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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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咸敏復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울氏의 一日』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등이 있음. hminbok@hanmail.net

 

 

 

고추밭 블루스

 

 

허리가 낫처럼 휜

할아버지 지팡이는 바퀴가 두 개

할머니 지팡이는 바퀴가 네 개

자전거와 유모차가 밭둑에 놓이고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도

밭고랑에 숨어드는 노부부

꼿꼿하게 서 있는 말뚝

바람에 흔들리던 고추대궁

블루스 끝에 얻은 붉은 고추

탱탱한 것 가려따는 쭈그럭 손

 

지팡이에 푸대를 싣고

지팡이도 일꾼이었으니

휜 허리로

지팡이 굴리며

갓길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지팡이는 바퀴가 두 개

할머니 지팡이는 바퀴가 네 개

 

 

 

개 도살장에서

 

 

마취제를 맞은 개가 하품을 한다

트럭 짐칸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쇠철망 위로 던져진다

토치램프가 퍼런 불을 내뿜는다

거죽이 오므라들고 살이 튼다

목살이 벗은 누린내가 사방으로 날뛴다

개는 눈동자만 간신히 움직인다

믹서기에 대가리를 갈아도

동동 뜨던 수백개의 닭 눈동자들

남기지 않고 먹던 힘이었을까

눈꺼풀을 닫지 못한 눈빛이 탄다

담배를 물며 약수터를 본다

이십 리터에 오백원

자동펌프 장치 녹슨 안내판

담배 한개비를 다 피우기도 전에

개는 내장을 비우고 육시(戮屍)된다

만오천원 도살비를 지불한다

그때서야 근육 마취가 풀렸는지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생선 여섯 마리가 푸덕푸덕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