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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인종학살 부추기는 석유쟁탈전
데이비드 모스 David Morse
독립언론인이자 정치분석가. 『뉴욕타임즈』 『네이션』 등에 기사와 칼럼을 싣고 있다. 21세기 초반 20년 동안 일련의 석유전쟁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소설 『철교』(The Iron Bridge, Harcourt Brace 1998)를 저술하기도 했다. dmorse@davidmorse.com
ⓒ DavidMorse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이 글은 The National Institute의 웹진 TomDispatch.com(2005년 8월 18일)에 수록된 “War of the Future: Oil Drives the Genocide in Darfur”를 번역한 것이다―편집자.
수단(Sudan)으로 알려져 있는, 동북아프리카에 방대하게 뻗어 있는 사막지역에서는 바로 지금 미래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무기 자체는 미래의 것이 아니다. SF영화에 등장하는 광선총이나 포스필드(force-field, SF 등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장애구역―옮긴이), 로봇돌격대도 전혀 없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최첨단 무기들, 이를테면 위성으로 조종하는 무인비행기 프레데터 따위의 다른 하이테크 무기체계 같은 것도 없다.
그렇다. 이 전쟁에서는 깔라슈니꼬프 소총과 몽둥이, 칼이 사용될 뿐이다. 다르푸르(Darfur)라는 수단의 서부지역에서 즐겨 사용되는 전술이란 방화와 약탈, 거세와 강간으로서, 낙타와 말을 타고 다니는 아랍계 민병대들이 자행하는 것이다. 이곳에 배치된 가장 정교한 기술이라고 해봤자 흑인계 아프리카인 마을들을 공격하는 민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수단 정부가 사용하는 헬리콥터 아니면, 성격이 매우 다른 무기이긴 하지만, 지하 수백 피트 아래의 석유매장량을 조사하기 위해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사용하는 지진계 정도이다.
바로 이것이 이 전쟁을 미래의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그 요인은 서쪽으로는 차드, 남쪽으로는 나이지리아와 우간다까지 뻗어 있는 방대한 지하 유전지대에 석유가 확실히 매장된 곳과 매장 가능성이 있는 곳을 색색으로 칠해 보이는, 댈러스나 뻬이징 회의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깔끔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도 아니고, 첨단기술도 아니다. 단지 석유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이 전쟁은 성장에 기반한 경제로 말미암아 한정된 자원 매장량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개입하여 그 대리자들이 싸우고 있는 일종의 자원전쟁이다. 이 전쟁은 마이클 클레어(Michael Klare)의 책 『피와 석유』(Blood and Oil)가 묘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전쟁이며, 만일 이것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아니라면 우리의 석유중독이 불러온 결과들을 현란하게 드러내주는 예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이 전쟁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주류 언론이 석유산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신문과 잡지에서 접하는 그 모든 자동차 광고들을 생각해보라. 우리의 자동차 문화, 도시의 팽창, 부와 명예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아찔한 가정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자아도취를 생각해보라. 그러면 왜 다르푸르가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다르푸르는 수단으로 알려진 방대하게 뻗어 있는 상처투성이 나라의 일각일 뿐이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뉴욕타임즈』의 한 칼럼에서 ABC뉴스가 작년 한해 야간뉴스 방송에서 다르푸르에 관해 내보낸 보도는 총 18분이었는데 그것도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국제정세에 정통한 ‘World News Tonight’의 앵커―옮긴이) 덕택이었으며, NBC는 5분, CBS는 3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물론 마이클 잭슨에 할당한 시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엇나간 미국 흑인 슈퍼스타 하나에 고정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10년 전 르완다에서 인종학살이 벌어져 100일간 모두 80만명에 달하는 투치족이 살육당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O.J. 심슨(백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흑인 스포츠스타이자 배우―옮긴이)의 재판이었다.
그렇다. 인종주의는 우리가 아프리카인들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기는 커녕 아프리카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거부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확실히 쌔먼사 파워(Samantha Power)가 『끔찍한 문제: 미국과 인종학살의 시대』(A Problem from Hell: America and the Age of Genocide)에서 기록한 그런 거부를, 한사코 인종학살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태도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파워의 말대로,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말로만 인도주의적 이상을 옹호한다고 떠들어댈 뿐 실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아프리카의 혼란을 보고 있노라면 소말리아에서의 우리의 경험이, 미국 병사들이 발목을 잡힌 채 거리를 질질 끌려다니는 생생한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뭔가 아주 은밀한 것, 이를테면 불문의 암묵적 공모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공모 때문에 언론은 우리의 석유 의존적인 생활양식을 위협하는 연관관계를, 산업세계의 석유중독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끔 하는 연관관계를 짚지 못하는 것이다.
