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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북아경제중심’의 가능성과 문제점(21세기의 한반도 구상 1)
동북아중심 구상의 재검토
김원배 金原培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하와이대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교수 역임. 현재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로 『동북아 협동적 지역개발의 사례분석과 이론모색』 『21세기 동북아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전략』 등이 있음. wbkim@krihs.re.kr
재검토의 필요성
2002년 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구상은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개념적 차원에서 다소 혼란을 겪고 있다. ‘비즈니스 중심국가’에서 ‘경제중심국가’로, 다시 ‘경제중심’으로 용어가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작년 재경부 주도하에 동북아 구상을 작성할 때 어느정도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동북아 구상과 같은 국가의 장기전략이 광범위한 여론수렴과 심도있는 토론 없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일정과 연계하여 다소 조급하게 추진된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동북아 구상은 여러가지 차원에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동북아 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구성하는 중심의 성격과 내용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1 중심의 성격과 관련해 정부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유리한 지경학적(地經學的) 입지를 활용해 동북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기회를 한국으로 흡수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한국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어떻게 연대·협력하고 동북아의 주요 거점지역들과 어떠한 분업구조를 갖출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구상에서는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일반적인 동북아 협력전략만이 포함되어 있어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심의 내용에 있어서도 물류, 다국적기업 지역본부(최근에는 연구개발), 금융을 포괄하고 있으나 각각의 기능에 대한 판단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아 개념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동북아중심의 성격과 내용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동북아 경제중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동북아 중심인가 거점인가
동북아의 지리적 범위는 논자에 따라 상이하지만 대체적으로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북한, 러시아의 일부와 몽골을 포함한다.2 인구와 경제규모, 군사력에서 볼 때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이 중심을 자처하는 것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동북아의 신질서 형성에서 중국과 일본은 경쟁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나름대로의 틈새를 찾지 않으면 주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 논자들이 한국의 활로 모색을 위해 동북아 거점전략을 주장해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3 일본의 1/11, 중국의 2/5에 해당하는 경제규모를 가진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 일본 간의 경쟁과 협력, 그리고 이들 양국과 북미 및 유럽 간의 경제교류에서 발생하는 중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틈새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체제이행기에 있는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 한반도의 통합과 동북아 신질서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한국은 러시아와 여타 동북아국가들과의 교류협력을 중개하고 활용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틈새전략의 첫번째 준거는 동북아에서의 지리적 위치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는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가져다준 것이 사실이지만, 역으로 그만큼 우리가 처한 지리적 위치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틈새전략의 두번째 준거는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중간적 위치이다.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에 있어 일본과 중국 및 기타 체제이행국가의 중간에 있다.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소극적인 정책을 펼칠 때 약점일 수도 있으나, 적극적인 가교역할을 수행할 경우에는 강점이 될 수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일본보다 한국을 더욱 가깝게 여기고 있고, 일본은 중국보다 한국을 가깝게 여기고 있어 매개와 가교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주고 있다. 세번째 준거는 비교적 양호한 교통통신 기반시설과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네트워크 잇점이다.
요약하면 동북아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지경학적 공간에서 우리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힐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협력체계를 더욱 능동적으로 구축해나가야만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협력체계란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오히려 다중심(多中心)과 다주변(多周邊)이라는 네트워크 체제를 상정하고 이에 부응하는 협력과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후술할 중심지의 내용에서 논의되겠지만,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부문 또는 기능에서 주변지역과 상호의존성을 심화하면서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해나갈 때만이 한국의 중심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심성은 기본적으로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경성적(硬性的) 힘에 기초할 수밖에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세계적 또는 지역적 규범이나 질서 정립에 기여할 수 있는 지식·도덕·문화 등 연성적(軟性的) 힘에 근거할 수도 있다.4 특히 열린 네트워크 체제에서 네트워크 작동의 실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임을 주목한다면, 연성적 힘의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5 경성적 및 연성적 힘에 근거한 중심성의 확보는 결국 주변국가와의 협력과 연계를 통해 그들이 가진 자산과 장점을 우리가 가진 장점과 특색에 여하히 접목해 활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의 소강국인 네덜란드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물류중심 및 경제거점으로 도약한 배경에는 지리적 입지나 물리적 시설기반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국민의 언어구사 능력, 비즈니스 관행, 다문화 경영능력이 근저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6 유럽에서 네덜란드가 가진 중심성은 위에서 언급한 유형·무형의 자산과 적극적인 대외연계전략의 결과로 얻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류인가, 금융인가, 아니면 R&D인가?
