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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87년 이후의 민족문학론

 

 

김명환 金明煥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영문학. 주요 저서로 『지구화시대의 영문학』(공저) 등이 있다. kmh@snu.ac.kr

 

 

1. 들어가는 말

 

1987년 이후의 우리 사회를 일러 ‘87년체제’라고 할 때 그것은 안정적인 사회체제를 뜻한다기보다는 여러 면에서 과도적인 체제를 가리킬 것이다.5·16 군사쿠데타 이후 지속된 개발독재의 상부구조가 붕괴된 점 하나만으로도 87년체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나아진 체제이지만, 한반도의 앞날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져 순조로운 실행에 들어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은 87년체제의 과도성의 증거인 동시에 바로 87년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진 역사적 진전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87년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민족문학운동은 자신의 목표를 괄목할 만큼 성취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약을 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수세에 처하기도 했는데, 이 역설적인 사실 자체가 87년체제의 독특함의 일부를 이룬다고 본다.

지난 8월 19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라는 제하의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쎄미나를 열었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꾀한 그 자리의 성과에 대해 실무를 담당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우리 사회현실과 문학의 정세, 민족문학의 위상에 대해 앞으로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낼 중요한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행사의 주요 발제자였던 신승엽, 이병훈 등의 발표 내용을 실마리로 삼아 오늘 우리 문학의 방향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2.민족문학 개념의 재검토

 

신승엽과 이병훈의 발제에서 공통점은 과거의 민족문학 개념이 우리 시대를 이끌 문학이념으로서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문학과 결합”하는 일이 “더 근원적이고 더 근본적인 사유의 개진을 허용하지 않을”수 있다는 신승엽의 발언이나,1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임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이병훈의 결론2 모두 구체적인 실천과제 중심으로 제기되는 민족문학을 거부한 셈이다. 당일 토론에 참여한 백낙청(白樂晴) 역시 ‘과거 민족문학이 구호나 진영 개념으로서 지녔던 효용은 사실상 끝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동의를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7년 말의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유지되던 ‘민족민주운동’의 대오가 1992년 경에 이르러 무너지면서 ‘민족문학진영’에 속하던 이들 사이에서도 깃발을 내리자는 주장이 나온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이 시기 이후로 간판을 선명하게 내걸고 편을 가르는, 한때 불가피했던 실천방식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 변화는 민족문학에 숨겨진 본질적 한계가 노출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문학이 설정한 목표가 성취됨으로써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는 점, 즉 민족문학 개념의 역사적 성격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전선적 운동으로서 민족민주운동이 겨냥했던 목표 중의 하나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리를 잡아갔으며, 기존의 민중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운동이 뿌리를 내리거나 새로이 등장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지형에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흔히 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민족문학운동에 미친 여파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이 가져온 이념적 충격에 겸하여 자기 목표를 부분적으로 달성하는 과정―비록 그 과정 자체도 민중에게 온전한 주도권이 있지 않았지만―에 따라야 할 자기갱신, 즉 애초부터 역사적 개념인 민족문학의 내용을 역사적 변화에 따라 충실하게 채우는 문제가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문학이 더 높은 차원의 개념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도 상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10여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진 민족문학 논의에서 백낙청의 경우 여러차례 논쟁을 거치기도 하면서 자신의 분단체제론을 심화시켜나갔지만 민족문학론 자체에 대한 논의는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음세대의 젊은 비평가들이 민족문학론의 발전을 이끌지 못한 것은 뼈아프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문학이 목표했던 분단극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 민족문학이 한물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론을 반복하는 데서 그친 감이 있다. 물론 민족문학의 논리와 성과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매도하는 데 맞서 싸우다보니 불가피했던 면도 없지 않지만, 간판 혹은 진영 개념으로서 민족문학이 노정하게 된 한계가 본연의 문학다운 문학에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을 직시하고 돌파해내는 새로움을 얻지 못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병훈이 민족문학 나름의 유효성을 인정하되 문학의 근본적인 강령이라고 할 만한 것은 따로 있다는 절충적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한 데 반해, 신승엽은 민족문학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는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민족문학의 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분단은 아직 우리 사회의 변화에 있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중요한 변수이며, 또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굉장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변화나 변동들이 저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의 변화방향과 크게 어긋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통일이 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진전된다거나 혹은 대외적인 자주화가 더 진전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며, 나아가 이미 민주화와 자주화가 ‘더’ 진전되는 것이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요.(11면)