다르푸르가 이따금씩 뉴스거리―불에 탄 마을과 숯처럼 변한 시체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의 사진―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제시된다. 사실 다르푸르는 북아프리카에서 석유가 불러일으키고 있는 광범한 위기의 일부이다. 날마다 3~4백명의 다르푸르인들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사람들의 목숨의 댓가로 스포츠형 다목적차량(SUV)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조차 언론이 전하는 메씨지란 우리 미국인들에게는 이 인도주의적 비극을 막아낼 “힘이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조차―주류 언론인으로서 다르푸르를 집중 조명했던 그의 노고는 퓰리처상 감이지만―석유와의 연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석유야말로 수단 내전의 배후동력이다. 석유가 다르푸르의 인종학살을 부추기고 있다. 석유가 수단과 그밖의 아프리카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다. 석유는 아마도 수단과 그 주변국들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인종학살의 맥락
나는 이러한 주장을 사실을 통해 뒷받침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선 공평하게 〔수단의 수도〕 카르툼(Khartoum)의 정부관리들을 소개해주자. 그들은 다르푸르의 살육을 북부의 유목민 종족과 남부의 아프리카 흑인농민들 사이의 오래된 경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봉급을 주고 있으면서도 민병대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며 자기들이 민병대를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지지했고 또 수단과 다른 여러 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제하려 들지만, 자신들의 이런 측면을 애써 축소한다. 대신에 자신들을 가난하고 후진적인 나라를 단결시키기 위해 애쓰는 실용주의자로 묘사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서방의 더 많은 경제원조이고,1997년 클린턴 대통령이 수단을 테러리즘 지원국 목록에 추가하면서 미국이 부과한 무역제재 조치의 종식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다르푸르는 조만간 사라질 불편하고 이례적인 사태일 뿐이다.
종족간 경쟁과 인종주의가 오늘날 다르푸르의 갈등에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단 내전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보면 다르푸르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내전의 연장이다. 남북 갈등의 배후에 존재하는 진짜 동력은 〔다국적 석유기업〕 셰브론(Chevron)이 1978년 수단 남부에서 석유를 발견한 이후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하라사막 주변지역에서 물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전통적인 경쟁이 전혀 다른 투쟁으로 변한 것이다. 아랍계가 지배하는 카르툼 정부는 수단의 사법관할권 경계선을 다시 그어 매장된 석유에 대한 남부의 관할권을 박탈했다. 이렇게 해서 21년에 걸친 수단의 남북내전이 시작되었다. 그후 갈등은 남쪽으로 내려가 수단 안으로 깊숙이, 나일강의 원류를 이루는 더 습한 지대로 이동했으며 이제 물을 둘러싼 역사 깊은 경쟁과는 별개의 것이 되었다.
송유관, 펌프시설, 유정(油井)을 비롯한 여러 핵심 인프라가 남부 반군의 공격목표가 되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점유했던 땅에 이 나라의 새 광물자원의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는만큼 그것을 나누어 갖기를 원했다.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SPLA)의 지도자 존 가랑(John Garang)은 이러한 시설들이 전쟁의 정당한 공격목표라고 선언했다. 한동안 석유회사들은 이 갈등을 피해 떠났으나 1990년대 들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중국과 인도 회사들이 특히 공격적이었는데, 이들은 반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공사현장의 둘레에 구덩이를 파놓고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그 안쪽에서 시추공사의 상당부분을 진행했다. 수단의 석유를 처음 국제시장까지 끌어온 것은 홍해로 이어진 중국의 송유관이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만 해도 먼지가 풀풀 나는 이 지역에서 수출품이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경작 가능한 땅의 대부분은 생계농업―사탕수수와 식용작물, 소와 낙타―에 사용했다. 약간의 면화가 수출용으로 재배되었을 뿐이다. 아직도 가끔은 지역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수단(수단공화국을 뜻하는 ‘Sudan’ 앞에 정관사 ‘the’를 붙이면 이 나라보다 더 광대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의미함―옮긴이)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커다란 나라이자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면적이 대략 250만 평방킬로미터로 중국의 1/4이 넘는 이곳은 국가라기보다는 광의의 지역이다. 약 570개의 개별 민족들과 수십개의 언어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통치가 어려웠던 이곳의 경계선은 식민지 열강들의 편의에 따라 그어진 것이었다. 이곳의 명목상의 지도자들은 북부 출신으로 도시지역인 카르툼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세계경제에 편입되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석유가 그 나라의 첫번째 고부가가치 수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남부 수단은 대부분 농촌지역이자 흑인지역이다. 남부 수단은 북부에서 접근하기가 어렵고 19세기에는 오스만투르크의 통치하에,20세기에는 꽤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하에, 그리고 이제는 북부의 카르툼에 의해 주변화되어, 오늘날 학교나 병원, 근대적 사회기반시설이 거의 없다.
