac.kr

 

 

1.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많다. 한 학기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민주화 이후’의 대학생 농활풍경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시절, 일찌감치 시작되었던 예비 쎄미나, 역에 내리자마자 만나게 되는 눈 부릅뜬 정보과 형사, 못마땅한 표정의 이장어른과 긴장된 마을청년, 새참 대접은 절대 받지 않는다는 추상같은 규칙, 이런 것들은 이제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이제 학생들 농활은 봉사학점으로 인정되고 학교에서는 출발 당일 예비교육을 제공하는데, 분위기는 자유롭고 여유가 있다. 차량도 지원받고 교수와 교직원들이 현지에 농활지원본부를 차리기도 한다. 이제 학생회는 농활준비나 진행에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학생회와 현지 농민회 간부는 허물없이 어울리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농활을 주도해야 하는 학생회 간부들의 생각과 태도는 참으로 의구하다. 필자는 예비교육에 여러번 나간 경험이 있는데, 나름대로 변화된 한국농업의 환경과 혁신의 과제를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지역적 과제와 결합하기 위해서는 중앙 차원의 연대활동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선배 세대로서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주장과 행동, 수사법과 몸짓은 관습적으로 반복된다. 아직도 학생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농활이 농학연대의 핵심적 공간이라는 점인 것 같다. 이를 통해 WTO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 힘을 모으고, 나아가 한국농업을 사수하자는 것이다.1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빠르게 도시화하고 있는 수도권 농촌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전철역까지 가는 길을 즐거이 걸으면서 계절을 느끼고 상념에 젖기도 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힘껏 투쟁했고 많은 정책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면 이 들판이 생명력있는 모습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한국경제와 농업(그리고 농민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필자의 주장을 서둘러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제 관습적 사고에서 물러서서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할 때이다. 한국농업은 여러가지 국제적·국내적 요소와 복잡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농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고 변하는 것도 있다.WTO로 대표되는 국제경제질서는 당분간은 우리가 변화시키기 어려운 ‘구조’이다.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질서는 도전과 기회의 두 얼굴을 가진 ‘형성과정’ 속에 있다. 우리는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지지한다. 이를 위하여 농업과 농정은 농촌주민과 소비자의 안전을 도모하면서(사회적 연대성), 경쟁과 혁신을 통해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고(시장 친화적 접근) 생각한다.2

 

 

2. WTO 쌀 협상: 오래된 의제

 

(1) WTO는 악마인가

올해 한국농업 최대의 이슈는 WTO 뉴라운드에서 협상을 어떻게 가져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WTO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우리는 거부와 추종의 양극단에서 벗어나 ‘이용’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1999년 11월 중국산 마늘에 대해 잠정 긴급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00년 6월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는 일방적 무역보복조치를 취했다. 일본 역시 마늘을 두고 중국과 분쟁을 벌인 바 있다. 중국은 자국 농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확대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중국도 WTO 회원국이 되었고 따라서 WTO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분쟁의 전개과정은 일정하게 제도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무역은 누구에나 이익이라는 식으로 추종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유무역질서를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반세계화 시위에 흔히 등장하는 구호로 “WTO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강도”라는 주장이 있다. 분명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다.WTO를 주도하는 선진국의 경우 보호관세와 보조금, 할당제 등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공업을 발전시켜놓고 다른 나라들에는 자유무역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3 그러나 만에 하나,WTO 무용론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강대국의 일방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마련할 구상과 능력이 있는가? WTO를 움직이는 주요 세력, 즉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을 빼고 국제적 차원의 조절이 가능한가? WTO가 사라지면 당장 우리 눈앞에 천하위공(天下爲公)의 대동세상이 펼쳐질 것인가?

어쩌면 WTO가 주도하는 국제무역질서에서 한국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는 당분간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에 속한다.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WTO의 기능이 약화된다면 한국으로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WTO 체제가 침몰하고 일방주의, 블록화가 득세하여 세계무역이 급속히 축소된다면, 국내에 완결된 재생산구조를 갖추지 못한 한국경제, 그리고 한국의 농업·농촌경제는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국제무역질서의 불공정성을 내부적으로 비판하면서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통합을 지지하는 것이 선택가능한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WTO에서 쌀협상이 우리에게 몹시 부담스런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책임을 외부에 뒤집어씌울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천사와 악마, 두 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2) UR과 뉴라운드의 쌀협상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정말 WTO체제 출범 전과 흡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현재 농업관련단체들은 쌀시장의 관세화를 극력 반대하고 있으며, 이를 올해 최대의 투쟁목표로 설정하고 있다.4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한 것도 쌀시장 개방을 막기 위한 기싸움의 성격이 짙다. 농민들이야 자신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라 절박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관련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써비스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이에 편승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당초 한·칠레 FTA를 추진하면서 농업·농촌 지원을 위해 4대 특별법을 마련하고 2004년에 1조575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7개월 만에야 통과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앞으로 5년간 1조700억원 규모의 추가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지원액이 대폭 불어났다. 비전과 계획 없이 지원액수가 결정되니 ‘시위 한번에 얼마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쌀산업대책이 시행되면 개방을 확대하더라도 전체 벼 재배면적은 2013년 80만ha 수준, 자급률은 90% 수준을 유지한다는 말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5

우리는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UR 협상과정을 기억한다. UR은 한국농업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므로 막아야 한다고 했고, 또 유럽이 반대하므로 농업무역의 자유화는 합의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쌀시장은 외국에 양허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당시 대통령도 “직을 걸고 막겠다”고 공언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결국 합의에 도달했고 WTO체제는 마침내 출범했다. 농업무역에 있어서 예외없는 관세화 원칙이 확립되었다.