 

즉 민족문학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문학이 운동의 구호로서는 물론 어떤 차원의 개념으로서도 효력을 상실했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신승엽이 과거에 민족문학의 지지자였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여느 비판자의 것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컨대 북핵위기가 타결된 상황이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 분위기가 좀더 확고했다면 이라크 파병 같은 비자주적이고 위험한 정치적 결정이 쉽게 내려졌을 리 만무하지 않을까. 또 실직이 곧 굶주림을 뜻하는 열악한 사회보장체제의 개선을 막는 과도한 국방비 지출, 젊은이들의 자기실현과 사회발전을 방해하는 징병제도(북한의 경우는 더 심각할 것이다) 등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 진전을 위해 거론할 수 있는 사항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신승엽의 논리가 묘하게도 백낙청의 입장과 맞닿는 점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민족문학과 관련하여 백낙청이 1993년에 처음 내놓은 제안, 즉 국민문학을 겸하는 민족문학을 겨냥하자는 발상과 신승엽의 관점은 소통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가 비판하는 백낙청의 발언을 먼저 살펴보자.

 

한가지 덧붙일 점은, 우리는 분단된 한쪽만의 국민문학이 아닌 민족 전체의 민족문학이기를 지향하는 자세를 고수하면서도, 지금 이곳의 남한사회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고 남한사회의 상대적 독자성에 부응한다는 의미에서의 ‘남한의 국민문학’도 겸하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벌일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하나의 곡예라면 곡예지만, 사실은 개인의 문학이 민족의 문학이고 세계의 문학이며 마땅히 그 모두가 되어야 하는 문학 본연의 됨됨이를 충실히 따르는 길일 뿐이다.3

 

이 발언과 이 발언을 인용한 임규찬(林奎燦)의 글을 묶어 신승엽은 “아무런 보충설명 없이 그야말로 선언적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4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 1998년 『창작과비평』 100호 기념 학술토론회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 전환’에서 발표된 임규찬의 논문과 토론에서의 관련자 발언을 제외할 때,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지금까지 별로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승엽의 차가운 반응을 흠잡기 쉽지 않다.

그러나 구호나 진영 개념으로서 민족문학의 쓸모가 없어질 만큼 우리 현실이 변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분단국 한쪽에 국한되는 ‘국민문학’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을 유지하되 남한사회의 상대적 독자성에 충실한 국민문학적 차원을 못지않게 중시한다는 발상은, ‘통일’의 획기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신승엽의 논리와 아예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모든 문제를 분단체제로 수렴시킨다는 신승엽의 분단체제론 비판은 우리의 민족문학운동이 국민문학을 겸하는 차원이 결여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은 것이다. 그럴 때 가깝게는 민족문학이 분단문제를 소재로 다뤄야 하는 것으로 번번이 오해를 받는 일도 좀더 쉽게 떨쳐낼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분단문제를 의식하지 않고도 분단체제의 실상을 훌륭히 파고드는 작가적 창조력―현재 활동하는 작가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작가들일수록 점점 이런 성격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경향이 많아질 것이다―을 북돋우는 일도 한층 더 탄탄한 근거를 얻을 수 있다. 요컨대, 통일이 남한의 민주화와 자주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신승엽의 주장은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배후에 깔린 감수성만큼은 분단체제 안에서 남한사회가 가지게 된 특성과 비중을 반영하면서 민족문학의 국민문학적 차원에 대한 탐구를 촉구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5

 

 

