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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혜경 李惠敬
1960년 충남 보령 출생. 198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장편 『길 위의 집』 등이 있음. pohon1@hanmail.net
피아간(彼我間)
“그래도…… 오래 고생하시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야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차가 속력을 높이자 남편이 침묵을 깬다. 남은 시간이 하루이틀뿐이니 가족을 부르라 했다는 의사의 말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다. 이즈음엔 경은 또한, 더 고생하는 것보단 가시는 게 그나마 한 목숨으로서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며칠 동안 내린 비에 씻겨 화창하진 않으면서도 극명하게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을 보면서 어머니의 상여 뒤를 따라가던 십여년 전의 그 맑디맑은 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미 속으로는 아버지를 내려놓았다는 게 정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의 말은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경은의 마음에 꽂힌다. 한치 건너 두치라더니, 당신 아버지였대도 그런 말이 나오겠어? 뾰족하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경은은 혀끝을 동그랗게 말아 가둬버린다. 왜 이렇게 마음에 날이 선 것일까.
팔순을 넘긴 아버지가 쓰러져 뇌출혈 수술을 받은 지 석달째였다. 지난주, 두문불출해야 하는 경은과 달리 차로 두시간 반 거리인 고향의 병원에 자주 들르던 큰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경은은 삶아 말린 기저귀를 개고 있었다. 삶아 말린 빨래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갇힌 공기 속에 번졌다.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는 태풍이 남쪽 지방을 지나는 중이고 곧 장마가 시작되리라 예보했다. 신장기능이 거의 바닥이고 호흡이상도 오기 시작했대. 앞으로 한두 주 남았다는데…… 경혜랑 나는 그동안에라도 시간 나는 대로 가보려고. 이따 다시 통화해봐야겠지만, 내일쯤 내려갈까 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나도 갈래. 갈 수 있겠니? 힘들어도, 그래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뵈어야 할 텐데…… 같이 갈래? 큰언니가 반기자 경은은 얼른 뒤로 뺐다. 아니, 난 형편 봐서. 그리고 지금은 기차 타는 게 더 편할 거 같아.
부풀 대로 부푼 배,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철도 승강장의 계단을 내려가기는 힘들었다. 열차 안에선 배를 독서대 삼아 육아책을 읽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늘이 나에게 준 은혜요 책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육아책 서문의 문구는 삼십대 후반에 처음으로 아이 엄마가 되는 경은에게 부적을 지닌 것과 같은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한평생 당신의 불완전함을 남몰래 견뎠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스멀거렸다. 경은은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집을 나설 땐 자박자박 땅을 적시던 빗줄기는 어느새 제법 굵어졌다. 차창에 부딪힌 빗방울은 가는 물방울의 꼬리를 만들며 발발 기었다. 꼬리를 달고 기어가는 생물체 같은 물방울. 삼십몇년 전 어느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교합했다. 그날 아버지가 쏟아낸 무수한 정자들 가운데 하나가 난자에 닿아 수정한 생명, 그게 경은이었다. 그처럼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사람이고, 간발의 차이로 엇갈릴 수도 있는 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다. 다른 정자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경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경은은 발발거리며 이합집산하는 물방울들처럼 갈피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간추렸다. 이 나이면 남편을 여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식을 앞세울 수도 있는 나이야. 그러니 부모를 여의는 건 그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지나지 않아. 팔순을 넘긴 아버지가, 당신이 오신 곳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뿐이야. 그러자 마음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경은의 묵묵부답을 초조함으로 해석했는지 남편이 속력을 높인다. 100을 조금 넘었던 속도계의 바늘이 110을 거치더니 어느새 120을 훌쩍 넘어설 때, 경은은 여행가방을 꾸리다 받은 시어머니 전화를 떠올린다. 얘기 들었다. 너도…… 가야지? 가는 게 사람 도리이긴 한데…… 그래도 내 마음 같아선, 기왕 참은 거, 더 참았으면 좋겠구나. 경은이 가만히 있자 시어머니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조심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예사롭게 넘길 수도 있는 그 말이 마음의 날을 세운 것일까.
“네 마음이야 알지만, 그럴 거까지 있겠니? 다른 식구들도 많은데……”
소도시 종합병원 중환자실은 좁고 길쭉하다. 침상 일곱 개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하다. 침상과 침상 사이의 공간은 밭아서, 접의자 하나를 펼쳐놓으면 딱 맞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당연한 우려인데도 경은은 그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몇달 전을 떠올린다. 첫아이 임신했을 때 수박이 그렇게 당겼다는, 태아의 눈처럼 까만 씨앗이 박힌 수박 속살을 떠올리면 목구멍에서 손이 뻗쳐나올 것 같았는데 제철이 아니라 비싸서 먹을 수 없었다는 큰언니가 어느날 경은의 집에 왔다. 농수산물시장에 갔는데 수박이 좋은 게 나왔더라고. 조심하라는 의사의 당부를 환기하며 도통 얼굴을 안 비치는 경은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제법 배가 불러 임부 티가 나는 경은이 수박을 받으려 하자 큰언니는 손사래를 치고 다용도실로 수박을 가져다놓았다. 어이구, 얼마나 잘난 아기가 나오려고 이렇게 엄마 꼼짝도 못하게 고생시키냐? 어디 이모한테 인사 좀 해봐라. 큰언니가 손을 뻗쳤을 때, 경은은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허공에 뜬 손이 무색해보였다. 미안해, 언니. 내가 좀 과민하긴 한가봐. 경은은 사과했지만 뒤로 젖힌 몸을 움직여 손을 대게 해주진 않았다. 하긴 얘가 원가가 좀 비싼 애니? 네가 말은 안했어도 시댁에서 어지간히 스트레스 받았나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하면서 큰언니는 손을 거둬들였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가 바로 병원인데 이보다 더 안전한 데가 어디 있겠어? 염려 말고 언니나 가서 쉬어. 우리 그이 눈 좀 붙이라고 하고.”