2002년 7월에 재경부가 작성한 초기 안에서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을 물류와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그리고 금융중심이라는 세 가지 기능적 차원에서 파악했다.7 한편 2003년 인수위에서의 논의결과는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개념에서 IT산업 관련 연구개발기능을 부각시켰다.8 앞서 논의한 중심의 성격과 관련한 개념적 혼란과 더불어 한국이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중심지의 기능이 과연 물류인지, 연구개발(R&D)인지, 금융인지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물류기능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단계적으로 R&D지역본부, 그리고 금융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전문가들은 금융중심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9 이밖에도 물류, R&D, 금융의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10
이러한 다양한 견해는 한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상이하여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기능에 더욱 집중할 것인가는 한국이 지닌 비교우위 또는 경쟁우위, 경제적 파급효과, 그리고 실현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에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류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물류중심 우선을 주장하는 논거로는 첫째, 동북아의 역내외 교역증대에 따른 물동량의 수송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한국의 지리적 입지우위이다. 동북아지역은 경제규모에서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지대 다음으로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고, 한국은 부상하는 동북아경제권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200km 내에 약 7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이는 유럽대륙의 3억 5천만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특히 중국경제의 고속성장에 따른 북미·유럽행 화물의 증가는 당분간 중국 자체의 항만능력으로 처리하기 어려워 부산·광양을 포함한 동북아의 거점항만에서 환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도 반경 3000km 이내에 43개의 인구 백만명 이상 도시가 포진하고 있어 이 지역내 연계항공체제만 갖춘다면 북미 또는 유럽행 여객이나 화물의 환승·환적의 거점공항이 될 수 있다.
둘째, 물류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아 경제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점이다. 물류중심국가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경우 물류산업의 직접적인 부가가치 창출효과는 GDP의 약 16%에 이른다고 한다.11 물론 물류산업만으로 국가경제를 주도할 수는 없으나 물류와 밀접하게 관련된 전자상거래 및 여행·관광·유통·금융·법률 및 업무써비스 등을 고려하면 간접적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셋째, 이미 부산·광양항이 중국향/발 화물의 환적지로 자리잡고 있고 (부산항과 광양항의 2002년도 환적 물동량 비율은 각각 41% 및 29%), 인천공항의 화물환적 및 여객환승 비율이 2002년 평균 각각 50%와 12%에 이르고 있다.12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공항 활주로와 항만 선석(船石)의 확충이 조기에 이루어지고 가격과 써비스 경쟁력이 제고된다면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비교우위와 경제적 파급효과 그리고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물류에 집중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가장 유리하다는 논지이다.
금융중심도 가능하다
금융을 우선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중심지의 핵심기능이 곧 금융기능이며, 금융의 뒷받침 없이는 한국경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부언하면 제조업중심 경제에서 써비스 및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에 있어 금융산업이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중심론자들은 경제파급효과에서도 고부가가치산업인 금융과 관련산업의 발전은 국가경제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3 또한 국제금융중심지로 정착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져 동북아경제에서 영향력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금융산업의 비교우위와 금융중심지 실현가능성에 있다.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경제의 규모로 보아 금융수요가 결코 적지 않으며, 채권시장의 경우 아시아 최대규모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 주식시장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규모이며, 금융기관의 대형화도 진행중이어서 금융중심지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14 중국의 WTO 가입, 북한의 예상되는 개방 등 동북아의 경제자유화 추세는 이 지역의 금융써비스 수요증대로 이어져 우리에게 기회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금융중심지 주장의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중국의 미성숙한 금융산업과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못한 일본의 금융산업에 비해 한국의 금융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쳐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금융부문의 낮은 수익률, 금융기관의 실질적 정부소유, 금융감독체제의 문제, 자본거래에 대한 과도한 규제, 법률·회계·신용평가 등 전문지원 써비스의 미발달 등은 분명히 한국의 비교열위 요인임을 금융중심 찬성론자들도 인지하고 있다.15
금융중심론에 회의적인 시각은 우선 한국경제의 낮은 국제화 수준, 국제규범에 못 미치는 금융 및 비즈니스 관행, 금융자본의 소규모 등에서 한국이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국제금융쎈터를 인위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3대 금융중심지의 하나인 토오꾜오의 지위가 하강한 배경에는 일본경제의 침체도 원인이지만 일본경제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한몫을 했다는 지적도 있어 국제규범의 수용과 더불어 전략적 탈국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16 경제의 세계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력을 구비하고 국제적인 규범 설정을 선도하거나 새로운 금융기법을 창출할 역량이 없는 경우 종합적인 국제금융중심을 새롭게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채권거래나 선물거래에 특화된 금융쎈터를 조성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R&D도 바람직하다
