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S.W. 바우어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2: 중세편』
재미있는 이야기로 부활한 중세의 역사
조한경 趙漢慶
부천 중흥중학교 역사교사 minggi65@hanmail.net
역사교육, 특히 세계사 교육이 위기라고 한다. 맞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다소 엉뚱하지만 대입 수능시험을 위해 고3 아이들이 선택하는 사회과목 중 세계사의 선택비율이 위기를 진단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아이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구애를 하지만 그들의 간택을 받지 못하는 교과는 학교 현장에서 다른 교과목으로 대체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결국 역사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세계사를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결사대인 셈이다. 역사교사들은 학교에서 세계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글쎄……
역사교육이 위기라는 학교 밖의 호들갑과는 상관없이 요즘 역사교육 현장의 화두는 “살아있는 역사로 어떻게 아이들을 만날까?”이다. 밋밋한 역사적 사실로 가득 찬 교과서를 아이들과 함께 앵무새 훈련하듯 외우는 것을 역사교사들도 더는 참지 못한다.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역사교사들의 책꽂이에 하나 둘 꽂히고 있는, 새로운 서술방식의 책들이 사람 냄새를 풍긴다. 그동안 일상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인 문화사의 결실들로 책꽂이가 다채로워졌고 게으르지만 않다면 교탁 위에 올려 아이들과 흥정할 수 있는 수업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은 역사서는 교사들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역사책, 세계사 관련 역사책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아내가 얼마 전 쑤전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의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1: 고대편』(꼬마이실 2004)을 함께 읽으며 지구본을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집의 밤풍경을 떠올려본다. 둘이 서점에 들렀다가 사온 책이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는 두께의 책을 지구본을 친구 삼아 읽던 모녀의 모습은 역사교사인 아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2: 중세편』(The Story of the World: History for the Classical Child, Volume 2: The Middle Age, 2003)은 이러한 아빠의 호기심에 역사교사로서의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역사교사는 책을 읽으면서도 쉽게 몰두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특히 아이들을 상대로 한 책은 읽으면서도 끝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을까?” “아이들에게 역사적 상상력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어떤 역사상(歷史像)을 그려줄까?”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지 않을까?” 등등. 아이들을 상대로 한 이야기책이라는 점은 책을 읽는 내내 내용을 객관화시켜 보아야 한다는 관성을 자극했다.
나는 “양탄자를 타고 지중해로 중세 여행을 떠나자”는 저자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신 양탄자를 탄 딸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의 역사 이야기를 멀리서 구경하고자 했다. 그러나 쑤전 바우어는 자신의 이야기에 끝없이 몰두할 것을 요구했고, 거부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이 되어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어갔다. 결국 나는 쑤전의 요구에 손을 들고 말았다. 책의 말미에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양탄자 대신 배를 타고 지중해로 돌아가자는 그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그녀가 정해준 배의 갑판 위에서 중국을 거쳐 인도를 찍고 다시 지중해로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대체 무엇이 역사교사인 나를 깊은 이야기의 수렁으로 빠지게 한 것일까?
우선 이 책은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 쓰는 방식, 요즘 역사학습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야기체의 역사서술’(narrative)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다기보다는 듣는 것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듯 전개되는 이야기에 역사가의 식견을 녹여 보여주는 저자의 글쓰기는 참으로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면에서 서원대 허원 교수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 사실, 전설, 민담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중세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했다”는 추천사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전설과 민담 속에 담긴 시대상을 역사서술 속으로 끌어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지만 역사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우리에게도 많은 전설과 민담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책을 읽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중세 봉건영주의 성(城)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흔한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면 될 것을 쑤전 바우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숨바꼭질하는 오누이를 등장시켜 숨은 오빠를 찾아 헤매는 여동생의 눈으로 중세 봉건영주의 성곽 구석구석을 묘사한다(218~23면). 책을 읽는 아이들은 6면 분량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숨바꼭질하는 여동생이 될 수밖에 없다. 숨죽이며 숨바꼭질하는 오누이를 따라 달리는 아이의 눈앞에 묘사된 성의 모습은 그림이나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이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역사학습의 본질을 추체험(追體驗)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멋진 추체험을 한 셈이다.