그렇게 되자 한국은 쌀을 지키는 방향으로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한국은 2004년까지 쌀의 관세화를 유예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를 잠시 회피했을 뿐이었다. 시장이 아닌 국회에서 쌀값이 결정되는 동안 국내외 가격차는 4~5배로 더욱 확대되었고, 쌀 소비가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함으로써 재고가 누증되었다.6이러한 상태에서 2004년이 찾아왔다. 쌀 관세화 유예의 연장 여부를 둘러싼 협상에 나서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3) 뉴라운드 쌀협상의 예상되는 결과

농업 관계자 대부분은 이번 쌀협상에서 다시 한번 관세화 유예가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임을 호소하고 우리 농업의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읍소를 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한국이 공산품 협상에선 선진국 편에 서서 관세인하를 요구하면서 농업협상에선 개도국임을 주장하는 ‘박쥐외교’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예외 조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의무적으로 농산물을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상당한 정도로 늘려야 할 것이다. 재고를 계속 늘려갈 수 없다면, 국내 쌀시장은 충격을 받게 되어 있다. 국내외 가격차를 더이상 확대시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가격은 낮아지지 않을 수 없다.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기준연도(1986~88)의 국내외 가격차의 90% 수준에서 관세감축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기준연도와 현재를 비교하면 국제가격은 별로 변화가 없는데, 국내가격은 계속 상승해서 가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에 따라 관세를 부과해도 국내가격이 수입가격보다 높게 된다. 시장접근을 제한하고 국내가격을 높여왔기 때문에 이제는 국내 쌀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을 수 없다. 또 뉴라운드에서 합의되는 바에 따라 관세를 감축하면 수입량은 더 늘어나고 쌀값은 크게 하락하게 된다. 이제 10년 전에 관세화를 했던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WTO체제의 출범이라는 외부환경 변화를 엄정하게 인식하여 정공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를 미봉한 댓가는 누적되어 돌아오고 있다.1987년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 농민의 정치력은 크게 증대되었고 농업에 대한 전국민적 동정은 정치권을 압박했다. 농민운동의 ‘아스팔트 농사’가 이어지는 속에서 쌀의 관세화는 유예되었고 국내 쌀값은 ‘정치적’으로 인상되어왔다. 그러나 뉴라운드 이후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면 쌀농업을 보호하겠다는 정부, 농민운동, 농업관련 써비스계층의 ‘선한 의도’ 또는 ‘담합’이 농민이나 국민경제 전체에 꼭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쌀협상과 관련해서 ‘그럭저럭 버티기’7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WTO 협상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카드는 관세화 수용 아니면 의무수입량의 대폭적 증대뿐이다. 정부도 농민운동도 그것을 모른 척하고, 쌀농업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거나 그와 관련된 국제협상에 모든 것이 걸려 있는 것처럼 의제를 만들어가면, 협상결과가 나온 뒤 우리는 또 분노와 좌절을 반복해야 한다. 결국은 냉정한 판단과 창조적 기획을 위한 시간 및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비전과 전략, 새로운 의제설정이 필요한 싯점이다. 새로운 전략과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3. 동북아 농업씨스템: 새로운 의제

 

(1) 동북아 역내 농산물시장의 확대

WTO 쌀협상 문제는 이미 10년도 넘은 이야기이고,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의 폭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강은 답이 나와 있다고 할 수 있다.WTO 협상건이 한번 경험하여 비교적 잘 알려진 문제라면, 한국농업이 맞이한 미지의 환경변화는 중국문제이다.

지난 4월 말 중국의 원 쟈빠오(溫家寶) 총리가 중국경제의 속도조절 필요성을 언급하자, 한국의 주식시장에 즉각적으로 큰 충격이 오고 중국에 대한 수출감소와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의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로 국내 산업계가 크게 동요한 바 있다. 그러나 농산물시장의 경우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영향이 엄청나게 커졌으며, 양념류·과일·채소·수산물을 다루는 유통업자나 생산자들은 이미 이를 피부로, 그리고 뼛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만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지라 부지불식간 익숙해져서, 이를 정책문제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8