복도에 놓인 의자나 병원측이 중환자실 보호자를 위해 마련해놓은 온돌방에서 토막잠을 자던 보호자들이 간간이 들여다볼 뿐, 소도시 외곽의 숲에 지은 병원은 밤이 깊을수록 적막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밤이면 더 위태로워지는 환자들이 저마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지만, 겉보기로는 그저 빗돌처럼 고요하다.
아버지, 그만 가세요. 한평생 가슴에 맺힌 거 다 풀고, 다 내려놓고, 그리고 훌훌 떠나세요.
경은은 환자복 앞섶으로 손을 넣어 아버지의 가슴을 쓸며 중얼거린다. 지난주에 왔을 때만 해도 아버지, 하고 부르면 눈을 떴는데, 이젠 빗장을 지른 듯하다. 다른 환자보다 뽀얘서 말끔하던 얼굴은 부풀 대로 부풀어 물주머니처럼 볼이 처졌다. 목엔 가래 제거를 위해 구멍을 뚫었고, 몸엔 오줌을 뽑는 호스며 심전도계 부속품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손등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엉치등뼈 부위엔 리본 모양의 욕창이 생겼다. 설사 의식이 돌아온다 해도 남은 나날은 치욕일 것이다. 경은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회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편안한 임종, 평온한 종말이다.
이태 전, 경은은 지금처럼 병상을 지키며 아버지의 소생을 간절히 기원했다. 방바닥에 앉으려다 다리가 풀려 고관절골절상을 입은 아버지가 경은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한시간 떨어진 도시로 와서 수술을 받았을 때였다. 수술은 깨끗이 끝났는데 그 다음날 폐기능에 이상이 생겨 사선을 넘나들었다. 마침 남편은 4박 5일 출장중이었다. 밤비행기로 떠나는 남편을 보내고 병원에 갔다. 병실문을 열자 소주냄새가 떠돌았다. 밤당번이라는 큰오빠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오빠들은 조금 전 돌아갔다고 했다. 밤새려면 술기운이라도 있어야지. 경은에게 변명처럼 말한 그는 보조침대에 누워 드렁드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코고는 소리에 놀라 아버지는 깜짝깜짝 깨어났다. 잠든 큰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어찌나 슬프고 그 안에 서린 허망이 어찌나 깊던지, 경은은 가슴이 철렁했다. 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아버지에게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다 내려놓은 이의 눈빛이었다. 잠든 사이에 사신이 나타나면 그냥 따라나설 것처럼 무력해 보이는 아버지 때문에 경은은 사흘 밤낮을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고 침대 머리맡을 지켰다. 사흘이 지나자 아버지의 눈빛은 체념이 가시고 다시 또랑또랑해졌다.
그러나 이제 경은은 회생을 바라지 않는다. 고관절 수술을 견뎌내고 팔순 생일상을 받은 아버지가 몇술 뜨고 일어나 방을 향하자, 그저 사람은 일흔살까지만 살고 죽는 게 딱 적당한 거 같다,고 말하는 큰아들, 교대로 병상을 지키며 수발을 들긴 하지만, 의식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장례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아들들, 출가 전부터 집안 대소사에 발언권이 아예 없어 방관자가 되어버린 딸들, 그 모두에게 아버지의 회생은, 예의상 중간에 일어설 수 없어서 몸을 비틀며 본 연극이 막을 내린 뒤, 뻑뻑한 뼈마디를 놀리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는 관객들에게 그 극이 단막이 아닌 이막극이고, 곧 이막이 시작되니 자리에 앉아 계시라는 안내방송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그때 관객들의 반응이,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경은은 두려웠다.
“할아버지, 또 이랬어? 자꾸 이러시면 안된다니까.”
간호사가 일어나 아버지 바로 옆 침상으로 다가가며 꾸짖는다. 살을 다 발라낸 것처럼 하악골의 윤곽이 훤히 드러난 노인의 코와 입을 덮고 있던 산소 흡입 마스크가 귓전에서 덜렁거린다. 그걸 올려놓은 간호사는 그 옆 침상, 누가 보아도 간이 상한 걸 알 수 있게 온몸이 초콜릿빛이 된 사내가 차낸 시트를 덮어준다. 아랫도리를 다 벗겨놓아서, 사내가 시트를 걷어낼 때마다 축 늘어진 성기가 드러난다. 한때 욕망으로 차올랐을 정낭도.
아버지, 다 잊고, 다 털어버리고 가세요. 이번 생 고단하셨으니 다음엔 편한 집에서 편한 신세로 태어나 편하게 사세요.
