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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종광 金鍾光

1971년 보령 출생.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장편소설 『71년생 다인이』 등이 있음. kckp444@hanmail.net

 

 

 

낭만 삼겹살

 

 

농사꾼이 오토바이를 드라이브에도 사용하다니. 그건 아무리 봐도 드라이브였다. 목적도 없이 별다른 사건도 없이 그냥 어디까지인가 다녀오는 것!

여러해 전 봄, 이맘때였다. 김씨는 딱 죽는 줄 알았다. 몸에 힘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밥을 안 먹어서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밥을 못 먹었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헛것만 보였다.

조부가 물려준 재산을 실컷 쓰다가 공수래공수거한 한량 아버지, 쉰 가까운 나이에 일곱번째 아이를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그 아이 돌 되기 전에 숨을 거둔 어머니, 팔십몇년이던가 하필이면 콩밭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작고한 큰형, 장년에 삼동네 논마지기를 모두 거두어들였으나 호사다마랄까 중풍으로 10년을 고생하다 간 둘째형, 요절해서 가장 젊은 제사상 사진을 남긴 셋째형, 자린고비 남자를 만나 푼돈 한번 써보지 못하고 혹사 끝에 폐병으로 간 작은누나까지, 무시로 찾아왔다.

김씨가 그의 장성한 세 자식과 핏덩이 손자까지 보여주며 잘사는 사람 꿈자리 좀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라고 몹시 타박을 해도, 그 귀신들은 나들이를 그칠 줄 모르더니, 이제는 대낮 생시도 가리지 않았다. 밤에도 어둡지 않은 세상인지라 귀신마저 밤낮 구별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내와 자식들은 술을 과히 마셔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술을 과히 마셔서 그나마 헛것을 견딜 수 있었고, 외양간 치우기 같은 도저히 안할 수 없는 일에 그나마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농한기가 길어서 그렇겠지, 몸뚱이를 쓰지 않으니까 평생 옥죄었던 정신이 게게 풀어진 거야 했지만, 그의 자기진단은 틀렸는지 모내기철에도 혼미는 계속되었다. 경운기 대가리로 논을 갈다가 나자빠진 적도 있었고, 이앙기를 몰고 가다가 논바닥에 고꾸라진 적도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토바이를 몰고 아무데로나 쏘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름값 못해서 죄송혀유, 참말로 죄송혀유. 그러니께 이름을 적당히 지었서야쥬. 까질러놨으면 최소한 열살까지는 책임을 지시던가. 지우 애새끼 다섯살 때 황천 갈 거면서 이름만 그리 거창하게, 그게 무슨 무책임한 경우냔 말유.

야, 막내야! 말을 해도 참 정나미 떨어지게 한다. 아무리 내가 해준 게 읎어도 네가 이 세상 구경하는 건 다 내가 낳아준 때문 아니냐? 그거 하나면 감지덕지지 웬 시비냐? 니, 또 무슨 일이 있었구먼. 니는 무슨 일 생기면 꼭 내가 이름 잘 지어준 것 가지고 시비잖여. 자식놈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겨?

그놈들이야 지들이 잘 알아서 살든지 말든지 하겄쥬.

그럼 왜 아침나절부터 애비한테 지랄이여?

육실할, 또 하나가 뒈졌단 말유.

뭐가? 송아지가? 갸들은 왜 자꾸 죽어쌓는다냐?

지 말이 그 말유.

 

그전에 암소 한두 마리 키우던 이력은 치지 않더라도, 평균 한우 스무 마리 규모의 축산 경력이 올해로 십오년 째인데, 참으로 이런 경우는 첨이었다.

한달 전에는 엇송아지 한놈이 수의사도 병명을 대지 못한 병을 앓다가 가버렸고, 아까 점심때는 다 키운 거나 마찬가지인 중송아지놈이 차라리 병에 걸려 죽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어처구니없게도 방방 뛰다가 목 묶어놓은 밧줄이 축사 얽은 나무토막에 걸렸고, 제 딴에는 풀어보겠다고 날뛰는 통에 더욱 옥죄어져 질식사한 거였다.

그래도 제일 선연한 것은 올해 송아지 돌연사 릴레이의 첫 테이프를 끊은 놈이었다.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장남네가 무사히 귀경, 짐 풀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걱정 집어치우고 잠들려는데 소 울음소리가 삼동네를 찢어발기듯 했다.

어미란 놈이 발광할 만도 한 것이 사람으로 치면 접싯물에 코 박는다고 지 새끼가 제 구유에 처박혀 있었다. 와락 건져놓고 본 송아지는 아직 살아 있는 듯도 싶었다. 익사사고에는 인공호흡이라더라, 송아지 그 큰 입을 부여안고 용을 써보긴 했는데 부질없는 짓이었고, 다만 삼동네에 언저리 뉴스감 하나 제공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계산해보니 그 송아지가 이 지상에서 생존한 시간은 딱 스물다섯 시간이었다.

스물다섯 시간! 우연히도 김씨의 첫 자식이 생존한 시간과 거의 일치했던 거다. 막내딸을 보고 ‘딸 하나만 더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사십여년 전에 찰나를 살았던 그 어린것에 대한 회한일지도 몰랐다. 그 어린것은 넋으로 화할 만큼도 생명으로서의 본분을 못 다한 것인지, 김씨를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도 알다시피 내가 봄만 되면 이상해지잖유.

