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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 은 趙 銀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등이 있음. rilecam@yahoo.co.kr
어느 한 시절
나는 모래알을 땀방울처럼 떨어뜨리며
사막의 소실점을 보고 서 있다
내 몸의 모래를 쓸어낸들
내 몸에 물을 양동이로 부어준들
이곳은
사막이다
우산 속 남녀
퍼붓는 빗속에 낡은 우산이 멈춰 있다
우산 속엔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나는 가까이 가서야 우산 속 여자가
만삭임을 안다
여자는 도넛을 먹고 있다
여자가 젖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주며 남자는
여자가 허겁지겁 먹는 것을
행인이 못 보도록 신경쓰는 중이다
우산의 기울기를 조정하는 남자와
먹고 있는 여자는 반쯤 젖었다
고장난 신호등의 질서 속으로
차들은 빗물을 튀기며 달려간다
고장난 질서에 묶여 있던 남자의 손이
여자의 야윈 몸을 와락 껴안는다
여자가 먹던 달 같은 도넛이
빗속으로 들리고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낡은 우산이 지붕처럼 풀썩 무너진다
그들의 더 많은 부분이
비와 우산에 가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