간단한 통계수치를 통해 상황을 요약해보자. 한국의 농산물유통공사에서 파악한 바에 따라 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을 모두 합쳐 수입액 기준으로 국가별 점유비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1995년에 미국에서 34.7%, 중국에서 7.3%, 인도네시아에서 6.9%를 수입했는데,2003년에는 중국에서 24.3%, 미국에서 23.2%, 호주에서 6.8%를 수입했다.1995년에는 한국이 주로 미국으로부터 먹거리를 수입하던 데에서, 수입선이 중국과 미국으로 분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9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최대의 시장이고 미국과 한국도 중요한 고객이다. 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2003년(1~11월) 채소 수출은 일본 22.3%, 미국 17.9%였으며, 과일의 경우 일본 40.1%, 미국 6.9%, 한국 6.2%의 순으로 나와 있다.일본에서도 중국 및 한국 농산물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채소의 경우를 예로 들면, 최근 10년 동안 일본에서는 신선품 수입이 3배 이상 증가했는데,2003년에 중국산 신선 채소가 38.8만톤, 액수로 930억엔이 수입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37.4%로 최대 수입선이며, 미국 18.5%, 뉴질랜드 11.1%이고, 한국도 9.6%를 차지하고 있다.10

이렇게 동북아 국가간의 농산물무역이 확대되고 있는 데에는, 중국의 생산력과 구매력 증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1990년대 한국의 수출시장에서의 비중은 미국 29.8%, 일본 19.4%, 중국 0.9%였는데,2004년 1/4분기에는 중국이 18.6%로 최대의 수출시장이 되었으며, 홍콩 9.1%를 합하면 27.7%를 차지하여 1990년대 초 미국의 역할과 비슷한 정도가 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2001년 WTO 가입을 통해 시장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농업 전체로 보면, 중국도 개방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정부는 2005년까지 농산물의 수입제한을 폐지하고 관세화하는 데 합의했다. 중국정부는 WTO 가입을 통해 통제적 무역제도를 개혁하는 지렛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중국은 산업 피해를 걱정하면서 WTO에 대해 수세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WTO를 이용하여 국내 개혁을 진행하고, 미국·EU와 함께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쪽으로 주사위를 던졌다.11

어쨌거나 중국의 WTO 가입으로 동북아농업에는 다시 한번 넓고 깊은 시장화의 물결이 밀려오게 되었다. 중국의 생산량·소비량은 양적으로는 매우 크기 때문에 농산물 수입의 증가에 따른 자국내 생산에의 영향 정도는 한국·일본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다. 따라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농산물 무역확대를 도모하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다. 특히 농촌개발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지방정부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지린(吉林), 헤이룽쟝(黑龍江) 등에서는 쌀과 옥수수, 샨뚱(山東), 랴오닝(遼寧) 쪽에서는 과채류를 적극적으로 수출하려고 할 것이다.

 

(2) 동북아 식료씨스템의 형성

농산물을 국경 차원에서 보호하는 것의 실효성이 크게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에서 지역의 고유한(region-specific) 성격이 강한 농산물의 특성상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북아 역내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최종재(最終財)의 무역에만 국한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에서는 식료씨스템(food system), 즉 농업·식품공업·식품유통업·외식산업 등 다양한 산업연관에 의해 다단계 산업의 연쇄가 형성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러한 식료·농산물시장에서의 ‘조용한 혁명’(the quiet revolution)이 이미 상당정도로 진행된 바 있다. 그것은 생산자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유통업자·가공업자·외식업자·사료업자·종묘업자 등 여러 경제 주체들이 ‘계약’과 기타 다양한 형태의 ‘수직적 조정’이 진전되어 대규모 식품회사와 수직적으로 통합된 시장씨스템이 형성됨을 말한다.12 동북아 차원에서도 식료·농업씨스템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데, 이를 추동하는 주요한 계기는 소비자의 변화, 기술진보, 국제화 등 크게 세 가지이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영양·편리성·입맛 면에서의 차별화된 선호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등장했고, 전체적으로 구매력이 높아진 가운데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소비자의 문화적 다양성은 증가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이 증대되며 기혼부부의 경우에도 자녀를 적게 가짐으로써 세대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이는 중산계급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대중시장이 축소되고 여러 개의 분할된 소비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바이오테크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농민, 식품기업 등에 변화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13바이오테크는 더욱 자동화된 생산으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한편, 식료생산을 더욱 확대된 산업구조의 일부로 재편성한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통합적 경영관리씨스템 구축을 용이하게 하고 마케팅의 역할을 변화시킴으로써 중앙집권적 관리의 가능성을 높인다. 기술혁신과 기술변화를 주도하는 소수의 지배적 기업이 등장하고 정보기술의 네트워크에 의한 통합이 진전된다. 기업화·협동화의 추세가 가속화되면 소규모 경영체는 몰락하거나 틈새시장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14