3.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정작 신승엽 자신은 남한의 국민문학을 겸하는 민족문학에 대한 제안이 7,80년대의 제3세계문학론을 대신하는 “세계문학―민족(국민)문학 연관론”이라고 해석하면서 거리를 둔 바 있고,6 이번 학술쎄미나의 발제문에서는 백낙청과 구별되는 자신의 세계문학관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서 전개되듯이, 문화발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나지 않을까”(6면) 하면서,“이제는 민족의 일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곧 ‘민족’의 매개 없이도 세계시민으로서 사유해야 할 필요가 대두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문학의 가능성이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12~13면)된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이전에 “오늘의 이 땅의 민중들이 민족의 범주를 통한 주체화로써 자신들의 삶을 위요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단계는 지나간 것이 아닐까”7라고 한 발언과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당일의 또다른 발제자 김정환(金正煥) 시인의 “‘민족적’이 아닌 ‘현대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반면, ‘현대적’이 아닌 ‘민족적’은 있을 수 없다”8는 주장과도 크게 다른 것이다.

신승엽은 백낙청이 괴테와 맑스를 원용하여 규정하는 세계문학이 각국의 지성인(문인)들이 “개인적인 접촉뿐 아니라 서로의 작품들을 읽고 중요한 정기간행물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유대의 그물망을 만드는 것”9이라는 점, 특히 세계문학의 차원을 이미 성취했다고 오인하기 쉬운 전지구적인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드러나는 사유와 양식의 획일성에 맞서서 민족문학(국민문학)의 역할이 있다고 보는 점을 경시한다. 문학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언어라는 잘 알려진 장벽과 번역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요구되는 해당지역에 고유한 특정한 지식들의 양은 소비문화가 뚫고 들어오기가 심히 거북한 지형”10을 이룬다는 점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승엽은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는 전지구적 상업문화의 공세에 대한 경계심이 뜻밖에도 별로 없으며, 지구화 물결에 편승함으로써 문학다운 문학을 달성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함몰될 염려가 많다.

그렇다면 여기서 전지구적 디지털 소비문화에 맞서서 본연의 문학을 지킬 민족(국민)문학들의 유대가 과연 있느냐는 반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실제 우리 문학계가 ‘세계문학’의 개념에 맞는 네트워크를 내실있게 건설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활동한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은 좋은 사례가 된다. 이 모임은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베트남 작가를 국내 문학행사에 초청하기도 했고, 또 모임의 활동성과라고 할 우수한 작품도 없지 않다.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2003)에 실린 「존재의 형식」이 대표적인 예일 터인데, 같은 작가의 『십년간』(1995), 『당신의 왼편』(2000)이 진보진영의 상투화된 상상력에 의해 적잖게 훼손된 작품이었음을 기억한다면 민족(국민)문학들의 교류와 유대의 중요성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문학의 정세를 살펴볼 때 참다운 세계문학을 향한 교류에는 이 못지않게 중요한 차원이 있다.90년대 이후 우리 문학에 외국문학(문화)의 영향력이나 흔적이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외의 문학작품이나 문화생산물이 직접적으로 우리 문학에 수용, 활용되면서 가히 상호텍스트성의 홍수라 할 경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는 과거처럼 달성해야 할 미래의 전범으로서 서구문학을 추종하고 그 영향을 받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며, 신승엽도 이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기에 위와 같은 주장을 내놓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외국 문학작품 자체에 대한 철저한 문학적 평가와 그 영향의 예술적 결과에 대한 감식작업이 없다면 문학이 일회성의 소비상품으로 떨어지고 말 것은 뻔한 이치이다.90년대 작가들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용하는 현란한 문학적 주제와 장치들의 연원을 추적하고 평가하는 노력이 때로 필수적인 것이다.

