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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파국의 교훈
칠레의 쿠데타 이후 삼십년
아리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
칠레의 시인, 소설가. 1942년 아르헨띠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칠레에 정착. 칠레에서 삐노체뜨의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망명. 현재 미국 듀크대학 교수. 소설집 『우리집에 불났어』,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문화비평집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공저),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가 한국에 번역 소개됨. 최근에 Exorcising Terror: The Incredible, Unending Trial of General Augusto Pinochet 출간. 이 글의 원제는 “Lessons of a Catastrophe: Thirty Years after the Coup in Chile”(The Nation 2003. 9. 29)이며, 도르프만의 홈페이지(www.adorfman.duke.edu)에 올려져 있음.
ⓒ Ariel Dorfman 2003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3
그런 일이 여기서 일어날 리는 없다.
삼십년 전 이것은 우리가 되풀이하고 우리가 노래한 구절이다. 칠레 싼띠아고의 거리에서.
그런 일이 여기서 일어날 리는 없다. 이 나라에 독재란 결코 있을 수 없다.사납게 덮쳐올 역사의 광풍을 향해 우리는 공언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너무도 견고하고, 우리의 군대가 국민의 주권에 너무도 헌신적이며, 우리 국민이 자유를 너무도 사랑한다고.
그러나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군부는 지구상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던 쌀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합법정부를 전복시켰다. 그날 공군이 대통령궁을 폭격함으로써 17년간 지속될 독재, 심지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난 오늘날에도 계속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갉아먹는 독재가 시작되었다.
쿠데타는 그 뒤에 고통과 상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지난 삼십년 동안 내가 마음속으로 거듭거듭 되짚어온 물음들 또한 유산으로 남겼다.
제구실을 하던 의회, 제도적 관용의 오랜 기록, 번창하던 자유언론, 독립적인 사법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문민통치에 복종하는 군대를 지닌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런 나라가 도대체 어찌하여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엄밀히 말하면 살인적인 정권들이 사라진 것도 아닌 이 대륙에서–가장 극악한 폭정의 하나를 낳고 말았을까? 더 중요한 물음은 강력한 민주주의를 물려받은 그렇게 많은 칠레의 남녀들이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극악한 종류의 유린이 자행되는 동안 왜 외면했는가, 왜 그들은 자신의 처절한 도시의 지하실과 다락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들은 고문도, 대량학살도, 한밤중의 실종도 없다는 듯이 처신했는가? 그리고 최종적이고 더 무서운 도전, 칠레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 위협받는 이 세계의 시민들에게 경고가 되는 그런 도전으로서, 장차 이와 유사한 사태가 명백히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갖춘 그런 나라들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칠레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 자유의 침식이 미국, 인도, 브라질,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독일에서 얄궂게도 되풀이될 것인가?
물론, 삼십년이 지난 지금, 하나의 역사적인 상황을 다른 나라에 무턱대고 투사하는 것이 지적으로 위험한 일임을 나는 안다. 칠레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잃어버리게 된 상황은 아주 특정한 것이며 현세계 어디에서도 이와 똑 닮은 것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차이와 거리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비극은 미래에 이와 유사한 정치적인 재앙들을 피하고자 한다면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주요한 메씨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즉, 다른 면에서는 평범하고 남부럽지 않은 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그리고 박해받는 동포들의 자유–가 안전의 이름으로, 테러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도난당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바로 그것이 삐노체뜨 장군과 그 무리들이 자신들의 군사적 정권탈취를 정당화한 방법이며 자신들의 광범위한 인권침해에 대해 대중적인 지지를 일궈낸 방법이었다. 쿠데타 며칠 뒤 임시군사정부 위원들은 비밀스런 ‘제타 계획’(Plan Zeta)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는데, 아옌데와 그의 ‘앞잡이들’이 대학살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계획의 증거는 결코 발표되지 않았으며, 아옌데 대통령을 따르다 체포되고 고문받고 추방당한 수십만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처형되거나 ‘실종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기소된 그 음모 때문에 법원의 재판에 회부된 바 없었다. 하지만 공포는 일단 국민의 마음을 파먹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무소불위의 정부에 의해 조작되고 나면, 이성에 의해 쉽게 뿌리뽑히지 않는다. 쉽게 다칠 수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영원한 희생자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재적인 범법자에 대한 어떤 처벌도 과중하지 않은 법이며, 안전을 확보하려는 어떤 조처도 극단적이지 않은 법이다.
이것이 칠레를 황폐케 한 쿠데타 이래 삼십년 동안 이 나라가 우리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교훈인바, 더구나 또다른 끔찍한 9월 11일, 곧 죽음이 다시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고 수천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다시 살육된 2001년 그날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공교롭게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의 시민들이 겪은 테러가 칠레의 ‘제타 계획’이 결국 판명된 바와 같은 그런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공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인류 대다수가 그 슬픔과 실수들을 빨리 망각할 수 있었던 먼 나라 칠레의 경우보다 훨씬 더 긴박하게 만든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그 재앙적인 공격 이후 두해 동안 지금까지 일어난 사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무적인 것이 전혀 없다. 안전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또 수시로 말이 바뀌면서 모호한 형태로 정의되는 테러리즘에 대한 끝없는, 연출되는 전쟁의 일환으로서, 미국 시민들의 수많은 시민적 자유들이 위험한 지경으로 축소되었다. 하물며 미국 국경 내의 비미국인들의 권리는 말할 것도 없다. 해외에서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이는 테러에 대한 전쟁이, 민주주의적인 사회든 권위주의적인 사회든 전세계에 걸쳐 자유를 약화시키는 핑계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의해 ‘해방된’ 두 나라, 그래서 이제는 한때 악정을 펼치던 터무니없는 독재정치가 사라졌다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조차 점령자들이 인권을 유린하는 우려할 만한 징후들이 보인다. 옛 감옥들이 다시 문을 열고 민간인들이 사살되고 사람들이 납치되어 이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관료주의의 밤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칠레가 그렇게 많은 해 동안 견뎌온 것처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거대한 경찰국가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나는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만일 오늘날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칠레의 국민들이 삼십년 전에 살기 시작한 그 파국의 가장 깊은 의미를 유념하지 않는다면 칠레의 고통은 헛될 것이다.
우리 역시 생각했고, 우리 역시 외쳤고, 우리 역시 전세계에 장담했다.
그런 일이 여기서 일어날 리는 없다고.
그다지 멀지 않은 싼띠아고의 그 거리에서 우리 역시 내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테러들에 눈감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申鉉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