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의 변화, 한국사회의 대응
좌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와 87년체제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사회 jykim@hanshin.ac.kr
박형준
한나라당 국회의원 free@assembly.go.kr
정태인
청와대 대통령 비서관, 좌담 당시 동북아시대위원회 기획조정실장 ctain1@yahoo.co.kr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hongkoo@mail.skhu.ac.kr
때: 2005년 1월 12일
곳: 한국프레스쎈터 20층 모란실
김종엽(사회) 2005년은 남북정상회담 5주년, 해방 60주년, 한일회담 40주년, 을사조약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올해가 꽤 의미있는 해인 것처럼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연대기적으로 우연히 겹친 것일 뿐,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나 사회질서의 재편이 있겠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2005년이 중대한 전기를 이룰 해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요. 하지만 이러한 연대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자기점검과 장기적인 비전을 가다듬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몇주년이라는 것이 대개 일본과 연관됩니다. 그러니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구축이랄까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 등의 문제를 성찰의 주제로 삼아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분단 60주년이기도 한 해방 6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새 출발할 것인가도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구축과 관련해서 한반도가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면 캐스팅보터(casting voter)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내부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1987년 민주화 이행을 통해서 형성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그런 사회체제가 냉전해체와 지구화의 도전을 어떻게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인가도 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올해 『창작과비평』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과 남한사회 내부의 개혁문제를 연중기획 테마로 잡았습니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남한사회 내부개혁을 ‘87년체제의 극복’이라는 틀에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기본구조는 87년 민주화 이행을 통해 형성되었는데, 그런 뜻에서 현재 남한사회를 ‘87년체제’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두 가지 과제를 설정한 가운데 봄호 특집 기획논문에서는 동아시아 문제가 많이 다루어질 예정인데요. 그래서 이 좌담에서는 남한사회의 내부개혁 문제에 좀더 비중을 두려 합니다만, 아무래도 남한사회를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에 대해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오늘 좌담에는 동아대 사회학과에 재직하다가 17대 국회의원이 되신 박형준 의원,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계시는 정태인 선생님, 그리고 성공회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치시는 한홍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바쁘신 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먼저 한홍구 선생님께서 2005년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005년의 역사적 의미
한홍구 사실 2005년도 여러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주년을 따지다보니 뭔가를 기념해야 하고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올해를 맞이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심리 밑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변화의 시기에 와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 성원들의 의문도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발전해왔지만, 한국사회를 이제까지 유지해오던 그 변화의 힘이 최근에는 마치 컴퓨터가 먹통이 된 것처럼 작동하지 않고 멈춰서버린 느낌이에요. 남북정상회담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역사적인 사건 이후 5년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어요.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해야만 어떤 돌파구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여러 개혁과제에서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는데,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종엽 컴퓨터에 빗대어 말씀해주셨네요. 작년의 경험을 보아도 우리 사회는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그것이 대통령 직무정지 같은 커다란 기능마비, 그러니까 먹통를 낳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교착상태에 있는 것만큼이나 동아시아 질서도 교착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전지구적 수준에서는 탈냉전이 이뤄졌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지역냉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큰 진전이 없는 데에는 이런 지역냉전의 구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군요. 연전에 백낙청 선생이 현 시기를 분단체제 동요기라는 뜻에서 ‘흔들리는 분단체제’라고 명명했는데, 동아시아 사회도 ‘흔들리는 지역냉전체제’라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이 급속히 커지면서도 정치·군사적으로는 교착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이지요. 박형준 의원께선 1년 가까운 의정활동에서 바깥에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도 많이 접하셨을 텐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형준 우선 1905년과 2005년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인식지점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1905년에 우리 민족은 을사조약이라는 치욕을 겪었습니다만, 이는 변화하는 동아시아 질서의 반영으로 나타난 측면이 강했어요. 외부의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민족 내부의 힘이 어느 정도였느냐가 당시 중요한 변수가 안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지적인 역량, 그리고 그 역량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정치적인 역량, 한마디로 리더십을 제대로 세울 수 없었던 것이 당시에 능동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1905년에도 정치 부재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100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만,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가 또 한번 몰아치고 있다는 점에서 1905년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 속에서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며 ‘주변화’의 위험이 내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비교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1905년에도 국가 주권이 주된 문제였고, 2005년의 싯점에서도 형태나 내용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주권이 고민거리입니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에는 주권의 존재 여부가 문제였다면, 오늘의 문제는 자기완결적 주권의 부재 속에 ‘주권의 국제화’가 쟁점일 테죠.
앞으로 5년 내지 10년을 내다보면 역시 북한이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해요. 이 변수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 것인가에 따라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럴 때 한반도 전체에서 주권문제가 새로운 논제로 떠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중국·일본, 넓게 보면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역학관계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그에 따른 정치적 힘의 강화도 주요 변수지만,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에 달린 문제라고 봐요. 그런 차원에서 동아시아 평화체제라는 문제설정은 매우 유효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설정에서 복합적인 상황을 헤쳐나갈 정치의 기능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요.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만, 정치의 능력을 회복하고 정치 리더십을 새로 구축하는 일은 단순히 정치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 문제를 푸는 중심고리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고도의 국가경영능력 또는 리더십이 또다른 동아시아 질서 변화의 시기, 이 전환의 시기에 절실하다는 거예요.
김종엽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많은 분들이 동의하리라 생각되는데요. 1905년 이후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상당부분 국제 정치질서 안에서 규정되어왔고, 그때마다 우리의 역량이 시험당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의원께서 북한과 관련해 주권문제가 새로운 의제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박형준 2차대전 이후, 특히 탈냉전 이후 세계화시대에는 완벽한 자주적 주권개념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주권이 국가간 관계에서 부분적으로 공유되는 측면도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과거와 같이 직접적으로 국가를 통제하지 않더라도 국제적인 힘들이 여러 형태로 내부의 주권, 한 나라의 주권 속에 내재화될 수 있는 여지가 커져 완벽하게 독립적인 주권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는 겁니다. 그런 지평 위에서 국제관계를 주권개념과 연결해 조화·통합시키며 때로는 그것을 이용하는 능력, 그것이 국가경영능력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우리가 북한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불덩어리를 앞에 둔 상황에서 민족 자체의 힘만으로, 즉 전통적인 의미의 자주개념만으로는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잘못 접근하면 자주라는 명분하에 전혀 자주적이지 않은 형태로 한반도가 주변 열강에 의해서 찢겨나간다고 할까요,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러면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주변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태인 다들 말씀하셨지만 2005년이라는 숫자 자체가 의미있을 리는 없죠. 결혼기념일도 뭔가 준비도 하고, 부부가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 원하면서 의미가 생기는 것처럼, 2005년을 계기로 창비에서 기획하고 있는 ‘87년체제 극복의 비전’이 제시되고, 그 방향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면 의미가 있겠죠. 제 생각에 87년 민주화 이행으로 형성된 체제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앵글로쌕슨형(영미형)으로 나아갔습니다. 여러 지표를 보면 1992,93년경부터 이런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80년대부터 개방은 논의됐지만 실제로 진행된 것은 1992,93년부터였고, 94년부터는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본격화되었습니다. 1997년 10월 이후 IMF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자본시장 개방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에 1998년부터는 핵심가치로 금융유동성을 추구하는 자본시장의 지배가 확연해집니다. 이대로라면 87년체제는 끝나고 앵글로쌕슨형 체제로 가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체제가 지속가능한가 하는 것이죠. 지금을 교착상태라고 한다면 그건 공동체적 협력이 거의 없는 앵글로쌕슨형 경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에요. 이건 나쁜 균형이고 나쁜 균형상태가 되어버리니까 아무도 안 움직여요.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새로운 경제체제 속에서 노동자든 자본가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지금 대립하고 있는 두 축이 다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하죠.
한편 국제적으로는 교착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역동적인 상황입니다. 크게 봐서는 중국의 급성장과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 노력이 대립하고 있어요. 일본이나 러시아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가 속해 있는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는 몇가지 씨나리오를 구상해보았습니다. 첫번째는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라는 씨나리오인데, 미국이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해 비전을 내세우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이 굉장히 커져서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이죠. 이 두 세력이 맞붙는다면 전쟁까지 갈 가능성이있어요. 두번째는 동아시아에서 중국·타이완의 양안(兩岸)문제라든지 한·중·일 사이의 역사문제를 두고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입니다. 전쟁까지는 안 가더라도 일본과 중국의 갈등이라든가 대만을 매개로 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 같은 국지적인 갈등이 계속될 수 있지요. 세번째 씨나리오는 민주적 이행, 즉 EU(유럽연합)모형이죠.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뭔가 평화적인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인데, 결국 힘이 없는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어요. 이런 의미에서 북핵문제를 세번째 길로 끌고 가는 전략이야말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핵심적 과제라고 볼 수 있겠죠.
남북문제와 주변국의 이해
김종엽 동아시아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어떤 측면에서는 교착 상태인 것은 남북한 문제가 그만큼 풀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죠.
정태인 예, 그렇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은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남북한의 현상유지를 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현상유지를 남한이 제일 원하지 않아요. 중국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경제력을 키워 빨리 강대국이 되는 것이 목표이니까 남북문제가 더 나빠지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를 원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요. 미국과 북한이 문제일 수 있는데 북한은 이 상태로 더 가면 고사하기 때문에 분명히 현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거고, 미국도 현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결국 지금의 상황은 틀림없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예요.
