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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해리 포터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

 

 

손향숙 孫香淑

서울대 초빙교수, 영국 아동문학 전공. 주요 논문으로 「소년과 제국: 19세기 중엽 이후의 모험소설과 학교소설」 등이 있다. seoyun1010@hanmail.net

 

 

 

1. 전세계를 강타한 해리 포터 열풍

 

62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으로 2억 5000만권, 영국에서만 1350만권이 팔려나간 해리 포터 씨리즈의 여섯번째 이야기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는 판매 개시 전부터 예매만으로도 베스트쎌러가 되었다.J.K. 롤링(Rowling)이 여섯번째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영국에서 해리 포터를 출간해온 블룸즈베리(Bloomsbury)의 주가는 7퍼센트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판매 개시 24시간 만에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영국에서 200만부 이상, 미국에서는 690만부가 팔렸다. 2005년 7월 16일 0시, 해리 포터 6권의 판매를 기다리며 대형서점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과 해리 포터를 위한 촛불행진, 세계 곳곳의 온갖 파티 등 새로운 해리 포터 이야기가 발표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지구촌의 들썩임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해리 포터에 베스트쎌러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아동문학 베스트쎌러 목록을 새로이 만든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의 결정이 성공적이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한편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와 미국 야생보호연합(U.S. National Wildlife Federation)은 미국의 스콜래스틱(Scholastic)판이 아닌 캐나다 레인코스트(Raincoast)판 『해리 포터』를 사달라고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레인코스트가 스콜래스틱과 달리 100퍼센트 재생용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 역시 해리 포터 열풍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흥미로운 에피쏘드이다. 그린피스와 야생보호연합은 이 캠페인이 재생용지 사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리 포터 씨리즈는 출판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적 공방을 야기하기도 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두달 가량의 시차를 두고 판매되었던 1~3권의 경우 국경 없는 인터넷 주문에 국경을 따져야 하는 까다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루라도 빨리 해리 포터를 만나고 싶어한 미국의 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영국 블룸즈베리의 책을 주문하기 시작하자 블룸즈베리와 스콜래스틱 간에 마찰이 빚어졌으며 그 결과 4권부터는 대서양 양쪽에서 동시 출간이 이루어진 것이다.6권의 경우, 2005년 7월 9일, 예정된 신작의 서점 배포를 일주일 남겨둔 싯점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British Columbia) 대법원은 책 내용 발설금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레인코스트의 요청을 수락했다. 브리티시콜럼비아의 한 서점이 실수로 몇권의 책을 먼저 팔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책을 사간 사람들에 대해서 책에 대한 이야기, 복사, 판매를 금지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공식적으로 책이 팔리는 7월 16일 전까지는 책을 읽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법원의 조치에 대해 기본권 침해라는 강력한 반발이 일었으며 독자의 읽을권리에 대한 새로운 공방을 낳았다.

전례 없는 인기와 천문학적 판매수치를 기록한 만큼이나 해리 포터 씨리즈는 마케팅의 승리일 뿐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혹평에서부터 표절시비, 이단에 대한 찬미라는 기독교계의 반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관련된 악성 루머와 평자들의 혹평까지도 해리 포터 열풍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발표된 다이아나 윈 존스(Diana Wynne Jones)의 작품이 최근 표지에 “포터보다 더 화끈한”(Hotter than Potter)이라는 문구가 새로 덧붙여져 출판되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기존의 이름있는 작품들까지도 해리 포터 열풍에 기대어 부활을 노리는 것이 요즈음 아동문학계의 실정이다.