가르칠 만큼 가르쳐서 결혼시킨 7남매, 먹고살 만큼 일군 재산, 점잖은 집안이라는 세간의 평가로도 채워지지 않은 욕망 때문에 아버지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다 친정에 들른 경은에게 아버지가 서리서리 뭉쳐두었던 푸념을 풀어놓으면 경은은 그걸 받아 돌돌돌 감았다. 아버지, 아버지 욕심이 지나치신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우리집처럼 순탄한 집이 어딨어요? 일곱 남매 낳아서 일곱 명 키우는 거 쉽지 않은 복이구요, 제가 아이가 없달 뿐이지 다들 결혼해서 자식들 두었잖아요. 아버지 손주들만 해도 그래요. 요즘같이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아이들 많은 때, 막말로 몸이나 정신 성치 못한 손주 하나 없기가 어디 쉬운 줄 아세요? 게다가 그 흔하디흔한 이혼한 자식이 있어요? 교도소 구경한 자식 하나 없고, 게다가 다들 그런대로 먹고살잖아요. 이건 조상이 돌보신 거라구요. 그러니 여기서 더 바라시면 너무한 거지요.
이혼이 세상에 다시없는 패륜인 양, 감옥에 가지 않은 게 올바른 인성의 보증수표인 양, 장애를 갖지 않았다는 게 더없는 자랑인 양, 자기도 믿지 않는 말들을 읊조릴 때 경은은 어릿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우울한 제왕을 달래는 어릿광대.
뉘시더라? 목숨이 들락날락하는 사람답지 않게 맑고 안정된 눈으로 노인이 묻는다. 오후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 보호자가 내내 나타나지 않는 옆자리 환자가 산소 흡입마스크를 쳐내자 경은은 직접 마스크를 올려놓아준다. 밤근무에 지친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눈을 향해 뜻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경은은 문득 찔끔한다. 제 몸도 시원찮으면서, 제 아버지나 돌보면 되었지, 생면부지인 사람한테까지 신경쓰고 있다는 신칙이 들려와서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은 굳게 닫혀 있다. 제가 왜 찔끔했는지를 깨달은 그 순간, 아아, 아버지의 고단한 생애가 먼지냄새를 풍기며 훅 끼쳐와 경은은 그만 힘없이 의자에 앉는다.
벽면은 작은 스테인리스 문들로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 조화로 만든 작은 화환이 걸린 곳은 딱 하나다. 경은은 거기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가 이루려 했던 것, 지니려 했던 것과 동떨어져 온전히 차가운 몸 하나로 거기 있는, 유독 핏줄에 집착했던 아버지가 이루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채 가시지 않은 독기 때문에 경은은 속이 쓰리다.
발단은 십만원이었다. 사망하셨습니다. 7월 7일 오후 2시 25분. 의사가 선고하자 가족들은 공연이 끝나고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관객들, 마법에서 풀려난 성 안의 사람들처럼 분주해졌다. 장례식장을 특실로 잡아야 할까 일반실로 잡아야 할까 논란이 일고, 접대음식은 얼마짜리를 해야 돈을 덜 쓰면서도 격이 떨어지지 않을지 숙고가 오갔다. 조화를 떠멘 인부들은 어디에 놓을까 묻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찬모와 함께 육개장 냄새가 떠돌고, 가까운 데 사는 친지들이 하나둘 얼굴을 보였다. 소란은 그 와중에서 일어났다. 장례를 도우러 온 남자형제의 친구 가운데 하나가 큰언니에게 부탁했다. 누님, 애들 고스톱 치는데 잔돈이 모자라서요. 천원짜리로 십만원만 만들어주실래요? 어렸을 적부터 집안을 드나들며 낯이 익은 그의 부탁을 큰언니는 상주이자 호상을 맡은 큰오빠에게 전했다. 밤샘하는 사람들이 화투로 칠 잔돈을 상가 쪽에서 준비했다 빌려주는 건 이 지역 초상집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말했다. 내가 돈이 어디 있냐? 그리고 있다 쳐도, 어떻게 그 돈을 돌려받을 줄 알고 빌려준다니?
석달 동안의 병원비가 고스란히 아버지의 얇은 통장에서 빠져나간 걸 아는 큰언니는 어이없는 반응에 말을 순하게 할 수 없었다. 아니, 단돈 십만원도 준비하지 않고 장례 치르는 집이 어디 있어요? 그러자 큰오빠가 말했다. 네가 뭔데 나서냐?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데 십만원도 마련하기 어려운 집안도 있기는 있을 터였다. 시신 찾아갈 돈을 마련하지 못해 해부용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바에야. 그러나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맏이라는 이유로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를 모시지는 않은 큰오빠가, 장례식장 한층을 다 차지한 특실을 잡은 상가의 상주로서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판에 할 소리는 아니었다. 여느때라면 남편에게 돈을 바꿔오게 해 조용히 수습했을 텐데, 경은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돈이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죠, 하는 대꾸에,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난 돈 만드는 재주 없다. 그 순간 경은은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멀어지는 등판을 향해 내뱉었다. 저게 사람이야? 경은의 말에서 번지는 독기는 담즙보다도 쓰고 위산보다도 강했다. 경은이 뱉은 독기가 공기중에 번지더니 경은 자신의 살갗을 쓰리게 했다. 보세요, 아버지. 저게 당신 큰아들이랍니다. 그러나 경은은 그게 망자가 된 아버지를 욕한 게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큰아들이 사람이 아니라면, 그를 세상에 있게 한 아버지는 뭐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 외침은 실상 큰오빠를 향한 게 아니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분담하던 여동생들에게, 네가 뭔데 나서냐,란 말을 그토록 떳떳하고 뻔뻔스럽게 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그 무엇에 대한 절망이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욕한 게 됐네요.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제가 원래 순한 딸 못되는 거 아버지도 알고 계시죠?