셋째, 식품·유통기업이 국제화를 추구하면서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식료·농업씨스템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에서 중국 농산물의 수입이 증대한 것은 유통업체·가공업체·외식업체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식품기업의 경우 중국기업과 계열관계를 맺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일본의 닛세이(日淸)식품은 중국에서 즉석면 제조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화룽(華龍)이 최근 실시한 증자에 33.4%를 출자했다. 중국 최대 즉석면 업체인 캉스푸(康師傅)에는 산요오(三洋)식품이 약30%를 출자하고 있다. 중국의 즉석면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2개사가 일본 메이커와 계열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15한편 식품기업은 농가, 중간상인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의 칭따오(靑島)지역에는 1980년대 말부터 일본으로의 수출을 위한 채소가공 공장이 집적되기 시작했는데,1990년 타이완 기업이 진출하여 합작 설립한 뻬이하이(北海)식품도 그중의 하나이다. 뻬이하이식품은 농산물을 수집·가공하는 기업―농민, 기업―중간상인―농민, 기업―촌민위원회의 3원적 유통구조 또는 거래관계를 형성하며, 이 지역 농업의 생산―유통―가공을 계열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16

이렇게 중국의 식료·농산물이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동북아시장과 연결되고 있는 데에는 중국정부의 정책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농업정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농업산업화경영조직’이다. 중국은 1970년대 말 이후 토지제도의 거대한 변혁을 통해 가정경영을 기초로 하는 농업경영제도를 확립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집단농업이 해체된 결과 다수의 소규모 농가경영이 광범위하게 창출되었고, 이에 따라 생산과정 자체와 생산 전후의 써비스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가지 형태의 중개조직, 즉 전업연구회·전업기술협회·전업합작조직·산업화경영조직 등이 발전했다. 그중에서도 농업산업화경영조직의 육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농업정책의 중요한 지주가 되었다.17

 

(3) 북한농업의 등장

동북아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무역이 확대되고 수직적으로 계열화가 진행되는 것이, 한국농업이 맞이하고 있는 ‘동북아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농업의 ‘동북아 문제’에는 민족경제 차원의 문제도 포함된다. 북한농업이 매우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시장화 쪽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는 것도 한국농업에는 매우 중요한 환경변화이다.

과거 강제저축과 대중동원에 기초한 북한의 사회주의적 축적메커니즘은 효율과 생산구조상의 누적시켰다. 여기에 1989~91년 사이 전개된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북한농업에 결정적 타격을 가해 1990년대 초에 GDP 및 모든 경제활동에서 엄청난 위축과 생활수준의 하락이 나타났다. 식량공급 사정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마침내 1995년에 북한은 처음으로 국제기구에 식량의 긴급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1995,96년 홍수에 이어 1997년부터 계속된 기근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으며,1996년부터는 기아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경기침체와 농업생산 감소로 생필품과 식량부족이 심화되자 1990년대 중반부터 농민시장이 급증하기 시작했다.2002년에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고 임금·물가 현실화와 배급제 축소, 성과급·독립채산제 강화 등을 시도했으며,2003년에는 농민시장을 공산품까지 취급하는 종합시장으로 개편했다. 북한은 농업·식량 부문의 붕괴를 계기로 경제씨스템 전체에 조금씩 시장원리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난의 행군’ 속에서 분권화와 시장화의 씨앗이 자랐다. 아직 공식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머잖아 농업부문에서도 ‘아래로부터의 길’과 ‘위로부터의 길’이 혼합된 형태로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18

지금 남한에서는 농민운동이나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일농업’에 대비해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높여잡아야 한다거나, 새만금 간척을 진행하면서 북한의 식량문제를 거론하는 등, 북한농업의 상황을 한국농업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분업체계 속으로 편입되고 시장화가 진전되면 나름대로 ‘농업구조조정’과 ‘농민층 분해’가 진행될 것이다. 남한은 상당한 정도의 재정자금을 북한에 투입해서 과도기의 불안정 요인을 통제해야 하고 이는 한국농업에 투입되는 재정자금과 경합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농업이 일부 품목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한국농업은 중국농업으로부터 맞이하는 것과 유사한 종류의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19

 

(4) 동북아의 ‘모래시계’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먼눈으로 다시 상황을 보자. 유럽의 산업혁명은 자유무역주의와 동행했으며 이로써 유럽의 밀은 전세계적인 무역재가 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지형적 분산, 교통의 비효율성으로 한참 동안 하나의 시장씨스템으로 통합되지 못했다.강고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지역적 시장권은 하천과 분수령으로 분할되고 여러 층에 존재하는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권력에 의해 보완되었다. 쌀도 물을 다스리는 권력과 함께 각 지역·지방별로 전제적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한편 동아시아 각국은 ‘압축적 산업화’(compressed industrialization)를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일본·중국의 농업은 빠른 속도로 재편성되고 있고, 북한농업도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시장화의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 농산물시장의 국경이 낮아지고 ‘쇠스랑에서 포크까지’(fork to fork) 연쇄가 강해지는 것은, 당분간은 역전되지 않을 추세이다. 동아시아를 낳은 어머니 역할을 한 쌀은 그간 ‘얇은 시장’(thin market)에서만 교역될 뿐이었지만, 이제 쌀도 동북아의 농업도 시장화·계열화·국제화라는 새로운 파도에 직면해 있다.