물류 우선이냐 금융 우선이냐의 논의에 덧붙여 연구개발(R&D) 기능에 미래를 거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연구개발비용 지출총액에서 중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중국의 주요 도시지역보다 연구개발인력 규모에서 월등히 앞서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17 그러나 중국의 풍부한 연구인력, 비교적 높은 기초과학기술 수준, 그리고 최근 세계 유수기업의 중국 내 R&D 기능 투자를 감안하면 한국이 동북아의 R&D 거점이 된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18 금융부문과 마찬가지로 특정 산업이나 부문에 특화된 R&D 기능에서의 동북아거점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기존 비교우위가 IT산업을 포함한 일부 제조업에 있고 IT관련 제품의 시장수요가 세련되어 있는 만큼 신제품의 시험장소로서 한국이 고유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호한 IT관련 산업의 성장전망과 엄청난 규모의 동북아시장 수요를 고려해본다면, IT관련 신기술의 개발, 제품 및 부품·소재 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에서 한국이 일정한 거점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19 물론 이러한 기대는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줄이면서 동북아지역 내 산업연대를 구축하는 개방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실현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물류에서 출발해야
이상의 기능적 우선순위에 대한 초보적 논의를 요약하면 동북아중심지 전략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기능은 물류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류기능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고 해서 금융이나 IT 분야 R&D 거점조성을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물류거점, R&D거점 및 금융거점의 조성은 한국의 제조업중심 경제에서 지식기반 경제로의 구조전환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시각에서 단계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환언하면 현재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통한 발전전략이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만큼 써비스 수출로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수정에 있어 유념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가진, 또는 단기간 내에 갖출 수 있는 핵심적인 자산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숙련노동력과 비교적 잘 구비된 생산시설 및 사회간접자본이 제조업중심 경제에서 한국의 자산이었다고 한다면, 향후 상당한 규모의 배후지를 필요로 하는 지식기반 써비스경제에서 갖추어야 할 자산은 주변국 시장정보에 정통하고 다문화(多文化) 경영능력을 갖춘 고급인력과 배후지 경제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물리적·제도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류중심이건 금융중심이건 IT거점이건간에 한국의 경제규모 자체로서는 동북아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므로 경쟁국이기도 한 주변국과의 연계 및 결합을 통한 배후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확장된 경제공간을 경영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기반 그리고 주변국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통신시설을 갖추어야만 나름대로의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언하면 동북아 주요지역과 밀접한 상호 의존관계로 구축된 네트워크 공간을 형성하고 그러한 공간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한국의 핵심적인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에서 동북아지역 내 관세, 출입국 관련절차 등 장벽의 해소, 기술표준화 및 거래관행의 병합성을 제고하여 지역내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제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동북아 경제네트워크에서 중심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침체로 인한 동북아 신경제질서의 태동, 한반도의 안보불안, 국내의 정치·사회적 변화 등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정세가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동북아의 중심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물류기능을 우선 육성하는 전략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금융기능의 육성을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제도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고, 국제규범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 자세가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동시에 이미 작년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특별법은 장소 특정적인 개방전략인 만큼, 물류와 같은 입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기능이 경제자유구역의 설립취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는 IT관련 새로운 연구개발기능을 경제자유구역 내에 유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국내 타지역의 연구개발기능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옮긴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간 형평성에도 배치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을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통 및 통신·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최상의 물류써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004년에 부분적으로 완공될 고속철도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인천(서울)-광양-부산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삼각 물류플랫폼을 건설하고 이를 기초로 생산, 연구개발, 금융 및 비즈니스, 문화·관광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정부의 비즈니스 중심 구상은 더욱 실천가능한 전략이 될 것이다.20 우선적으로 인천공항, 부산항과 광양항에 이러한 조건이 구비되면 물류운송기업들이 이들 물류거점 주변으로 몰려들 것이고 그에 따라 금융, R&D, 관광 등의 업종이 부차적으로 발생하여 복합적인 비즈니스 거점의 형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항만과 공항시설의 확장으로 물류중심지를 육성하는 것만으로는 한국이 동북아의 비즈니스 거점이 될 수는 없다. 