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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중국문학으로 가는 길

모 옌과 한국 속 중국문학

 

 

이욱연 李旭淵

서강대 교수, 중국 현대문학. 주요 논문으로 「노신의 소설창작과 기억의 서사」 「중국 지식인사회의 새로운 동향」 등이 있다. gomexico@sogang.ac.kr

 

 

1. 국경의 장벽에 갇힌 중국문학

 

한국소설계가 한국경제보다도 더 심각한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서울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쎌러 1위를 하면 몇십만부가 쉽게 나갔는데, 지금은 몇만부 넘기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팔리는 것이라고는 논술용 소설뿐이란다. 한국소설이 독자들로부터 멀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국소설은 꾸준히 환영을 받고 있다. 외국문학의 전성시대다.

외국문학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외국문학도 하나가 아니어서 주로 서구와 일본의 소설들에 해당되는 말일 뿐, 중국문학은 독자들의 관심 밖에 있다. 서점의 중국소설 서가는 썰렁하기만 하다. 한중관계가 갈수록 확대되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 관련 책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중국 문학작품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번역 소개되는 양이 절대적으로 적다. 최근 3년간 중국 개방개혁 이후의 작품 가운데 번역 소개된 것이 10종도 채 되지 않는다.1년에 평균 3~5종 정도가 출간되고 있는 빈약한 번역상황으로 인해 독자들이 중국문학을 접할 기회 자체가 매우 적은 현실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그런 적은 양의 번역작품마저 중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드물고 번역 수준 또한 낮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는 좋은 문학작품을 골라내고 번역 소개하는 것을 등한시하고 있는 중국문학 학계의 책임이 크다.

수준 높은 번역인력의 부재는 좀처럼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몇몇 전문번역가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 작품의 경우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가 합작하여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의 번역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중국어에 능통한 인력은 크게 늘어났지만 문학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 만큼 중국어와 한국어에 대한 문학적 구사능력을 가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과 접촉이 단절되었던 반세기 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 문학작품 번역이 부진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독자들의 기대지평과 중국 문학작품 사이의 격차로 인한 문제이다.현재 독자들이 주로 읽는 외국작품의 경우 포스트모던한 내용을 다루거나 신화적·환상적 모티프를 지닌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독서습관과 중국 문학작품의 중심적 경향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존재한다. 알다시피 중국 문학작품은 강한 현실성과 정치성을 지니고 있고, 리얼리즘 전통이 여전히 강하다. 최근 들어 중국이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작품 스타일 역시 우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중국문학의 전반적 특징과 우리 독자들의 독서습관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심하다. 그로 인해 중국 문학작품을 접한 한국 독자들은 “그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쓰고 있구나”라든가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 스타일, 과거 우리 문학에 유행한 작품 스타일이구나”“저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물론 중국문학의 강한 현실성과 정치성은 일부 독자들이 중국 문학작품을 찾는 주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문학을 통해 중국을 알기 위해서,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근현대 중국의 영광과 고난을 보기 위해서 중국문학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문학을 문학으로 대하기보다는 중국과 중국인을 들여다보고 재단하고 평가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다분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중국문학을 호명하는 방식이다. 중국 문학작품에서 중국을 읽는 것이 주요 목적인 이상,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 관련된 정치적 기준에 따라, 중국에 대한 이미지와 선입견에 따라 어떤 작품이 의미있고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판단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중국이 상위텍스트이고 중국 문학작품은 하위텍스트인 가운데, 상위텍스트를 호명하는 방식에 중국문학이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냉전구도에서 중국의 반대진영에 속했던 나라들, 예전에 중국과 교류가 없었고 중국에 대해 적대감과 더불어 우월감을 지닌 나라들이 중국문학을 호명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호명 방식에서 가장 선호하는 문학작품은 일차적으로 중국이라는 상위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와 선입견을 충족시켜주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되 우리 독자들의 감수성과 독서습관에 맞게 덜 중국문학적인 스타일로, 한국문학이나 서구문학의 흐름과 맞는 세련된 문학적 스타일로 풀어주는 작품이다. 문화대혁명(1966~76)을 비롯한 마오 쩌뚱(毛澤東) 시대의 억압과 비극을 다룬 작품을 유별나게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고, 우리 출판계가 중국 문학작품을 직접 골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문학시장의 중개를 거쳐서 서구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을 소개하는 데 유난히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번역된 작품 가운데 따이 허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 人)』1라든가 위 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2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사회주의 중국의 비극적 역사경험을 포스트모던한 문학형식으로 풀어내는 까오 싱졘(高行建)이 서구에서 최고의 중국 작가로 평가받으면서 노벨문학상을 탄 것과 같은 차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독자들이 중국문학에 기대하는 정치적 요구와 문학적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많을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여건으로 보면, 중국 문학작품이 한국독자들과 만나는 데 장벽이 겹겹이다.