동북아에는 거대한 ‘모래시계’와 같은 식료·농업씨스템이 형성되고 있다. 모래시계 위쪽과 아래쪽의 넓은 부위에는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모래시계의 가운데 잘록한 부분에는 유통·가공·외식 등 상대적으로 소수인 농업관련산업(agribusiness)이 포진해 있다. 식료·농산물은 모래처럼 위에서 중간의 홀쭉한 허리를 거쳐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중국과 북한은 이 모래시계의 주로 위쪽으로 들어와서 아래쪽에 있는 한국·일본의 소비자 쪽으로 식료를 밀어내려 할 것이다.

농산물 무역의 확대, 농업관련산업의 성장으로 먹거리가 풍성해지고 편의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위험도 늘어나고 있다. 위험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거래의 위험이다.식료씨스템의 모래시계 각 단계에서 유통기능이 정비되고 있기는 하지만, 각 단계간 거래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증대되고 있다. 농산물의 상품 특성상 계획적 취급이 곤란하기 때문에 고부가가치형 식품의 원재료 거래에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고,이러한 거래의 위험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안전의 위험이다. 씨스템의 고리가 늘어남에 따라 각 단계에서 비롯되는 위해(hazard) 요인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전파속도와 범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넓어졌다.식품의 안전문제는 소비자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4. 무엇을 해야 하나: 보호에서 혁신으로

 

(1) ‘87년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러면 한국의 농정과 농민운동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현재의 농정―농민운동 체제는 ‘87년 체제’라고 할 수 있다.1987년 이전까지의 한국경제는 산업을 ‘형성’하기 위한 국가와 재벌의 담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저임금―저농산물가격의 노동―농업체제를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경제발전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농민은 희생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정부, 농민운동, 농업관련 써비스 계층 사이에 여러 차원의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타협과 담합에 도달하곤 했다. 그 결과 쌀값의 정치적 인상, 쌀 관세화 유예는 물론, 특별세 설치, 부채경감 등 ‘보호’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87년 농업체제’는 WTO로 상징되는 국제무역질서를 등지고 있는 것으로, 중규모 무역국가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관세와 비관세장벽 등 국경보호수단은 동북아 차원에서 진행되는 역내 무역의 증대, 식료씨스템의 진전, 북한농업의 등장이라는 삼각 파도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되지 못한다. 국가, 농민,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위험 기피자가 되어 ‘나쁜 균형’ 상태를 오래 끌고 가면 모순이 계속 누적되어 언젠가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이제 발상을 전환하고 새롭게 전략을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

새로운 전략은 외부의 환경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내부의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농업의 국제화는 당분간 역전되지 않는, 변하지 않는 구조인데, 동북아 차원의 지역시장 형성은 새롭게 변화된 추세이다. 이를 전제로 할 때, 밀려오는 파도에 부동자세의 보호주의로 부딪치고 나면 결국은 중한 상처를 입게 된다. 완강한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도록 혁신의 자세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20

 

(2) 농기업과 협동조합으로

우선 ‘산업으로서의 농업’에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시장’이 필요하다. 국제화된 환경에서는 정부가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해 제조업을 육성할 수 없듯이, 정부가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보호육성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또 정부의 보조금과 시장에서 멀리 있는 전문가의 조언으로는 자생력있는 경영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농업의 경우도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경영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상과 환경을 바꿔 농업부문에 외부의 인력과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층 분해를 두려워하고 막을 일이 아니라, 고령화되었거나 경쟁에서 탈락한 농가에 대한 복지제도 등 사회안전망을 마련한다는 전제에서 농기업과 협동조합을 발전시킴으로써 규모의 경제,네트워크의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식료씨스템의 모래시계 구조에서 허리 부분이 너무 가늘어지면 씨스템이 불안정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위험이 증가한다. 농민들은 경쟁력 있는 조직형태를 찾아내서 농업관련산업 활동을 강화하고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 농가를 통합해 기업을 결성하도록 유도하는 법적 체제를 갖추고, 다양한 협동조합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업화·협동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부분적 대기업의 농업 참여를 허용할 수도 있다. 기업화·협동화된 경영조직 중 중소규모의 경우에는 지역과 연계된 다양한 틈새시장을 개발하고, 대규모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델몬트’나 ‘선키스트’처럼 체계적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제화된 브랜드를 확립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래시계의 키는 낮아지고 허리는 두툼해져서 안정적인 모습이 된다.

기업농이나 협동조합 같은 경영조직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재정 자금의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사업은 반드시 실패해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쌀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1992년부터 미곡종합처리장(RPC) 건설과 운영을 지원했다. 그동안 시설건설비 8천억원, 운영비 3조원을 보조했고, 이제 미곡종합처리장은 정부 수매의 50%를 담당하고 생산량의 30%를 가공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처리장이 원료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경영수지도 부실해져서 이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아래로부터의 생산조직 발전 없이 유통·가공사업이 잘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21

농업의 혁신이 경영·경제적 측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적으로 결합된 협동조합의 존재는 식료씨스템의 위험을 줄이는 중요한 조건이다.‘슬로우 푸드’(slow food)의 가치가 재평가되지 않으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는 줄어들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소비자가 함께하는 협동조합은 식문화와 식료씨스템을 바꾸는 문화운동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또 협동조합은 농업을 지역(community)과 연계시키는 고리이다. 협동조합은 지역의 고유한 바이오테크를 개발·수용하고 지역 안에서 농업자원을 순환하도록 하는 씨스템을 창출해서 농업이 환경에 부과하는 압력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22 다양한 협동조합이 존재해야만 지방자치가 활성화되고 공공부조와 복지써비스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23