한홍구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죠. 고립상태로 가면 북의 발전가능성은 없어요. 그런데 북이 금세 말라죽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아요. 90년대 김주석 사망 이후 자연재해와 식량난이 겹치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가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확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도 않아요. 그래서 북쪽에는 미안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빠지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는 중환자가 입원해서 계속 집안 살림을 축내는 상태처럼 북쪽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상태는 남북 모두에 엄청난 부담을 주죠. 중국의 경우에는 지금 정실장이 말씀하신 대로이고, 일본은 지금처럼 북쪽과 적대적인 관계로 있는 것이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명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돌파하는 데 남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박형준 저는 미국과 관련해서 정실장과 생각이 조금 다른데요. 제2기 부시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북한정권이 예를 들어 핵물질을 어떤 테러리스트 그룹에 넘겨준다든지 하는 일만 벌이지 않으면,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는 중동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제2기 부시행정부는 북한문제를 관리하는 형태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6자회담이라는 틀 안에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외교적인 PSI(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조치)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태가 급변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남북한이 주도권을 행사할 공간이 넓어졌다고 봐야죠.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남한의 주도적인 역할을 공언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보수 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발언이 미국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북한을 현재의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미국 역시 남북관계의 개선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북핵문제 때문에 미국의 급격한 행동이 있으리라는 것은 정확한 정세판단이 아닌 것 같아요. 북한 쪽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그 예죠. 그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안 변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주민생활을 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7·1조치로 배급체제가 무너졌고 그 때문에 북한 인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곤궁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시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체제로 방향을 잡은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물론 바깥의 정보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정권의 입장에서는 체제안정을 개혁이나 개방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올해 신년사에서도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하며 ‘정권 안보’를 다지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지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리비아식 모델의 변형이 아닌가 싶어요. 먼저 대량살상무기나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경제봉쇄를 풀어주고 이어서 체제안정을 보장해주는 게 리비아 모델이었다면, 북한은 이 역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체제안정을 보장받고, 어떤 형태를 통해서든―남북관계든, 일본이나 중국과의 관계든, 북미관계든―체제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원조를 받고, 그 전제하에서 핵문제 등을 풀겠다는 것이지요. 남한이 북미관계를 리비아식 해법으로 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아주 긍정적이죠. 그러나 북한체제에 여러 변수가 자리잡고 있어서 현 상태로 마냥 길게 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가져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홍구 북의 변화를 남쪽에서 굉장히 과소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주된 논점이 현상적으로 국가보안법 위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정치의 지형이고, 그 핵심에는 바로 북한이 있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국제정치의 요인으로서 얘기한 북한은 사실 국내정치의 아주 중요한 변수로도 기능을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한사회에서는 북한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가 중요한 정치적 변수가 되는데, 먼저 남북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가령 전방부대를 철수하고 개성을 열어놓고 거기에다 공단을 받아들인 것이 북쪽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일 것인가? 강경파를 달래서 개성공단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개성공단의 첫번째 생산물이 냄비 정도라면 이건 북쪽의 입장에서는 모욕일 수도 있지요. 엄청나게 양보한 성과가 너무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남쪽은 북쪽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논의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박의원의 말처럼 부시행정부의 입장 변화로 남한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는 의견에 동의를 하지만,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은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국내정치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 부분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경제협력논리와 안보논리
정태인 한홍구 선생 얘기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사회주의권에서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물자가 전달되는 통로가 바뀌기 때문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납니다. 공급 부족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경기 위축까지 일어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외부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야 안정될 수 있습니다. 제도변화 속에서도 일반주민의 생활을 어느정도 만족시켜주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그것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려니까 불만만 높아지고 강경파들이 체제유지를 강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을 통제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변화의 여지가 있고 거기에서 남한과의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나진―선봉에는 일본 자본을, 신의주에는 중국 자본을 가지고 뭔가 해보려 했는데 실패했죠. 북한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이 개성인데, 개성공단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무조건 성공합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밖에 안되고, 서울에서 디자인한 것을 생산한 다음 ‘made in Korea’를 달아서 수출하게 되면 제가 주먹구구로 계산해봐도 10년 안에 북한의 현 GDP(국내총생산)만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개혁으로 나아가고 조금이라도 주민의 생활수준을 올리려면 상당부분 남한에서 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약간의 지원도 남한을 침공하는 물적 토대가 되는 것처럼 얘기를 하면 매우 골치 아파요. 하지만 저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봤어요. 작년에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개성에 갔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당에서 반대했던 개성공단을 막상 보게 되자 이구동성으로 도와야 한다는 거예요. 직접 보니까 북한의 GDP가 높아져봤자 남한을 침공할 것 같지 않거든요.
박형준 남북관계 개선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는 가정은 작년 3월 이전의 한나라당에 해당하는 것이고,북한과의 경제협력에 관해 반대하는 입장은 당내에서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만 그것과 안보문제는 나누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70% 이상 되는 건 분단체제를 관리하는 것과 평화와 통일을 관리하는 것을 뒤섞어놓으면 곤란하다는 생각 때문이죠. 지금은 전환기이기 때문에 안보체제 관리는 비관적 씨나리오에 근거할 필요가 있고, 평화나 통일체제 관리는 전향적으로 해야 하죠. 이 양자가 때로는 충돌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북한의 지금 체제가 우리를 침공할 여력도 없다는 주장으로 안보논리를 대신하려고 할 경우 동의를 얻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북한체제가 아무리 역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기본노선이 유지되고 있는 한, 안보관리 차원에서는 대응체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그것 때문에 교류협력과 같은 것들이 안 풀리는 것처럼 얘기하면 곤란하죠.
정태인 북한이 이 상태로 가면 남한경제에 굉장한 부담이 될 거라고 봐요. 지금 북한의 아이들이 제대로 못 먹은 지도 오래됐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북한사람을 노동력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현 상황이 지속되면 노동력이 아니라 복지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통일이 되든 안되든 이웃나라와의 관계라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북한경제가 어느정도 발전되어야 우리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고 전쟁의 위험성도 적어지죠. 동아시아 관점에서 북한 쪽이 풀려야 중국과의 교류도 순조로울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순수하게 경제적으로, 아주 이기적으로 생각해도 우리에게 이익이라는 거죠.
박형준 그 문제에 대해서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정태인 박의원이 한나라당 총재가 됐으면 좋겠네요.(웃음)
박형준 그런데 자꾸 안보와 교류협력을 뒤섞어놓으니까 문제라는 거죠.
김종엽 안보와 관련해서 최악의 씨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한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은 상징적 투쟁의 측면이 강하지 실제 안보논리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홍구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씨나리오가 너무 낡았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씨나리오는 8,90년대를 거쳐 수정이 됐겠지만 기본은 6,70년대에 만들어진 그대로입니다. 북한의 노선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더 변하지 않은 것은 남한입니다. 일반 국민이나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가장 안 변한 집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나쁜 균형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간의 군사력은 어느 수준에 있는가, 현실적으로 북이 침략할 능력이 있는가, 우리가 얼마만큼 방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를 해야 합니다. 국방력 부문에서 한국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가예산보다 많아진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고, 이제 1,2년만 있으면 북의 GDP보다 많게 되는 마당에 옛날에 만들어진 비관적인 씨나리오에 의존해서 안보체제를 관리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비용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이죠.
박형준 평화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나이브(naive)한 생각이에요. 역사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압도적인 군사적 억지력이고, 또 하나는 소위 민주평화이론으로 각 나라 내부에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된 경우이죠. 그런데 한반도는 아직 탈냉전이 안되어 체제대립이 엄존하고, 한쪽이 강압적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체적인 군사력 측면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지만 남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군사력 정도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어요. 안보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타격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가, 안보체제를 분명하게 해둬야 한다는 논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이와는 별도로 5년 내지 10년 내에 북한은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급진적인 변화에 대응할 계획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예를 들어서 통일기금을 어떻게 조성하고, 변화의 충격을 감소시키기 위해 북한경제를 어떤 식으로 재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부분에서 한나라당이 지난 시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태인 기본적으로는 동의를 하는데 군사 억지력에 의한 평화유지가 깨지고 북한이 서울을 타격하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어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는 경우이지요. 따라서 북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서 이라크처럼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오판해서 이쪽을 공격하는 경우는 현재 가능성이 없죠. 북미관계 개선이 우리에게 더욱더 절실한데 이는 평화유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경제적인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해요.
한홍구 북한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성공단이나 남북교류를 통하는 것인데 남한을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죠.
박형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휴전선 같은 데 평화도시 건설을 생각해볼 수 있고,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노선을 취한다면 한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은 같이할 수 있는 길이 있죠.
정태인 양쪽에 온건파끼리 주도권을 갖고 대화를 하면 그런 방향으로 가요. 하지만 북한의 강경파가 힘을 갖는 것은 미국이 공격을 했을 때, 혹은 남한의 강경파가 공격을 했을 때죠.