그려. 며늘아기가 봄만 되면 너 때문에 보짱이 타야. 밥은 안 먹고 맨 술만 마시니께.

올해부터는 안 그럴라고 그랬다구유. 그런디 그놈의 송아지 새끼들이 그 지랄로다 죽어나자빠지니 내가 정상이겄슈? 어쩔 수 없이 술 마실 수밖에 없고, 술 마시면 밥 안 먹게 되고, 그런 거라구요.

그리도 겁은 나는 게지? 그렇게 싫어하던 병원도 잽싸게 달려갔다 오고?

이젠 늙으니께 별수가 없더라구유. 어디가 좀 션찮다 싶으면 덜컥 겁나서, ‘막내딸아! 시동 걸어라!’ 소리부터 치고 있더라구유.

그려, 어쩔 수 있간. 사람이 병원도 다니구 그래야지. 종합진단 결과 나올 쯤 안되었냐?

술 마시지 말고 밥 열심히 먹으래유.

이상 별로 없다는 얘기구만. 그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혀. 내가 너만큼은 저승이서 만나기가 싫으니께. 내가 백골이 진토 된 다음이 와야 쓴다 이거여…… 열 받아서 맨정신도 아닐 텐데 말짱하게 어딜 가는겨? 니, 오서산 쪽인 걸 보니께 또 그놈의 드라이브구먼. 그놈의 계곡에 뭐가 있다구 풀방구리처럼 쏘다니냐?

물러유, 그냥 막 달려가고 싶은규.

네가 뭐 십대 폭주족이냐? 그냥 막 달려가게?

물러유. 두엄더미다가 뒈진 송아지 새끼를 그러묻고 있는디……

그걸 왜 묻어? 중송아지라메? 고기는 싱싱할 텐디 팔아서 다만 한푼이라도……

질식사로 뒈진 건 못 먹는대유. 내장이 다 뒤집어져갖구…… 어제 예방접종을 해서 약 기운도 남아 있고…… 하여튼 그러묻고 있는디 열 받잖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탄 건디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네유.

 

역시 아버지의 혼령과 말을 나누자, 김씨의 처참한 심사는 다소 풀리는 듯했다. 첨엔 이승에서 육십년 이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그 귀신들이 하염없이 무서웠는데, 몇해 겪다보니 차차로 익숙해졌고, 어느 결엔가 자연스럽게 말도 섞게 되었다. 마누라, 자식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을 귀신들은 잘 들어주었고, 적절히 위로해줄 줄도 알았던 거다. 해서 일부러 귀신들을 불러내어 떠들어대는 경우도 많았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열불이 났다. 말이 송아지 세 마리지, 일년 축산하여 순수익이 오백만원이나 될까 말까 한 걸 생각하면, 이후 더이상의 돌연사가 없고, 천재지변과도 같은 돌림병도 없고, 인재지변과도 같은 소값 시세 널뛰기도 없고, 하여튼 무사무탈하더라도 겨울에 쥘 게 하나도 없는 거였다.

 

황씨 부부는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서, 일킬로를 까서 삼백오십원이라든가 사백원이라든가를 받는다는 마늘과 씨름하고 있었다.

“김사또, 또 드라이브 왔는가?”

세살 버릇이 여든살까지 간다더니, 젊었을 적 별명이 이제까지 오고 있었다. 김씨는 청년시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리분별하기 좋아해서 사또라는 별호를 얻었는데, 때로는 그 성격 때문에 관재(官災)도 입고, 각별했던 관계를 상실하기도 하면서도 초지일관 별호 값을 해왔다고 자부하고는 했다.

“아직 쌀쌀한디 방구석서 까지. 낼…… 몸도 시원찮은 사람이.”

김씨는 하마터면 ‘낼모레면 초상 치를 사람이’라고 말할 뻔했다. 그것은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의사가 황씨에게 ‘길어야 석달’이라고 말한 게, 해서 황씨가 ‘내 집에서 죽겠다’고 고집을 부려 병원생활을 작파하고 내려온 게 두달 전이었다. 하니까 의사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길어야 한달이 황씨가 보장받은 여생인 거였다.

“봄이 참 낭만적이여. 이 봄을 하루라도 더 봐둬야지.”

황씨는 나무꾼과 도끼 들고 노닥대는 산신령 같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김씨에게는 봄이 하 먼 듯한데 황씨에겐 벌써 와 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황낭만이 아니랄까베 끝까지 낭만타령이구만.”

마땅한 대꾸가 생각나지 않은 김씨는 황씨의 별호를 언급하는 것으로 짠하게 밀려오는 감정을 억눌렀다.

황씨는 깊고도 깊은 갱도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을 때도 ‘낭만적’이라 했고, 작부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막걸리 사발을 드높일 때도 ‘낭만적’,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단체로 대들 때에도 ‘낭만적’, 심지어는 갱도 붕괴로 죽은 지아비의 시신을 붙잡고 울어대는 아낙에게도 ‘그만 울어유, 낭만적인 세상으로 갔을규. 좆나게 더러운 세상에서 좆나게 고생혔으니께 다음 생에서는 좆나게 낭만적인 데서 호의호식할규’라고 주억대고는 했다. 그리고 황씨는 병원에 들어앉아서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자태로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놈의 낭만타령을 해댔던 거다.

“얼굴 봤으니께 난 갈라네.”

