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화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현묘한 한국영화

 

 

성석제 成碩濟

소설가. ssjjtree@hanmail.net

 

 

작년 겨울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국영화는 한국의 척도이고 한국의 축소판이며 한국 그 자체다.”

이 말을 내게 한 사람은 198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최근 귀국한 사십대 초반의 남자다.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그는 미국에서 오히려 한국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관심있게 바라보게 되었고 당연히 한국에서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한국’은 한마디로 “얇고 가늘고 좁다.” 특히 문화의 ‘한국’은 “투명할 정도로 두께가 얇아서 밖에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이고 저변은 좁아터졌으며 신경줄은 가늘기 그지없어 외부의 충격에 약하고 누가 한마디만 해도 흔들리기 쉬운 구조”이다.

근래에 문화 분야에서 특히 한국영화가 번영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의 관심도 자연히 영화에 높아졌던 것 같다. 그의 관점으로 한국영화의 속을 들여다보면 우선 감독, 씨나리오 작가, 스태프, 배우의 층이 아주 얇다. 따라서 각 분야에서 독과점이 일어나기 쉽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영화가 된다. 주 관객의 연령층 또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아주 좁다. 이렇게 되면 영화를 꾸준히 보아줄 만한 경제적·시간적·문화적인 여유가 있는 중장년 계층의 다양한, 때로 깊이있는 요구에 대응하는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시시로 입맛이 바뀌고 유행에 민감한 관객에 영합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필연코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기회가 줄어든다.

제대로 된 영화라, 이건 또 무엇인가. 대안적 의미에서의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소갈머리없는 상업영화라도 제대로 만들고 제대로 평가받고 제대로 관객이 드는 영화라면 제대로 된 영화다.

“작년에 우리 영화가 해외의 무슨무슨 영화제에서 감독상, 작품상, 기타 등등을 받아와서 수십년래 쌓인 한을 푼 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정도면 제대로 된 영화라고 자타가 공인한 게 아니겠느냐.” 내가 무심히 말하자 그는 나를 딱한 듯 바라보았다.

“오로지 상을 타기 위해서(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소위 한국적 색채와 풍경을 강조하고 신비적이며 동양적인 대사를 구사하여) 만든 영화가 어떻게 제대로 된 영화겠느냐”고 그는 대꾸했다. 하긴 그중 어떤 영화의 씨나리오 작가는 나도 알 만한 사람으로 텔레비전에서 무슨 강사로 한창 주가를 올리더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벌써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의 영화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작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한국에서나 통할 아마추어가 영화를 ‘해준다’는 시혜적인 독선, 자의식 과잉에 사로잡혀 속류 예술지상주의의 ‘단말마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지었다. 운없게 그 영화를 나도 보았던 고로 “그 사람은 옛적에 로마의 병정이 그랬듯 자신이 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있다. 그런 아마추어가 우리 사회에 몇명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변명해주어야 했다. 나 자신이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역겨웠는지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 못하고.

그에 따르면 한국영화에서 일정 수의 관객–15만명인가 30만명인가라고 했는데 잊었다–을 끌고 올 수 있는 흥행배우는 남녀 각각 대여섯 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 배우를 잡기 위해서는 배우가 소속된 기획사나 배우의 매니저를 만나야 하는데 그게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듯 쉽지가 않다. 일단 매니저를 만났다고 쳐도 그 매니저가 ‘책(씨나리오)’을 배우에게 전달하게 하는 게 또 힘들다. 그러므로 대부분 매니저의 손에서 판단이 끝난다고 보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니저들의 관심은 그 ‘책’에 ‘우리 동생(형)’이 얼마나 자주, 멋있게, 인상적으로 나오느냐에만 있을 뿐이지 작품성이니 완성도니 하는 말은 ‘개나발’이다. 그나마 워낙 많은 ‘책’이 들어오다보니 읽고 파악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므로 누가 옆에서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줘야 한다. (그는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여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이 되는’ 배우를 끌어오면 모든 게 수월해진다. 그 배우에 어울리는, 배우가 좋아하는 조연급 배우는 패키지로 묶여서 오니 더이상 캐스팅에 신경쓸 것도 없다, 고맙게도. 물론 그들의 개런티도 밀고 당길 것 없고 연기하는 대로 시원하게 찍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여 한국영화는 이렇게 진행된다. 씨나리오가 나오기까지 감독은 ‘영화는 씨나리오’라고 한다. 씨나리오가 나오고 캐스팅이 시작되면 당연히 감독의 입에서는 ‘영화는 캐스팅이다’ 하는 말이 하루에 열 번은 나온다. 인기배우가 캐스팅이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캐스팅된 주연배우의 입맛에 따라 씨나리오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캐스팅이 마무리되면 ‘영화는 계약’이 된다. 계약이 끝나면 ‘영화는 감독이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감독의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제작사, 투자자, 어느 때는 주연배우나 그 매니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독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물론 감독이 바뀌는 것 자체가 영화다. 영화는 헌팅이다. 영화는 촬영이다. 영화는 조명이고 음향이다. 영화는 녹음, 편집이며 음악이고 특수효과다. 영화는 점심 도시락, 여관의 위생상태, 날씨다. 마케팅도 영화고 기획도 영화다. 홍보를 빼고 영화를 말할 수는 없다. 결정적인 건 또 있다. 요새 영화 관계자들의 입에서 가장 자주 흘러나오는 말 가운데 하나인 ‘펀딩’이다. 돈, 돈 그러모으기, 투자, 자본, 운영자금, 식대, 우리가 사는 이유, 기타 등등을 합쳐놓은 의미인 펀딩, 이게 없으면 정말 영화는 없다. 이 부분은 너무나 복잡, 현묘하고 한국은 물론 한민족의 핵심이 농축되어 있는 핵물질 같은 것이어서 여기서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산 넘고 물 넘고 바다 건너서 정말 영화를 완성하는 일만 남겨놓았다 싶을 때, 그때 그대의 핏발선 눈에 긴 줄이 하나 보일 것이다. 그건 그런저런 단계를 다 거쳐온 사람들이 만든 줄이다. 그 줄 맨 앞에 있는 사람도 영화가 언제 될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제대로 된 영화라면.”

그가 알고 있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실감나고도 재미있고 또 서글펐다.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제목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씨네마 꼬레’, 부제는 ‘그래도 좋아, 나 좀 끼워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