박형준 작년에 국회에서 여야가 싸우는 것을 보니까 딱 그렇더라고요. 온건파는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웃음)
정태인 그 문제와 관련해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지금 현안은 개성공단의 성공적 추진과 더불어 러시아의 블라지보스또끄와 부산을 철도로 연결하는 사업, 즉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사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철도의 현대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북한이 자꾸 동해선을 고집해서 골치 아프긴 한데, 서울을 거쳐 원산으로 가든, 개성 쪽으로 가서 청진으로 가든 남북의 철도가 연결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물류 운반이나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걱정인 것은 북한에 쌀을 주면 군량미가 된다고 하는 마당에 북한 철도에 남한 돈이 들어간다면 이건 군대이동을 신속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얘기가 틀림없이 나올 것이라는 거죠.(웃음) 북한이 동해선을 고집하는 것만 꺾을 수 있다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이 진전되고, 북한이 남한을 신뢰하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사업이죠. 그렇기 때문에 박형준 의원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요.(웃음)
한·중·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김종엽 동아시아의 평화정착에 한반도 평화가 핵심적이어선지 역시 북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이제 조금 논의를 넓혀서 일본과 중국에 대해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박형준 이번에 남아시아 지진해일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본정부가 미국보다 많은 5천만 달러를 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평화헌법 체제를 새로운 헌법체제로 바꿔 군사적인 자립성을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실질적 위상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상당히 팽배해 있고, 그것이 일본사회 내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만큼 일본은 미국과 더 가까워지려는 전략을 취하고, 미일동맹의 공고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은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상당히 활발하게 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실장이 말씀하셨지만 중국도 미국과 싸울 이유가 없죠. 재미있는 것은 작년 초만 하더라도 중국의 사회과학원 논문들이 북한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체제가 변화해야 한다고 했고, 그쪽의 인사들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논조가 바뀌었는데, 이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체제를 변용시키려는 일은 하지 않고 북한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러면서 중국은 타이완과의 양안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는 오래 지속할 겁니다.
현재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3강이 협력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반도가 자칫 잘못하면 이런 구도에서 주변화될 소지가 있다고 했던 겁니다. 기껏해야 미국 우선이냐 중국 우선이냐 하는 비실용적인 논쟁으로 소일하는 동안에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굉장히 강화되고 있어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일본·중국의 경제적인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고, 군사안보적인 차원에서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싯점이기 때문에 이를 직시해야 합니다. 새로운 열강들의 동맹 내지는 편승 전략 속에 어떤 식으로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그 속에서 북한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김종엽 박의원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이 한반도를 현 상태로 관리하면서 각자 한반도에 관여하는 동시에 자기네들끼리 여러가지 묵계를 맺는 것이 현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일동맹이 대립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의 향배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다른 한편 한반도가 교착상태에 있으니까 중국이나 일본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군사적으로 교착상태에 있는 한반도를 피해 동남아에서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중국과 일본이 대립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 동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지역에 굉장한 액수를 지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경제적인 중심축이 아세안(ASEAN) 쪽으로 옮겨가고, 한반도만 어정쩡하게 경제적인 활로를 못 찾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태인 그래서 전략이 필요한 건데요. 사실 미국과 일본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어떤 동맹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중국이나 미·일 중 한쪽이 압도적이지는 못하니까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 교착상태에서 조금씩 왔다갔다 하는 거겠죠. 일본은 지진해일 피해지역에 큰 돈을 낸다거나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을 통해 영향력을 높이고 싶어합니다만, 일본의 분명한 한계는 미국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죠. IMF 경제위기가 일어났을 때 일본이 상당히 진취적인 AMF(아시아통화기금) 구상을 내놓았다가 미국을 의식해서 곧바로 철회했지요. 현 상황에서 한반도가 소외되지 않는 방법은 일본과 중국과의 협력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미일동맹과 중국이 서로 대립하게 되면 한반도가 소외되겠지만, 한·중·일 사이에 협력관계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지고 많은 경우 한국이 주도할 수 있어요. 중국과 일본은 서로 경원시해서 함께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술쎄미나도 중국이 주도하면 일본이, 일본이 주도하면 중국이 안 가요. 하지만 한국이 하자고 하면 다 와요. 지금 특허청이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데, 이것도 한국이 주도해서 가능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가교역할을 하고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죠. 그것이 또 강대국간의 힘의 균형 속에서 우리의 발언권이 무시되지 않는 길이지요. 현 정부가 쓴 ‘중심국가’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가운데서 상호협력을 촉진하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의미에서는 맞는 것 같아요.
아세안과 관련해서 일본은 이미 20년 전부터 경제구도에서 이들을 염두에 두었고, 중국도 아세안 지역을 영향권으로 포함시키려 하고 있어요. 아세안은 이들을 경계하면서도 끌려가는 입장이지요. 아세안이 일치단결해 강대국에 대응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예요. 아세안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를 맺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듭니다. 어쨌든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이라고 본다면 한·중·일의 협력 없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라든가 경제협력은 쉽지 않습니다. 한·중·일 사이에 어느정도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아세안과의 관계도 정상적으로 되고 그게 아세안 입장에서도 좋아요. 중국이나 일본이 아세안을 장악하려고 하는 것은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가며 전략을 제시하면 우리가 상당부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뭔가 제시하고 조금씩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거죠.
작지만 강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박형준 정실장 말에 동의해요. 우리는 작지만 강한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엄청난 생산기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산기지가 되기에는 이제 어려워졌어요. 그런데다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산업이 몇몇에 한정되어 있고, 그 산업 가운데 일부는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죠. 경제적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특장(特長)을 분명히 살필 필요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디지털과 소프트웨어 쪽이 역시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부분이고 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영역인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성장잠재력도 끌어올리고 일본과 중국 간의 경제적인 가교역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서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실용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얘기할 때 우리 같은 작은 나라일수록 보편적인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인 이익에 반합니다. 역으로 중국에 대해서든 일본에 대해서든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강하게 얘기할 것은 강하게 하고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죠. 작지만 상당히 뚝심이 있고, 자기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유연한 나라라는 인식을 얻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홍구 말씀의 취지에는 100% 동의하는데 강한 나라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더 천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우선 우리의 위치부터 생각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가령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일희일비하고 있어요. 어디에 갔더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무도 모르더라 하면서 의기소침해하고, 어디에 갔더니 월드컵이나 올림픽 개최도 잘 알고 발전상태도 잘 알더라 하면서 좋아해하고요. 우리는 최근 40년 동안에 서구의 국가들이 2,3백년 동안에 겪은 변화를 경험했어요. 국제적인 위상도 보면 백년 전에는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상태였고, 196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는데, 지금은 외형상으로 볼 때는 경제력과 국방력이 세계 10위,11위권에 있단 말이죠. 이 정도의 국력을 가진 상태에서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에 일본은 우리를 지배했던 제국주의 강대국이었고, 중국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밀접했지만 1990년대 초까지 20세기의 대부분은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죠. 특히 1950년부터 90년까지 40년 동안은 완벽하게 차단되어 오로지 중국 오랑캐라는 이미지만 갖고 있었죠. 중국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면접한 일이 있는데,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더럽다 내지는 가난하다는 이미지라고 하더군요. 중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얼마나 황당하게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죠. 미국의 경우 오랫동안 대한민국 탄생의 은인으로 떠받들다가 반미운동이 등장했지요. 그러자 수구세력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시위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요. 나온 김에 하는 말지만, 다른 날도 아니고 3·1절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이처럼 우리는 주변국과 어떻게 지내야 될지 상이 전혀 없어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해요. 정치계도 그렇고 정부도 그런데 급속한 변화 속에서 우리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 우리는 숨을 돌리면서 지난 40년, 해방 이후의 60년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태인 국민적인 자기성찰이랄까 민족적 자기성찰을 할 때가 됐죠. 그 점에서 똑같은 얘기지만 한교수는 비관적인 현상을 많이 나열했지요. 그러나 저는 희망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한·중·일 가운데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죠.