또 작년에 북한 작가 홍석중(洪錫中)이 『황진이』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획기적 사건을 비롯하여 북한문학과 우리 문학의 교류와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남북간 작가와 작품의 교류가 얼마나 내실있게 발전할지는 전망하기 어렵고, 특히 남한 독자에게 오늘의 북한문학이 대중성을 지니기는 당분간 무망하지만,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분야의 교류를 통한 긍정적 성취는 문학운동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황진이』처럼 뛰어난 작품에 대해 남한의 민족문학적 성과에 입각한 비판도 긴요하다.11 또 필자의 역량 한계로 말미암아 이 글의 논의가 소설에 국한되고 있지만, 시의 문제를 떠올린다면 참다운 세계문학을 향한 민족(국민)문학의 교섭과 연대는 더더욱 실감나는 바 있다. 쉽게 전자영상매체로 코드변환되어 소비될 수 없으며 특정한 언어에 결정적으로 구속되는 시의 속성을 생각할 때, 수준높은 문학인과 독자의 상호교통망이 없고서는 여러 언어로 씌어진 시작품들이 인류 공통의 실천적 과제를 위한 고뇌와 토론에 기여할 길은 없는 것이다. 우리 시든 외국시든 시의 독자층이 지극히 엷어진 오늘의 엄연한 실정을 직시하면서도 현대사회에서 시가 어떻게 문학의 보루를 지킬 터전으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4. 2000년대 중반 우리 문학의 형세

 

이제까지 논의한 문제의식 위에서 오늘 우리 문학의 형세를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소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몇가지 중요한 전환점을 거쳤다. 첫째는 국외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대내적으로는 ‘민민운동’이 해체되던 1992년경이며, 둘째는 IMF 구제금융이 이루어진 1997년이고, 셋째는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열매 맺은 2000년이다.1997년의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발전모델의 몰락을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실감했다는 점에서 과도성이 두드러지는 87년체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2000년의 6·15 공동선언이 87년체제의 향배와 관련하여 중차대한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었음은 새삼 더 설명할 것도 없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만났으며 거기서 도출된 공동선언은 대중의 높아진 민주역량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의 7·4 남북공동성명이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구체적 힘을 지니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의 부시행정부 등장과 9·11테러에 뒤이은 세계정세의 급변,2차 북핵위기의 발생 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가 쉽게 과거로 회귀하지 않은 배경에는 다름아닌 2000년 6월의 막중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2000년대의 문학은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계기들에 대해 문학 고유의 방식으로 응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우리는 박완서나 황석영 같은 주요 작가의 건재를 먼저 언급해야 마땅하다. 이 두 소설가는 이미 수십년에 걸친 창작을 통해서 폭넓은 대중적 인기와 비평적 인정을 누려왔으며, 번역을 통해 해외문단이나 동포사회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의 문학은 고은, 신경림 등 주요 시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민족문학운동의 성과인 동시에 한반도 남쪽의 국민문학적 자산이다.

황석영(黃晳暎)이 오랜 기간에 걸친 국외망명과 투옥 끝에 『오래된 정원』(2000)으로 작단에 복귀한 것은 상징적이다. 특히 『손님』(2001)은 2000년의 의미에 직접적으로 조응하는 뛰어난 문학적 성과이다. 등장하는 유령들의 모습이 종종 실감나지 않는 등 불만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은 분단체제의 시각에서 동족상잔을 그려낸 걸작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박완서(朴婉緖) 역시 단편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2000)과 『그 남자네 집』(2004) 등으로 우리 문학에 끊임없이 활력을 불어넣어왔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수록된 「환각의 나비」는 치매 노인이 뜻밖에도 이룩하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삶의 기적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일상생활의 실상이 과연 어떠한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상상력의 승리이며, 「해산바가지」 이래 이어져온 박완서 문학 고유의 성취에 속한다. 또 『그 남자네 집』은 처녀작 『나목』에서 시작된 우리 현대사에 대한 끈질긴 성찰의 열매인 것이다.