 

 

2. 모 옌 문학의 자리

 

현재 중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왕 멍(王蒙), 한 샤오꿍(韓少功), 왕 안이(王安憶), 쟝 쳥즈(張承之), 리 루이(李銳), 꺼 페이(格非), 모 옌(莫言), 위 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는 위 화와 모 옌이다. 위 화의 소설은 단편부터 장편에 이르기까지 대표작들이 거의 다 번역되었고, 모 옌의 경우는 『탄샹싱(檀香刑)』 등 대표 장편 3편과 중편 「붉은 수수밭(紅高粱)」3이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두 작가가 다른 작가들보다 더 주목받은 까닭은 이들 소설이 계기가 된 것이라기보다는 쟝 이머우(張藝謀) 감독이 두 사람의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모 옌은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이고, 영화 「인생」은 위 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4이 원작이다. 두 영화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원작소설과 소설가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 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쟝 이머우가 내게 빚을 졌고, 나중에는 내가 쟝 이머우에게 빚을 졌다.”

위 화와 모 옌은 1990년대 이후 중국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작가이다. 문혁(文革)이 끝난 뒤인 1980년대 중국은 지식인의 시대였고,1980년대 중국문학의 주인공은 지식인이었다. 지식인들이 문혁시기에 얼마나 고통과 수난을 당했는지를 다룬 문학이 당시 중국문학의 주류였다. 그런데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문학계에 ‘민간’이라는 화두가 출현한다. 민간세계, 즉 중국민중들의 즉자적 생활세계를 다룬 소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지식인세계에서 민간세계로 문학적 관심이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시장 메커니즘과 자본주의 씨스템이 확대되는 가운데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의 그늘에 관심을 갖는 비판적 지식인과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민간에 대한 문학적 논의가 부쩍 증가했다. 그러한 중국문학의 새로운 조류를 상징하는 작가가 바로 모 옌과 위 화이다.