한홍구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갖고 어떻게 강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거죠. 강하다는 표현을 쓰든 안 쓰든 우리가 발언권을 갖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있어 돈이 많은 것으로 일본을 따라잡겠습니까, 사람 많은 것으로 중국을 따라잡겠습니까, 군사력을 가지고 미국과 대결하겠습니까? 현재는 내놓을 것이 별로 없지만 우리의 역사와 경험을 잘 성찰하고 시민사회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죠. 그래야 우리가 한·중·일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태인 바로 제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인데……(웃음) 일본은 시민사회가 상당히 정교하고 개별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지만 힘이 없어서 보수적인 흐름을 뚫고 나오지 못하죠. 중국은 아예 시민사회라고 할 만한 게 아직은 없고요. 이에 비해 우리 시민사회의 에너지는 매우 강력합니다. 다만 아직 정돈이 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드컵이나 대선 때와 같이 폭발적 힘을 보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집단적인 성찰 면에서는 아직 취약한 점이 보이죠. 사회협약이라든가 사회적 대타협을 얘기할 때 시민사회가 국민적 에너지를 어떻게 적절히 결집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민사회가 자기성찰을 계속해나간다면 87년체제에 대한 대안모델을 만들고 그 힘으로 사회적 대타협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는 저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제문제와 관련해 박의원께서 소프트웨어라든가 디지털 경제 이야기를 하셨는데, 방향은 맞지만 거기에 이르는 이행과정은 매우 길어요.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당면문제들을 풀어야 하는데, 예컨대 동북아의 분업체계 속에서 우리 사회가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이런 문제는 당면한 FTA와 관련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산업구조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 내지 타협을 이루어내며 노동력을 그 방향으로 이전하는 기제를 우리 사회 내부에서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종엽 한국은 자신의 위치 때문에 가교국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자기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아 이웃나라를 보는 이미지에 혼선이 많은 것 같아요.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크게 보면서 개별 중국인을 만나면 매우 우습게 생각하고, 일본에 대해선 나라는 통째로 무시하는데 일본인을 만나면 무시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요즘 FTA 논의를 보면 가교국가로서 한국의 위치를 느끼게 되는데요. 일본과 FTA를 한다고 하니까 중국도, 미국도 와서 하자고 하는 것은 한국이 어느 한쪽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싫고 같이 껴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논의과정을 보면 주도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WTO(세계무역기구) 협상에서도 농업부문에서는 후진국처럼 대우해달라고 하고, 공산품 같은 부문에서는 후진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보편주의적 원칙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문제에서 국제적인 신망을 얻는 것, 그래서 우리나라가 여러 의제에서 주도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죠. 아직 우리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행동하는 면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홍구 한국에 외교라는 것이 필요해진 때는 사실 냉전체제가 무너진 10년, 15년 전부터가 아닌가요? 그전까지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됐죠.이제는 정말 국제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거죠. 독립적인 행동자로서 국제문제에 내던져진 때가 국내적으로는 87년 이후이고 국제적으로는 냉전이 무너지고 난 이후인데, 역사적인 경험이 짧았죠.
역사분쟁, 민족주의, 문화교류
김종엽 여건은 되는데 아직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동아시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문화적인 공감영역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한데, 현재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에서 보듯이 각국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장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문화적 공감만으로 풀 수는 없더라도 문화적인 토양의 형성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인데 말입니다.
한홍구 동북공정 문제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것은, 그런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깊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래야만 정말 해결책 비슷한 것이라도 찾을 수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 주장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시청 앞에 백만명이 모여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중국이 동북공정을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구려가 망하고 1천3백여년 동안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라고 한번도 주장하지 않았던 중국이 지금 왜 저럴까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겁니다. 고구려재단을 만들고 고대사를 연구하면 중국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하나의 증거죠.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내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가령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에 월드컵 때는 백만명이 모였고 미선·효순양 추모 때는 십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도 미선·효순양과 같은 문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얘기할 때는 만명이 모이기 힘들죠. 이 차이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헌신이 우리에게 아직 부족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시민사회는 이 점을 고민을 해야 하죠. 어떤 정부가 시민사회의 압력 없이 보편적 가치를 바깥에 나가서 지적하겠습니까? 우리가 식민지와 분단을 겪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감정이 강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접촉이 많아질수록 민족주의적 정서 속에서 보편적인 부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정태인 동북공정에 대한 태도를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어요. 하나는 영토주권은 역사주권과 똑같다는 중국의 태도입니다. 자기네 영토라고 역사까지 가져가려고 하니까, 한국의 대응도 간도는 우리 역사였으니까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죠. 두번째는 그걸 분리시키자는 것으로 영토주권은 영토주권이고 역사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겉으로는 표방을 안해도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고 상당히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세번째가 변경역사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고구려사가 어디에 속한 것인지, 지금이나 존재하지 그때는 있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에 속하는지 중국에 속하는지 어떻게 알겠냐는 입장이 있지요.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자기 역사를 상대적으로 보는 것은 필요한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영토주권과 역사를 분리해서 본다는 것이 현실정치에 맞지요. 저는 독일과 폴란드의 예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차대전 후 독일은 폴란드 침공에 대해 사과하고 교류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청소년 10만명의 교환방문을 통해 공동의 역사인식을 향해 나아갔죠. 그런 방식을 우리가 먼저 제안해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중국학자들도 부끄러울 거예요.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비슷한 것이 일본 후소오샤(扶桑社) 역사교과서 문제인데 지난번 검정에서는 채택률이 0.04%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10% 가까이 될 것 같아요. 이런 문제는 정부보다는 오히려 시민사회 쪽에서 대안을 많이 내놓아야 합니다. 중국은 시민사회가 없기 때문에 좀 그렇지만 역사문제는 각국의 시민사회가 서로를 설득하고 자기 정부의 잘못된 태도에 압력을 가하면서 장기적으로 풀어야지 정부끼리 맞부딪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야스꾸니 신사참배는 정부 차원에서 비판해야겠습니다만, 역사 문제가 바로 정치적 쟁점이 될 수는 없죠. 그 얘기는 끝없이 갈 겁니다.
박형준 우리의 경우 민족주의 감정이 강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표현을 써서 민족주의를 다른 쪽으로 이끌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런 말을 안 쓰더라도 민족적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런 개념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그 부작용이 더 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특히 주권의 자기완결성이 국제관계 속에서 해소되어가는 이때 국가이익을 보편적 이익 혹은 국제사회의 이익과 일치시켜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지 민족주의라는 주권 내지 감정 개념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적인 쟁점이 될 수 있는 동북공정이나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역사문제는 역사문제로 보는 것이 필요하지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하면 그것 자체가 민족주의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요.
정태인 정부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만약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정치적 무능력 때문이지요. 왜 중국이 오랑캐의 역사를 갑자기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을 하느냔 말이죠.(웃음)남북한이 빨리 통일된다면 중국의 동북3성이 한국 쪽으로 끌려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서 실제로 국경 쪽으로 군사력을 배치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대응전략을 만들고 준비해야 하지만 그런 전략이 역사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중국정부도 역사문제로 대립해서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바로 특사를 파견하고 몇가지 합의를 했던 것이죠.
박형준 동북공정이나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문화적 장애이지만, 한류 같은 문화적 교류도 있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보니까 한류 때문인지 ‘욘사마’ 열풍 때문인지 한국인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사람이 60% 가까이 되더라고요. 저는 우리 문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해요. 일본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우리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우리의 경우 되든 안되든 예술적으로 굉장히 과감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일본의 경우 디자인이 강하지만 순수미술 쪽으로 가면 오히려 우리가 강하죠.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에도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서 해보자는 분위기는 우리 쪽이 매우 강합니다. 이런 문화적 기업가정신이 우리의 잠재력입니다.
정태인 과감하다는 게 거칠다는 뜻도 되죠?
박형준 거칠죠. 저는 거칠기 때문에 오히려 잠재력이 크다고 봅니다. 또 중국이 일본문화에 대해 갖는 반감, 일본이 중국문화에 대해 갖는 서먹함에 비해 한국은 양쪽에 다 통할 수 있는 강점이 있어요. 이런 문화적 가교역할을 통해 반일감정이나 반중감정, 반한감정을 녹여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87년체제란 무엇인가
김종엽 한류가 우리 입장에서 보면 키워가야 할 좋은 현상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일본사람들의 한류에 대한 태도를 보면 남한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과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한국을 둘로 쪼개서 적대적인 감정은 북한 쪽으로, 우호적인 감정을 남한 쪽으로 모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게 한반도 전체와 일본의 화해, 문화적인 공통분모의 형성에는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하여간 문화·정치·경제 등 동아시아의 여러 수준에서 난제가 많은 한편, 우리 사회로서는 기회가 열리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내부개혁이랄지 내부문제 극복이 중요하죠. 북한문제가 내부의 문제로 어떻게 전환되어 있는가 하는 것도 다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부개혁과 관련해 개혁의 대상이 되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좌담 앞머리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창비는 자체 논의를 통해서 그것을 ‘87년체제’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가다듬은 개념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다양한 갈등과 교착의 원인이 87년 민주화이행으로 형성된 사회체제에 내재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창비가 그간 주장해온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보면 87년체제는 ‘흔들리는 분단체제’기의 남한사회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남한사회의 민주화는 남북한 지배집단간의 기능적 상호의존체제의 한 축을 무너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87년체제는 민주화에 대한 역전시도를 꺾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루어냈지요.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상당한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87년체제가 박정희 체제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87년 헌법과 정당체제를 아우르는 87년 헌정체제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창출할 제대로 된 정치적 리더십을 창출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었지요. 정치적으로는 민중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박정희 체제로부터 탈피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박정희 체제로부터 충분히 탈피하지 못했어요. 3저호황기와 이어지는 거품경제기에는 민중부문에 대한 경제적 배분을 늘려줄 수 있었지만, 불황기 특히 IMF 경제위기 때에는 지배층의 물질적 양보가 어려웠죠. 양보는커녕 불평등이 더 심해졌지요. 오늘날에도 잔존하는 박정희 향수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87년체제는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체제이며, 그 체제의 기본틀이 형성되던 싯점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냉전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체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차 발전의 동력은 떨어지고, 각 사회부문간 세력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다양한 사회부문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갈등이 커져가는 나쁜 균형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나쁜 균형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작년 한해에 여실히 드러났죠. 교착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 세력의 중간에 있는 집단이 강해져서 중도적인 입장이 양쪽을 견인해야 하는데, 양 극단의 입장이 강화되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오히려 약화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발전, 북한문제의 해결,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이런 87년체제의 한계를 돌파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의원께서 먼저 민주화의 진행과 87년에 형성된 사회체제의 문제들에 대해서 짚어주시죠.