“오늘은 휭하니 가지 마. 자네가 나 죽었나 살았나 수시로 들러주는디 한번도 변변히 대접을 못헌 거 같아서, 오늘은 좀 준비를 혀놓았은께.”

“거 좀, 자꾸 죽는다고 나불대지 말어. 내 장담한단께. 자네는 내년에도 마늘을 깔 수 있을겨. 내가 손바닥에 장을 지지고 맹세를 혀.”

“하여간 좀 앉아.”

“에이, 싫어. 난 드라이브중이란 말여.”

“까마귀계곡? 그럼 거기 갖다 와서 꼭 들러.”

“안뎌, 바뻐. 초상집이도 가야 돼. 우리 동네 늙은이 하나가 또 밥숟갈을 놨어. 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댜. 이런 육실헐 주둥아리……”

“꼭 들를 거지?”

 

황씨가 병원에 들어간 것은 90년이던가 91년이던가 이 고장 광산들이 통째로 폐업할 때였다. 팔팔한 이들은 80년대 말에 이미 다 떠나간 뒤였다. 6, 70년대처럼 탄광이 호시절을 누렸다 해도, 21세기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마당에 탄 깨서 먹고사는 일에 평생을 걸기로 작정한다는 것은 도무지 괴로운 일이었다. 탄광시절은 완전히 끝났음을 증명하는 근거들이 속출하고, 탄광밭이던 강원도 태백 쪽이 이미 폐광밭으로 변해버렸다는 소문에 당하니, 타도 사람은 설마 충청도 서해안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을, 이렇게 미미한 탄광지대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 그러니 하루라도 더 일찍 이놈의 시커먼 땅에 안녕을 고하고 다른 업을 찾아 떠나는 것이 지당한 바였다.

하니 탄광들이 ‘우리 확실히 문 닫습니다’ 공식선언할 때까지 버틴 건지, 어쩔 수 없어 꼼짝을 못한 건지, 하여간에 남아 있던 이들은, 거지반 김씨처럼 이 고장이 고향이고 앞으로도 고향 떠날 생각이 없는 이들이거나, 타향에서 굴러들어왔건만 광부로 그 기나긴 세월을 다 소진해서 또 어디론가 떠나 다른 업 갖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처럼 여겨지는 오륙십대들이었다.

남아 있던 광부들 대부분이 갱도를 긴 경력이 이십년이 넘는지라 그 누구라도 그럭저럭 높은 급수의 진폐증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 탄광회사는 폐업한 것이지 회사를 끝장낸 것은 아니어서 최소한 그때까지 깨놓은 석탄을 다 팔아먹을 때까지는, 워낙 많이 깨놓았고 워낙 안 팔려서 아마도 수십년은 걸리리라 싶은데, 하여간에 그 진폐증 환자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또한 그 환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환자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해서 황씨 같은 인생이 생겨난 거였다.

김씨는 갑갑하게 어디 갇혀 있는 걸 싫어해 병원 쪽은 생각도 안해보았다. 진폐증 같은 거 없는 거로 치고, 곧바로 광산이야, 안녕! 하고 말았다. 사실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광부 경력은 이십여년인데 농사 경력은 여남은 살 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니 사십여년이었고, 광부 경력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농사 경력은 아직도 그 끝이 먼 바였다.

하지만 황씨는, 놀면 뭐하나, 다른 일자리가 모색될 때까지 병원에 가서 푹 쉬어야지, 병도 고치고, 돈까지 나오고, 이게 일석삼조라는 거구나, 회사놈들 모질게 부려먹더니 막판엔 잘해주네, 딱 석달만 누워 있자, 이 정도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입원한 것이었다.

한데 도대체 일자리가 모색되지 않았다. 중졸 학력에 쉰한살의 나이, 터득한 기술은 탄 깨는 기술밖에 없고, 가진 거라고 25년짜리 광부 경력과 오서산 밑자락 은행나뭇골에 장만한 보잘것없는 집 한채와 백만원대 통장 두어 개. 뿐인가, 땅도 없고, 타향살이니 일가친척도 없고, 없는 것투성이였다.

과수원이나 농장 같은 데는 받아주겠지만 임금이 박하고, 공장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테고, 노가다라, 노가다는 목수나 미장이 같은 일을 할 수 없으니 삼만원짜리 잡일이 고작일 텐데, 한달 삼십일 하루도 안 빠져도 구십만원, 그 구십만원 갖고 애들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

대한민국에서 기술 없고 배경 없는 놈이 노력만으로 떼돈 버는 일은 장사밖에 없겠고, 특히나 이 고장은 그간 산업의 뼈대였던 광업이 끝장났으니 앞으로는 좋든 싫든 서너 개 해수욕장에 목을 걸고 관광장사에 매진하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수인바, 너도나도 장사하겠다고 설치는 판이겠다, 본인 역시 서른살 즈음부터 작은 가게라도 하나 내어 적게 벌더라도 편히 살자는 꿈을 꾸어왔겠다, 그래 장사를 하자, 장사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해서 퇴직금에 보잘것없는 집이지만 그 집 팔 요량까지 하고 거기에 이래저래 대출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를 더해가지고, 이 장사 저 장사에 대해 가량을 해보았는데, 장사판은 들여다볼수록 자기 같은 우유부단에 낭만타령이나 해대는 주변머리로는 감히 끼여들 수 없는 거대한 사기왕국 같았다.