위 화는 중국작가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확실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가 꾸준히 읽히는 가운데 2002년에는 국내 극단이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는가 하면, 영화로 만들려고 우리 영화사에서 판권을 확보해둔 상태다. 이에 비하면 모 옌은 대표작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선 모 옌의 소설들이 모두 두 권 내지 세 권 분량으로 독자들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점이 일차적인 요인일 수 있다.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두 작가의 문학세계가 다르고, 그들의 문학세계와 한국 독자들의 감수성 및 독서습관 사이의 관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모 옌과 위 화가 민간세계, 특히 농촌 민간세계를 주로 다룬 점은 공통적이지만, 이 두 작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위 화의 대표작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 매혈기』, 그리고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최신작 『형제(兄弟)』는 모두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시기적으로 사회주의정권 수립 전후부터 문화대혁명 이후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사를 통해,이들 소설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역사공간에서 신고(辛苦)의 삶을 영위해온 민중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 소설에서 가족사는 가족들의 사망사인 동시에 수난사이다. 『살아간다는 것』에서는 대약진운동(1956~57)과 문혁 등을 겪으며 8명의 가족 가운데 7명이 죽고, 『형제』에서는 부모가 죽고 형제는 고아가 된다. 『허삼관 매혈기』의 경우 죽는 사람은 없지만 겹겹이 밀려드는 정치적·자연적 재난 앞에서 가장이 12차례나 목숨을 내건 매혈을 하며 대처한다. 위 화 소설에서 가족사란 가난과 죽음으로 점철된 생의 임계선상에서 연출된 것이다. 위 화는 신중국 성립 이후 밀어닥친 정치적·자연적 재난을 겪어내는 중국민중의 저력을, 허삼관의 피처럼 뽑아도 뽑아도 고갈되지 않는 민중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위 화 소설의 이러한 특징은 민중들의 생명력을 낭만적으로 이상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 화 소설을 신중국 역사시기를 다룬 여타 작가들의 작품과 확연히 구별짓는 요소이자 작가의 소설적 개성이 존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까오 싱졘의 경우 『나 혼자만의 성경(一個人的聖經)』5과 『영혼의 산(靈山)』6에서 사회주의 중국에서 수난을 당했던 지식인의 악몽 같은 기억을 바탕으로 신중국이라는 역사공간 자체를 절대악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위 화 소설은 외국독자들에게 수난의 가족사를 통해 사회주의정권 성립 이후 중국인, 특히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 속 가족사는 중국현대사의 상징으로, 현대 중국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과 유머와 비애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문학적 재능이 효과적으로 결합된 점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독자들에게 위 화 소설이 환영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위 화의 소설이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이야기라면, 모 옌의 소설은 엄밀하게 말해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뚱뻬이(東北) 까오미(高密)향(鄕)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 화의 이야기가 중국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면 모 옌의 이야기는 오직 뚱뻬이 까오미향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아니, 모 옌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도 까오미향의 이야기로 만든다.모 옌 문학의 문제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뚱뻬이 까오미향은 샨뚱성(山東省)에 있는 모 옌의 고향이다. 하지만 뚱뻬이 까오미향은 지리적 개념을 초월하여 모 옌 문학의 왕국이자 모태인 셈이다.

모 옌의 문학공화국 뚱뻬이 까오미향은 그의 출세작 「붉은 수수밭」의 경우 붉은 수수밭 세계이다. 화자인 손자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과거에 그 붉은 수수밭 세계에 살았던 순종인간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상징되는 붉은 수수밭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지금 잡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손자가 마련한 기억의 제단이다. 그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은 농민이거나 토비(土匪)들이다. 이들은 법이나 윤리에 따라 행동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력의 격랑에 따라 인생을 살았다. 젊은날의 할아버지는 한 여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과 시아버지를 살해하고, 돈을 위해 딸을 문둥병 환자에게 시집보낸 그녀의 친아버지도 살해한다. 그런 뒤 그는 토비가 된다.

소설에서 이런 패륜과 불법적인 살인은 무척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처럼 처리된다. 살인과 범법을 도덕과 법의 기준이 아니라 생명의 논리, 더 넓게는 자연의 논리 속에서 바라보도록 만들어버리는 붉은 수수밭 세계의 원시적 생명력 때문에 그렇다. 때문에 화자의 할머니는 임종할 때 자기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여, 무엇이 정절이고, 무엇이 정도입니까? 어떤 것이 선량하고, 어떤 것이 사악합니까? 당신은 지금까지 한번도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난 오직 내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난 행복을 사랑했고, 힘을 사랑했으며, 아름다움을 사랑했습니다. 내 몸은 나의 것이고, 내가 주인입니다. 난 죄도 두렵지 않고, 벌도 두렵지 않습니다.”

 