 

(3) 국가의 역할

물론 농업에는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계산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공공재적 가치가 있다. 이른바 ‘비교역적 요소’(non-tradable concerns)가 그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공공재를 직접 공급하거나 그 공급자를 보호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식료를 확보해 공급함으로써 국가안보를 도모하는 기능, 북한농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기능, 국민의 건강보호를 위한 식료안전성 확보 기능, 농업이 수자원을 확보하고 대기를 정화해 환경을 보호하는 기능, 농촌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를 유지·관리하는 기능 등을 중심으로 더욱 전문화해야 한다.

다른 한편 정부는 국가차원의 위험관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식량안보’ 개념이 중시되었으나, 현대에는 ‘식품안전’의 개념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규모의 무역국가에서 식량자급률과 같은 통계수치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생산과 안정화, 관련된 정보의 수집·관측 능력의 제고와 무역체계의 효율화, 다국간 식량협력관계 구축 등과 같은 문제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 이러한 점에서, 수매의 결과로서 비축재고가 형성되는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비축 목표치를 설정해 수매가 비축의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개편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이다. 또 동북아 역내에서 시장화가 가속화되어 식(食)과 농(農)의거리가 멀어지고 있는데, 동북아 차원의 농업협력, 식량공동체 결성 등으로 그 위험을 줄여야 한다. 북한농업의 변화와 관련된 문제는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응방안을 연구하고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북한농업의 연착륙은 이행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나,시장적 방식으로는 지원방법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농업의 시장화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합작형식의 농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농업의 수익성이 낮고 북한의 투자환경이 열악해 민간이 진출하기에는 위험의 정도가 너무 크다. 이 때문에 위험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또 부실화된 북한의 농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공공자금 투입이 불가피한데, 이를 위해 정부는 적절한 금융씨스템과 공공기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식품위험에 대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체계는 매우 낙후되어 있다. 현재의 씨스템으로는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위험관리도 쉽지 않다. 식품업체 중 10인 미만 고용업소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 항상 불안과 불신을 느끼며 살고 있다. 소비자 보호와 예방조치를 우선하고 ‘농장에서 식탁까지 포괄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씨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24

한편 정부는 지역성장거점을 기획하여 농업경영체와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분산적―내발적 전략하에서는 국제환경요소의 도전에 대응하는 활력있는 경영체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중앙정부는 특색있는 지역거점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25

정부는 이 과정에서 경영체에 직접적·평균적인 보조금을 배분함으로써 모럴 해저드를 발생시켜서는 안된다. 정부는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지원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규모 연구개발과 혁신적 투자에 대한 위험, 국내외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 고령화되었거나 경쟁에서 탈락한 농가에 대한 복지 제공 등과 같이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맡아야 하는 것이다.

 

 

5. ‘천하삼분’을 위하여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거든…… 먼저 형주를 취하시어 집을 삼으시고, 뒤에 곧 서천을 취하시어 기업을 세우셔서, 저 조조와 손권으로 더불어 정족(鼎足)의 형세를 이루신 연후에 가히 중원을 도모할 것이겠습니다.” 삼고초려한 유비에게 제갈공명이 올린 융중대책(隆中對策)이다. 당시 천하대란 속에서의 제갈공명의 충정과 노고를 냉전·분단·세계화가 교차하는 현재의 동북아 정세와 함께 생각해보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는 새삼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천하삼분론은 미국과 EU에 대한 터전으로서의 동아시아론이되, 패권론이 아닌 협력론·평화론이다.26 필자는 대내적 개혁, 동북아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추진, 그리고 동북아 공동시장의 장기적 지향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개방에 대한 안전판, 평화와 민족경제를 위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27‘동북아로 가는 길’은, 냉전과 분단 속에서 근대의 ‘청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상의 꽃’이고 ‘희망의 놀’이다.순서나 속도가 어찌 되든간에 중국과 일본이 나서서 추진하는 동아시아국가의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는 진전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와의 FTA 만으로도 일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더욱이나, 무역적자 규모가 커서 단기적으로 이해관계가 더 복잡한 일본과의 FTA 추진은 의미있는 결실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FTA는 아예 모두가 겁에 질려 말도 못 꺼내고 있고, 미국과의 문제도 과장되고 감정에 휩싸이기 일쑤이다. 열정 뒤에 숨은 소심성, 이것이 오늘 한국경제의 초상이다.

동북아 협력의 제도적 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장애는 국내에 국제화의 진전으로 피해를 보는 집단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농업·농민은 피해자이고 이 때문에 강력한 개방 반대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농업·농민이 동북아를 감도는 새로운 시대의 기운에 눈감아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와 인화(人和)를 외면하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해결할 길은 요원해진다. 농업이 강해지지 않으면, 농업이 혁신하지 않으면,우리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다.