박형준 대한민국의 역사를 구조변화의 연대기에 따라 명명한다면, 48년체제, 63년체제, 87년체제 등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논의대상인 87년체제는 놀라운 경제발전 성과 위에서 큰 사회·정치적 혼란 없이 민주화를 착실하게 진전시킨 체제이죠. 이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성취를 이룩했다는 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런데 민주화는 정치적인 수준의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것임과 동시에 평등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때 평등이라는 것은 사회·경제적인 평등 자체라기보다는 공정성이라고 할까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대한 꿈이라고 봐야겠죠. 이런 에너지가 우리처럼 응축적으로 표출되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국민적 에너지가 살아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절차적인 수준에서도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착실히 진전되어왔고 여기에 덧붙여진 것이 참여민주주의죠.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가 그동안 민주화의 역동성을 살리는 중요한 두 에너지였다고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정리해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구상하는 정치 선진화 또는 정치적 민주화의 방향이 참여민주주의를 더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적인 형태이냐, 아니면 대의제민주주의를 착근시키면서 그 속에서 보완적인 장치로서 참여민주주의를 활용하는 것이냐라는 점이 논의되어야 하겠죠. 최근 몇년 동안의 정치적 갈등을 보는 시각에는 의견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인 보수진영에서는 참여민주주의의 급진화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우려해왔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사회 에너지라고 해도 좋고 참여민주주의의 에너지라고 해도 좋은데, 대의민주제의 틀을 갑갑하게 여기며 그것의 제약성들을 돌파하려는 흐름이 있었지요. 이제는 어느 쪽에 중심을 두고 민주주의를 착근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 지적을 할 것은 87년 이후에 분출된 국민적 에너지라는 것이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연결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그것이 급격하게 약화되었다는 점이에요. 여론조사를 보면 70% 정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요.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0%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5%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결여되어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든 것이죠. 이런 속에서는 사회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고, 이른바 국민통합도 점점 힘들어지지요. 이때 정치적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국민통합을 한걸음 진전시켜야 하는데 그 기능이 지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데 한국정치의 저발전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87년체제의 한계
한홍구 한국이 성취한 민주화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고, 경제발전도 어쨌거나 한국만큼 빠른 시기에 이 정도로 올라선 나라가 없습니다. 물론 너무 미국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문제겠습니다만 지구화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요. 우선 민주화에 대해 얘기해본다면 저는 민주화에 대한 역전의 시도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87년도에 이룬 민주화 자체가 봉합이었고, 그것은 3당합당으로 더욱 선명하게 그 성격을 드러냈죠. 민주적인 정권교체나 구시대와의 완전한 단절이나 결별, 청산을 하지 못한 채 봉합에서 봉합으로 이어진 것이죠. 문민정부는 바깥에서 야합이라고 비판받았고 김대중정권도 DJP연합의 성격을 띠었죠. 이 과정은 민주화의 진전이기도 하지만 과거청산이 없었다는 한계가 있어요. 친일세력이 전면에 다시 부상한 중요한 계기가 5·16 군사반란인데 군사반란의 핵심 인물이 2인자로 있던 DJ정부에서 과거청산 얘기가 얼마나 됐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수구세력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지요. 그런 상태에서도 과거청산 목소리가 나왔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과거청산기구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어쩌면 면피적인 것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노무현정권 성립 때는 DJP 연합도 없었고 IMF도 없었고 ‘이인제가 표를 갉아먹는 사태’도 없었는데, 거기에 수구세력이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죠. 수구세력은 김대중정권이 등장했을 때는 5년만 참고 다시 정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 패배하고 나니까 충격이 컸죠. 지난번 탄핵도 그런 위기의식에서 역전을 시도한 것이었죠. 적어도 국민은 탄핵사태를 역전의 시도로 바라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적 에너지가 탄핵반대로 분출되었던 것이죠. 우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비교적 착실하게 성공적으로 실현해왔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과거청산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탄핵을 가결한 다음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킨 사람들이 누구냐면 한명은 친일청산법을 16대 국회에서 단기필마로 막아서 누더기로 만든 장본인이고, 또 한명은 유신헌법을 기초했고 지역감정을 부추긴 ‘초원복집 사건’의 장본인이란 말이죠. 그 사람들이 나란히 웃으면서 헌법재판소에다 탄핵안을 접수시킨 일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87년체제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였단 말이죠. 정상적인 선거라면 50석도 채 안되던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의석수를 3배나 늘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의회권력의 변화를 통해 과거청산을 이룰 힘을 얻었냐 하면 그러지는 못했어요. 완벽한 청산을 이룰 힘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쁜 균형이 다시 형성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한나라당이나 수구세력의 저항이 더욱 조직화되고 더욱 치열해지는 계기가 됐죠. 의회권력이 교체되자 이제 보수적인 사법부가 나섰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국가보안법,행정수도 같은 굵직한 사안에서 개혁에 대한 저항을 했고, 또 미숙한 개혁세력이 그것을 돌파해내지 못하여 교착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엽 1987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기간을 평가하는 방식은 복합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전의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민주화는 진척되어왔다고 봐야죠. 어떻게 보면 한교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봉합의 연속일 수 있겠지만 봉합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역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도 있죠. 따라서 봉합은 역전을 방어하는 측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미결의 과제를 축적해가는 이중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이 문제가 강하게 분출되어서 갈등이 전면화되었죠.
정태인 틈틈이 역전의 시도를 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려서 국민들이 응징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국민이 그렇게 해주었는데도 최장집 선생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것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정부의 무능이자 정치권 전체의 무능이지요. 그 무능은 기본적으로 87년체제 이후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합의를 하지 못한 건데 거기엔 학자들의 무능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형준 잠깐, 한교수와 긴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약간의 문제제기는 해두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교수가 설명하는 방식은 이분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87년 이후를 설명한다면 저는 한쪽밖에 설명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얘기는 노태우정권부터 시작해서 노무현정권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섰다는 거죠. 그런만큼 민주화의 에너지도 더 많이 표출됐고, 평등에 대한 주장이나 기득권을 전복하려는 노력도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신감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확산되고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경제적인 요인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87년체제의 또다른 한계를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책임이다 하고 떠넘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87년체제는 이전과 달리 지구화·정보화·탈냉전이라든지 9·11 테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급격한 변화 등 거의 문명사적인 도전을 겪은 체제였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조류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우리의 국가적·사회적 능력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성찰적인 반성입니다. 그런 과정을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기득권을 무너뜨리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만 설명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나오기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홍구 이분법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분법적인 해석으로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분법은 보는 사람의 시각 때문이 아니라 현실정치 자체가 그런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죠. 정치 바깥의 시민운동이나 평화운동 입장에 서면 자꾸 이분법적으로 되는데, 한국정치에 수구와 보수의 분리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요. 박의원의 경우도 한나라당 안에서 입장이 난처하실 것이고, 저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저 양반이 왜 저기에 들어가 있나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이분법이 아니라 우려죠.
박형준 그건 제가 수천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예요.(웃음)
한홍구 한나라당도 지난번 탄핵이 위기였죠. 그 위기는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령 ‘광주’나 민정당과 같은 부담을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계기였는데 그걸 해내지 못했지요. 한나라당 내의 합리적 보수가 수구로부터 독립할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지요. 열린우리당도 국민이 밀어준 것에 비해 개혁에 대한 추진력과 일관성이 별로 없어요. 초선의원이 60%쯤 되면 엄청난 물갈이가 이루어진 셈인데도 하는 짓은 똑같고 이뤄지는 게 없지요. 국민이 희망을 잃고 있다고 박의원이 얘기했는데, 열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했던 국민이 이번엔 기대를 많이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사회세력의 재배열과 시민운동의 전환
김종엽 87년체제의 나쁜 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분명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담론이나 새로운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세력의 재배열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 정당체제에서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못지않게 한나라당이 중요한데, 한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수와 수구가 준별되어야 우리 사회에서 논의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겠죠.