붉은 수수밭은 그런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인간들, 야성이 충만한 순종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이 차원에서 보자면 「붉은 수수밭」은 현대화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일종의 원시반본(原始返本)적인 반문화주의(反文化主義)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모 옌 소설에서 반문화주의는 단순한 현대화에 대한 반발 차원을 넘는다. 반문화주의가 중국 근현대사의 민족국가 만들기에 대한 통찰과 결합하면서, 집단적 기억인 역사와 구별되는 뚱뻬이 까오미향에 대한 개인 기억을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 옌 소설의 개성은 붉은 수수밭 세계, 즉 까오미향이 사라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탐색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소설에서 붉은 수수밭 세계는 결국 사라지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데, 작가는 그 사라짐의 과정을 까오미향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결합시키고 있다. 「붉은 수수밭」에서 일본군이 침략하기 이전 붉은 수수밭 세계를 위협하여 이 세계를 해체시키려 한 세력은 관(官),즉 국가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범죄를 규명하여 붉은 수수밭의 세계에 법질서를 이식시키려 하고, 토비를 소탕하여 다른 지역과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실패한다. 그리고 항일전쟁이 일어난다. 일본군이 현대식 무기와 자동차를 앞세우고 마을에 들어온다. 까오미향의 생명력의 상징인 붉은 수수를 잘라내고 길을 낸다. 그 작업에 마을사람들을 동원하고 도망하려는 사람을 잡아 인피(人皮)를 벗기는 형을 가해 죽인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을 윤간하고 마을을 약탈하고 불을 지른다. 이런 일본군의 침략에 토비와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유격대를 조직한다. 화자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 유격대 대장이다. 그런데 그는 항일을 위해 국민당군이나 공산당군과 연합하는 것을 거부한다. 할아버지는 “마오 쩌뚱? 이 몸은 그런 사람 몰라. 이 몸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는단 말야”라면서 공산당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국민당에 대해서는 “저런 잡종들!”이라고 말한다. 순종인 자신들에 비해 그들은 잡종들이다. 할아버지는 “무슨 놈의 당이고 국가야”라고 하면서 세상이 국민당이나 공산당 차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결국 항일전쟁은 민족과 국가 차원에서 보자면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민족해방전쟁이지만, 까오미향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저 붉은 수수밭 세계를 수호하는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일본이나 국민당군이나 공산당군은 모두 붉은 수수밭 세계를 파괴하고 압박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뚱뻬이 까오미향에 관한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모 옌의 소설이 민족주의·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역사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고, 모 옌 문학의 개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붉은 수수밭」에서는 일본군이 까오미향을 파괴하기 위해 들어오지만, 『탄샹싱』7에서는 독일군이, 엄밀히 말하면 외세와 결탁한 위안 스카이(袁世凱)로 상징되는 청(淸)정부와 독일군이 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쳐들어온다.1900년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의화단(義和團)의 난이 일어날 무렵, 샨뚱지방에는 독일군이 진주한다. 독일군은 붉은 수수밭에 쳐들어왔던 일본군과 비슷한 짓을 한다. 중국 여자들을 능욕하고 철도를 내려고 한다. 『탄샹싱』은 독일이 뚱뻬이 까오미향에 철로를 부설하는 것을 막으려다가 붙잡혀 탄샹싱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받게 되는 유랑극단 단장인 배우 쑨 삥(孫炳)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쑨 삥이 마을사람들을 조직하여 철도부설에 반대하는 것은 “쇳덩어리의 후손인 서양귀신”들이 철로를 놓아 “천지를 깨어나게” 하는가 하면 까오미향의 “풍수지리를 파괴하고 동네의 물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까오미향 사람들에게 제국주의 침략이 갖는 의미는 이것이다. 사실 중국근대사에는 쑨 삥처럼 제국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철도부설에 반대투쟁을 벌였던 숱한 민족영웅들이 등장한다.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 무렵 그러한 항쟁은 실제로 무수히 많았다. 역사는 이들의 항쟁을 민족주의적 각성에서 나온 민족주의 투쟁으로 기술한다. 하지만 모 옌의 소설에서 쑨 삥이 항쟁을 벌이는 동기는 무척 단순하고, 민족주의적 각성과는 거리가 멀다.즉, ‘쇳덩어리 후손’들이 까오미향의 세계를 침략하는 것에 대한 항쟁일 뿐이다. 「붉은 수수밭」과 비교하면, 항일전쟁 시기에서 근대 초기인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 시기로 역사적 배경이 대체되고 일본군이 독일군으로 바뀌었지만, 외세와 국가 등으로 상징되는 현대화 대 뚱뻬이 까오미향 사이의 대립구도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 중요한 차이도 있다. 예컨대 탄샹싱(檀香刑)을 행하는 청나라 최고 망나니와 그의 아들의 존재가 그렇다. 쑨 삥과 그의 동료들은 저항에 실패하고 결국 쑨 삥은 탄샹싱을 당한다. 탄샹싱은 항문에서 입으로 박달나무로 쐐기를 박아 관통시키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형벌을 가한 뒤에도 죄인이 살아 있어야 하는 까닭에 망나니들 세계에서 최고 경지의 예술로 통하는 형벌이다. 그 형벌을 행하는 망나니는 쑨 삥 딸의 시아버지, 즉 사돈이다. 그런 그가 고향에 돌아와 위안 스카이와 독일군의 부름을 받고 그들이 원하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사돈에게 행한다. 그는 나라의 법률이 황금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국가권력의 노예가 된 사람의 전형으로 쑨 삥의 반대편에 있다. 그는 쑨 삥이 왜 그런 형을 당해야 하는지, 자신이 형을 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하늘 아래 연극 가운데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정교한 것은 없고, 천하의 사형방법 중에 탄샹싱보다 더 정교한 것은 없으며, 그것을 행할 사람은 나말고 누가 있을 것인가?”라는 자부심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조수가 되어 아버지의 기술에 감탄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아버지가 자기 장인에게 형을 가하는 일을 돕는다.