사람들이 하도 장사를 만만히 여겨서 열에 일고여덟은 성공이 떼놓은 당상인 줄 알았는데, 개업해서 육개월 안에 안 망하면 장사 잘한다는 소릴 듣는 데가 그 판이었던 거다. 겁없이 장사에 뛰어들었다가 목숨값이나 다름없는 퇴직금을 한순간에 말아먹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결국 장사에 대한 의지는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다 해도 장사만은 못하겠다는 체념에 이르게 되었다.

 

‘토종닭 백숙’ ‘토끼탕’ ‘오리구이’ ‘흙돼지 전문’ ‘오서산 더덕주’ 등을 대문짝만하게 써서 깃발을 세워놓은 식당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계곡 위쪽에 자연풍유림이 조성된 후에 속속 생겨난 것들이었다.

오서산은 겨우 칠백구십 미터였다. 강원도나 전라도에 가면 산 축에도 못 들 테지만 이 고장에서는 가장 높은데, 세상에 알려지기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김씨가 육십여년 지켜본 바로는 이름 그대로 까마귀나 잔뜩 살까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산이었다.

한데 아이엠에프를 극복했다고 큰소리치던 무렵부터인가, 시청 차원에서 이 기슭 저 골짜기에 이것저것들을 짓고 조성하는 것 같더니만, 까마귀는 집단적으로 이사를 갔는지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사람들이 새까맣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말엔 사람 꽉꽉 채운 관광버스가 코스마다 대여섯 대씩이나 들어올 만큼은 떠들썩해진 듯했다.

특히 여름엔 이 까마귀계곡, 해수욕장 빰쳤다. 풍유림 매표소께부터 공영주차장 옆을 지나 식당지대에 이르기까지의 한 삼백여 미터나 될까 한 계곡이 피서온 가족들로 바글바글했다.

김씨는 우리 가족도 저렇게 한번,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먹어봤으면 하고 군침을 흘리고는 했는데, 마침내 재작년 여름에 한번 성사를 봤다. 큰아들놈이 고기를 구우면 환경오염이 어쩌고저쩌고 가방끈 긴 소리를 해서 신경질이 났던 것과, 작은아들이 길이 좁았던지 차를 쉽사리 못 돌려 반시간이나 울화통 터지게 했던 걸 빼면 그럭저럭 무난한 나들이였다.

양력 4월 중순에 평일이라 그런지, 오늘은 뵈는 사람 하나 없었다. 공영주차장까지는 아스팔트 포장이었지만 이후 풍유림까지는 시멘트길이었다. 게다가 경사가 급해져서 50cc 오토바이는 늙은 싸구려 티를 내느라 헐떡대는 소리로 산을 둥둥 울렸다. 하지만 넌 참 재수가 좋은 놈이다. 너 오기 전에 있던 애는 야, 길다운 길을 달려본 적이 없었다.

바로 저기, 저기였지, 연놈이 떡치는 덕에 살아난 데가.

김씨는 살면서 한번도 직접 보지 못한 차량 충돌사고를 하필이면 산속에서 보았던 거다. 풍유림에서 내려오던 외제 자가용이 설마 갓길 면적이 도무지 안 나오는 이런 곳에 누가 주차를 해놓았으랴, 거침없이 달리다가 길가에 절묘하게 주차되어 있던 똥차 앞대가리를 받아버린 거였다. 구급차에 레커차에 경찰차에 아주 난리가 났었다. 김씨로서는 뜻하지 않게도 별의별 차를 한자리에서 다 구경한 셈이었다.

외제차가 좋기는 좋은지 차와 운전자 모두 멀쩡했고, 똥차는 폐차 직전으로 변해서 이거 큰일났나보다 했는데, 다행히 똥차의 연인들은 경미한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경찰들이 속닥대는 말을 들으니, 연인들이 대낮에도 불구, 등받이를 다 누여놓고 산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뭘 하고 있던 덕분에 충격을 거의 먹지 않았다는 거였다.

김씨는 이윽고 까마귀계곡 쪽 드라이브의 종점으로 삼은 곳에 다다랐다. 오토바이를 도로에서 뚝 떨어지게 주차하고 안장을 들춰 비닐봉지를 꺼내든 뒤, 숲속으로 들어갔다. 헐벗은 참나무 밤나무 들이 다다귀다다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널따란 공간이 나타나고 곧 좁장한 폭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보였다. 여기가 김씨의 아지트였다. 김씨는 두 팔을 벌리며 한껏 기지개를 폈다.

늘 앉던 평상 같은 바위에 올라앉아 비닐봉지에서 소주 한병과 북어포를 꺼냈다. 김씨는 종이컵에 한잔을 쭉 들이켜고, 휴대폰을 열었다. 이 계곡 아무데서나 휴대폰이 잘 터지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데에서는 자글자글 끓고 뚝뚝 끊어지고 난리가 아닌데, 이 바위에서만큼은 명쾌한 통화가 가능했다.

“관리소장인가, 나 김사또여.”

“어이구, 사또 어르신……”

 

관리소장은 김씨의 장남보다도 두어살 아래니 한 서른셋인가 되었을 텐데, 첨에 만났을 땐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사년 전이던가 소꼴을 베러 가려고 김씨가 낫을 갈고 있는데 한 젊은것이 기척도 없이 쑥 들어왔다.

“안녕하세유, 사또 어르신. 예전 모습 그대로시네유. 절 받으시유.”