막내가 왔으니 이거 녹음하는 거 물어보아야겠네. 지나가는 것처럼 말하며 문갑 위의 카쎄트를 내리는 새어머니, 서령댁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이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아버지와 서령댁이 사는 집으로 안부전화를 건 경은이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하고 물으면 그런 거 없으니까 어서 몸 건강해서 아기 가질 생각이나 해, 하던 서령댁이 전화를 걸어와 부탁했다. 이담에 내려올 때 테이프 녹음하는 것 좀 사다줄텨? 노인네 둘이 적적하니 노래라도 녹음하려는 줄 알았다.
경은은 빈 테이프를 데크에 넣고 녹음버튼을 눌렀다. 아, 아, 녹음이 되나 보려구요, 마이크 시험중이에요. 되감기를 해서 돌렸을 때 아, 아, 녹음이,까지 재생되더니 녹음기에 갑자기 테이프가 걸렸다. 테이프를 꺼내 감은 다음 다시 시도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은 녹음기는 방치된 시간에 보복하듯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네요. 나중에 고치든가 해야겠어요. 아이 그럼 어떡해. 막내 왔을 때 녹음하렸더니 그것도 틀렸네. 서령댁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짜증과 울먹임이 실려서 경은은 속으로 눈을 크게 떴다. 경은이 막내라선지, 아니면 무릎이 불편한 서령댁이 집에서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다달이 우체국에서 부치는 용돈 때문인지, 서령댁은 경은에게 각별한 편이었다. 원래도 순한 사람이었다. 뭘 녹음하실 거였는데요? 경은이 물었다.
아버지가 이 집 명의변경 해준다는 말만 하고 안해주고, 아버지 돌아가시면 난 갈데도 없는데, 그래서 막내 왔을 때 그걸 녹음하려고 했는데……
서령댁의 사설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쑥 가시는 듯했다. 서령댁은 그러니까, 경은 앞에서 아버지에게 유언을 작성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 뭐 그럴 것까지 있겠어요? 자식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천연한 척 말했지만 경은의 목소리에도 심이 박혔다.
그래도, 큰아들은 와도 내게 인사도 안하고…… 그러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다 헛거지. 서령댁이 삐죽거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받기로 하고 수발들러 온 서령댁이었다. 경은은 대접을 하느라 어머니,라고 불렀지만, 아들딸이 있는 다른 형제들은 그냥 할머니,라고 했고 직접 불러야 할 땐 용케 호칭을 피했다. 서령댁의 장성한 소생들이 어머니의 노후를 염려해서 부추겼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 알아서 해줄 건데 저이는 공연히 여기저기서 말을 들어가지고. 내가 못 움직여서 애들보고 인감 가져다 명의변경 하라 시켰는데 애들이 안하는 걸…… 고관절수술 뒤 방 안에서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저 한교장네를 봐도 그렇고…… 아이고, 아버지! 경은은 속으로 혀를 찼다. 시내 중학교에서 정년퇴임한 한교장이 집 명의를 후취 앞으로 해주었는데 여자가 그걸 팔아먹고 혼자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렸지만, 서령댁 앞에서 내놓고 할 소리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친정에 온 딸과 이제껏 화락하던 일가족은 간데없고, 각자의 입장이 송곳니처럼 사납게 드러났다. 딸 앞에서 아버지 유언장을 작성하려는 서령댁, 그 앞에서 의심을 태연히 드러내는 아버지. 경은은 느닷없는 분노로 아버지의 역정과 서령댁의 설움을 한꺼번에 베어물었다. 아버진 지금이라도 명의 바꿔주고 싶으신 거죠? 그렇다마다. 아버지의 속마음이 다를지 모른다는 의심을 경은은 묵살했다. 아버지의 끼니를 십년 넘게 챙겨준 이도, 노년의 적막함에 말벗이 되어주고 힘 빠진 다리를 주물러준 이도 서령댁이었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들들에게 나누어준 재산에 비하면 그깟 아파트로는 오히려 대접이 소홀하다는 게 경은의 생각이었다.
서약서,라고 쓴 다음 경은은 아버지와 서령댁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문안을 써내려갔다. 위 사람은 본인 소유인 서경시 서경동 103번지 강남아파트 5동 102호를 본인 사망시에 ○○○에게 양도할 것을 서약합니다. 은행에서 자동이체 신청서를 쓸 때도 용지를 서너 장 버려야 할 만큼 서류작성에 서툰 경은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때를 대비해서 연습이라도 해놓은 듯 문구가 술술 나왔다. 아버지의 인감에 작성자인 제 손도장까지 꾹꾹 눌러 두 장을 만들었다. 한통을 서령댁에게 주고 한통은 경은이 챙겼다.
난막처럼 감싸 지상의 소란으로부터 지하를 보호하던 정적이 갑자기 찢어진다. 아이고, 아이고오…… 커다란 곡성이 흐른다. 경은의 배가 딴딴하게 굳는다. 상복은 얼마짜리로 할 것인가, 상복을 입는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오래전에 짜둔 오동나무관이 아무래도 안 맞을 것 같은데 어떡하나, 이런저런 말로 분주하다 문상객의 기척이 보이면 얼른 모여 서서 어이, 어이, 앓는 소리처럼 내는 곡성과 다른, 내장이 쏟아져나올 것 같은 곡성이다. 아이고, 아이고…… 애끊는 곡성은 안치실로 다가든다. 운반용 침대 위, 하얀 시트로 덮인 시신에 엎어지다시피 한 중년여인이 통곡한다. 아이고, 영석아, 내 아들아…… 내 몸속에 잉태해서 키워 내보낸 목숨과 영영 이별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식을 앞세운 여인의 비통함에 감염되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경은은 웅얼거린다. 아버지, 이제 좀 덜 무서우실 거예요. 혼자 계시지 않아도 되니까요.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깨닫는 순간, 경은은 머릿속이 휑하니 비는 것 같다. 애가 토막토막 끊어졌을 것만 같은 애통한 죽음 앞에, 기껏 아버지가 덜 외로우리라는 것으로 안도하다니.
