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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송기숙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화남 2005

아름다운 기인(奇人)이 쓴 마을 이야기

 

박석무 朴錫武

성균관대 석좌초빙교수 sm5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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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독재가 기승을 부렸다. 특히 전남대에서 교수들의 ‘교육지표’ 사건(1978)이 일어날 무렵 독재의 냄새는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고약한 독재는 송기숙(宋基淑) 교수를 사건의 주모자로 몰아 쇠고랑을 채우고 말았다. 전남대 『함성』지 사건(1973)에 연루되어 죽도록 고문당하고 수감되었던 탓에 감옥생활에서는 선배였던 나는 70년대 말엽 송기숙과 저녁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는 술이 제대로 취해야 본색이 드러나는 인물이다. 했던 말을 새로운 말인 양 반복해서 틀어대는 습성이나, 호탕하고 꾸밈없이 마구 웃어대는 너털웃음도 술이 좀 들어가야 나타나는 버릇이다. 술이 흠뻑 취해야만 천의무봉(天衣無縫), 아름다운 송기숙의 인성이 제대로 드러나서 인간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인간으로 바뀐다.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읽힌다. 송기숙 소설은 정말로 재미가 있다. 70년대 후반 소설집 『도깨비 잔치』나 『재수없는 금의환향』 등의 구수한 문장이나 적시적소에 인용되는 속담은 그의 소설만이 지닌 특출한 재미를 한층 더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나온 『자랏골의 비가』야말로 소설적 재미의 극치인데다 전라도 사투리사전이어서 독재를 견디는 방편으로도 우리가 즐겨 읽던 소설이었다.

문학평론가 황광수(黃光穗)가 지적한 대로 송기숙의 장편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녹두장군』 등은 우리 현대사에 나타난 민중들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소설화한 수준높은 문학적 작업이었다. 20세기 말엽에 나온 장편 『은내골 기행』에 대해서도 황광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삶에 가해적으로 작용하는 분단체제의 실상을 뼈아프게 드러내면서도 전통사회에 보전되고 있는 공유적 삶의 양식과 건강한 민중적 생명력을 그려내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해설)라고 말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에서는 바로 민중들이 숱한 수난 속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살았나를 소설 아닌 산문으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보존되었던 마을의 고유한 삶의 양식이 얼마나 건강한 민중적 생명력을 지녔는지를 그림 그리듯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6·25를 만나 학교를 그만두고 할아버지가 훈장이던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던 시절이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을 받았고, 마을에서 벌어지던 ‘두레’의 풍경을 빠짐없이 회상해낼 수 있었다. 특히 일고여덟살 적, 즉 6·25전쟁 이전의 ‘두레’야말로 옛 모습 그대로의 두레라고 할 수 있는데, 모심기나 논매기를 할 때면 해마다 펼쳐지던 그 잊혀진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즐겁기까지 했다.

전쟁 이후 서구문화가 세상을 휩쓸면서 전통사회와 두레문화가 무너져 우리의 삶은 얄팍해지고 버릇없어지고 야박해지면서 인심까지 떠나고 말았다. 그 무엇보다도 공동체적 두레마을의 후한 인심이 떠나버린 것은 너무도 아쉽다. 이바지떡이나 돌떡 한쪽이라도 집집마다 나눠먹던 그 따뜻하고 훈훈하던 인심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1980년 5·18로 인해 송기숙과 나는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그가 먼저 풀려났고 나는 그후에 나왔다. 82년 무렵부터 내가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5,6년간 또 술마시기 대회가 열리지 않은 밤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술이 어느정도 취해야 본색이 드러나는 송기숙은 투옥 이전보다 훨씬 화제가 풍부해졌다. 5·18 무렵 그도 잠깐 은신을 했는데, 그때 지명수배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 수배용 사진의 인상착의 문안에 ‘일견 미남형’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는 술만 들어가면 국가가 자신을 미남으로 인정했노라고 반복해서 틀어대던 기억이 새롭다. 어쨌든 홍남순(洪南淳) 변호사를 비롯하여 우리 셋은 광주구속자협의회를 비롯한 반독재투쟁단체들을 출범시켰고, 그 무렵 자주 어울리던 이들이 시인 고은(高銀), 소설가 황석영(黃晳暎), 경제학자 박현채(朴玄埰) 등이었다. 이 책에 실린 이 세 명의 인물평 또한 송기숙 아니면 쓸 수 없는 멋진 글이다. 홍남순 변호사의 인물평은 그의 고희논총에 실렸기 때문에 이 책에는 빠졌지만, 네 편의 인물평이야말로 글쟁이 송기숙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고은의 『만인보(萬人譜)』에 ‘속수무책’으로 감동해버린 송기숙, 박현채의 치열한 삶을 보고 자신의 꼴이 얼치기 같았다던 송기숙, 황석영의 ‘구라’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던 송기숙, 그런 모든 것이 옴소롬히 담겨 있는 인물평이다. 80년대 중반에는 가끔 창비사에 들러 몇사람이 모이면 우리 시대의 기인(奇人)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누가 딱히 거명한 것도 아니지만 고은, 박현채, 송기숙, 김지하(金芝河), 황석영 등을 5대 기인이라 했거늘, 이 책에는 김지하를 빼놓은 기인열전이 실린 셈이다. 송기숙이 그렇게 탄복하고 기절할 지경이던 『만인보』에는 송기숙의 기인열전도 실렸다.

 

소설가 이문구가 이르기를/천연기념물 송기숙/광주는 그가 있어 광주였다/아무리 바람 찬 세월일지나/그가 있어 광주의 밤이었다

 

(…)

 

그는 손으로 쓰다가 발로 쓴다/차라리 정신 따위는/자칫 관념을 낳아버려서/그는 몸으로 쓴다/소설 『암태도』를/소설 「재수없는 금의환향」을

 

옛날 소씨(昭氏)가 거문고를 뜯을 때/한 소리만 나고/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과연 그의 벗 사광(師曠)이/지팡이로 땅을 쳐 반주한 까닭이 어디 있을까/거기 송기숙이 히힝히힝 말처럼 웃으며 일어난다.(『만인보』 12권, 창작과비평사 1996)

 

고은과 송기숙 두 기인들이 상대방의 열전을 쓴 이 기이한 사실은 바로 우리 문단의 거인인 시인과 소설가의 대결이어서 자못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두레마을 이야기와 기인열전 말고도 ‘발로 걷고 손으로 쓰고’라는 제목 아래 장편소설 『녹두장군』의 무대가 된 동학농민전쟁의 전적지를 찾은 현장답사 기록이 실려 있는데 높은 수준의 글재주가 살아 있어 재미가 소록소록 돋는다. 또한 「섬, 섬사람들」이라는 글은 육지와 다른 섬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서 섬 문화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진도라는 섬에서 읊던 민요의 인용은 실감나고 야해서 좋다.

 

시엄씨 잡년아 건기침 말아라

느그 아들이 웬만하면 내가 밤마실 돌까

시엄씨 잡년아 잠 깊이 들어라

울 너머 섰는 낭군이 밤이슬을 맞는다

 

라는 민요 구절들은 그가 술만 들어가면 줄줄 외워대던 노래여서 반가웠다. 다만 하나 「섬, 섬사람들」에서 보길도 이야기를 하다가 당대의 예학자(禮學者)요 집권세력과 대결했던 뛰어난 저항의 지식인이자 탁월한 국문 시조시인이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높은 학문과 인품에 대한 고찰 없이 항간에 잘못 전해지는 악담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은 글에 손댈 기회가 있다면 꼭 가필해야 할 부분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