인종주의는 이 모든 상황에서 매우 심각하게 드러난다. 아랍계는 피부색이 더 검은 아프리카계를 ‘아비드’(abeed)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노예’와 거의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전기에 아프리카계 소년들이 남부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갔으며, 많은 소년들이 아랍계가 지배하는 카르툼 정부에 의해 군복무를 강요받았다. 인종주의는 지금 다르푸르에서 발생하는 야만적 강간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카르툼 정부는 아랍계 유목민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못 배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잔자위드(Janjaweed)―그 자체가 경멸적인 용어인―라고 불리는 민병대를 모집한다.
요컨대 이 이슬람주의 정권은 이 나라의 석유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동력의 일환으로 종족적·인종적·경제적 긴장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다. 전쟁은 약 2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는 대부분 남부 사람들이며, 인도주의 단체들이 난민캠프에 접근하는 것을 정부군이 가로막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또다른 수단인 4백만명은 집을 잃었다. 정권은 처음에는 기독교와 애니미즘이 훨씬 우세한 남부에 샤리아, 즉 이슬람법을 부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카르툼 정부는 지난 1월에 서명한 포괄적 평화협정의 조항에서 이러한 요구를 철회했다. 남부는 여성을 위한 권리가 포함된 남부 자체의 민법에 의거하여 운영하도록 허용되었으며,6년 후에 남부인들은 주민투표로 독립을 할 것인지 아니면 통합된 수단의 일부로 남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석유 수익은 카르툼과 수단인민해방군이 장악한 지역이 나눠갖기로 했다. 권력분담협정에 따라 수단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존 가랑은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와 나란히 수단의 부통령직에 오르기로 했다.
서부에 있는 다르푸르는 이 협정에서 배제되었다. 어떤 의미로―미국의 도움으로 맺어진―그 협정은 프랑스만큼 넓은 건조지대 다르푸르를 희생시킨 가운데 조인된 것이다. 다르푸르는 오늘날 수단으로 알려진 지역과는 분리된 채 차드 지역에 걸쳐 있는 왕국으로 독립적 존재를 유지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다르푸르의 인구는 남부 수단에 비해 무슬림의 비율이 더 높고 기독교인의 비율은 더 낮지만, 대부분이 아프리카흑인이며 푸르족(the Fur)처럼 종족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한다.(다르푸르는 사실 ‘푸르족의 땅’을 의미한다.) 다르푸르인들의 이슬람교는 너무 느슨해서 카르툼 정부를 통제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추공사와 송유관 길을 마련하기 위해, 또 반군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모두 없애기 위해 다르푸르 마을들이 불태워졌다. 보고에 따르면 흑인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땅 가운데 일부는 이웃나라 차드에서 들어온 아랍계에게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석유와 혼란
지난 1월 평화협정이 서명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수단의 대부분 지역이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4월에는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새로운 지진관측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는 수단의 석유매장량 추정치를 두 배로 늘려 적어도 5억 6300만 배럴까지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연구에 따르면 훨씬 더 많은 양이 나올 수도 있다. 카르툼 정권은 매장량이 50억 배럴까지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양은 페르시아만 6개국―싸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이란, 카타르―이 보유한 석유매장량 6740억 배럴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수단의 매장량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산업국가들이 대안적 석유공급지를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웅변해주고 있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은 수단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다. 카르툼의 석유 수익은 하루 약 1백만달러로, 이것은 정확히 정부가 무기―러시아산 헬리콥터와 폭격기, 폴란드와 중국산 탱크, 이란산 미사일―에 쏟아붓는 액수에 해당된다. 이처럼 석유는 모든 차원에서 다르푸르의 인종학살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바로 이것이 다르푸르와 나아가 아프리카 전체를 이해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맥락이다. 이미 토착문화와 풍부한 삼림 및 싸바나들로 짜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4세기에 걸친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약탈―노예, 상아, 금,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는―로 갈기갈기 찢겨나간 경험을 한 바로 그 아프리카가 21세기에는 석유쟁탈전 때문에 또다시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단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리비아, 알제리, 앙골라, 이집트, 적도기니의 뒤를 이어 일곱번째로 큰 산유국이다. 개발도상국 세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 거기가 어디든 거의 예외없이 부패와 혼란이 뒤따랐다. 산업의 투명성 부재와 부의 집중이 지역경제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리베이트와 뇌물까지도 불러온다는 점에서 석유산업은 아마도 군수산업에 버금갈 것이다.