그렇다면 대단한 문학적 성취라는 학계의 평판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해리 포터가 누리는 인기의 비결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지적하는 마케팅전략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2. 해리 포터의 마케팅전략

 

현대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 위주라는 데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물건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현대 마케팅에서 가장 중시되는 포인트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경우 이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전략이 구사되었다.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유포함으로써 구매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작품에 대한 어떤 평도 책이 팔리기 전까지는 일절 공개되지 않았고 작가 인터뷰 또한 금지되었다. 중무장한 대원들의 삼엄한 경비 아래 책들이 서점으로 운반되는 모습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히면서 해리 포터에 대한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조바심은 최고조에 달하고 이와 함께 작품 줄거리에 대한 온갖 추측이 인터넷 싸이트와 인구에 회자되었다. 정보공급이 아닌 정보차단이라는,반(反)소비자적인 블룸즈베리와 스콜래스틱의 마케팅은 해리 포터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배가시키면서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하는 데 일조했다. 정보와 최신 유행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소비자들의 불안심리 자극은 확실히 성공적인 마케팅전략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해리 포터 씨리즈의 영화판권을 사들인 AOL 타임 워너(AOL Time Warner) 역시 해리 포터 열풍과 관련하여 면밀히 고찰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상품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유포하고 이를 통해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AOL 소유의 세계적 시사잡지 『타임』(Time)은 어린이들이 얼마나 해리 포터에 빠져 있는가를 소개하는 글을 싣는다.AOL의 CNN뉴스는 해리 포터 현상을 헤드라인으로 다룸과 동시에 황금시간대를 할애하여 해리 포터 마니아들과의 인터뷰를 방영한다. 『피플』(People)은 작가 롤링의 신데렐라 같은 성공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포춘』(Fortune)과 『머니』(Money) 역시 해리 포터 현상 만들기에 일조한다. 이렇게 탄탄하게 자리잡은 해리 포터 현상은 이후 AOL 타임 워너가 소유한 TBS 슈퍼스테이션과 TNT, 카툰 네트워크(The Cartoon Network)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상업광고에 돌입한다. 미국내 다양한 채널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지부를 거느린 AOL 타임 워너가 해리 포터 상품에 대한 욕구와 갈망, 그리고 시장을 창출하는 데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독서경험 자체가 대중매체와 시장에 의해 매개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블룸즈베리와 스콜래스틱의 마케팅,그리고 거대자본과 유통채널을 앞세운 AOL의 공세가 해리 포터 열풍과 맺는 관계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해리 포터 씨리즈가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귀환시켰다고 하는 일반의 찬사와 달리 실제로 아이들은 책 자체보다는 영화와 장난감, 게임CD 등으로 치환된 해리 포터 현상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 많고, 이로써 해리 포터 열풍으로 창출되는 것이 새로운 독서문화와 건전한 토론이라기보다는 관련 상품에 대한 갈망과 수요라는 비판은 해리 포터 씨리즈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거대기업의 움직임과 해리 포터 열풍이라는 문화현상이 깊은 상관관계를 가짐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그러나 독특한 마케팅전략과 다양한 유통채널을 앞세운 거대자본의 공략이 해리 포터 현상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을 앞세운 공격적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경우들은 많으며 무엇보다 독자의 기호가 그렇게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의 폭발적 인기는 이 작품이 독자의 감수성과 요구에 남다르게 부응하는 면이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거꾸로 해리 포터 씨리즈가 이 작품을 하나의 씬드롬으로까지 격상시킨 지금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됨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해리 포터 씨리즈를 아동문학의 전통 속에서 고찰하면서 이른바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들과 비교해보는 것은 롤링 씨리즈의 매력을 파악함과 동시에 그 문학적 성취를 가늠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3. 해리 포터가 빚지고 있는 고전들

 