하고는 수돗가 젖은 땅바닥에 냅다 큰절을 하는 거였다.

“누구시기에……”

“저를 몰라보시겄쥬. 저는 저기 방죽께 살던 차성만씨 장남 차상갑이라고 하는구만유.”

“차성만이? 그게 뉘기여? 방죽께 살았다고? 가만있자, 아, 그 차흥부!”

이십여년 전에 보고 그후로는 못 본 얼굴 하나가 선연히 떠올랐다. 하, 그래 그 위인 성명이 차흥부가 아니라 차성만이었구만, 그 사람 참 대책 없었는데…… 탄광경기가 한참 좋을 때 안골에도 타성바지들이 심심치 않게 흘러들어왔다. 그중에 자식이 일곱이나 되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는 살림을 꾸려가는 품새가 엉망진창이고 남편은 이 광산을 한달 다니고 때려치우고, 서너달 푹 쉰 다음, 저 광산에 또 한달 보름을 겨우 다니다가 또 때려치우고, 또 한 두어달 푹 쉬는, 뭐 그런 위인이었다. 그러니 삼동네에 소문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게 당연했다. 딱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 심고 키워 박 타기 전의 흥부네 가족 같았다.

김씨가 이장을 여러차례 연임하고 있을 때였는데, 새마을운동 시대에 정말이지 눈엣가시 같은 집구석이었다. 근면과 자조는 하거나 말거나였지만, 협동조차 못해주니 이장 입장에서는 골치의 진원지였다.

탄광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을 개혁하려 했다든가, 임금인상을 비롯한 처우문제에 관련하여 유독 목소리가 컸다든가 해서 다른 광부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존경심을 유발케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위인은 너무 게으르고 일을 너무 못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세 해 만이든가 네 해 만이든가 안골을 떠났다.

“제가 하도 어릴 때라 사또 어르신께서는 지를 기억 못하는 게 당연한디, 지는 동네 어르신들 중이서도 사또 어르신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구유. 행동거지가 원체 똑바르고 거침없으셨잖유. 그 무엇이더냐, 경지정리할 때 있었잖유, 그때 포크레인들이 막 몰려왔는디, 사또 어르신이 뭘 해주기 전에는 땅을 건드릴 수가 없다고 포크레인 앞이 드러누웠었거든유, 뭘 안해주면 나를 뭉개고 가라구유. 이장이라 총대를 메시느라고 그랬겠지만서두 겁나게 멋있었구만유. 그때 제 눈에 사또 어르신이 마치 이순신 장군 같았슈. 그런디 그때 뭘 안해줘서 그러신 거래유?”

“응? 글쎄, 하도 오래전이라…… 그런디 내가 그런 적도 있었나? 경지정리할 때 시끄러웠던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포크레인한테 대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디……”

“아니라니께유, 대드셨다니께유. 제가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듀.”

“그려, 그렸다고 해두세. 근디 참말로 내가 뭣 때문에 그랬을거나.”

녀석은 슬그머니 샘가에 엉덩이를 붙이더니, 질문을 퍼부어댔다.

김씨는 이거 좀 고약하다 싶었지만 풋내기가 바쁜 사람 붙잡고 고릿적 얘기는 왜 묻냐고 타박하기도 그렇고 모른다고 딱 잡아떼기도 그렇고, 주섬주섬 대답하다보니 아주 안골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죽거나 타지로 떠난 다수의 사람들, 적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 이십년 변함없이 지킴이로 살고 있는 한 삼십여채의 사람들 등등 안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하는 대파노라마였다. 어느새 해가 졌고 그제야 녀석은 허리를 세웠다.

“사또 어르신, 저기 오서산에 까마귀계곡이라고 있잖유, 거기에 자연풍유림이 생겨유, 지가 거기 관리소장이 됐시유. 우리 아버지가유 죽을 때유 자식들한테 큰 봉사를 하나 하셨슈. 권력에 돈까지 있는 집 아들한테 치이셨거든유. 우리 칠남매 그 집 덕분에 다 취직했슈. 기중에서도 지는 제 아버지 친 바로 그 아들 밑에서 착실히 충성을 했는디, 그 사람이 해외로 이민을 갈 적에, 저한티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더라구유. 그 자연풍유림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어떻게 해주더라구유. 우리집이 안골 떠나 다음이 이사갔던 디가 거기 까마귀계곡이었슈. 엄마가 거기서 죽었쥬…… 언제 한번 놀러오시라구유. 지가 오서산 머루로 담근 술도 있으니께유.”

녀석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살다보니 별일이 참 많더라니, 서른살 차이를 넘어 그 녀석과 술동무 사이가 된 거였다. 관리사무소에서 녀석이 담가놓은 술을 마실 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은 데인지라 녀석을 여기로 불러낼 때가 더 많았다. 녀석은 별일이 없으면 만사 제쳐놓고 뛰어왔다.

 

“뭐 혀, 별일 없으면 내려와. 한잔해야지.”

“아유, 지금 지가 정신 읎어유. 웬 미친년이 데모를 하고 있슈.”

“데모? 이 산골짜기서 뭔 데모랴?”

“이년 이거 ‘개나소나데모파’인가뷰.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데모잖유. 우리가 불친절했다는규. 방이 읎어서 읎다구 한 게 불친절이냔 말유.”

“방이 왜 읎어?”