 

 

덧붙이는 글

 

한국의 농민운동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마디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변화하는 환경과 정세를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세계화, 식료씨스템의 형성, 중국의 약진, 북한의 등장, 이런 것들은 거대한 추세이다. 이는 앞서 누누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 자신의 능력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1987년 이후에는 농민운동도 국민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에 일정하게 역할을 담당해왔다. 비타협적이든 아니든 공존은 공존인 것이고,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국가의 국경조치나 가격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운동이 국제기구, 중국, 북한농업, 한국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가? 지금 우리의 최대 경쟁상대는 시간이다. 정말 시간이 없다. 셋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전략·조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투쟁과 정치를 줄이고 경영과 경제를 늘리는 것이다. 정치화된 조직을 협동조합 또는 기업적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실패가 준비되어 있는 기동전을 통해 운동의 정치력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성공의 모델을 만들어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지키는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더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민족적인 것은 민중적”이란 명제의 의미이다. 필자는 이를 당위와 목표와 지향성의 문제로 해석하며, 따라서 “민중적인 것은 민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집단의 이해관계가 국민경제의 이익과 상충되는 일이 많고 북한문제가 민족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민족’의 이름으로 문제를 단순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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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국농민회(전농)·한총련 등은 2003년 농학연대사업의 핵심과제로 WTO에 의한 개방 반대(한·칠레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동의안 부결,WTO 교육시장 개방 반대),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는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을 무산시키기 위한 총궐기 등을 제시한 바 있다.
  2. 필자가 주장하는 경제모델의 이념은, 한반도(남북한) 전체가 전쟁과 빈곤으로부터 위협받지 않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연대성을 발휘하고 공공적 이익의 추구는 시장질서와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일영·전병유 「개혁 이후의 경제개혁: 신진보주의 경제모델 구상」, 『동향과 전망』 2004년 여름호(통권 61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2004 참조.
  3. 장하준(張夏準) 교수는 기존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후진국의 발전을 진정으로 돕는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수립을 앞장서서 추진할 수 있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고 주장한다(『오마이뉴스』 2003.8.19).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능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4. 전농은 식량주권운동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우리는 대한민국이 독립된 나라임과 식량주권국임을 선언하고 이를 세계 만국에 알리어 식량은 민족의 생명이고 외세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주권임을 분명히 한다. 오늘 우리는 식량자급률 26.9%(쌀 제외시 5%)의 엄혹한 현실과 남북분단 60년이라는 민족적 위기 앞에 세계화의 가면을 쓰고 쌀개방을 강요하는 강대국들의 식량무기화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식량주권 수호를 선언한다.”(http://junnong.org/ 2004rice.htm)
  5. 농림부는 올 2월 ‘쌀산업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장기적인 쌀산업의 안정을 위해 생산·유통·소비는 시장원리에 따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정부는 식량안보의 확보, 농업의 공익적 기능 유지, 시장감시 및 소비자 보호, 농가소득의 안정에 집중한다는 기본구상을 제시했다(농림부 「쌀산업 종합대책」,2004.2).
  6. 쌀 재고는 1996년 169만석에서 2002년 1040만석,2003년 763만석으로 증가했으며,2004년 말 재고는 678만석으로 전망되고 있다(농림부 「쌀산업 종합대책」,2004.2).
  7.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문제, 경제문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전략, 또는 생존전략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전략의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이고, 북한도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8. 중국 농산물이 국내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현상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유통업자들은 이러한 추세를 적극 이용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실제로 가락동 도매시장의 많은 상인들은 중국을 오가는 무역업자가 되거나 중국 현지에서 개발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농민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고 생산자 단체나 정부는 수입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에 관심을 쏟고 있으나,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9. 수출의 경우 1995년에는 일본 61.3%, 홍콩 6.6%, 미국 5.4%, 중국 4.6%이며,2003년에는 일본 46.8%, 미국 10.1%, 중국 8.0%였다(http://www.kati.net).
  10. 일본 농림수산성 홈페이지(http://www.maff.go.jp/www/info/bun09.html) 참조.