해리 포터 씨리즈가 전세계의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가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는 옛이야기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혈통을 모른 채 비천하게 자라지만 결국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일련의 시련을 이겨내며 악과 싸우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해리는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영웅 아서(Arthur)에 비유된다. 미약한 어린아이의 힘으로 강력한 마법사 볼드모트(Voldmort)와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거인을 물리친 잭(Jack the Giant Killer)이자 엄지소년 톰(Tom Thumb)이며 또한 세상을 구하는 어려운 임무를 짊어진 연약한 호비트, 프로도(Frodo)이기도 하다. 구박받던 아이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는 영웅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대적하기 힘겨운 적을 제압하는 해리의 이야기는 무명작가에서 일약 세기의 인물로 탈바꿈한 작가 롤링의 성공스토리와 함께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모든 이들의 소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더즐리 부부(Dursleys)로 대변되는 가짜 부모와 포터 부부(Potters), 덤블도어(Dumbledore), 씨리우스(Sirius) 등으로 대변되는 진짜 부모의 대비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모의 사랑을 두고 벌어지는 형제자매간 갈등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무의식적 불안감이 투사되고 치유되는 전래동화의 특성을 반영한다.

옛이야기의 특성과 매력뿐 아니라 해리 포터 이야기는 영국 아동문학의 오랜 전통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으며 이로써 이 작품에 영향을 준 다른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우선, 한살짜리 아기가 볼드모트의 공격을 막아내고 오히려 그를 제압한다는 설정에는 헨리 본(Henry Vaughan), 루쏘(Rousseau), 워즈워스(Wordsworth) 등으로 이어지는 어린이의 순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평범한 일상세계에 감춰져 있는 마법세계로의 관문과 분명한 선악구도는 C.S. 루이스(Lewis)의 나르니아(Narnia)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미약한 주인공의 어깨에 지워진 막중한 책임과 세상을 조여오는 거대한 악의 세력에 대한 묘사, 선과 악으로 갈린 마법사들간의 싸움에서는 톨킨(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수준에서 일상적으로 가능할 법한 모험을 그려냄으로써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에서 롤링의 작품은 E. 네스빗(Nesbit)의 작품을 닮았다. 더 직접적으로는 마술을 배우러 마술학교에 입학하는 주인공들을 그린 어슐라 르귄(Ursula Le Guin)의 어스씨(Earthsea) 이야기와 질 머피(Jill Murphy)의 엉터리 마녀(Worst Witch) 씨리즈 역시 해리 포터의 탄생에 영향을 준 작품들이다. 꼭 아동문학이 아니더라도 속물적이고 심술궂은 더즐리 가족에서는 익살스러우면서도 기괴한 디킨즈(Dickens)의 인물묘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인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롤링의 작품이 얼마나 아동문학의 전통을 충실히 잇고 있는가가 아니라 전통을 업고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통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사회의 요구와 어떻게 부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빅토리아조 아동문학의 큰 줄기를 이루었던 ‘학교소설’(school stories)이라는 장르적 전통 속에서 해리 포터를 살펴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호그와츠 마법학교(Hogwarts School of Witchcraft and Wizardry)라는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리 포터 이야기는 토마스 휴즈(Thomas Hughes)의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Tom Brown’s Schooldays, 1857)을 필두로 수립된 학교소설의 전통을 충실히 잇고 있다. 해리 포터 씨리즈에서 그려지는 기숙사간 경쟁과 자기 기숙사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이를 함양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퀴디치(Quidditch)게임 등은 크리켓이라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기숙사간 경쟁을 그려냈던 학교소설의 장르적 특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토마스 아놀드(Thomas Arnold)의 럭비(Rugby) 학교를 모델로 휴즈가 그려낸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은 ‘성결과 학식’(Godliness and Good Learning)에서 ‘성결과 남성다움’(Godliness and Manliness)으로라는, 빅토리아조 이상(理想)의 재조정이 이루어지는 장이었다. 아놀드의 럭비를 그려내면서도 실제로는 아놀드의 이상보다는 휴즈 자신의 후기 빅토리아조 이상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크리켓과 기숙사생활을 중심으로 함양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땅에 기반한 공동체, 나아가 영국이라는 국가적 공동체에 대한 충성과 복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19세기 후반 아동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 드러나듯이 학교소설의 주요 특징은 집단에 대한 충성심의 강조와 편가르기 문화, 이에 부합하는 단체경기에 대한 애착이다. 아마추어리즘과 귀족적 아우라라는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퍼블릭스쿨(public school,영국의 사립학교)의 새로운 문화창조에 일조한 학교소설은 제국을 경영할 엘리뜨를 양산해야 했던 영국 제국주의의 필요와 맞닿아 있다. 학년 정비와 반장체제 도입, 기숙사간 스포츠 경쟁과 군대식 문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빅토리아조의 퍼블릭스쿨과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낸 학교소설은 안정된 계급구조가 수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던 당대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4. 해리 포터가 이룬 것과 놓친 것들