그전의 문학과 연속성을 찾기 힘든 장정일, 배수아, 김영하, 백민석 등의 이른바 ‘신세대적’ 경향이 90년대 문학의 한 축을 차지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독서계의 화제가 되기도 한 박민규(朴玟奎)는 이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좀더 전통적인 90년대 작가들과도 이어지는 개성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이하 『팬클럽』)과 단편집 『카스테라』(2005)의 주된 소재가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으로 상징되는 대중의 고통과 좌절이라는 점에서 박민규 문학은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하나의 응전방식이며, 아마도 97년 이후 우리 사회의 감수성을 가장 예리하게 대변하지 않나 생각된다. 젊은 세대의 발랄한 언어감각과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린 이래 생겨난 새로운 언어와 표현형식을 바탕으로, 겉보기에 경박하지만 실상은 잘 계산된 표현들을 구사하는 독특한 문체는 객관적 거리를 잃지 않는 냉철함과 짝지어짐으로써 신선한 문학적 성공을 뒷받침한다. 그의 작품은 지난 연대의 우리 문학을 괴롭혔던 삶의 방향상실과 소외에 대한 탐닉, 아니면 관념과 도식의 뒤엉킴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박민규 문학의 강점은 이처럼 좌절을 겪는 젊은이들을 짐짓 능청스럽고 경쾌한 필치로 그려내는 가운데 생명력에 찬 저항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는 사실이다.12 이는 『팬클럽』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인공이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이혼한 아내와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하여 새 생명의 탄생을 앞두는 것으로 끝맺는 마무리는 보기 드물게 따뜻하고 희망에 차 있다. 이렇게 희귀한 결말이 가능한 것은 초창기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둘러싼 독특한 경험 때문이다. 주인공과 친구 조성훈에게 ‘삼미’는 패배의식과 열등감의 지울 길 없는 낙인이었으나 (조성훈이 다 자신이 지어낸 얘기라고 전제하지만) 획기적인 사고전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치와 삶의 양식에 대한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팬클럽』에는 1992년과 2000년이 끼여들지 못할 뿐 아니라 1980년 광주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고,6월항쟁을 제외하면 80년대 민중운동의 피어린 투쟁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존의 민족문학적 소재와 상상력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령, 작품 전반부의 프로야구 창설에 관한 긴 서술을 살펴보면 5공정권의 ‘3S정책’의 하나로 쉽게 정리할 수도 있을 사건을 자상하게 서술하면서 작중인물들의 기대와 흥분을 주된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 철저히 내면화된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체제를 뜻하는 ‘프로의 세계’를 도입하기 위한 음모로 프로야구의 도입을 해석하는 일견 황당한 발상을 통해, ‘1997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한층 폭넓은 맥락에서 조명함으로써 한반도 남쪽 대중의 현실적 감수성과 밀착하면서도 근본적인 현실비판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공선옥(孔善玉)의 최근 연작소설집 『유랑가족』(2005)은 주변화된 빈곤대중의 절박한 실상을 숨김없이 그려내는 작가 특유의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절박함에 억눌린 탓인지 자연주의적 묘사의 강렬함 뒤에서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신뢰가 엷어지는 인상이다. 또 한창훈(韓昌勳)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2005) 역시 주변적 인물을 우리 사회 모순의 한복판에 끌어다놓는 상상력의 발휘가 없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 동일한 가락에 머문다는 아쉬움이 크다. 요컨대 이 작품들은―그 주인공들의 절망적인 처지가 박민규의 인물들에 비할 바 아닌 경우가 많지만―97년이 전면화한 사회양극화의 현실에 속박되고 마는 듯한 인상이 든다.13

박민규의 『팬클럽』은 어느 면에선 우리 시대 민중의 탄생설화 같은 작품이지만, 아직 탄생설화의 단계이지 본격적인 모험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팬클럽』의 주인공들이 택하는 삶이 대안으로서 지니는 한계도 있지만, 동물의 등장을 비롯해서 단편에서 자주 마주치는 비현실적 요소의 다소 아슬아슬한 양면성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카스테라』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인턴사원으로 온갖 곤욕을 견뎌야 하는 주인공 청년에게 너구리는 기성질서와는 다른 삶과 가치를 효과적으로 환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마지막 장면 또한 난데없이 전철역에 등장한 기린의 실감나는 모습과 그 기린을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로 확신하는 주인공의 반응을 깔끔하고 설득력있게 연결지으면서 복합적인 여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등몇몇 단편들에서는 환상적 장치의 도입이 상투화되면서 전달하려는 메씨지도 흐릿해지고 작품의 긴장이 떨어지는 약점도 없지 않다.