  11. 물론 이는 중국의 농민이 ‘이익집단’(interest group)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국가―농민관계’의 비대칭적 구도 때문이기도 하다. 이일영 외 『WTO로 가는 중국: 변화와 지속』, 박영률출판사 2002, 제7장 참조.
  12. Schertz, Lyle P. and Lynn M. Daft, Food and Agricultural Markets: The Quiet Revolution, USDA ERS, 1994.
  13. 바이오테크는 “유기체 또는 세포, 분자 요소를 사용하여 생산물을 제조하거나 식물, 동물, 미생물을 희망하는 특성을 갖도록 변형하는 기술”로 정의되며, 이의 생산품은 의약품과 비의약품(농업관련 산품 및 공산물)으로 구분될 수 있다.
  14. 유럽에서는 식품유통과 식품제조의 변화, 각 요소 내부와 요소 상호간 양면의 발전을 ‘푸드 체인’(food chain)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Bruce Trail (ed.), Prospects for European Food System, Commission of European Communities 1989; 鈴木福松 外 監譯 「ECのフ――ドシステムと食品産業」, 農林統計協會 1994.
  15. 『日本經濟新聞』 2004년 4월 14일자.
  16. 朴紅 外 「中國輸出向け野菜加工企業における原料の集荷構造―山東省靑島地域の食品企業の事例分析(1)北海食品」, 『北海道大學農經論叢』 第58號, 2002.
  17. 농업산업화의 첫 움직임은 1987년 샨뚱성(山東省) 쥬쳥시(諸城市)에서 시작되었다.1990년 초 쥬쳥시에서는 ‘생산·가공·유통(産加銷) 일체화’ 조직을 결성했으며, 셔우꽝시(壽光市)에서도 같은 슬로건으로 채소를 중심으로 한 전업단지를 형성했다. 이는 1993년경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1998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5기 3중전회에서 농업산업화를 농업정책의 지주로 삼을 것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일영 「중국 농산물 유통씨스템 변화의 사례연구: 膠東地域 청과물의 경우」, 『농업경제연구』 44(2), 한국농업경제학회 2003.6, 참조.
  18. 필자는 이러한 북한의 ‘복선형 농업개혁’의 구성요소로서 첫째로 ‘가족농장+기업농장’의 농장체제, 둘째로 ‘시장화+정책개입’에 의한 가격·유통체제, 셋째로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기술혁신 등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일영 『북한 농업개혁의 현황과 전망』, 통일부 통일교육원 2004 참조).
  19. 이미 정부부처들 사이에서는 북한산 농림수산물 반입과 관련해 견해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통일부의 경우 남북간 교역을 민족 내부거래로 인정해 관세와 부과금을 면제함으로써 교역을 활성화하려 하는 데 반해, 농림부에서는 품목을 지정해 북한산 농림수산물의 반입을 제한하거나 관리하는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연합뉴스』 2004년 4월 21일자).
  20. 한국의 농업과 농정이 보호주의적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 보호주의라 함은 국제시장보다 높은 상대가격과 보조금 체계를 제도적·정책적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21. 『한국농정』 2004년 5월 17일자 참조.
  22. 유기농업은 거래의 폭과 거리를 줄여 지역별로 다양하고 특수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체 농업에서 유기농의 비중이 커질수록 유기농산물은 가격파동에 휩싸이게 된다. 이미 중국에서는 유기농업을 전략적 수출품목으로 정하고 일본과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유기농업도 시장을 무시하고 반기술적 태도를 견지할 경우 성공할 수 없으므로, 지역의 고유한 요소와 관련된 기술혁신과 지속적인 시장 세분화가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유기농업은 ‘대안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이다.
  23. 국가주도의 강제적 복지의 문제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상호주의적 또는 공동체적’ 복지레짐(communitarian welfare regime)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지역사회와 다양한 기능집단에 의한 나눔과 공용(共用)활동이 핵심이며, 복지 제공은 비강제적·상호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시민운동은 풀뿌리의 기초가 너무도 취약해 국가복지 일변도로 경사되는 경향이 있다. 협동조합이 발전해 농촌의 복지기능을 일정부분 맡아주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복지제도의 건전성이 확보될 수 없고, 농업경영의 혁신도 불가능하다. ‘상호주의적’ 복지에 대해서는 A. Wagner, “Reassessing Welfare Capitalism: Community-Based Approaches to Social Policy in Switzerland and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Community Practice, 2(3), 1995 참조.
  24. 황수철 「새로운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의 모색을 위해」, 농정연구센터 제12회 심포지엄(2004.6).
  25. 참여정부에서 지방농업혁신클러스터 육성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참여정부의 다른 아젠다와 체계적·거시적으로 연계되면서 기획·추진되고 있지는 않으며, 산업적·미시적 설계도가 마련된 것도 아니다. 애초에 ‘지역’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았고, 동북아전략과 국가균형발전전략은 각기 별개로 추진되었다.이는 최근 정치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행정수도이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농업과 관련해 ‘지역’ 개념을 볼 때 ‘동북아전략과 연계된 지역거점’으로서의 혁신과 경쟁 차원,‘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거점’으로서의 고용·협동·복지·민주주의·교육·문화의 차원 등으로 분해해서 접근해야 한다. 전자는 경제적 개념으로 더욱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후자는 비경제적 개념으로 공동체(community) 형성과 관련이 있다. 현재는 양자가 혼합·혼동되면서 진행되고 있으므로 ‘기획의 빈곤, 빈곤의 기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현 정부의‘국가균형발전’에 대한 비판은 이용숙 「지역혁신체제론의 비판적 재검토」, 『동향과 전망』 2003년 겨울호(통권 59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2003; 이일영·전병유,앞의 글 참조.
  26. 최원식 「천하삼분지계로서의 동아시아론」, 『동북아공동체를 향하여』, 동아일보사 2004.
  27. 이일영 「동북아로 가는 길: 국민경제와 글로벌경제를 넘어」, 『동향과 전망』 2003년 여름호(통권 57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