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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원규 『약산 김원봉』, 실천문학사 2005

역사적 개인의 전기와 사실성 문제

 

 

홍정선 洪廷善

문학평론가, 인하대 국문과 교수 hongjs@mail.inha.ac.kr

 

 

약산김원봉

소설가 이원규(李元揆)가 소설이 아니라 독립투사의 전기를 썼다. 그러면서 그는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의 전기를 쓰게 된 이유를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엄숙한 소명”과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책임”(34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이같은 말에는 한편으로는 의열단이란 비밀조직을 이끌었던 김원봉이란 인물에 대한 매혹이 담겨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직무유기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역사는 과거의 부당한 영향에서 우리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부당한 영향에서도 우리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역사는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렇지만 정확히 말해, 작금의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양극화된 대립적 사고에서 보듯, 역사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사 이전의 경직되고 선험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빗나간 민족주의와 잘못된 애국적 파시즘과 냉전체제에서 비롯된 대립적 사고가 우리들의 의식 속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서, 역사적 진실은 그러한 드높은 장벽에 가로막히기 일쑤였던 것이다.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는 역사를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1997, 87면)이라고 말했지만, 해방 이후의 우리 현실은 역사적 진실을 찾는 작업을, 무엇이 주목할 만한 것이며 왜 그것에 주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서부터 상반된 시각의 갈등 속으로 몰아넣어 압사시키곤 했던 것이다.

이원규의 약산 김원봉 평전은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다. 냉전체제하에서는 월북한 거물급 인사라는 레떼르 때문에 금기시하고,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에는 맑스주의에 대한 냉소의 분위기 속에서 방치한 우리 현실을 ‘슬픈 현대사’로 규정하는 태도부터가 그렇다. 이원규는 김원봉의 생애를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장렬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삶으로 복원해놓으면서 어떻게 이런 인물을 “남한과 북한의 독립전쟁사에서 지워”(35면)버릴 수 있느냐고 항의한다. 맑스주의에 대한 열정이나 반감 혹은 특정 정치노선에 대한 추종이나 거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김원봉이란 인물이 한평생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오로지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렇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원규가 『약산 김원봉』에서 그려낸 김원봉은 그가 열정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확인하여 복원한 역사적 인물인 동시에, 우리 현실에 대한 불만과 그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말미암아 역사와 일상적 현실의 지평 너머에 있는 영웅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원규가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빈 공간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을 할 때, 조각난 사실들을 맞추어 김원봉이란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 가끔 전기작가의 엄정한 자세에서 벗어난 소설가의 필치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로 김원봉을 채색해나간 까닭이다. 그래서 이원규의 이 평전은 약산에 관련된 객관적 사실을 모아놓은 염인호(廉仁鎬)의 『김원봉 연구』와 비교하면 소설책처럼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고, 사실을 소설적 문체로 이어놓기에 급급한 박태원(朴泰遠)의 『약산과 의열단』과 비교하면 잘 짜여진 장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원규는 김원봉과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면적 측면을 거의 배제해버린다. 예컨대 김산(金山)은 『아리랑』에서 약산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친구들에게는 지극히 점잖고 친절했지만, 또한 지독히 잔인할 때도 있었다”라고 서술하지만, 이원규는 약산의 후자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김산이 “오성륜(吳成崙)은 때때로 김약산에 반대하여 투쟁하였다”(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아리랑』, 동녘 2005, 169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는 당시 김산과 오성륜의 깊은 관계로 미루어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이원규는 오성륜을 언제나 약산의 노선과 지도력을 충실하게 따라간 사람으로 그려놓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의열단에 가담한 젊은 청년들의 생활에 대해 김산은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의열단원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아리랑』, 165면)라고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와 상반되는 이미지로 그들을 채색한다. 이원규는 이번 평전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청년단원들의 생활에 당연히 따르게 마련인 낭만적 퇴폐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채 그들 모두를 하나같이 엄숙한 도덕적 인물로 그려놓는 것이다. 김산이 말한, 의열단원들의 당디(dandy)적인 풍모와 생활, 짧으면서도 열렬한 연애 등은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이번 평전에서는 김원봉의 서사시적 풍모와 잘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지할 자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김원봉의 생애는 분명 범상한 일상인과는 다른 삶이었다. 그의 생애 속에는 비범한 인물들의 생애가 대부분 그렇듯이 한 시대의 흐름과 의미가 압축되어 들어 있다. 그렇지만 김원봉이 비범한 인물이라고 해서 인간 누구나가 지닌 보편적 고뇌와 무관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원규가 그린 김원봉처럼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지들을 사지로 떠나보낼 때, 테러의 성공이 곧 동지의 죽음이라는 소식으로 다가왔을 때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 키운 조직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노선을 선택했을 때나, 조직구성원들이 민족해방이란 대의보다 노선투쟁에 몰두할 때도 심각한 고뇌와 회의를 겪었을 것이다. 김원봉은 과연 이같은 수많은 난관 앞에서 ‘연애는 사치’(305면)라는 식으로 근엄하게 반응한 인물이었을까? 그럴 때 김원봉 같은 철인도 오히려 벌거벗은 실존의 문제에 외롭게 직면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번 평전은 비교적 무관심하다. 역사가가 쓰는 평전보다 소설가가 쓰는 평전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국면에서 이원규는 가벼운 자책감과 함께 “자신이 걸어온 삶에 후회가 없다는 것, 다시 태어나 살아도 이런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324면)을 하는 김원봉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이원규의 『약산 김원봉』은 위엄있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김원봉을 보여주는 데에는 충분히 성공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인간 김원봉을 보여주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원규는 김원봉이란 인물이 남겨놓은 발자취, 시대에 맞서는 영웅적 행위에 매료되어 그 흐름을 이탈할 여유가 없다. 엥겔스가 말한 바 있는 ‘디테일에의 충실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음식이 맛있자면 재료에 못지않게 양념이 중요한 것처럼 비범한 인물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에는 뻣뻣한 역사적 측면 못지않게 자잘한 개인적 측면의 사실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평자는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