몇몇 평자들은 은희경(殷熙耕)의 최근작 『비밀과 거짓말』(2005)을 전환기적 작품으로 주목한다.14 이 작품은 전라도에 있는 ‘K읍’의 식민지 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6,70년대에 번성했던 건설업자 정정욱의 유언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두 아들인 영준과 영우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 그린다. 즉 87년체제보다 앞서는 6,70년대를 주된 관심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시대가 오늘에도 여전히 발휘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그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비밀과 거짓말』에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대목들이 많다.‘잘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압축되는 개발주의가 휩쓸던 시절의 온갖 세태가 살아있는 듯이 그려지며, 개발독재시절 지역차별의 실상에 대한 날카로운 소묘가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예컨대 5장 ‘부드러운 환멸’의 6절 같은 장면은 압권이다. 경제개발기를 배경으로 떳떳지 못한 거래를 주고받던 건설업자와 공무원의 회식자리에 대한 탁월한 풍속화가 막 세상에 눈떠가는 아이의 내면에 새겨지는 상처와 함께 선연하게 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고 나서 드는 가장 큰 의문은 왜 중요한 여성인물들이 하나같이 뒤로 밀려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너나없이 기막힌 사연을 안은 여성인물들은 독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들려주지 못한다. 작가가 여성인물들에 무관심할 리가 없을 터인데, 왜 하필 이런 서술전략을 택했을까? 이 작품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에 집중했기 때문임은 틀림없지만, 이같은 서술전략을 정당화하기에는 정정욱의 두 아들의 삶이 우리 현대사의 핵심을 찌르는 전형성을 지니지 못한다.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된 장남 영준은 대학에 들어온 후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모조리 돌려주겠다는 철저한 자기 존재의 부정이 위악의 가속도를 받아”(176면) 노골적으로 아버지와 반목하기 시작한다.“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정체 찾기의 여정은 90년대에 와서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어 인생에 대한 일종의 태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포함해서 그때에 부정했던 모든 강요된 가치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었다”(178면)는 대목은 작품의 결론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영준은 한때 잘 나가던 집의 귀한 큰아들로서 성장기의 정체성 위기를 잘 다스리지 못한 인물, 작품의 표현대로 “한마디로 불우한 모범생”(177면)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자신부터가 영준과 동생 영우의 한계에 대해서 냉혹할 정도이며, 그래서 더더욱 영준의 자기부정의 위악적 노력과 그것이 도달한 정신적 곤경이 시대와 현실을 대표할 만한 위상을 지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같이 아버지를 다루더라도 이전 작품집 『상속』(2002)의 표제작보다 훨씬 불만스럽다. 「상속」은 병상에 누워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아버지의 내면을 적절하게 그리는 가운데 그의 허황한 실상이 드러남으로써 밝혀지는 우리 삶의 적나라한 진상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비밀과 거짓말』의 아버지는 주로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서술기법을 감안하더라도 별로 생생하지 못하다. 결국 이 작품은 6,70년대의 고도성장기가 아직도 우리 삶에 발휘하는 영향력을 강조한 나머지 지난 20여년간 우리가 이룬 역사적 진전을 경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5. 마무리에 대신하여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의 지형도를 그려본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 문학이 87년체제의 중요한 역사적 계기들에 치열하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사회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론의 견지에서 볼 때 백낙청이 1993년에 제기한 ‘국민문학의 차원을 겸하는 민족문학’은 과거의 민족문학 개념의 진전인 동시에 수정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1989년의 「통일운동과 문학」에서 말한 ‘민족문학의 새 단계’론과 일정하게 달라진다. 또 90년대에 걸쳐 분단체제론을 구체화한 결과로 제출된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의 대명사로서의 ‘민족문학’”15이라는 2000년의 명제에 이르면, ‘민족’이라는 관형어가 붙는 것이 장애가 될 수 있는 문학담론들의 다원화를 인정하면서 민족문학 개념이 한층 더 상대화된다고 보겠다. 그렇다면 민족문학은 예컨대 남북민족과 해외동포가 한국어로 창작한 문학을 지칭하는 기술적(記述的) 용어 외에는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 개념으로서는 효용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문학다운 문학의 ‘대명사’로서 민족문학의 유효성이 여전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민족’에 대해서도 통상적 인식을 벗어던지는 실천적 관점이 절실하다. 민족문학을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의 한계에 갇힌 담론으로 단정하는 것은 지금도 너무나 흔하고, 세계화의 대세 앞에서 민족공동체나 국민국가가 긍정적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고 보는 것도 하나의 상식처럼 통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지위 약화는 틀림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해당지역에 사는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이해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는 하나의 장이며, 전지구적 자본도 국민국가의 매개나 협조 없이는 자신을 실현할 수 없다. 진정한 탈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국민국가는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 사고하고 행동할 길이 없는 어떤 것인 것이다.