또한 이 책은 끝없이 복습을 강요하는 짓궂은 선생이기도 하다.
“에르난 코르테스라는 모험가가 서인도 제도(중앙아메리카 동쪽의 여러 섬들이라고 앞에서 이야기했지?)에 도착한 데서부터 시작돼.”(443면)
물론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앞에서 한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 리 없다. 아이들의 기억을 자극하는 글쓰기는 자신의 수업에 끝없이 집중해줄 것을 바라는 선생을 그대로 닮았다. 새로운 용어를 이야기할 때는 더욱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엔리케〕는 ‘항법’ 학교를 세웠지. 항법이란 정해진 바닷길을 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말해.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그 기술을 바다에서 익히기란 너무 어려워.”(378면)
‘교양 있는 아이’를 위해 필요한 용어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그 눈높이에 맞도록 군더더기 없이 개념을 풀어준다. 그러고는 복습으로 확인까지 한다.
또다른 매력은 없을까? 역사 속 인물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위대하고 완벽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아이들은 그런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은 관계가 없다고 간단히 결론짓곤 한다. 쑤전 바우어의 이야기 속 위인들도 여전히 위대하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위인들은 인간적인 모습도 살짝 드러낸다. 아이들과 비슷한 인간적인 고민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손을 뻗어 도움을 주고 싶은 동정심을 자아낸다. 글을 배운 적이 없는 샤를마뉴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유식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배우고자 노력했다는 서술이 그렇다.
“자다가 깨면 일어나 앉아서 글쓰기 연습을 했던 거야. 그러나 그는 끝내 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했단다. 중세의 로마 황제라고 불렸을 만큼 위대했던 샤를마뉴 대왕이었지만 사실은 너만큼도 글을 몰랐던 거야.”(170면)
그러나 500면이 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역사교사의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추체험, 이야기식 서술, 신화와 민담 속에서 역사를 이끌어내는 화려한 역사적 기법, 공간과 시간을 절묘하게 섞어나가는 구성, 개념과 사실을 연결지으며 아이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넣는 기술 등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새겨봄직한 수많은 장점들이 잘 짜여진 직물처럼 엮여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 아이들(미국 아이들이나 유럽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과연 쑤전 바우어의 세계사 이야기로부터 어떠한 의미를 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섭섭하게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이야기는 소략하다 못해 초라하다. 몽골제국은 작은 나라 고려를 너무도 쉽게 정복해버렸다. 그게 전부다! 저자가 역사의 시공을 넘나들며 아이들에게 탈 것을 권한 양탄자는 아시아의 하늘을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야 했을까? 아무래도 나의 딸은 아시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양탄자는 너무도 오랫동안 유럽에 머물러버렸다. 가끔 유럽을 벗어나기도 했지만 유럽의 역사와 깊숙이 관련이 있는 지역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녀의 양탄자는 순식간에 아시아와 신대륙을 스쳐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스쳐가버린 곳에 아쉬움을 느끼며 오랫동안 양탄자 위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 때문에 쑤전을 질책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녀는 미국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좀더 본질적인 점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왜 세계사를 가르치는가 하는 것이다.
“균형잡힌 세계관을 갖고 세계의 역사 속에서 우리 역사를 이해한다”는 세계사 교육의 목표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세계사를 배우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폭넓게 인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아이들이 배우는 세계사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세계사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의, 특히 유럽의 역사에 대한 사실적인 지식을 잘 전달하는 데는 틀림없이 유용하다. 역사교사인 나는 이 책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면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그려져야 할 세계사의 큰 그림을 확인해야 할 지점에 이르면 나는 과감히 이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빠로서, 역사교사로서의 호기심은 계속된다. 정말 궁금하기 그지없다.‘근대’의 강물에 세탁을 한 쑤전 바우어의 양탄자는 남아 있는 세계의 역사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쑤전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 책이 세상 빛을 볼 날을 기다릴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