 

학교소설의 형식적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면서도 해리 포터 씨리즈에서 독특한 점은 호그와츠 마법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제시되면서 퀴디치라는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딱히 ‘남성다움’에 대한 찬미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퀴디치게임과 기숙사에 대한 충성심이 영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19세기 빅토리아조의 학교소설과 달라지는 지점이다. 우선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남성다움’의 찬미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퀴디치게임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선수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근거로 남자아이들의 문화에 경도되어 있던 아동문학의 지형에 해리 포터 씨리즈가 큰 변화를 몰고왔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다.

학교소설, 모험소설, 판타지 등 19세기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아동문학이 여아보다는 남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면이 강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아동문학 평자들이 합의하는 바이다. 롤링 역시 여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모험에 동참하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가령, 지니(Ginny)나 트릴로니(Trelawney) 교수는 다른 힘에 의식을 지배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론(Ron)의 엄마 위즐리 부인(Mrs Weasley)은 좋은 엄마이지만 끊임없는 잔소리로 남성을 집안의 사소한 규칙에 가두는 전형적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법학교 최고 학생인 허마이오니(Hermione)조차도 모험을 주도한다기보다는 해리의 조력자 역할에 머물며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비판적인 여성주의자들의 불만이다. 여성주의적 입장에서의 이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 씨리즈는 직접적으로 ‘남성다움’을 찬미하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는 것으로, 해리 포터 씨리즈를 현대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퀴디치게임에 여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생물학적 성과 상관없이 힘과 속도를 가능케 하는 기술 덕분이다. 타고난 능력과 함께 퀴디치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누가 가장 빠르고 성능이 훌륭한 빗자루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엄청난 속도와 급상승, 급강하,180도 회전이 자유로운 최고 성능의 빗자루를 타고 펼치는 퀴디치게임이기에 물리적인 힘은 중요하지 않으며 이러한 속도감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경기장면을 박진감 넘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탈바꿈시킨다. 퀴디치게임 묘사를 읽다보면 빠르게 돌진하면서 상대 비행기를 폭파하는 씨뮬레이션 게임이 연상되며 또한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전투기가 갑자기 위로 치솟아오르면서 뒤따라오던 적의 비행기가 절벽에 부딪혀 폭발할 때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날기 시작하는 순간의, 혹은 청룡열차가 정상에서 급강하하는 순간의 그 짜릿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빅토리아조의 학교소설에서 스포츠경기 묘사가 주로 주인공의 리더십과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고 이를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대영제국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자부심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였다면, 롤링의 퀴디치 묘사는 속도감을 갈구하는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빗자루의 성능과 속도는 가격과 직결되어 있으며 유명상표인 최고의 빗자루, 즉 파이어볼트(Firebolt)는 수백 갈레온에 달하는 고가품으로 퀴디치 월드컵게임의 공식 빗자루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마법사의 상점 다이애건 앨리(Diagon Alley)를 쇼핑하는 해리의 눈에 비친 온갖 물건들의 묘사와 포켓몬을 모으듯 유명 마법사들의 사진을 모으는 아이들의 모습 등은 기술문명과 소비문명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호그와츠는 일차적으로 마법학교로서, 초현대적 기술문명의 세계―――투명 망토, 뼈를 녹이기도 하고 다시 자라게도 하는 발달된 의학기술, 학교 안의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마법의 지도―――이면서 동시에 전기 대신 촛불을, 이메일 대신 부엉이를 통신수단으로 사용하는 중세적 세계이다. 최첨단의 기술을 통해서만 가능한 온갖 장치가 마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면서 기술은 마법사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 물론 변형마술을 잘못 사용할 경우 얼굴이 고양이처럼 바뀌기도 하지만 이는 마법을 행하는 주체의 실수나 능력부족 때문인 것으로 인간이 컴퓨터의 발달 등에 대해 갖는 불안감, 즉 언젠가 자신이 발달시킨 과학에 인간 자신이 종속될 것이라는 불안감과는 다르다. 먼 미래의 최첨단 기술세계를 그려내면서도 모든 분위기를 중세적이고 동양적으로 묘사하며 현대적 총이 아닌 중세적 검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던 스타워즈(Star Wars) 씨리즈와 마찬가지로 해리 포터 씨리즈는 기술을 마법으로 치환함으로써 기술문명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현대적 문명의 발달에 따른 혼돈과 무질서의 원인이 해리를 중심으로 한 선의 세력에 대한 악의 세력의 공격과 위협으로 제시되면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는 더욱 훌륭한 마법사의 등장이 악의 세력을 퇴치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고 이와 함께 더욱 강력한 마법, 더 발달된 기술을 원하게 된다. 볼드모트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로서의 덤블도어와 그 후계자 해리의 위상이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첫권부터 강하게 제시되는 것은 이러한 작품의 구도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마술 자체의 속성이 아닌 이를 행사하는 인간의 자질이 세상의 질서를 결정하기에 해리는 처음부터 ‘선택된 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지닌다. 더욱 강력한 마법에 대한 믿음이 ‘선택된 자’에 대한 기대와 만나면서 절대선과 정돈가능한 세계질서에 대한 희망이 잉태되고 동시에 인간에 의해 의롭게 사용되는 마술, 혹은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은 커지게 된다.