백낙청은 분단체제극복과 세계체제변혁에서 민족공동체라는 중간 규모의 단위에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보지만, 마치 민족문학 개념에 대한 일정한 해체작업을 수행하듯이 고전적인 국민국가에 기반한 사고방식을 해체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는 분단체제』(1998)에서 동서독 양쪽의 진보세력들이 효과적인 민족담론이 없었기 때문에 신속한 흡수통일에 속수무책이었음을 지적하거나(「독일과 한반도 통일에 관한 하버마스의 견해」), 다민족 복합국가나 다국적 민족공동체의 가능성을 검토함으로써(「21세기 한민족공동체의 가능성과 의의」) 민족에 대한 입체적인 인식을 강조해왔다. 이런 논의에 바탕하여 “세계문학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에 문학의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민족어 문학이자 지역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의 세계사적 의의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문학론은 민족문학운동의 이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사회운동 및 다원적인 문학담론들과 상호교류하고 연대하면서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러한 노력을 이끌 운동의 구심력을 어떻게 옛날 식이 아닌 한층 정당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낼 것이냐는 문제는 2000년대 문학의 향배를 가름할 절실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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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승엽 「20세기 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몇가지 반성」, 민족문학작가회의·만해사상실천선양회 주최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쎄미나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 자료집 별지 7면. 이하 면수만 표시.
  2. 이병훈 「갈림길에 선 민족문학론」, 같은 자료집 40면.
  3. 백낙청 「지구시대의 민족문학」, 『창작과비평』 1993년 가을호,121면. 『창작과비평』 통권 100호 기념 학술토론회의 토론에 붙인 ‘보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간판’ 내지 구호로서의 ‘민족문학’은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사의 특성상 ‘국민문학’과 대비되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영어로 한다면 둘다 ‘national literature’이건만 우리가 굳이 ‘민족문학’을 고집한 것은 일본국 신민으로서의 국민문학이나 분단국 한쪽만의 국민문학을 거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민족문학의 기본 성격을 고수하면서도 남한의 국민문학도 겸하자는 제안은 ‘국민문학이 아닌 민족문학’이라는 구호에는 실질적인 수정을 가하는 일이며, 그야말로 전에 없던 ‘곡예라면 곡예’를 새로 주문한 셈이다.” 『창작과비평』 1998년 여름호,152면.
  4. 신승엽 『민족문학을 넘어서』, 소명출판 2000,59면.
  5. 좀 엉뚱한 사례일지 모르지만, 지난 8월의 남북통일축구에서 ‘붉은악마’가 공식 응원을 하지 않기로 한 일도 참고할 만하다. ‘붉은악마’는 국가간 대항전이 아닌 민족 내부의 경기라는 성격 때문에 남쪽팀을 응원하기 곤란했고, 그렇다고 두 팀을 동시에 응원하기에는 ‘붉은악마’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공식 응원단이기 때문에 난처했다고 한다. 어떤 입장은 남북을 동시에 응원하지 않는 태도를 반통일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또다른 입장은 남북대결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의 응원단으로서 마땅히 나섰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실제 수구언론들은 행사 주최측이 태극기와 ‘대한민국’ 연호를 금지한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던 것이다. ‘붉은악마’의 선택은 남한의 민족문학운동이 민족문학과 국민문학을 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난점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바로 그 난관에서 솟아나올 수 있는 지혜와 활력을 암시하기도 한다.