모 옌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민중세계의 어둠을 보여준다. 일찍이 루 쉰(魯迅)은 「약(葯)」이라는 소설에서 혁명가가 처형을 당하는 이유와 그 비극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저 혁명가가 처형당하면 어서 뜨끈한 피를 받아 자기 아들의 폐병약으로 쓸 생각에만 골몰하는 중국민중의 어둠을 묘파한 바 있다. 그런 민중의 세계가 모 옌 소설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수수밭」이 다루고 있는 영웅들의 세계와 구별되는 이러한 민중세계는 『술의 나라(酒國)』8와 『풍유비둔(豊乳肥臀)』9에서도 등장한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그가 한층 더 중국민중 속으로 깊이 하강하면서 그들의 빛과 어둠을 여실하게 포착하는 글쓰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 옌은 중국의 민중세계를 다루는 자신의 글쓰기는 진정한 ‘민간의 글쓰기’를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대다수 중국 현대작가들이 목표로 생각해왔던 ‘민중을 위한 글쓰기’는 듣기에는 겸허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기실 작가 스스로를 민중의 대변인이자 시대의 양심으로 여기는 과대망상이 숨어 있다고 비판한다. 지식인 작가들의 ‘민중을 위한 글쓰기’에는 자기를 민중보다 높은 위치에 두고 지식인의 시비 기준에 따라 어떤 것을 제창하거나 폭로하려는 욕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모 옌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은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한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것을 지향한다고 한다. 모 옌의 이러한 글쓰기는 지식인 시선으로 민중세계를 묘사하고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민중의 세계를 민중의 언어를 통해 민중의 시선으로 재현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 옌은 그러한 ‘민간의 글쓰기’를 통해 뚱뻬이 까오미향으로 상징되는 민간세계의 잡다한 모습을 여실하게 재현한다. 그 재현의 주체는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개인이거나 까오미향 민중이고, 개인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재현을 통해 기존의 역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모 옌 소설에서 까오미향의 붉은 수수밭 세계는 사라지고, 쑨 삥은 탄샹싱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이 되었다. 붉은 수수밭에는 도로가 건설되고, 잡종 수수들이 심어졌다. 붉은 수수가 잡종 수수로 바뀌었듯이 원래의 순수했던 인종들 역시 잡종으로 변했다. 모 옌은 국가나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붉은 수수밭 ‘종(種)’이라는 개체의 관점에 서 있다. 그래서 그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다.“세상은 진보하지만 그와 동시에 종은 퇴화한다는 것을 나는 절실하게 느낀다.” 여기서 현대화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한 인민공화국의 국민국가 신화와 역사는 도전과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다.“나의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진기한 이야기일 뿐이다”는 모 옌의 언급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을 보여주기보다는 까오미향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소설은 국가주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투하는 지금 중국문학의 한 양상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국 밖의 독자들이 모 옌의 문학을 좀더 주의깊고,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3. 중국문학과 만나는 길