테리 칼(Terry Karl)은 인터프레스써비스(제3세계 뉴스전문 독립 인터넷매체―옮긴이)의 편집장 미렌 구띠에레스(Miren Gutierrez)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처럼 어마어마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상품은 없으며, 일반적으로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권력, 대단히 미약한 관료제, 허술한 법치라는 맥락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칼은 석유가 아프리카에서 끼친 영향에 관해 ‘석유의 진실’(Bottom of the Barrel)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가톨릭구호봉사회(Catholic Relief Services) 보고서의 공동 저자이다. 그는 가봉, 앙골라, 나이지리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이들 나라는 수십년 전부터 석유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현재 극심한 부패로 고통받고 있다. 앙골라에서 그랬듯이 나이지리아에서도 평가절상된 환율이 비석유 부문의 경제를 파괴했다. 석유 수익의 통제권을 둘러싼 지방의 반란들 또한 니제르 삼각주에서 광범위한 군사적 억압을 불러일으켰다.
할리버튼 같은 석유회사와 석유탐사회사들은 정치적 힘, 때로는 군사적 힘을 휘두른다. 수단에서는 석유회사들에 의해 건설된 도로와 다리들이, 오지로 남아 있던 마을들을 공격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캐나다의 가장 큰 석유회사인 탤리스먼은 송유관과 시추작업을 위한 땅을 마련할 목적에서 수단 정부군을 도와 교회를 폭파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캐나다 여론의 압력으로 탤리스먼은 수단에 있는 소유지를 팔았다. 스웨덴 회사 룬딘 오일 AB는 마찬가지로 인권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철수했다.
마이클 클레어는 석유 생산이 본질적으로 불안정을 불러온다고 주장한다.“국부를 얻을 다른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들이 자기 나라에 매장된 석유를 채굴하는 경우에 지배엘리뜨들은 전형적으로 석유 수익의 분배를 독점하고, 이로써 자신과 자기 패거리들을 부유하게 살찌우면서 나머지 인구를 가난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잘 무장되고 종종 특권화된 이들 ‘석유국가’의 보안군들이 활용된다.”
이러한 반민주적 경향에 급성장하는 중국 및 인도 경제의 탐욕스러운 열망이 뒤섞이면 아프리카의 불안정이 조성되는 것이다.2004년에 중국은 33%, 인도는 11%까지 석유수입이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0년에 이르면 이들 국가가 하루 1130만 배럴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전세계 석유 수요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늘어난 석유 수요의 40%는 중국이 원인이었다.
케이스 브래드셔(Keith Bradsher)는 「석유 식탁에 앉은 두 대식가」라는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한다.“위험부담을 꺼려하는 다국적기업들이 개입하기를 주저했던 수단 같은 나라들에 중국과 인도 회사들이 과감히 뛰어들자, 이런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국유회사들이 투자에 대한 위험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또는 다국적기업이 주주들의 투자금으로 도박을 하려는 용의에 비해 국유회사들이 납세자의 세금으로 도박을 하려는 용의가 더 큰 것인지 하는 의문이다.”
이처럼 불안정을 감수하는 태도의 지정학적 함의가 수단에서 확인되었으니, 이곳에서 중국의 국유회사들은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 석유를 채굴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가 전략적인 석유이용권을 추구함에 따라―영국, 일본, 미국이 2차대전에 이르는 몇년간 유전이용권을 확보하려고 온갖 책략을 다 썼듯이―수단 같은 나라들을 불안정에 빠뜨릴 가능성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수단에서 새로 지진관측 탐사가 시행된 뒤, 그리고 새로운 권력분담 평화협정이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 6월에 카르툼과 수단인민해방군은 중국, 인도, 영국,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의 석유회사들과 일사천리로 석유거래를 체결했다.