“지가 저번에 말한 그 사람들이 일가친척을 싹 끌고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단 말유. 스무 가구가 넘는다는디 방이 열다섯 개밖에 더 디유? 그 사람들네도 몇가족이 뭉쳐서 자야 할 판인디 개인사정을 봐주게 됐간유. 그런디 이게 누구는 되고 자기는 왜 안되냐고 생난리를 치더니 퍼질러앉아서는 ‘방 내놔라, 방 내놔라!’ 소리치고 있슈. 또 소리지르네. 저, 썅년을 그냥! 아이구, 열 받어! 허이구 정신 없으니께 일단 끊으께유.”

구경거리라면 놓치기 싫은 김씨는 잽싸게 또 한 컵을 마셨다. 바삐 시동 걸고 올라가보니, 관리소장과 스물댓살이나 먹었을까 한 처녀 하나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여기 방에서 자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니라고요. 권력과 개인의 문제라고요. 저는 분명히 예약을 해놓았다구요. 그런데 아저씨는 권력자들을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개인의 예약 같은 건 송두리째 무시했다구요. 아직도 이런 비민주적인 분이 있다니 분노가 바글바글 끓어요. 요새는 인터넷에다 글 한번 올리기만 하면 바로 아저씨네 관리사무소 문 닫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그래도 착해서 이렇게 개인적으로 투쟁하는 거라고요. 아니, 인터넷도 모르세요? 내가 네티즌 마녀사냥 얘기를 해도 눈 하나 깜짝을 안하시네요. 배 째라예요? 배 째라? 촌이라 그런가……”

“……아가씨가 예약한 거 맞어. 그런디 말여, 내가 파리 목숨이여. 아가씨가 그걸 알아줘야 뎌. 나두 아가씨한테 방 주고 싶어. 아닌 말로 저게 내 방이여? 그런디 왜 못 주냐? 오늘 그 사람들이 와. 떼거지로. 그 사람들한테 밉보이면 나 여기서 쫓겨나. 그러니께 아가씨가 나를 좀 봐줘. 여기서 시내 가까워. 버스로 한시간이면 가. 시내에서 조금만 더 가면 해수욕장도 있어. 거기서 자면 되잖여. 낮에는 등산하면서 산 보고, 잠은 바다 보다가 자면 되잖여. 왜 굳이 여기서 자야만 하겠다는겨?”

“몇번을 말해야 돼요? 이기적 권력 앞에 굴복할 수 없다니까요.”

관리소장과 처녀는 김씨는 안중에도 없이, 아마도 이미 몇차례 한 것 같은 설전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황씨가 작정했던 입원기간은 여섯달, 아홉달, 일년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태째 들어서는 더이상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인가 정답이 나와 있었던 거다.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가르치면서, 모든 가족이 적당히 먹고 적당히 입을 유일한 방법은 계속 입원해 있는 거라는. 그 정답은 황씨만 깨달은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스스로 터득한 바였다.

입원한 지 삼년째, 의사가 “두달 후면 퇴원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간 참 고생 많이 하셨어요”라고 진단했을 때, 그들 가족은 청천벽력을 맞은 듯했다. 그들 가족이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자, 병실 사람들은 얼마나 병원생활이 지긋지긋했으면 저토록 기뻐하겠느냐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도 더욱 병원생활을 열심히 해서 하루빨리 퇴원 근접 통고를 받자 각오까지 다지는 거였다.

퇴원하면 퇴직금이 나오겠지만, 황씨네 가계는 이미 그 퇴직금으로 반년도 지탱 못할 규모가 되어 있었다. 생전 돈 벌어본 적 없는 아내가 생활비 주는 데가 없으니 식당 설거지하여 가계를 꾸려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래, 너도 벌어야지. 이런 남녀평등 세상에 왜 나만 돈 버냔 말이다, 이런 심보에서였다.

하지만 대학교 다니는 아들놈이 학자금 나올 데가 없으니 휴학하고 일년치 등록금이 모일 때까지 노가다를 뛰겠다고 결연히 선언한 뒤 아버지는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쉬시라며 다독거려주는 것에는, 딸 역시 대학 가기는 틀렸고 미용기술이나 배워 일찌감치 사회진출하여 아비를 봉양하겠다는 데에는, 머리꼭지가 핑핑 도는 듯했다. 자녀들의 감언이설이 황씨에겐 달기는 고사하고 소태처럼 쓰디쓴, 무지막지한 협박으로 들렸던 거다.

그러나 황씨는 ‘이놈의 새끼들이 쎄트로 돌았나. 공부를 작파하겠다니. 네 아버지가 죽었냐? 네 아버지 이제 다 나아서 말짱해. 네 아버지 돈 많이 벌어서 네놈들 대학원까지 보내줄 테니 개소리하지 말고 공부들이나 열심히 해. 그렇게 돈 벌고 싶으면 공부 잘해서 장학금이나 한번 받아오란 말여’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바깥세계가 더욱 무서워져 감히 나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판에, 무슨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자식들 눈에도 그리 뵈니까, 저런 호로자식 같은 소리들을 지껄여대는 게다.

 

김씨는 다시 황씨네 집에 가고 말았다. 굳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두 번 다시 못 볼 사람에게 하듯 유난을 떨던 황씨의 눈망울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황씨의 아내 음현댁이 ‘블루스타’와 삼겹살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 페트병 소주, 김치 보시기 등을 가지고 나왔다.

“아니, 이게 뭐여? 나 혼자 먹으라고?”