빅토리아조의 학교소설에 나타났던 편가르기 문화가 열강들간의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영국과 타열강의 전쟁을 그린 모험소설로 연결되면서 제국 팽창에 필요한 애국주의로 발전했다면, 기술문명을 배경으로 탄생하는 롤링의 마법학교 소설은 기술을 인간에 의해 통제가능한 마법으로 대체하고 그 오용의 가능성을 악한 마법사의 탓으로 전가한다. 이로써 기술에 대한 현대의 불안감은 악의 세력에 대한 정당한 증오감으로 환치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해리 포터 세계의 선과 악이 타고난 천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처음 마법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기숙사 배정 행사에서 각자의 기숙사를 결정하는 것은 ‘분류의 모자’(Sorting Hat)이다. 이 마법의 모자는 학생 각자의 자질을 판단하여 그에 적합한 기숙사를 배정한다. 물론 작품은 꼬마 집요정(house-elf)의 예를 통해 종(種)이 계급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허마이오니를 통해 그 부당성을 폭로한다. 볼드모트와 그 추종자들, 즉 ‘죽음을 먹는 자들’(Death Eaters)이 순수혈통에 집착함으로써 벌이는 잔혹한 행태들을 꼬집음으로써 혈통에 대한 천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순수혈통에 집착하는 볼드모트 추종자들의 행태는 작품 여기저기에서 암시되는 소비주의, 물신주의 등의 제반 문제와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제시된다. 그 결과 해리와 볼드모트의 대면은 선악의 단순 대립구도를 넘어서지 못하며 작품은 볼드모트로 대표되는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꼬집는 ‘도덕적’ 메씨지 전달에 머물고 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를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발견의 기쁨 이외에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의 기쁨을 주지도 못한다. 악이 악으로 화하는 과정을 설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선이 선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이 상황에서 선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선택된 자’에 대한 강한 믿음일 수밖에 없다. 세기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롤링의 씨리즈를 고전의 반열에 올리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는바, 아서왕, 신데렐라, 엄지소년 톰, 프로도 등의 문학적 모티프와 전통을 한몸에 체현한 해리이지만 그의 갈등을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세상의 모순을 읽어내기란 불가능하다. 해리의 갈등과 번민 역시 선택된 자로서 악에 대항해야 하는 할리우드 주인공의 갈등의 폭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험소설로서 해리 포터 씨리즈를 읽을 경우에도 이러한 평가를 뒤집는 특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자연사적 지식과 신의 말씀을 중심으로 무인도에 집을 짓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던 19세기 전반기의 모험소설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타열강과의 제국주의 전쟁을 그리는 군인들의 모험 이야기로 변화한다. 