서약서를 작성하려 펜을 집어들었을 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가뭄에 콩 나듯 들러 속 긁는 소리나 하고 가는 아들보다, 십년 넘게 온갖 수발 다 들어준 서령댁을 더 남이라 여기는 데 대한. 그러나 문안을 만들어가면서 경은은 서령댁의 뜻을 세우려 시작한 일이 실상은 아버지를 위한 장치임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욕망을 일단 발설했으니 그게 충족되지 않는 한은 서령댁이 전처럼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하리라 기대할 순 없었다. 인감이 찍혔다고는 하나 법률적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종이 한장에도 표정이 밝아져, 감때사나운 마음을 드러낸 걸 미안해할 만큼 순진한 서령댁에 비해 아버지는 한결 노회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경은이 전에 없이 아버지에게 무도하게 구는 것도 기실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임을 짚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도 그 일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던 걸 보면. 혹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땐 이 집을 서령댁이 지닐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어떤 일이든 할 거라는 확신도 그때의 경은에겐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만일 아버지가 그게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는 걸 몰랐다면? 갑작스런 깨달음에, 마음의 시커먼 동굴 속에 숨죽이고 웅크렸던 박쥐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며 소란스럽게 날아오른다.
거꾸로 매달린 채 제 몸을 깔끔히 닦고 난 박쥐가 몸을 비릊는다. 박쥐의 몸 한군데가 클로즈업된다. 몸의 일부가 힘겹게 벌어지며, 젖어서 미끈덩거리는 무언가가 그 사이로 밀려나온다. 새끼박쥐의 머리다.
경은은 공연히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듯해 힘을 주었다. 산고를 온전히 제 것으로 치를 때, 어미박쥐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가슴이 답답해진 경은은 무심코 옆에 놓인 스낵을 집어들다가, 아토피를 떠올리며 손을 거두었다. 화면에 눈을 준 채, 뒷걸음질로 냉장고에 가서 귤을 몇개 꺼내왔다. 껍질을 까서 입에 넣으면서도 눈은 화면을 떠나지 못했다.
새끼를 낳은 박쥐는 사냥을 한다. 해지고 삼십분쯤 지날 때 다들 나가서 밤새워 사냥을 하고 해뜨기 전에 돌아온다. 동굴에 총총 매달려 어미 없는 밤을 보낸 새끼들은 분주히 어미의 젖을 빤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공동생활을 하는 박쥐가 제 새끼를 찾아내 먹이는 것인지, 아니면 공동육아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안쥐래기박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어미 박쥐는 제가 낳은 새끼를 아주 쉽게 찾아낸다. 다른 새끼가 접근하면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구나. 하물며 동물조차 그러는 거였구나. 내 새끼와 남의 새끼를 구분하는, 내 핏줄과 남의 핏줄을 구분하는 것, 그게 목숨이구나. 그러나 정녕 그것밖에 안되는 걸까. 경은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며 웅얼거렸다.
의사가 집밖에도 나가지 말고 안정하라네요.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경은은 덧붙였다. 결혼한 지 7년 만이었다. 결혼 2주년이 지날 즈음부터 주위에서 받아온 은근하고 노골적인 압력을 모은다면, 작은 기관차쯤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설날이면 시아버지는 세뱃돈이 든 봉투를 건네면서 말했다. 너희도 건강하고, 올핸 꼭 손주 보게 해다오. 명절날이면 으레 방영되는 가족 소재의 드라마를 보다가 시어머니는 뜬금없이 물었다. 너희 동기간이 몇이랬지? 결혼 전, 우리집이 워낙 손이 귀해서 너희집 형제 많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더라, 했던 시어머니였다. 경은이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어른들을 속이고 피임을 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길도 날아들었다. 마침내 경은은 한의원을 찾았고, 불임클리닉을 드나들게 되었다. 오늘 오후 네시쯤. 날마다 초음파로 난자의 크기를 확인한 의사가 선포하면, 그 시간에 兒스를 하기 위해 남편을 호출했다.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촬영하고, 의사가 정해준 시각에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또렷이 자각하며 兒스를 하노라면, 제 몸이 아기를 만들고 낳기 위한 기계처럼 느껴졌다. 불임클리닉에서 자주 얼굴을 익힌, 인공수정을 거쳐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해보았다는 여자는 경은을 위로하느라 말했다. 그동안 내가 병원에 갖다바친 돈을 모으면, 웬만한 병원 하나 지을 수 있을걸요? 병원까지는 안 가더라도, 경은도 병실 몇개쯤 지을 만한 돈을 들여야 했다.
