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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수영 金秀映
1967년 경남 마산 출생.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오랜 밤 이야기』 등이 있음. kimsu01@hanafos.com
은방울꽃 무덤
푸른 안개에 덮인 골짜기를 지나며
나도 머리를 깎고 싶어졌다
허공에 걸린 절집에 머물면서
새들만 날아드는 산속에서
차르르 어깨를 흔드는 기척
검고 숱 많은 내 머리카락 떨어지는
소리인 듯 서늘해지는데,
산이 꺾이는 골짜기 벼랑 위
한뼘 햇살이 머무는 곳에
작은 무덤,
언젠가 산에서 만난 아이
웃을 때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처럼
은방울꽃 피어서 웃고
무덤 주인은 오래전에 흙으로 돌아갔을 터인데
이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생을 무덤 곁에서 우는 벌레도 있다
두 손 모아 절을 하듯 날개를 비비며
붉은 날개옷
저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
허공에 앉아 날개를 접은
나비 같은
그 그늘에 발을 담근 채,
붉은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꽃의 열반을 본다
둥글게 벌린 꽃의 중심은
깊고 어둡다
고운 날개옷 다 벗어버리고
저 꽃은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짧은 한낮에 다 건너갈 수는 없는데
저 꽃담 너머의 구름꽃밭
떨어진 꽃잎 주워 붉은 날개옷
한벌 짓고 싶었다
부질없는 짓인 줄은 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