애국주의와 스포츠지상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이 시기, 모험소설은 식민지 전쟁의 참상을 모험, 애국, 문명, 기독교 전파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모험소설의 관행에 반기를 들고 모험을 악몽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의, 문명, 기독교 팽창과 모험의 고리를 끊은 것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Treasure Island, 1883)이다. 『보물섬』의 등장은 19세기 중엽 이후 모험소설의 변화와도 관계된 것으로 이 시기 모험소설은 리차드 제퍼리스(Richard Jefferies)의 『베비스』(Bevis, 1882)를 거쳐 A.A. 밀른(Milne)의 『위니 더 푸우』(Winnie-the-Pooh, 1926)에 이르면서 모험의 공간이 안전한 아버지의 영지에서 다시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축소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제국주의 팽창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침략전쟁이라는 참상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 생산과 유포의 장이었던 대부분의 모험소설과 마찬가지로 해리 포터 역시 컴퓨터게임 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의 감성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보물섬』 같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해리의 모험은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산발적으로 하나씩 주어지는 단서를 풀어가며 더 어려운 단계로 이동하는 게임의 속성을 닮아 있다.제1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예로 들어보자. 작품 전반부는 플러피(Fluppy)라는 머리가 셋 달린 무시무시한 개의 존재와 유니콘의 피, 니콜라스 플라멜(Nicolas Flamel), 마법사의 돌이라는 단서를 산발적으로 제시한다. 해리 일행은 이 단서들을 하나씩 풀어감으로써 이것이 영생을 얻기 위한 자들의 음모와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되며 결국 볼드모트 일당보다 먼저 마법사의 돌을 얻기 위해 마지막 모험을 감행한다. 머리가 셋 달린 개 플러피를 지나 악마의 덫이라는 식물과 싸워 이긴 후 날아다니는 수많은 열쇠 중 진짜 열쇠를 찾아 육중한 문을 지난 해리 일행은 자기가 직접 말이 되는 체스게임을 통과한다. 다시 수수께끼의 방으로 들어선 해리와 허마이오니는 수수께끼를 풀어 마법의 약을 얻음으로써 타오르는 불길을 지난다. 이렇게 도달한 마지막 단계의 시련에서 해리는 볼드모트와 대면한다. 주어진 단서를 토대로 음모를 밝히고 점점 더 어려운 단계로 진입해가는 해리의 모험구도는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아주 익숙한 비디오게임의 세계와 닮아 있다.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플롯임에는 분명하나 이것이 익숙한 현실의 모습을 다시 보는 즐거움 이상의, 깊이있는 통찰과 깨달음을 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책을 읽는 과정 역시 코드에 익숙해져야만 그 재미를 느끼고 빠져들게 되는 게임의 속성과 공유하는 바가 많으며, 해리 포터의 독자들은 마법세계의 규칙과 이름, 기능 등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그 세계에 더 강하게 중독된다.

