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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P. 코엘료 장편 『연금술사』 『11분』, 문학동네 2001, 2003

베스트쎌러의 겉과 속

 

 

설준규 薛俊圭

한신대 영문학과 교수 jksol@hs.ac.kr

 

 

연금술사

브라질 출신 작가 파울로 코엘류(Paulo Coelho)의 소설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56개 언어로 277종의 작품이 번역되어 150개 나라에서 5천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코엘류가 저자 싸인회를 열면 나라를 불문하고 수천명의 팬이 몰리기 일쑤이고, 움베르또 에꼬, 빌 클린턴, 줄리아 로버츠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그의 소설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니, 그의 인기는 어지간한 팝스타를 능가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1988년 작 『연금술사』(O Alquimista)가 인터넷 서점 베스트쎌러 목록에서 연이어 최상위권을 점하고 있는가 하면 2003년 작 『11분』(Onze Minutos)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가 누리는 대중적 인기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그의 작품세계의 실상이 어떠한지 이 두 작품을 중심으로 간략히 짚어보기로 한다.

코엘류의 출세작인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소년시절 신학교를 다니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어 양치기가 된 청년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근처에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것이라는 꿈을 거듭 꾸게 된 그는 그 꿈을 좇아 모험에 나선다. 그는 꿈을 좇는 모험 대신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여러번 떨쳐버린 끝에 드디어 보물을 찾게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보물 꿈을 처음 꾸었던 안달루시아의 어느 교회 근처에서.그리하여 작품은 오아시스의 아리따운 여인과 맺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이집트로 달려가겠노라는 산티아고의 다짐으로 끝난다. 보물도 찾고 사랑도 이루는 완벽한 해피엔딩이거니와, 꿈을 잃지 않음으로써 평범한 삶의 조건을 황금빛 성공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하는 산티아고야말로 삶의 연금술사가 아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2000만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쎌러의 인기를 작품의 됨됨이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연금술사』의 경우 ‘아하, 이런 요소들이 독자를 끌어당겼겠구나’ 하고 집히는 대목들은 적지 않다. 작품의 대중적 인기가 반드시 작품성에 대한 부정적 지표가 되어야 할 까닭은 없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의 경우 대중적 인기가 작품의 높은 품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이 작품은 좀 긴 중편 수준의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천일야화』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해몽은 제대로 하지 않고 딴청만 부리면서도, 보물을 찾게 되면 10분의 1을 복채 대신 내놓으라는 엉뚱한 집시 점쟁이 노파, 삶의 신비를 꿰뚫어보는 듯한 늙은 왕, 여비를 도둑맞고 곤경에 빠진 산티아고를 도와주는 맘씨 좋은 크리스털 상인, 연금술에 심취한 좀 현학적이지만 선량한 영국인, 우주의 이치를 꿰뚫은 듯한 신통력을 지닌 연금술사 등 이들 각양각생의 인물들은 입체적으로 다루어지기기보다는 대체로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제시되긴 하지만 한차례 ‘눈요깃감’으로 그럴싸하다.