박형준 정확한 말씀입니다. 한나라당에 수구와 보수가 결합되어 있고, 작년에 탄핵처럼 해서는 안될 일을 해서 결국은 스스로 망하고, 그것을 계기로 변화·혁신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정치적으로 불완전하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4대 입법 문제로 열린우리당이 강공 드라이브를 한 것입니다. 이는 한나라당 내의 개혁 움직임을 차단해버렸죠. 금년은 좀 달라질 것이라고 봐요. 노무현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틀어놨고 정부·여당이 그런 쪽으로 가면, 이는 한나라당에 대한 압력으로 바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그때는 또다른 변화가 생겨나겠죠. 또하나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집권세력이 국가경영의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성찰과 더불어 그것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설정을 함께한다면, 수구를 떨어내고 보수를 개혁하는 일과 개혁집단이 낡은 진보의 잔영을 털고 국가경영능력을 갖추는 일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책임론 공방 같은 것에서는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김종엽 논의를 조금 확장하여 87년체제와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짚어봤으면 합니다. 앞서 세 분 모두 시민사회가 매우 역동적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역동성의 중요한 요인은 시민운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7년체제는 사회운동 전반의 공간을 확대했는데, 그 속에서 시민운동이 빠르게 성장했고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민운동은 의제설정이나 조직적 기반에서 여러가지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형준 시민운동의 확산은 87년체제의 가장 중요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의 ‘과잉정치화’가 가져온 문제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시민운동은 정치적 시민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그 정치적 시민운동이 집권세력의 일부를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로운 권력이 되어온 경향이 있어요. 정치사회에 밀착함으로 해서 시민사회는 고유한 자율성과 확장성, 그리고 개방성·다원성·공공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정치적 시민운동 중심으로 발전해온 건 그 나름의 역사적 특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앞으로 한국의 선진화나 통일문제 등에서 시민사회가 감당해야 할 막중한 역할을 감안할 때 시민운동은 ‘생활영역’과 ‘문화영역’으로 확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가 자율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시민운동이 자리잡지 못한다면, 시민사회 역량이 겉으로는 매우 역동적인 것 같습니다만 내실이 없을 위험도 큽니다. 시민사회는 이 양극화의 시대, 모든 세대의 실존의 위기가 높아지는 고령화 시대에 삶의 새로운 양식이나 자아실현과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 시민운동은 그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복지·문화·환경·노동 등의 영역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맡아야 할 몫은 점점 커지리라 생각해요. 그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정치적 시민운동에서 문화적 시민운동으로의 전환, 국가정치에서 시민사회정치 내지 생활정치로의 전환은 시민운동 전체가 87년체제를 넘기 위해 고민해야 할 화두라 생각해요.
한홍구 시민운동에 대한 박의원의 지적에 일부 공감합니다만 저는 시민운동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요. 일본과 비교해본다면 일본에서는 한국의 낙선운동과 같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면서 정치권 전반에 파괴력을 지닌 시민운동을 상상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일본의 풀뿌리 시민운동이 극우파가 만든 교과서의 채택률을 사실상 0%로 만들었던 그런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요. 흔히 한국의 시민운동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 비판적으로 부릅니다만, 사실 일제의 강점과 분단, 전쟁과 학살,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시민사회가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죠.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개인의 시민적 권리를 추구하거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게 사치스럽고 한가한 일로 치부되었잖아요.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운동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초기의 동력을 80년대의 민중운동,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얻어왔기 때문이죠. 시민사회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시민들의 시민운동에의 참여가 저조한 한국에서 시민운동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봅니다. 하나는 민중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전통 속에서 우수하고 헌신적인 인재들이 많이 충원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군사독재와 3김시대를 거치면서 정당이 정책기능보다는 특정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파벌적인 성격을 지니다보니, 정당이 해야 할 정책기능을 상당부분 시민단체가 대행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지요.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당이나 의회가 제자리를 잡아가게 된다면 시민운동의 역할도 변화될 수밖에 없겠죠. 시민단체가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전문성을 강화해가려면 활동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시민운동이나 시민단체에 많은 주문을 하면서도 활동가에게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아요.
정태인 저는 시민운동 전반에 대해서보다는 경제 관련 시민운동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기업의 지배구조를 놓고 참여연대와 대안연대가 대립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거칠게 요약한다면 참여연대는 앵글로쌕슨형 주주 자본주의에 입각해 있는 것이고 대안연대는 스웨덴형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반대의 대안이 나오는 거죠. 시민사회가 모든 문제에 대해 합의할 수는 없는 거고 또 합의해서도 안되지만 기본적인 경제체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동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이라도 진지한 토론이 시작돼야겠습니다. 기본적인 틀도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다 만든다는 건 불가능해요. 개인적으로는 두 체제의 장점이 조합된 경제씨스템도 만들 수 있고 그러면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시민운동 단체간의 토론이 더 활발해져 우리 나름의 비전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심각한 양극화문제, 새로운 경제모델
김종엽 87년체제의 정치적 측면이나 그와 관련된 시민운동에 대해 할 이야기는 많은 것 같습니다. 한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활동가에 대한 사회적 투자문제만 해도 시민운동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관건이고 앞으로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이지요. 하지만 시간관계상 87년체제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정태인 87년 이전의 정권은 물리적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했지만, 그것이 깨진 87년부터 93년까지는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이때도 개방을 얘기했지만 실제 개방된 바는 없었고 3저호황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죠. 중화학공업의 효율화가 이때 됐어요. 그것이 우리 경제로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인데, 그 생산성 향상 덕에 사회세력간의 대립이 완화되었지요. 그런데 이 체제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 속에서 93년부터 뭔지도 모르는 개방을 확 해버렸지요. 그것의 여파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때가 97년이죠. 사회적 양극화는 지표상으로 보면 이미 92년경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93년 이후부터 급격히 심해져요. 그리고 개방을 하면서 이전의 거시조정 체제가 무너져버렸죠. 87년 이전에는 물리적 폭력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조정할 수 있었죠. 그러나 개방 후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외환위기가 오기 때문에 국가의 조정기능이 거의 불가능해졌어요. 이렇게 된 건 과거체제가 유지된 채로 개방을 했기 때문입니다.
97년 이후 경제체제는 너무도 빨리 변했습니다. 이른바 앵글로쌕슨화라는, 금융유동성을 목표로 하는 자본시장의 메카니즘으로 인해 단기간에 수익을 거둘 수 있어야 했고, 또 금융건전성 규제강화로 인해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를 했어요. 과거에는 과잉투자가 문제였고 항상 돈이 모자랐는데 97년 이후엔 돈은 남아돌아도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었죠. 이렇게 생긴 과잉자본이 저금리 아래서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간 겁니다. 인플레이션 때도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지만 저금리 때는 인플레이션이 없는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요. 그것이 거품경제(bubble economy)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앵글로쌕슨화 즉 영미형 자본주의화의 문제점이 다 드러나고 있는 거죠. 사실 87년에 새로운 체제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야 했고, 민주화의 열기와 노동자의 힘이 있을 때 개방 이후에도 버틸 수 있는 체제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97년 위기로 그런 논의는 완전히 죽어버렸어요. 지구화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사회적 표준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러나 이제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어요. 부동산과 신용카드로 내수를 커버하려고 했던 것이 실패하면서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등 그 부정성이 선명해졌지요. 물론 양극화에 대해서 구조조정과정이니까 이대로 계속 나아가면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을 하더라도 점점 더 고용이 안되는 사회에서는 높은 수익이 나더라도 사회적 조정비용이 과도해지고 결국에는 전체 경제가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는 이런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87년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구화 속에서도 유지가능한 체제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라고 봐요.
김종엽 새로운 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에도, 그리고 그런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구체적 정책들을 도입하고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정태인 현재 도입하려 하는 제도 몇가지가 있어요. 우선 미국에서도 시행되는 ‘차입형 우리사주제’를 모델로 한 ‘우리사주제’를 들 수 있지요. 종업원들에게 기업의 금융자산을 나눠주는 것인데 노동자와 기업가의 대립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참여정부가 시행하려는 것 중에는 EITC(Earned Income Tax Credit, 근로소득보전세제)도 있습니다. 사회보장을 해주면 소득이 어느 수준 이하의 사람들은 일을 안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또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의 대상이 안되고요. 그래서 일하는 저소득층에게 보조금을 주어 노동을 촉진하는 동시에 사회보장도 늘리는 것이죠. 한편, 글로벌 은행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국내를 영업대상으로 할 때는 필요없는 BIS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에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내의 중소기업들에 대출을 할 수 있는 금융체제가 형성됩니다. 이런 정책꾸러미를 놓고 여야도 얘기하고 노동자도 얘기를 해서 타협으로 가는 것이 현 위기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원로들이 올해 초에 발표한 ‘2005 희망제안’ 같은 것이 나오고 그것이 훨씬 구체화되고 풍부해질 때 돌파구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경제정책가들은 구조조정을 더욱더 강화해 생산력을 높이는 게 해결책이라고 여기지요.
박형준 사실은 우리 쪽에서 선진화 비전 만들기를 위해 준비한 내용이 정실장께서 얘기하신 것들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어서 여야통합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기본적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다만 고려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가 어떤 체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87년에 우리가 새로운 체제를 구상할 수 있는 힘이나 세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좀 힘들었다고 봅니다. 현재의 씨스템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되어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라고 하든 앵글로쌕슨형이라고 하든 현재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나 기획은 상당히 제약됩니다. 그 점에서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세 가지 제약요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임박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입니다. 그건 경제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야기할 겁니다. 15년 지나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그후에 과연 우리가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 남은 10년에서 15년의 시간 안에 선진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미래는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또하나는 북한이라는 가공할 변수입니다.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줄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씨나리오에 근거한 충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른 또하나는 경제적인 양극화 추세 자체인데 저는 이게 상당정도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미 우리는 세계경제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글로벌 기업의 수를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거죠. 글로벌 기업과 중소기업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극화현상을 제어하는 방법은 국가·시민사회·경제사회가 협력하여 새로운 책임공동체를 만드는 길밖에는 없어요. 이제 새로운 사회적 협약이 필요합니다. 자유주의적 틀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을 공동체적인 또는 윤리적인 차원과 연계시켜서 문제를 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문화적인 수단에 의존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수단을 통해 경제에서 생겨나는 여러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핵심적인 과제는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강화해서 우리나라를 인재대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와 동시에 기대수명이 80세, 90세에 이르러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수의 인생을 살게 되는데, 이에 맞는 기회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주느냐 하는 겁니다.
