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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윤성학 尹聖學
1971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cupnoodle@hanmail.net
매
매받이는 사냥을 나가기 한달 전부터
가죽장갑을 낀 손등에 나를 앉히고
낯을 익혔다
먹이를 조금씩 줄였고
사냥의 전야
나는 주려, 눈이 사납다
그는 안다
알맞게 배가 고파야
꿩을 잡는다
배가 부르면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꿩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날아 도망갈 수 없을 만큼의 힘
매받이는 안다
결국 돌아와야 하는 나의 운명과
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야성이 만나는
바로 그곳에서
꿩이 튀어오른다
정로환
가실 때, 정로환 한병을 가방에 넣어드렸다
멀리서 손주딸 살림을 들여다보러 온 처할머니가
선 채로 똥을 지렸다
다리를 타고 내린 덩어리 하나가
바닥에 멈추어섰다
아내는 얼른 달려가 휴지로 그걸 훔쳐내었다
바지를 벗기고 노구를 씻겼다
딸아야,
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다
고개 돌려 모른 척하던 손주사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다
구멍이 헐거워
밑살이 야물지 않아
내 속이 늘 가지런하지 못했다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몸에서 놓치곤 했다
늙는다는 건
구멍이 느슨해진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더 늙어야
나의 구멍들을 다스릴 수 있을 건가
가실 때,
정로환 다섯알을 내가 먼저 꺼내 먹고
가방에 넣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