문장이 술술 읽힐뿐더러 분량이 두어 시간이면 독파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는 것 말고도, 이 작품이 독자의 복잡한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대중적 인기의 한 요인일 듯하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산티아고는 그의 의지 바깥에서 신비롭게 주어지는 ‘표지’들을 수동적으로 따를 뿐 자기 앞에 놓인 대안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는 법이 없다. 소설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전개지만 복잡한 것을 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그만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환영이겠다.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겠다는 애초의 꿈을 이룰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아리따운 여인의 사랑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멜로드라마적 마무리도 근사한 대리만족을 제공하면서 독자의 구미를 당길 법하지만, 작품 도처에 심어져 있는 삶에 관한 경구적 표현이야말로 『연금술사』가 누리는 대중적 인기의 주된 원천이라고 짐작된다. 몇가지만 예를 들자. “지극히 단순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사랑이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금을 대지로 되돌려주는 힘”이다. 이런 식의 경구는 그 의미가 대체로 친숙한 것이어서 독자가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기에 안성맞춤이다.설사 책을 덮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말지언정 이 경구들은 무언가 실속있는 책읽기를 했다는 충족감을 독자에게 선사할 법하다. 사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저런 경구적 표현을 들며 삶의 지혜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 의미와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는 경구의 빈발은 교훈집이라면 모르되 소설로서는 딱히 미덕이 아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성인독자를 겨냥하면서도 동화적·우화적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쌩떽쥐뻬리 소설 『어린 왕자』의 아류쯤 되고, ‘높이 나는 자만이 멀리 본다’는 경구로 기억되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떠올리게도 하는 고만고만한 소품이다. 문제는 초대형 베스트쎌러의 위세에 편승해 이 작품의 의미가 과장되는 것이다. 『연금술사』가 소설로서 허술하다는 것은 이미 대충 언급한 셈이지만, 이 작품이 표방한 “꿈은 이루어진다”는 식의 처세훈이 독자들 사이에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진다면 문제일 것이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차분히 따져보면 꿈도 꿈 나름인 것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남에게 해를 입혀야 한다거나, 내 꿈과 남의 꿈이 서로 다툰다면 어쩔 것인가? 좀더 근본적으로 따져서, 내 꿈이 과연 오롯이 나 자신의 것인가? 내 꿈이란 것은 실상 내가 받은 교육, 내가 본 TV광고 등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 아닌가? 이런 의문과 아울러 꿈을 좆는 데 따르는 노력을 온전히 다루지 않고 꿈 그 자체를 절대화하는 것은 일종의 소설적 기만이라 하겠는데, 『연금술사』의 소설적 지평에 그와 같은 의문이 떠오를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꿈을 좆는 데 따르는 노력이나 고통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좀 짓궂게 말하자면, 피라미드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산티아고의 꿈은 한마디로 국제적 도굴꾼의 꿈인데, 그런 꿈을 집요하게 꾼 댓가로 금은보화와 아리따운 여인의 사랑을 흔연히 안겨주는 작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11분』은 코엘료의 최근작으로, 제목은 삽입에서 사정에 이르는 성교의 평균적 시간을 좀 넉넉히 잡은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 마리아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해온 젊은 브라질 여성으로 명예와 부를 꿈꾸며 스위스로 건너가지만 얼마 못 가 고급 매춘부의 길로 빠져든다.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를 고향에 돌아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비용을 마련하는 방편으로뿐만 아니라 성(性)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적극적 기회로 활용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화가로서 명성과 부를 겸비한 랄프를 만나 육체와 영혼의 욕구를 두루 충족시키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어낸다.

작가는 마리아가 자신의 매춘생활에서 느낀 바를 일기형식으로 적은 글을 이야기 속에 끼워넣음으로써 사랑에 관한 ‘철학적’ 모색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모색이 의미있는 성찰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마리아의 상대 랄프는 남다른 내면의 깊이를 지닌 것으로 신비화되어 있을 뿐 작중인물로서 구체성이 크게 모자라고,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육체적·정신적 교감도 대체로 추상적 언어로 표방되고 있을 뿐 그 실체가 실감있게 그려지지는 못한다. 두 사람의 성교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길게 이어지긴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새롭달 것 없는 포르노적 관심을 유발할 따름이다.

멜로드라마의 압권이라 할 소설의 마무리 부분은 여기저기 던져놓은 사랑의 참된 의미에 관한 추상적 언표가 소설적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혐의를 짙게 한다. 랄프를 통해 육체와 영혼이 합일된 ‘완전한’ 사랑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의 곁에 머물면 꿈이 현실로 바뀌어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이어지고 사랑을 속박으로 바꿀 것이므로 “꿈은 꿈으로 내버려”둔 채 그를 떠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제네바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랄프가 자신을 붙잡으러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데, 마리아가 기다림에 지쳐 그 기대를 버리려고 할 즈음, 아니나다를까, 랄프가 장미다발을 들고 낭만적 대사를 외며 등장한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사랑이 속박으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를 대뜸 접고,자신을 향한 완벽한 사랑뿐만 아니라 돈과 명성을 두루 지닌 랄프를 신랑감으로 받아들인다. 이 정도면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따로 없겠는데, 작가 자신의 말을 빌면 ‘성의 성(聖)스러움’을 추구하려 했다는 소설이 현대판 『씬데렐라』로 탈바꿈하고 만 셈이다. 작품의 끝부분에 “한편의 동화” 운운 한 것으로 보아 마무리의 멜로드라마적 작위성, 상투성에 대해 작가도 멋쩍어 한 듯하지만, 그같은 자의식이 상업주의적 해피엔딩의 문제를 해소하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씬데렐라가 되는 매춘부 이야기는 백만장자 역의 리처드 기어와 매춘부 역의 줄리어 로버츠가 계약동거 끝에 마침내 사랑으로 결합한다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프리티 우먼」과 판박이로 닮았으니, 줄리아 로버츠가 코엘료의 열렬한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