임신을 알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둔 경은은 집안 대소사에 참가하는 것도 면제받았다. 시어머니는 당신 생일 일주일 전에 미리 다짐을 주었다. 공연히 시에미 생일이라고 집 나설 생각은 하지도 마라. 우린 온천이나 갔다올란다. 언니들은 전화로 물어왔다. 입덧은? 태동은?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남편은 친지의 방문을 막았다. 이 사람이 워낙 예민해져 있어서요. 하는 일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텔레비전은 구원이었다.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채널을 돌려가면서 보았다. 사랑과 이기심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갈릴레아 호수와 사해다, 갈릴레아 호수는 요르단강 상류에서 끊임없이 신선한 물을 받아 그 물을 다시 요르단 강하류에 내놓는데, 이 호수 덕분에 많은 물고기와 싱싱한 야채가 자랄 수 있다, 한편 사해는 요르단강에서 물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데로 흘러가지 못해 문자 그대로 죽은 바다가 되어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라는 해설을 들으며 지명들을 외우려 애쓰기도 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이런 이야기에 빗대어 교훈을 전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갇혀 지내자 심해에 갇힌 듯했다. 숨은 앙가슴에 걸릴 뿐 그 이상 깊이 들이쉬어지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화들짝 놀랐다. 심해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올 때 생기는 잠수병을 두려워하듯 외출을 삼갔다. 먼 별에서 자기에게 오는 한 목숨을 떠올려도, 그 아이의 고물거리는 몸짓과 잠결에 배시시 웃는 미소를 떠올려도 마음속 스멀거리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양막 속에 든 아이의 씨앗 같은 눈과, 낙태반대운동의 상징이었던 태아의 앙증맞은 발이 떠오를 때면 까닭없이 눈물이 났다. 가벼운 우울증 같았다.
이봐요, 김여사. 염려 마. 당신이 좋은 마누라인지는 좀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최소한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것만은 자신있게 보증할 수 있어. 남편은 그깟 두려움은 별거 아니라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그의 장담이, 결혼 전 어느 주말의 기억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경은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토요일, 경은은 그를 데리고 근교로 갔다. 경은이 두 주일에 한번씩 들르던 장애아 보호시설이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세탁기로 빨아 볕에 말려놓은 기저귀를 개고…… 경은과 다른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단순했다. 욕심 사나운 지혜가 경은을 독점하려 들었다. 낯선 사람인 남편의 무릎에 찰싹 올라앉아 남편의 얼굴을 작은 손으로 토닥이는 애도 있었다. 장애 때문에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낯가리기엔 정에 너무 주려 있었다. 촛점이 맞지 않는 눈, 어치렁거리며 걷는 아이들 틈에서 그는 어쩔 바를 몰라 했지만, 그래도 안긴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순하지만 고집스러운 제민이는 경은의 등에 살며시 몸을 기댔고, 대개 뒷전으로 처지던 테레사는 경은의 무릎에 앉은 지혜의 눈을 피해 다른 쪽을 보는 척하면서 살그머니 제 발을 뻗쳐 경은의 허벅지 바깥쪽에 발바닥을 댔다. 그만큼의 접촉, 그만큼의 온기도 아이에겐 소중했다.
목을 감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타박타박 걸어나오는 봄날, 야산 어귀엔 조팝나무가 축복처럼 하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경은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여기예요. 여기가 향기가 가장 짙은 곳이에요. 야산이 들길과 만나는 지점, 그곳에만 이르면 무슨 세례라도 주는 듯 맑은 향기가 끼쳐왔다.
우리, 나중에 아이 낳아 키우고 나면, 시간 날 때마다 이런 아이들 돌보러 다니는 것도 좋겠다, 그렇지? 꽃향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그가 보인 감동은, 혹시라도 손 벌릴까봐 가난한 친척과 상종하지 않는 부유한 이가, 텔레비전 자선프로그램을 보면서 충동적으로 건 ARS전화 한통이나 다름없다는 걸 경은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낯선 아이들 틈에서 무리없이 섞이던 그의 여운 때문인지, 그 순간에는 그 말에 담긴 진심을 믿고 싶었다. 그가 감동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경은이 어디에 머리 두고 살아가는지 그에게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 가족, 내 핏줄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가 알아차리기 바랐다.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일도, 게다가 구색 맞추듯 아이까지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도 거부하며 삼십대에 접어든 경은은 그의 동행에 대한 답례로 조팝나무 향기를 선물하면서 비로소 그와의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뻐꾹, 뻐꾹. 밤의 들녘에 번지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밑 질긴 울음 끝의 흐느낌 같다. 모텔은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 사람 키높이의 나무들이 둘러싼 7층짜리 건물이다. 모텔 처마의 불빛 아래 경은의 상복은 희푸르게 빛난다. 가뜩이나 짧은 상복치마는 부른 배 때문에 앞이 들린다.
“언니 오빠 들이 애인이 있어서 러브호텔을 드나들었을 리는 없고…… 이참에 구경하시는 거죠, 뭐.”
모텔 입구에서의 어색함을 그런 말로 눙치며 들어가보니 실내는 뜻밖에 깨끗하다. 숙박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남녀의 정사를 위해서 지어진 듯한 건물인데도 방도 화장실도 요란스럽지 않았고 이부자리도 정갈해 보인다. 창문을 열자 숲을 거친 신선한 공기가 쏟아져들어온다.
이종사촌들은 함께 온 듯 한꺼번에 들어섰다. 그들은, 문상을 하고 문상객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방이 아닌, 복도 쪽 쏘파에 따로 앉았다. 니들 여기 좀 앉아봐라. 초상이야 돌아가신 분과 데면데면한 남들이 치러주는 거고 상제들은 슬퍼서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따라 죽을 수는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거다. 눈두덩이 소복해진 경은네 자매들을 붙잡아 앉힌 이종오빠는 친척들 이야기로 슬쩍슬쩍 웃겨 조금 남은 눈물마저 보송보송 말려놓더니 정색을 하고 나무랐다. 아무리 이모부가 편히 돌아가셔서 잘되었다 생각해도 그렇지, 니들은 상제들이 그렇게 웃어서 쓰겠니. 웃음이 나와도 배에 힘 꾹 주고 참았다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나 웃어야지.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순하게 쌍꺼풀진 눈에는 웃음기가 대롱거렸다.