김종엽 두 분이 경제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87년체제가 경제적으로 전환(transformation)을 못했던 데에는 사회적 대립이 격화된 것에 그 원인의 상당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층이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92,93년까지는 상당히 있었죠. 그러나 93년 이후 어설픈 경제개방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고, 그후 대안적 경제씨스템을 구상하지 못한 채 표류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련 정책꾸러미와 미시적인 테크놀러지들을 작동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세력간의 타협과 조정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IMF 직전 국가의 금융이나 산업정책 능력이 상당히 축소되어 그것이 IMF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는데, 현재 국가는 어떤 정책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제약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의원께서는 양극화의 불가피성을 얘기했지만 그 문제와 관련해서도 좀더 전향적인 길이 없을까요? 예를 들면 글로벌 기업은 정부가 손대기도 어렵고 알아서 잘해나가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기업과 한계기업 사이의 영역에서 고용창출을 위해 국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와 산업클러스터 정책
정태인 아까 박의원이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있으니 여야통합을 해도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 얘기한 것을 들어보니 그렇지가 않네요. 박의원이 얘기한 것들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해법입니다.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구하자는 것이 DJ정부의 핵심정책이었는데, 실제로 탈락한 자가 많으면 구제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런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마련에 가장 저항적인 사람들은 바로 돈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양극화를 막는 여러 정책들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따라가면 문제만 심각해집니다. 예를 들어 보죠.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은 94,95년까지는 과거의 체제를 상당부분 그대로 유지했어요. 그래서 하청단가도 그때까지는 올라갑니다. 그런데 경제가 앵글로쌕슨화되고 그런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적응하게 되면서는 글로벌 아웃쏘씽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존 하청관계는 가볍게 여기게 되죠. 지금 현대 같은 경우 노사문제가 일어나면 무조건 받아줘요. 거기서 파생된 비용문제는 전부 외부로 전가합니다. 부품단가를 계속 낮춰왔다고요. 그러면 결국 중소기업은 경쟁력이 없어지죠. 허덕거리다가 없어지면 현대가 과연 외국에서 2,3만개의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느냐 하면 불가능해요. 이런 단기적 정책을 쓰는 것이 글로벌 기업의 행태라고 한다면 앞으로 경제는 복원 불가능한 상태로 될 겁니다.
금융감독만 잘했어도 막을 수 있는 황당무계한 일도 있습니다. 가령 투기펀드가 외환은행을 먹었잖아요? 은행업을 할 자격도 없는 펀드에 은행을 넘겨준 거죠.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금융감독만 철저히 해도 우리나라에 오는 불안정성을 상당히 막을 수 있죠. 그리고 동북아에서 금융통화 협력체계를 갖추면 외부충격에 의한 유동성은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북아에서 이것이 정착되면 그건 세계의 표준모델이 될 수 있어요. 앵글로쌕슨형은 미국이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예요. 미국은 지금 외환위기를 맞았어도 벌써 맞았어야 하는데 달러를 찍어내기 때문에 안 맞은 것이고, 사회가 미국식으로 양극화가 됐으면 벌써 인재가 고갈됐어야 하는데 미국이니까 전세계에서 인재가 유입돼 버티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 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앵글로쌕슨형 모델을 취한 나라는 미국·영국·한국인데 이 모델의 유지 불가능성은 한국의 실패로 곧 증명이 될 겁니다. 우리로서는 그전에 빨리 수정을 해야 되겠죠.
한홍구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정실장이 비판했지만, 한국사회가 그런 모델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문화적인 조건을 갖고 있어요. 가령 아주 초보적인 사회보장씨스템의 도입을 좌파적인 정책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한나라당에서 신자유주의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했죠. 경제부총리에 한국 최고의 국책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이 현실의 사회·문화적인 토대란 말이죠. 신자유주의적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을 수용하고 추진할 사회·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김종엽 통일비용, 고령화사회 대비,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갈등의 방어를 위해서는 엄청난 조세지출이 필요하죠. 이런 재정의 확충을 위해 한편으로는 성장을 지속하고 성장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금융정책 능력이 요구되죠. 국가의 역할은 글로벌 경제 아래서 축소되기보다는 변형되며 새로운 기능을 떠맡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국가의 정책방향에 대한 사회세력간의 타협도 있어야겠지요. 다른 한편 글로벌 경제에서 법인세 같은 것을 크게 올릴 수는 없지만 개인의 자산에 대해 세금을 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득세나 부동산보유세가 그런 것이지요. 이런 것이 사회적 저항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문화의 개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형준 정실장께서 앵글로쌕슨형 경제는 미국·영국·한국밖에 없고 유지될 수 없고 실패할 것이라고 했는데, 목적론적인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일본, EU를 놓고 보더라도 경제라는 것은 이 유형, 저 유형으로 구별되지 않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구상한다고 할 때 그것은 국가경제의 통합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중심이 곳곳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대략 인구 3천만에서 4천만 규모의 뻬이징·샹하이·토오꾜오·오오사까·서울 등지에 경제권이 생기고, 하나 더 생긴다면 부산권이나 남부권이 되겠죠. 저는 우리의 지방분권이나 균형발전 모델도 그런 광역의 분권모델로 갈 수밖에 없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일국 단위의 앵글로쌕슨형이냐 무슨 형이냐 하고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런 메트로폴리스 경제권에서 누가 더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가 중요하죠.
그리고 제가 이야기한 것 중에 시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자는 이야기는 복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소규모 지역단위에서 직접적인 노동교환체제 같은 공동체적 실험을 구상해볼 수도 있죠. 노동은행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자원봉사를 하고 자기가 봉사한 시간만큼 다른 형태의 써비스를 받는 노동쿠폰제도를 시행하는 거죠. 지금 부천에서 시도되고 있는 이런 모델과 함께 사회적 일자리를 위한 시민기금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시민기금을 통해서 시장영역에서 창출되지 않는 일자리를 공공영역에서 창출하고 이를 지원하는 씨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시장과 복지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델입니다.
사회자가 국가의 새로운 기능과 능력 제고를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도 국가의 능력은 중요합니다. 국가가 과거보다 힘이 없지만 제대로 된 국가기능은 정말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의회에 있으면서 많이 느낍니다만, 균형발전과 관련해서도 나눠먹기식의 예산이 너무 많아요. 16개 광역단체에 전부 나눠주다보면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기획·관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부산만 해도 국립대학이 여러 개 있는데, 이것을 통합해 학생 수는 줄이고 교육의 질을 위해서 교수 수는 유지한 뒤 광역권 내에 최소한 초일류 대학이 하나씩 생길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것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고, 사립대학은 국립대학에서 줄어든 정원을 이용하도록 해주는 것이죠. 예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할 것인가,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능력이나 기획능력 면에서 정부는 취약하고 정치권은 생각이 없어요. 전부 자기 지역예산 더 따오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죠. 그것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다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되면 한정된 재원을 잘못 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국가의 거버넌스(governance) 능력, 우리가 쭉 얘기해왔듯이 사회를 새로운 사회적 협약의 길로 묶어내는 이 능력이 관건입니다.
정태인 사회적 일자리를 얘기하셨는데 공공과 민간이 서로 결합하는 사회적 일자리는 곧 정책으로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국가의 산업정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산업정책이 필요하고 그 방향은 이미 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WTO 체제하에서 쓸 수 있는 산업정책은 클러스터(cluster) 정책밖에 없어요. 박의원이 지적했듯이 모든 지방이 “우리는 왜 빼냐”고 목소리를 내니까 비슷한 방식으로 동시다발로 클러스터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데 참 우려스럽습니다.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주도한 클러스터 정책은 모든 나라에서 다 실패했습니다. 클러스터는 각 지역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하죠. 그런 문제가 있긴 하지만 클러스터 정책에는 특장이 있습니다. 국가의 정책비전에 대한 합의는 매우 어려운 데 비해, 지역 차원에서의 비전은 훨씬 합의가 쉽기 때문이죠. 예컨대 울산을 얘기한다면 그 지역은 현재 위기의식 속에 빠져 있어요. 현대가 거기에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현대 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을 다른 데로 옮길까봐 걱정스러워서 그런 문제를 단체협약 사항에 넣어서 투쟁을 합니다만 그게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단기적으로 최대한의 임금을 얻어내는 쪽에 촛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그걸 메우느라고 현대는 하청을 더 압박하고, 그 때문에 임금격차는 더 벌어지죠. 그런데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차원의 연대임금 움직임이 있습니다. 쉽게 잘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이 경우에 현대와 정부가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가령 부품업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연대임금제도를 실시하는 거죠. 이 제도를 실시하면 현대가 제일 이익을 보게 되어 있어요. 현대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부품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면 초과이윤이 생기는데 이것을 가지고 기금을 만들어서 노동자 교육·훈련이라든가 다른 업종으로의 이전을 돕는 거죠. 이는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에서의 탈락을 막아내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모델을 만들어 확산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겠죠.