 

 

5. 해리 포터는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

 

앞의 논의에서 드러난 대로 해리 포터 씨리즈는 옛이야기, 학교소설, 모험소설, 판타지 등 영국 아동문학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작품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코드에 대체로 부합한다는 아동문학 전반의 특성을 공유한다. 하나의 작품이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격상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관례를 거스르기보다는 이를 정확히 충족시켜야 한다는 아동문학 비평가 잭 자이프스(Jack Zipes)의 언급이 시사하듯, 해리 포터가 향유하는 인기는 세상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에 기원한다기보다는 기술과 소비에 익숙한 독자들의 감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극한 데서 얻어진 것이다. 이에 덧붙여 롤링의 기발한 착상과 고풍스럽고 기괴한 이름들, 온갖 괴물 등의 출현은 독창성과 특이함을 갈구하는 현대 독자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준다. 반소비자적인 독특한 마케팅과 AOL 타임 워너라는 거대기업의 개입, 그리고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초등학생이 주타깃 독자층이라는 점 역시 해리 포터 열풍에 일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요인들 이외에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해리 포터 관련 상품 판매를 자극했다.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한 역사에 남을 문화현상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것이 곧 해리 포터 씨리즈가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문학의 역사에서 고전으로 남는 작품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생산하고 유포시키는 데 일조하기보다는 어린이를 ‘어린이’로 규정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가치체계를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들인 것이다. 어린이를 ‘교육’시켜 일정한 ‘성장’의 틀 속으로 편입시키는 데 일조했던 19세기 전반기까지의 다른 아동문학과 달리,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와 『거울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 1871)는 성장신화의 전제가 되는 기계적 시공간 개념을 임의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언어의 자의성을 문제삼음으로써 성장신화의 기초를 허문다. 결국 ‘나’라는 정체성 역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확고한 정체성을 주입하고자 하는 모든 형식의 교육이 문제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시공간의 혼동에 따른 ‘나는 누구인가?’라는 앨리스의 계속되는 질문은 사회화 논리에 따라 규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나를 나로 만드는, 혹은 어린이를 ‘어린이’로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캐롤의 문제의식은 반세기 후 J.M. 배리(Barrie)의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 1911)에 의해 계승된다. 『피터와 웬디』는 루쏘와 낭만주의를 거쳐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아동문학에서 만개한 어린이 찬미를 강렬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러한 전통에 기댄 아동문학에 이별을 고한다. 피터팬 신화는 출구가 막힌 어른세계가 만들어낸 언어적 구성임을 보여줌으로써 자라지 않는 영원한 아이에 깃든 상실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찬미가 성숙이 배제된 성장을 강요하는 현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됨을 보여주는 배리의 작품은 기계적이고 세속적인 성장이 아닌 새로운 성숙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캐롤과 배리는 어린이를 구성하는 어른의 담론으로서의 아동문학에 대한 자의식을 보여준다. 이는 어린이를 사회가 규정한 어른 혹은 어린이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에서 근대적 억압의 그림자를 보고 어린이 찬미를 통하여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던 블레이크와 워즈워스, 디킨즈 등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간 수많은 아동도서, 또한 아직 읽히기는 하되 여전히 미성숙한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겨져 진지한 연구대상이 되지 못하는 많은 어린이책과 달리 캐롤과 배리의 작품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지속적으로 현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롤링의 해리 포터 씨리즈는 작품에 얽힌 수많은 에피쏘드와 천문학적인 상업적 이득 등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과 인식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보다는 독자에게 익숙한 코드를 통해 현재적 감수성을 만족시키고 자극한다는 점에서, 또한 기술문명에 대한 불안감을 악의 세력이라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분노로 환치함으로써 이를 안전하게 흡수한다는 점에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기보다는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가치의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간여해온 영국 아동문학의 일반적 성격을 공유한다. 표지를 달리한 판본이 제작될 정도로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인기만으로 이 작품을 캐롤이나 배리의 작품과 같은 반열에 올릴 수는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