대개 환갑이 멀지 않은 그들은 젊은날 한때 탁란(托卵)하듯 경은네 집에 맡겨졌다. 외가쪽은 입이라도 덜어야 할 만큼 군색했고, 경은네 집은 언제라도 일손이 필요한 집이었다. 이종오빠들은 상점일을 거들고, 이종언니들은 부엌일을 거들었다. 한 오빠가 몇달 머물다 가면 그보다 조금 나이 적은 오빠가 다시 그 자리를 채워 몇년 일하는 식이었다. 굳은 떡처럼 어딘지 모르게 박한 데가 있는 친가쪽에 비해 정이 많은 외갓집 사람들은 또 그만큼 가난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은은 때때로 이종사촌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남을 노골적으로 핍박할 만큼 모질지는 않았지만, 가족에게든 남에게든 너그러운 편이 아니었다. 징용으로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 홀로 산 둘째이모는 경은네 집에 일이 있을 때면 와서 머물며 어머니를 돕곤 했는데, 경은의 기억이 닿지 않는 오래전, 아버지는 이모가 오면 엄마에게 더 못되게 굴었다고 했다. 잘사는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해야 했던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아버지나 집이 어떤 무늬로 남아 있을지 생각하면 문득 마음 한끝이 삭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밤샘하고 다음날 발인을 보고 가겠다는 그들을, 경은이 굳이 나서서 근처의 모텔로 모신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 때문이었다.
결혼 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경은은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간 이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모는 미혼인 경은에게 이미 한 불효야 어쩔 수 없지만 어서 짝을 찾아서 아버지 돌아가실 때 마음 아프지 않게 해라, 하고 당부하더니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버지를? 이모가 아버지를 찾는 게 뜻밖이었다. 이모에게 아버지는 편한 제부가 아니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의 표정이 어색하고 침통했다. 예, 예. 아버지는 짧은 대답을 거듭했다. 이모가 뭐라셔요? 경은이 묻자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고 대답했다. 네 이모가, 우리 동생 아플 때 잘해줘서 고맙다고 나한테 인사하더구나. 네 이모가 참 양반은 양반인데…… 이모가 오면 아무것도 아닌 걸 트집잡아 엄마를 때렸다는 아버지,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러 왔다가 그걸 목격해야 했던, 못살아 더 서러웠을 이모는 그 기억들을 어떻게 다 삭인 걸까.
남자는 해 여자는 달, 그래서 일월(日月)이라는 글자 모양을 따라 남자는 왼편, 여자는 오른편에 묘를 쓴다. 막상 어머니의 묘 왼편을 파보니 흙빛깔이 안 좋아 아버지의 광중(壙中)은 오른편으로 옮겼다. 지관의 설명을 들은 초등학생 조카가 묻는다.
“그런데 고모, 해와 달이 바뀌면 어떻게 되는 거야?”
유난히 할아버지를 빼어닮아서, 올케가 임신중에 시아버지를 어지간히 미워했나보다라는 놀림을 받게 한 조카다. 후손들의 발복을 위해 경은이 어릴 적부터 지관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닌 아버지가 마침내 찾아낸 명당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삼십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혹시 남자와 여자 자리가 바뀌었으니까 여자들이 더 힘이 세지는 건 아닐까?”
에이, 그럴 리가. 내가 그렇게 어린앤 줄 알아? 하는 눈으로 삐죽거리는 조카가 귀여워 속으로 웃음이 치미는데, 진동이 온다. 치마를 들추고 꺼내던 휴대폰이 그만 미끄러진다. 몸을 구부려 휴대폰을 집어들면서 경은은 아차, 싶어진다. 무릎을 이렇게 날렵하게 접는 게 아닌데. 다행히 식구들은 막 시작된 달구질에 신경이 팔려 있다. 경은은 달구질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숲 쪽으로 다가든다.
“여보세요.”
“김경은씨? 여기 마리아입양원이에요. 축하드려요. 아가가 왔어요.”
땅을 다지던 달굿대가 가슴을 지른 것만 같다. 경은은 문득 뒤를 돌아본다. 어머니의 봉분 곁에서 달구질이 한창인 사람들. 그 곁에 서서 바라보는 상제들의 하얀 옷이 한꺼번에 물러나는 듯하다.
“듣고 계세요? 건강하고, 아주 예쁜 아가예요.”
