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21세기 생태적 전환을 위한 실천모델
F. 알트 『생태주의자 예수』, 나무심는사람 2003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 prlee@mail.knou.ac.kr
위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격렬한 저항과 강경한 진압이 있었고, 주민들의 슬픔에 찬 통곡과 촛불시위도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 이 문제가 주요 토론거리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정부와 주민 간의 열띤 공방이 있었다. 이들 토론에 여러차례 직접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런 가운데 틈을 내어서 『생태주의자 예수』(Der ökologische Jesus, 손성현 옮김)를 읽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저자 프란츠 알트(Franz Alt)가 생태주의자로서 원자력의 위험과 대안의 현실성에 대해서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일종의 ‘가르침’ 같은 것을 얻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첫부분부터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말이 나온다. 그는 우리 세대가 ‘번식본능(Brutinstinkt, 역서에는 보호본능)을 잃어버린 인류 최초의 세대’(20면)라고 말한다.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핵이라는 우리 후손들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일을 저지름으로써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세대라는 것이다. 프란츠 알트가 말하는 ‘번식본능’의 상실은 지금 우리 사회에 쌓여가는 핵폐기물과 그 처분과정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핵폐기물은 현 세대가 현재를 즐기면서 만들어낸 배설물이지만, 후손에게는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만일 ‘번식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후손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핵폐기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위도 주민들에게 ‘번식본능’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위도 주민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수억원의 돈을 받고 섬을 뜬다면 자신의 현재를 위해서 미래 세대의 삶터를 황폐화시켜도 좋다는 ‘번식본능’에 어긋난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란츠 알트가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핵이라는 세 가지 위협에 대해서 심각하게 경고하지만, 그의 논조가 기독교에서 종종 강조하는 종말론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입장은 우리가 ‘생태주의자 예수’를 발견하고 그의 생태적인 삶을 실천할 때 이들 위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협이 닥쳐오고 있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낙관주의는 당연히 부정하지만, 아무 대책없이 생태적 종말을 이야기하는 비관주의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발견한 예수는 세상의 종말이나 속죄를 설파한 예수가 아니라 깊은 생태적 마음을 가지고 자연뿐 아니라 모든 부류의 사람과 함께 현재의 삶을 긍정하며 즐겁게 살던 예수다. 예수의 메씨지는 행복의 메씨지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생태적 예수의 행복 메씨지를 받아들여 내면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이와 동시에 실천적인 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여나갈 때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생태위기를 강조하면서 오직 ‘적게’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소극적·금욕적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물론 ‘적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전을 지닌 것이 아니고, 따라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던져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해서 절약만을 강조하는 것은,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한다. 에너지 절약은 성공을 약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해마다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1만5000배에 달하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일은 그 일에 뛰어든 사람에게 성공에의 자신감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실천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란츠 알트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모든 생태문제를 내면의 변화와 대안적 실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고 그래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책 전체에서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만 문제가 풀린다고 강조한다. 그는 에너지·물·농업·교통 등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를 정신과 기술 두 측면에서 접근하며 대안과 비전을 제시한다. 태양은 창조주의 축복이고 모든 문명권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말에 이어서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각종 기술과 구체적인 실천사례가 나오고, 에너지 기득권세력이 이를 어떻게 방해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항해서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또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식이다.
물의 경우는 거룩하고 “자연의 걸작이며 지구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고, “생명이며 태초의 힘”이고, “어떤 문화권에서든 물을 어떤 특별한 것, 거룩한 것으로 보았다”는 이야기(300면)에서 시작하여 전세계의 물문제에 대한 진단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에 2010년과 2030년의 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이들 비전에는 물 절약 기기를 설치하고 물의 가격을 올려서 물사용이 줄어들게 만들고, 하수를 정화하는 필터장치를 도입하여 물을 여러차례 순환시켜서 이용하고, 빗물을 이용하는 등의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수자원을 더럽히지 않는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이 포함된다. 농업에 대해서는 먼저 자연이 지닌 속도와 리듬의 의미 그리고 이 리듬의 상실, 즉 점점 더 빠르게 만들기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결과 중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의 것이 광우병인데, 광우병은 “자연이 예정해둔 것보다 빨리 자라게”(343면) 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다. 광우병은 패스트푸드적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생태적 리듬의 회복은 느긋하고 편안한 식사로 나아간다.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지금 먹는 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재배되었는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생태적으로 먹을 때만’ 가능하다(344면).
프란츠 알트는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언론인에게서 깊이있고 논리전개가 뛰어난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 모른다. 『생태주의자 예수』도 논리전개가 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의 생태위기를 깊은 정신의 눈과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지닌 언론인이 수많은 위기와 실천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현장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경험의 종합기록이다. 책 전체를 통해서 번득이는 통찰과 기지에 찬 표현과 유머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독자들이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즐겁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아직 희망적인 비전이 존재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함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