한홍구 국가능력 얘기가 자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민주주의 경험은 없고 내용과 절차는 굉장히 앞서가기 때문이에요. 민주화가 과거에 우리가 흔히 국가능력이라고 생각하던 부분에 상당한 제약을 줬죠. 그 다음에 신자유주의가 제약을 주었는데, 시장만능주의가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다보니까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지방자치제를 하니까 모든 지방마다 산업의 꽃이라고 하는 IT와 같은 것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사실 이를 조정해나가는 기능이 없단 말이죠.
정태인 이제는 민주주의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로썸(zero―sum) 게임으로 인식되어버린 것 같아요. 남한테 빼앗기기 전에 내 것을 빨리 확보해서 챙기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거죠. 민주주의가 플러스썸(plus-sum)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못한 것이죠. 성장이 분배를 보장할 수 없는 씨스템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가 플러스썸 게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김종엽 경제모델과 관련해 두 가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하나는 앵글로쌕슨형 모델로 급격히 끌려갔지만 그 한계도 많이 드러났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식의 모델을 찾으려고 하는 지적·도덕적·문화적인 담론이지요. 우리 사회 엘리뜨 집단 내의 신자유주의적 합의라는 것이 매우 강력한데, 그런 와중에 ‘2005 희망제안’ 등은 상당히 의미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역시 정당, 주요한 사회집단, 대기업 집단, 노동 쪽이라든가 시민운동, 그리고 정부 간에 사회세력의 재배열을 수반하는 타협이 필요한 싯점인 것 같아요. 담론과 세력 재배열 두 측면에서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시는지요?
한홍구 사회세력의 재배열 문제는 사실 정치에서 풀어야 할 부분이지요. 정치권과 국회가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소통해야 하는데, 정치사회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 민중영역이나 사회의 갈등세력과 교통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보면 13대·14대·15대 국회 때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성원들이 들어갔고 각 분야의 능력있는 분들이 많이 들어갔죠. 하지만 문제는 당론이라는 구조에 묶여버려서 자기 목소리를 못 낸다는 것이죠. 정당 구조의 비민주성은 큰 문제예요. 물갈이는 할 만큼 했는데 판갈이가 안되고 있어요. 17대 국회가 출범한 지 1년밖에 안됐는데 18대 국회에나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가 벌써 나오는 상황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소통과 희망
박형준 말씀에 대부분은 동의하는데, 조금 구별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담론 수준에서 얘기를 하면, 지금 시대의 가치나 이념적인 지표를 설정할 때 두 가지 고려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로서의 개인화,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장, 글로벌화 등등이고요. 또 하나는 개인화를 보완하거나 같이 짝을 이루어야 할 공동체, 사회연대지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현 싯점에서 자유주의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혼합물이고, 자유민주주의란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토대에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것이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느냐, 개인화와 공동체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확립하느냐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서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고, 그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요소들이 뭐냐 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죠. 역사에서 만들어진 제도나 가치를 한꺼번에 부정할 수는 없어요. 법치주의라든지 삼권분립이라든지 의회의 기능 등이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죠. 이를 한꺼번에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관념적인 게 될 수 있죠.
정말 정부가 비전을 가지고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려고 했다면 작년의 의제설정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따로 다뤄야 할 것들을 4대 입법으로 묶어가지고 왜 그렇게 난리를 피워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금년에는 긍정의 정치로 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희망을 갖습니다. 일단 정부·여당의 입장이 유연해졌고 새로운 문제설정을 하려고 하고 있죠. 그렇게 되면 야당도 정말 탈바꿈을 해야 합니다. 여당은 좀더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고, 야당은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고 발전적인 보수세력으로 거듭나야 하죠.
한홍구 100% 동의합니다. 여당의 경우 질타를 받아야 할 부분은 무능력이고, 야당의 경우 밖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과연 내부개혁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박의원이나 몇몇 분들이 열심히 하시겠지만 그 개혁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기본적인 가치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죠. 정말 헌법에 나와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인 헌정질서만이라도 회복되어야 하는데, 한나라당 내부의 온건 합리 보수세력이 자리를 못 잡고 있기 때문에 엉뚱한 쪽이 자유주의를 들고 나와서 참칭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박형준 저도 노력을 하겠지만 지금 지적하신 대로 한나라당이 과연 그런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은 못합니다. 작년에 한편으로는 희망을, 한편으로는 절망을 봤는데, 생각보다 끈질긴 정당 체질과 문화에서 절망을 봤고, 희망은 그래도 한나라당 내에 16대 국회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폭이 굉장히 넓어요. 당 내부에 건강한 노선투쟁을 통해 과감한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나라당의 미래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겠지요.
정태인 저도 우리의 무능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당이 무엇을 들고 나와도 다 좌파사회주의가 되고, 의제설정이 잘못됐다고 하니 어려움이 큽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이나 과거청산 같은 것은 정쟁을 일으키는 의제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다른 것을 들고 나왔어도 정쟁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이정우 특보가 네덜란드 모델로 사회적 타협안을 들고 나오자 여러 반대층들이 다 들고일어나 ‘이건 사회주의다’라고 떠들어댔죠. 심지어 조선일보는 그 전날 자신들이 네덜란드 모델을 참조해보자고 써놓고도 이정우 특보가 말하니까 사회주의라고 하니 어이가 없죠.(웃음) 조금의 변화도 막고, 지금의 나쁜 균형을 5년 내내 끌고 가서 다시 한판 승부를 해보려는 세력이 있으니 어떤 것이 나와도 정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다 빼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면 할 게 별로 없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박의원에게 굉장히 기대를 거는데……(웃음)
박형준 상당히 중요한 말씀을 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가를 느낍니다. 오늘 정실장 얘기를 들어보면 물론 철학적인 관점이나 전체를 보는 눈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 수용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네덜란드 식을 말해놓고서 정권에 대한 미움 때문에 돌아섰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일보와 소통을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니, 많은 부분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기금관리법이나 연금법의 내용을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 당내에 별로 없어요.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몇몇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이 규정해버리면 그게 수용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고 당내에서 얘기를 해도 안 먹히는 구조가 있어요. 국가능력 중 중요한 것이 정책을 집행하고 수립하는 것뿐 아니라 그 과정을 관리하는 능력이고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설득능력이에요. 그런데 저쪽에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설득을 안했다, 혹은 저쪽은 원래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설득해봤자 소용없다 식으로 출발하면 소통의 단절현상은 계속 일어날 겁니다.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세요. 설득하면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종엽 87년체제라는 개념으로 15년 정도의 긴 기간을 성찰해보고자 했는데, 시간이 참 부족하군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좌담에서도 여러번 이야기가 나왔듯이 87년체제는 도처에서 나쁜 균형과 교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교한 노력과 상호설득 없이는 잘 풀리지 않는 완강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봄을 맞아 북한문제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체제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지점들은 어떤 것일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주시죠.
정태인 우리 정부가 잘한 것은 정권을 잡아봐야 별로 득볼 일 없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줬다는 거죠.(웃음) 경제가 상당히 위기인데 다음에 누가 정권을 잡든 제대로 하기 위해선 지금 몇가지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또 지금까지는 이렇게 왔는데 앞으로의 비전은 이런 것이다라고 제시하는 것, 그리고 ‘2005 희망제안’ 같은 것에서 시작해 좀더 폭을 넓혀가는 희망, 정말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통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일이야말로 여야와 시민사회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홍구 하여튼 이 교착상태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의원께서 4대 입법을 왜 설정했느냐는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공약이었죠. 그것들을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한 채 탄핵을 당했고, 탄핵에서 돌아와서 추진했던 것이죠. 민주주의체제에서 정권은 소통해야 할 부분도 있고 타협해야 할 부분도 있죠. 또 위임받는 부분을 밀고 나아가야 할 부분도 있어요. 후진도 전진도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야 할 부분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지금 상태가 가장 나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위임받은 것을 실천하고 그것에 대해 선거를 통해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박형준 작년에 4대 입법 중 그래도 유일하게 타결했던 신문법 합의과정에서 협상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느낀 점은 충분히 협상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타협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작년 여당이나 야당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낸 분들을 보면 상대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너무도 뿌리 깊어요. 그런 것을 갖고 정치를 하면 계속 정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죠. 그 과정에서 양당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세력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는데, 우선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적개심과 분노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희망이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나 앞으로 몇년 내에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파고는 결코 간단치 않다고 봅니다. 1905년의 을사조약 때는 나라를 빼앗기느냐 아니냐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21세기에 우리 민족이 온전하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문명 표준에 맞는 나라를 만드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지요. 그런데 우리가 처한 환경은 정말 녹록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세력구도를 고착시키는 방식으로는 문제해결이 좀 힘들 것 같아요. 아주 간곡한 심정으로 얘기하는데 그건 정권측에서 먼저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요. 그것은 집권세력에도 결코 불리한 것이 아닐 거예요. ‘전부 아니면 무’라는 식이나 제로썸 게임 모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잡고 전체 변화를 유도하는 고급정치, 또는 고급 국가경영을 하기를 기대하면서 저 개인도 야당의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김종엽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2005년이 동아시아나 한반도 차원 모두에서 새로운 성찰과 희망을 여는 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좌담에서도 드러났듯이 희망은 공부하는 자세로 일궈나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을 위해 공부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이것으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