어렵사리 임신하고도 임신 초기 번번이 유산하는 게, 경은의 약한 자궁뿐 아니라 남편의 유전자 결함에도 원인이 있다는 진단이 난 뒤에야 남편은 입양에 동의했다. 몇년 전, 경은이 해외에 입양된 아이들이 성장해 돌아와 엄마를 찾는다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입양 이야기를 꺼냈을 땐 달랐다. 어떤 놈 씨인 줄도 모르는데…… 나중에 생모가 나타나면 어쩌려고…… 남편은 팔짝 뛰었다. 나랑 다시 안 볼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라. 경은의 아버지는 아예 의절을 선언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언니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네가 속썩으며 살 게 빤한데, 그 꼴을 어떻게 보겠냐. 아기가 없다는 이유로, 취기가 있거나 한 날엔 이따금 남편을 ‘우리 아들’로 부르는 시어른들 앞에선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입양을 결정하고 난 뒤에 남편은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 여자들은 딸이 있으면 한다잖아, 아내를 다시없이 배려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경은이 시부모의 기대를 환기시키자 그제야 남편의 속마음이 드러났다. 딸이면…… 키워서 시집보내면 끝이잖아. 경은 또한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우선 부모가 건강하고, 기왕이면 고학력자였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으면 좋겠군요. 입양을 위한 면접에서 모범답안을 외워온 사람처럼 술술 말하는 남편이 낯설었다. 험한 일 겪은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생겨난 아기였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지순함을 믿는 사춘기 소녀처럼 조신한 표정으로 경은이 드러낸 바람도, 속을 뒤집어보면 남편의 이기심과 다를 바 없었다. 남편은 경은이 마음에 두고 있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바람을 대신 말해준 것뿐이었다.
“저희 지금 지방이거든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며칠 더 있다가 돌아가게 될 건데……”
“그러셨군요. 이래저래 마음 쓰실 일 많겠어요. 여기 일은 걱정 마시고, 오시는 대로 연락주세요. 아이가 참 예뻐요.”
아기들이 양부모 생김새 닮아가는 걸 보면, 저희도 신기하다니까요. 가정방문과 부모교육을 거치며 낯을 익히는 동안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는 말했다. 아기를 보내는 입장에서는 공개입양을 권하고 싶지요. 물론 주위의 반응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러지 못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이의 정체성이나 알 권리를 생각하면 그게 낫지요.
거짓임신 기간 동안, 우주 어딘가를 떠돌다 열달 동안 감싸였던 자궁을 떠나 아기의 몸으로 자기에게 올 영혼을 생각하면 형체 막연한 슬픔이 촘촘한 밀도로 경은을 감아들었다. 슬픔은 어느결에 경은의 살갗으로 스며들어 심장을 조였다. 어떻게도 해석이 가능한 태몽을 지어내며, 축하인사를 받으며, 위장용 복대를 두르며 경은은 중얼거렸다. 아가야, 미안하다. 아기를 환하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처럼 맞아들이지 못하고, 거짓으로 그늘진 뒷문을 통해 개구멍받이로 받아들이는 게 미안했다. 마음속에 고인 말은 줄기부터 흐물흐물 썩어들어 물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제 안의 괴사(壞死)를 지켜보며 경은은 자주 울었다. 아기를 품고 키워 젖 한번 못 물리고 떠나보낼 생모를 생각하며 울고, 임신기간 동안 늘어나 탄력이 줄어들었을 그녀의 배를 떠올리며 울고, 내 핏줄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으려 하는 차가운 세상에 던져질 아기를 생각하며 울고, 끝내 공개입양을 고집하지 못한 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꾸며대며 유폐하는 자신 때문에 울고, 아버지가 수술한 뒤로는 죽음 앞둔 아버지의 고독을 어림하며 울었다. 6개월용 복대를 풀고 9개월용 복대를 처음 두르던 날엔, 옷 아래로 덩두렷이 부푼 배가 생명을 담고 오는 배〔船〕가 아니라 거짓말로 쌓아올린 봉분이라는 생각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것저것 물어올 동네 주부들이 돌아다니지 않을 시각을 틈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쇼핑쎈터에서 아기의 배내옷이며 속싸개, 분첩이며 면봉 같은 자잘한 물품을 장만할 때의 그 아기자기함에도 습기는 여지없이 배어들었다. 가족들은 임신우울증인 줄 알고 있었다. 무덤속 같은 나날이었다.
무덤속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비밀들. 자기라는 존재에 눈뜨게 된 아이는 말간 눈으로 저의 탄생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엄마 엄마, 그런데 그때 말야…… 그럴 때마다 경은은 가슴에 거짓의 벽돌을 하나씩 더 얹게 될 것이다. 기나긴 유폐의 시간, 경은은 대숲 앞의 복두쟁이처럼 위태로웠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얼굴이 살랑이는 대숲처럼 보였다. 경은은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포태한 건 생명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삼우제를 모시고 돌아간 날 밤, 경은은 예정일보다 석주쯤 앞서 갑작스런 진통을 느낄 것이다. 여기저기 알릴 겨를도 없이 양수가 터지고, 그래서 아무 산부인과나 들어가 몸을 풀 것이다. 병원이 너무 시끄럽거나 불결해서, 경은은 다음날 아침이면 집으로 돌아와 아기를 끼고 누울 것이다. 낳은 지 일주일쯤 지난 아기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어 보일 것이다. 뜻하지 않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임신을 한 어린 미혼모들은 임신기간 동안 여느 임부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기가 보통보다도 작은 편이라고 했으니, 아버지의 장례는 경은의 조산에 더할 나위 없는 타당성을 부여하리라.
경은은 제 비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단 한사람, 남편에게 자신들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려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봉분 쪽으로 다가간다. 그새 봉분은 봉긋하니 올라갔다. 흙이 무너지지 말라고 봉분 중간을 빙 둘러가며 끼워넣은 솔가지가, 나와 남 사이에 그토록 선명한 금을 긋고, 그토록 오랜 세월 불안을 견디며 살아낸 한 생애의 이마 위에 얹힌 화관 같다. 경은이 남편을 부르려는데,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둥우리를 봉분 꼭대기에 얹어놓으며 누군가가 외친다. 이 집 사위들 다 어디 갔어? 새집 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