  6. 신승엽, 같은 책 61면.
  7. 신승엽, 같은 책 70면.
  8. 김정환, 「다시, 그릴 수 없는 전망을 그리기 위하여」, 앞의 자료집 26면.
  9. 백낙청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 『작가』 1997년 1·2월호,12면.
  10. 백낙청, 같은 글 10면.
  11. 최원식 「남과 북의 새로운 역사감각들」,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 62~66면 참조.
  12. 예를 들어 『카스테라』에 실린 「아, 하세요 펠리컨」의 주인공은 무려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9급공무원 시험에 매달리지만, 초라한 상황에서도 절망이나 자기혐오에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는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주인공은 가까운 선배가 자기 사장이 일하는 여자애의 허벅지를 함부로 만진다고 투덜대자,“허벅질 만진다면 시간당 만원은 줘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 천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70면)고 고백한다. 주인공의 어이없는 반응에 독자는 일단 웃지 않을 수 없지만, 기성질서의 물질주의에 무력한 젊은이의 속마음 앞에 참담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인공의 노골적이라 할 솔직함은 묘하게도 완강한 현실거부의 자세를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13. 반면에 92년이라는 계기에 묶이는 문학도 없지 않다. 전성태의 『국경을 넘는 일』(창비 2005)에 실린 단편 「연이 생각」은 90년대 초의 학생운동을 몸으로 겪은 젊은이들에 대한 인상적인 기록이며, 특히 연이라는 인물의 독특함이 돋보인다. 그러나 1991~92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형상화의 문제로 시야를 국한시키지 말고, 작품에 이미 담겨 있기도 한 87년 이전과 이후의 다양한 역사적 계기들을 폭넓게 활용해야 “연이를 어떤 식으로 기억해야 할지”(131면) 고뇌하는 작중화자의 절실한 물음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본다.
  14. 손정수는 『비밀과 거짓말』이 작가 특유의 “냉소적 시선이 인간관계의 근원을 응시하는 냉철한 시선으로 대체되면서 성숙이라는 이름에 값할” 성취를 이루었다고 본다(「리토르넬르, 혹은 생을 형성하는 리듬에 대한 사유」, 『문학동네』 2005년 봄호,75면). 김영찬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90년대 문학의 종언, 그리고 그후」(『현대문학』 2005년 5월)에서 이 작품을 ‘90년대 문학’에 종언을 고하는 전환기적 징조로까지 본다. 이러한 김영찬의 시각은 “2000년대 젊은 문학의 자아는 대체로 처음부터 자기 자신의 현실적·정신적 무력함을 일종의 운명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자아”라는 주장과 수미일관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이는 최근 문학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이며, 무력한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역설적으로 “건강한 자기존중과 타자와의 공감이나 연대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주장의 설득력마저 반감시키는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박민규 문학의 “엉뚱하고도 일탈적인 유희 역시 이 무력한 자아에 대한 자각이 만들어낸 틈새에서 비롯”된다는 평가도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렵다(「2000년대, 한국문학을 위한 비판적 단상」, 『창작과비평』 2005년 가을호, 309, 312면 등).
  15. 백낙청「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창작과비평』2000년 봄호, 2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