 

위 화와 모 옌의 소설은 문학적 차원에서든 정치적 차원에서든 비교적 한국독자들의 기대지평에 근접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소개된 다른 중국 문학작품과 비교해볼 때 그렇다. 하지만 중국문학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고, 중국문학과 우리 독자들 사이에 여전히 높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독자들이 중국문학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중국 문학작품이 우리 문학작품이나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과 다른 어떤 독서체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나름의 답을 내놓은 것이 있다. 서구의 문학독자들이 왜 중국문학과 제3세계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중국 같은 제3세계의 문학은 서구문학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징, 서구문학이 잃어버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10 제임슨이 보기에 제3세계 문학은 기본적으로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이다. 제3세계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다룬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속에 ‘민족적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정치가 들어 있고, 개인의 운명을 다룬 텍스트에 그가 속한 제3세계 문화와 역사가 받은 충격이 스며 있다는 것이다.

제임슨은 민족적 알레고리라는 제3세계 문학의 특징을 예증하는 과정에서 제3세계 문학의 상징으로 중국 현대문학을, 특히 루 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아큐정전(阿Q正傳)」을 거론한다. 「아큐정전」 속의 아큐는 중국인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상징하며 루 쉰의 텍스트는 제3세계 문학이 지닌 민족적 알레고리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임슨 식의 중국문학 읽기가 강한 정치성과 현실성을 지닌 중국문학의 특징에 부합하는 독서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국 문학작품을 읽는 일은 다른 외국 문학작품에서 느끼지 못하는 독서체험의 기회를 갖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민족적 알레고리’ 차원에서 작품을 읽는 것이 중국 문학작품에 대한 또다른 차별이자 억압일 수도 있다. 중국문학은 서구문학과 다르다는 차이를 전제하고, 그 차이에 중국문학을 가둠으로써 중국문학을 서구문학의 영원한 타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적 알레고리라는 것이 중국문학을 재는 기준 역할을 하면서 여기에 부합하는 작품만을 진정한 중국 문학작품으로 인정하는 편향에 빠질 수 있다. 문학 속 개인의 운명에서 중국의 운명을 읽어내려는 이러한 독법이 궁극적으로 중국문학에 대한 또다른 선입견, 또다른 억압으로 작용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중국을 호명하는 차원에서 문학이 동원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적 알레고리 차원에서 호명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독자들이 중국 문학작품을 만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의 소설을 읽을 때 일본이라는 국적을 앞세우지 않듯이 중국문학을 문학 자체로 만나고 읽는 일일 것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구나 한국 독자들의 정치적·문학적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중국 문학작품이 반드시 가장 바람직한 문학이 아닐 수도 있고, 제대로 된 문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엄격한 문학적 기준으로 중국문학을 대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한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문학적 장벽이 한층 낮아질 것이며 위 화나 모 옌뿐만이 아니라 한 샤오꿍, 쟝 쳥즈, 리 루이, 꺼 페이 같은 중국문학계를 대표하는 더 많은 우수한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넓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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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1991.
  2. 최용만 옮김 『허삼관 매혈기』, 푸른숲 1999.
  3. 『紅高粱家族』은 원래 「紅高粱」 「高粱酒」 「狗道」 「高粱殯」 「奇死」 등 5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붉은 수수밭』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2종의 번역본은 5편 중 「紅高粱」만 번역한 것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은 「紅高粱」과 「高粱酒」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4. 백원담 옮김 『살아간다는 것』, 푸른숲 1997.
  5. 박하정 옮김 『나 혼자만의 성경』 1·2, 현대문학북스 2002.
  6. 이상해 옮김 『영혼의 산』 1·2, 현대문학북스 2001.
  7. 박명애 옮김 『탄샹싱』 1·2, 랜덤하우스중앙 2003.
  8. 박명애 옮김 『술의 나라』 1·2, 책세상 2003.
  9. 박명애 옮김 『풍유비둔』 1·2, 랜덤하우스중앙 2003.
  10. Fredric Jameson, “Third-World Literature in the Era of Multinational Capitalism,” Social Text Vol 15, Fall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