시설을 운영하는 써비스체제의 질적 수준의 제고 없이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부산항이 세계 제3위의 컨테이너항이라고 하지만 샹하이(上海)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부산항과 광양항의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써비스경쟁력의 제고가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경쟁력 제고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배후지 확보를 위한 과제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아전인수식 중심지 전략이 아니라 주변지역과의 동반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다. 단기적으로 동북아지역 내 항만이나 공항과의 연계협력체제를 갖추는 노력과 함께, 이 지역의 동질적인 경제공간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중·일 자유무역지대 형성을 목표로 하여, 우선적으로 한·중·일 3국의 경제특구간에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및 물류의 표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장래에는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특구도 이러한 특구간 네트워크체제에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적 차원의 국제협력뿐만 아니라 국지적인 차원에서의 연계·협력전략도 동북아의 지경학적 구도에서 매우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앞으로 몇개의 핵심도시지역을 중심으로 견인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만큼, 동북아의 핵심도시지역과 다방면에서의 연계·협력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21
마지막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장 역점을 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제도와 관행의 개혁이다. 물류 우선전략이 인프라 건설에 촛점을 두게 되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하게 되면, 한국이 동북아의 비즈니스 거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길게 언급할 수는 없으나, 기업경영의 불투명성, 정부정책의 비일관성, 경직된 노사문화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경제의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민주화의 과정상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단기간에 이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제도와 관행의 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만 한다. 더욱 근원적으로는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우리가 가진 지경학적 잇점을 살리는 길은 세계 여러 나라와 동북아국가들의 사람과 문화를 포용하고, 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닫힌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개방적 문화를 기초로 한 협력과 상생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것만이 중소국의 약점을 극복하고 연성적 힘에 근거한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임을 유념해야 한다. 새롭게 구성된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원회에서는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추진방안과 함께 실현가능성에 근거한 동북아거점 세부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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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의 성격과 내용 그리고 대외협력전략 외에도 전면적 개방이냐 혹은 부분적 개방이냐의 선택, 중심지 개발에 대한 재원조달 등이 정부의 동북아 구상에서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 협의의 동북아는 중국 동북 및 화북지역과 몽골, 러시아 극동, 한반도 및 일본으로 정의되며, 주로 일본에서 이러한 지역범위를 채택하고 있다.↩
- 남덕우 전총리나 김재철 무역협회장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 경성적 및 연성적 힘의 역할에 대해서는 Robert O. Keohane and Joseph S. Nye, “Introduction,” Governance in a Globalizing World(Cambridge: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0) 참조.↩
- 플랫폼은 언어뿐 아니라 공통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금융·기술·문화 기준 같은 각종 기준을 지칭한다. 쉬운 예로 마이크로쏘프트의 윈도우즈는 가장 많이 이용하는 PC플랫폼이며,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전자상거래 및 금융결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 Jean-Pierre Lehmann and Jonathan Story, 「한국의 지정학적 및 지경학적 전략선택과 유럽의 교훈」, 홍철·김원배 편저 『21세기 한반도 경영전략: 지경학적 접근』(국토연구원 1999) 363〜408면 참조.↩
- 재정경제부 외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2002.7.29).↩
- 재정경제부 외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인수위 국정토론회 자료 2003. 2. 6).↩
- 김원배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의 성격과 의미」, 『국토』 2002년 9월호 41〜47면; 김기환 「한국은 동북아 금융중심지가 될 수 있다」, 『World Village』 1호(월간조선사 2002) 98〜106면.↩
- 이창재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화 전략의 기본방향』(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2).↩
- 남덕우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삼성경제연구소 2002) 50면.↩
- 임진수 「동북아 항만허브화 전략」, 경제사회연구회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연구 워크샵 결과보고서』(2003) 85〜104면; 조우현 「허브코리아로 가는 길–인천국제공항의 잠재력」, 『World Village』 1호 130〜36면.↩
- 김기환 「한국은 동북아 금융중심지가 될 수 있다」, 『World Village』 1호 98〜106면.↩
- 서울파이낸셜포럼 「아시아 국제금융중심지로서의 한국: 비전과 전략」(2002).↩
- 안형도 「동북아 금융 중심지화 전략」, 경제사회연구회, 앞의 책 105~20면.↩
- Saskia Sassen, “Global financing centers,” Foreign Affairs 1999년 1-2월호 75〜87면.↩
- 이창재, 앞의 책 96〜98면.↩
- 임덕순 「동북아 R&D 허브 구축방안」, 경제사회연구회, 앞의 책 325〜48면.↩
- 강홍렬 「정보통신 아시아 허브국가: 정보통신전략 수정의 제안」, 경제사회연구회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연구 워크샵 결과보고서』(2002) 145〜66면.↩
- 김원배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국가 실현을 위한 지역협력방안」, 경제사회연구회, 앞의 책(2003) 283〜308면.↩
- 거대도시지역의 역할에 관해서는 Allen J. Scott ed., Global City-Regions: Trends, Theory, Policy(Oxford University Press200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