“왜 혼자여유. 제 입은 입이 아니래유?”

음현댁이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려놓으며 짐짓 뾰족하게 말했다. 날마다 울고불고 하던 음현댁의 얼굴은 요새 아주 편안해 보였다.

“내가 뭐는 먹을 수 있간. 나는 신경쓰지 말고 많이 먹어. 난 말여, 자네 때문에 참 맘이 편혀. 자네가 책임지고 내 초상은 낭만적으로 치러줄 것 같아서 아무 걱정이 없단 말여.”

황씨가 소주를 따라주며 한다는 소리였다.

“에이, 술 한잔도 못 마시는 인간 앞에서 술 마시려니께 영 개갈 안나는구먼. 이렇게 작은 잔으로는 간에 기별이 안 간단 말여. 종이컵 같은 거 없어? 에이, 찾으려면 제수씨만 부산스러우니께, 그냥 또 한잔 따라봐.”

“제가 한잔 따라드릴게유. 하여간 고마워유. 우리 양반을 이렇게까장 챙겨주시고……”

“챙기긴 뭘 챙겼다구 그류. 난 드라이브 댕기는 것뿐이라니께유.”

“고기 타유. 고기두 좀 드슈.”

“지금 벌써 다섯 점째유. 미어터지게 먹고 있단 말유. 근데 제수씨는 왜 한점두 않는규.”

“저도 틈틈이 먹구 있슈.”

“아니, 언제 먹었다고 그류. 좀 드시라니께. 혼자 삼겹살 먹는 게 얼마나 거시기한 줄 알어유?”

대화가 끊기고,김씨는 이런 고요가 정말 싫어지는데, 황씨가 문득 술자랑 하는 소리를 했다.

“자네가 아무리 술꾼이라 해도, 나처럼 많이 마셔보지는 않았을걸.”

“옛날 얘기 하는 거여? 무슨 소리여, 자네는 나보다 많이 마신 적이 한번도 없어. 술로는 나한테 상대가 안됐지……”

“병원에서 말이야. 몸이 좋아질 때마다 실컷 마셨지.”

 

황씨는 몸에 매우 안 좋다고 절대로 마시면 안된다고 수백 번도 더 주의받았던 그 투명한 것을 화장실에서, 옥상에서, 하여튼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수시로 마셨다. 또 태우지 않던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웠고 몸에 안 좋다는 음식도 몰래 사먹었다. 심지어는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허름한 여인숙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아내의 벌거숭이 몸을 부둥켜안고, 한 십여년 전에 끊었던 거시기를, 잘되지도 않는 거시기를, 있는 힘을 다해, 철철 울어가면서 치르기도 했다.

그러기를 두달, 의사가 힐난했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는데요, 아저씨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요, 그러다가 제 명에 못 죽어요. 삼십년 살 것 십년도 못 사신다구요.”

그날도 황씨네는 병실아, 눈물에 잠겨도 좋다, 하고 울어댔다. 병실 사람들은 저 가족의 사기극에 분노하는 대신 억누를 수 없는 연민에 사무쳤다.

황씨의 사기극은 귀엽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제 몸에 칼을 내리치기도 했고, 옥상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농약을 아주 소량 타서 마시기도 했고, 의사와 짜고서 무의미한 수술을 받기도 했고, 그렇게 십오년이 흘러간 거였다.

한달 사이로 바람 피우는 여자가 바뀌었던 난봉꾼 조씨, 탄광대표로 씨름판을 주름잡았던 뒤집기 방씨, 시인이 될 거라면서 해괴한 소리를 달고 다니던 중얼이 이씨, 일곱번째 딸을 낳다가 아내를 잃은 딸딸이 아빠 차씨, 하도 거시기라는 말을 남발해서 성씨마저 바뀐 거시기 거씨……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을 무렵 그들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했던 거였다. 할 바를 다했다는 듯이.

바야흐로 황씨 차례인 거였다.

김씨는 셀 수 없이 문병을 다녔지만, 그 탄광 동무들 문병 때가 가장 기분이 더러웠다. 어떻게 하다보니 꼭 죽을 무렵에야 찾아가게 되는 거였다. 동무들은 언제나 그 병원에 있으니까, 아무 때나 한번 가봐야지,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미망인이 될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는 거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들 이름을 불러댄다, 바쁘시더라도 꼭 와달라……

그들이 비록 김씨보다 나이가 들고 입원할 때 병세가 깊었던 이도 많았지만, 병원에서 살았는데도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병원으로 가지 않은 동무들 중에도 유명을 달리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으로 간 동무들의 죽음이 훨씬 더 처량하게 여겨지는 거였다.

 

“나도 한잔 줘.”

김씨가 막잔이다 하고 마신 뒤 잔을 내려놓는데, 황씨가 그 잔을 잡아채더니 문득 청했다. 하도 난데없는 말인지라 어쩌지를 못하고 있자, 황씨는 잔을 내밀며 말을 더했다.

“삼겹살도 꼭 한번 먹어보고 싶지만 부대껴서 잠이 안 올 것 같고, 허지만 소주 한잔은 꼭 마셔보고 싶어. 낭만적으로다.”

김씨는 음현댁을 쳐다보았다. 음현댁이 한숨소리를 냈다.

“줘유, 그거 안 먹는다고 사는 것도 아니잖유.”