황폐한 수단, 황폐한 세계
이렇게 점점 심해지는 광란의 사태를 통해 부시행정부가 수단에 대해 정신분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2004년 9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선언했듯이 미국정부는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인종학살’이라는 결정을 내렸다―이것은 아프리카에 선교단체를 많이 보낸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선거용 선물이었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가 끝난 뒤 부시는 다르푸르에 대해 침묵을 지켰을 뿐 아니라 그의 행정부는 의회에서 다르푸르의 평화와 책임에 관한 법안에 대해 조용하게 반대로비를 펼쳤다.
그 법안은 위원회에 계류중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평화유지군을 증강하고, 개별 관리들을 (미행정부가 상당히 싫어하는)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을 비롯해 카르툼에 대한 새로운 제재조치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인종학살을 중단시키려는 의회의 노력을 무마하면서 카르툼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정권과 더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다르푸르의 편에 서서 유엔에 강력히 제소하는 것만큼 빨리 살육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달리 없을 것이다. 우리 미국은 그러한 힘을 지닌 유일한 나라이다. 물론 이것은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상상하기 힘들다. 부시, 그리고 2000년 대통령선거 때 그에게 그토록 막대한 자금을 기부한 석유회사들이 수단에 대한 기존의 무역 제재조치들이 제거되어 그 혜택을 누리길 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대통령은 다르푸르에 대한 옹호 대신에 침묵을 지켜왔다―카르툼 정권에 대한 자신의 유화정책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맡겨놓은 채로 말이다.
7월 8일, 수단인민해방군 지도자 존 가랑은 6백만 수단인들의 환호성 속에 수단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오만 바시르 대통령은 아랍어로 연설했다. 가랑은 이 나라의 언어다양성을 이유로 교육받은 남부인들이 즐겨 쓰는 영어로 연설했다. 수단의 미래가 이때만큼 밝아 보인 적도 없었다. 가랑은 통합된 수단을 원하는 카리스마와 힘이 넘치는 지도자였다.3주 후 가랑은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죽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카르툼과 남부 수단 수도인 주바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났다. 총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차와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130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싯점에 그의 죽음에 범죄행위가 개입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헬리콥터는 비와 안개로 뒤덮인 산악지대를 지나다가 추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심쩍은 것들이 많이 있다.수단인민해방군과 정부관리들은 국제적인 전문가팀이 추락사고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진정을 호소하고 있다. 너무나도 불길하게도, 이 재앙은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권력분담 협정을 시행하고자 동분서주하던 르완다 대통령 하뱌리마나(Juvenal Habyarimana)를 죽음으로 몰고간 1994년의 비행기 추락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그 추락사고는 폭발적인 르완다 인종학살을 촉발시켰다. 가랑의 죽음이 수단에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새로운 평화는 이미 위험한 지경에 빠져버렸다. 그의 후계자로 선출된 쌀바 키르 마야르디트(Salva Kiir Mayardit)는 통일 수단에 대한 의지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시작된 전쟁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가장 위협적인 곳은 난민캠프이다. 남북 내전기에 고향에서 쫓겨난 400만명에 이르는 국내유민들 중 수십만명은 카르툼 외곽의 캠프에서 무단입주자로 살아가거나 어지럽게 들어선 인근 게토지구로 몰려들고 있다. 더 서쪽으로 다르푸르와 차드에는 또다른 250만명의 국내유민들이 망각의 구렁텅이 같은 임시캠프에서, 플라스틱과 막대기로 얼기설기 꾸며놓은 피난처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잔자위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을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이며, 전적으로 외부 원조에만 의존하고 있다.
요컨대 수단은 실패한 국가와 실패한 에너지정책 사이의 충돌을 체현하고 있다. 점차 지구라는 행성에 거주하는 인간들은 인간적·환경적 비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구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을 모두 뽑아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석유회사들이 정교하게 만들어낸 부시의 에너지정책은 여느 상식적인 사람이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그런 미래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전제하고 있다. 그 미래는 언론의 침묵이라는 누에고치에 둘러싸인 미국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황폐한 세계인 것이다.
丁範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