김씨는 저도 모르게 페트 소주병을 기울였다. 반잔만 따르려고 했는데, 삽시간에 잔이 넘치고 말았다.

“우리 탄 깰 때 말여, 삼겹살에 소주, 징하게 먹어댔어 잉? 허허허!”

황씨는 짐짓 호탕한 척 웃었지만, 분명 떨고 있었다. 농약 사발을 든 사람처럼. 음현댁도 태연한 척하지만 눈동자는 초긴장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소주에다 농약이라도 탄 건 아닐까? 아니지 아니지, 그럼 지금까지 퍼마신 사람이 이렇게 말짱할 리가 없지. 이런 생각을 하는 김씨의 입술도 바짝 타는 듯했다.

이윽고 황씨는 소주를 마셨고,“카아!” 일부러 큰 소리를 내고서는, 잔을 깨져라 내려놓았다. 김씨마저 신경써주지 않는 사이에 삼겹살이 속절없이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한 일분? 삼분? 오분?

황씨가 싱긋 웃은 뒤 입을 활짝 열었다.

“음, 좋다! ……이 상태라면 한병도 마시겠는걸. 한잔 더 줘!”

김씨는 잔을 홱 뺏어버렸다.

“그만 마셔. 나 마실 술 없어.”

“술 몇병 더 있어. 걱정 마.”

“그게 아니고, 겁나서 못 쳐다보겠단 말여. 씨, 오래 살란 말여. 하루라도 더! 그래야 내가 드라이브 다닐 명분이 있잖어. 사람에겐 매사에 명분이 있어야 한단 말여. 자네도 없는 까마귀계곡이 무슨 의미가 있어.”

“한잔만 더 달라니까.”

“그만두지 못해! 그만 마시라니까. 내가 마실 거라니까. 나는 늘 술이 부족하다니까……”

“이런 제길헐. 예나 제나 술욕심은.”

두 사람의 실랑이를 말리는 듯 음현댁이 안타까워 미치겠다는 투로 말했다.

“워칙히 해유, 고기가 다 타버렸슈……”

김씨는 황씨가 또 술을 달라고 할까봐, 급하게 나머지를 다 마셔버렸다. 몹시 기분 상한 얼굴로 타버린 삼겹살만 노려보고 있던 황씨가 별안간 생각난 게 있는가 보았다.

“참, 자네 말여? 내 주제가 못 들어봤지?”

황씨가 먼저 말해준 게 고마워 김씨도 얼른 반색을 했다.

“왜 못 들어봐. 자네 노래는 유명했지. 탄광서 자네가 노래를 최고로 잘했잖여? 작부년들이 죄다 자네 옆에만 앉았잖어. 근디 자네 주제가가 뭐였더라, 그러니까, 그게 무슨 노래였더라……”

“아니 아니, 탄광서 말고. 내가 병원에서 죽 누워 있을 때 나와 함께한 노래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딱 내 노래였다니께. 오죽하면 내가 개사까지 했다니께. 거, 노가바라는 거 있잖여. 딱 내 주제가더라니께. 한번 들어볼 텨? 내가 병원서는 곧잘 불렀는디……”

“그런 좋은 게 있으면 진작 들려주지.”

“허어, 노래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거든. 술 한잔 걸쳐야 나오는 게 노래지. 자, 혀볼 테니께 들어봐.”

“좋아 좋아, 혀봐! 이십년 만에 탄광 명가수 황낭만이 노래를 들어보자, 박수!”

김씨는 젊은애들 말마따나 ‘오바하듯’ 마구 손뼉을 쳤다. 황씨는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고 일어섰다. 폼을 잡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광부식 술집에 앉아,

성주산 소오주 한잔에다, 삼겹살 타는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스커트에, 나름대로 가슴 푸짐한 아줌마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삼겹살 타는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인생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병실에서, 그야말로 깊디깊은 갱도에서,

찾아줄 사람은 없을지라도, 거리의 웃는 소릴 들어보렴.

조강지처 내 아내는 어디에서 나처럼 웃고 있을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거리의 웃는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인생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노래를 마친 황씨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확인하려 들었다.

“어뗘? 예전 실력 어디 안 갔지?”

칭찬을 잘 못하는 김씨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최백호씨가 알면 팔팔 뛰겄어. 노래 베려놨다고. 글고 말여, 이 좋은 봄날 오후에 꼭 그런 우중충한 노래를 불러야 되겄어? 신경질나게. 신경질난단 말여.”

“워뗘! 내 주제가라니께.”

 

취중의 김씨 마음처럼,오토바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출렁댔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러자 귀신들의 소리만 소요하던 자신의 내면에, 현존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소근거리 시작했다. 아내, 장남, 차남, 딸, 손자, 일흔이 넘은, 그래서 집안 최고 수명을 갱신한 다섯째 형님, 다섯째 형님보다 한살 어린 서울 큰누님, 그리고 또, ‘내 초상 치러줘야지’라고 외쳐대는 낭만이 황씨……

그래, 김사또 음주운전 실력이 어디 가나. 그래, 앞으로 술 먹고 운전하지 말아야지, 애들한테는 절대로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고 해놓고선, 내가 이러면 안되지, 애들이 배운다니께, 그래, 그래, 우리 손자 결혼해서 애날 때까지는 살아야지.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지, 낭만적으로다가, 낭만적으로다가.

근데, 황가놈 하는 짓 보니께 정말 살날이 얼마 안 남았나벼.

육실할, 육실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