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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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金秀烈

1959년 제주 출생.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등이 있음. kimsy910@naver.com

 

 

 

연변 여자

 

 

그 여자를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에 빼앗긴 조선땅이 싫어

살아도 더는 살 수 없는 조국이 싫어

흑룡강으로 떠났는데

그 여자는 할애비가 버린,

땅 설고 물 설은 모국의 귀퉁이에 와서

가난한 허벅지 하얗게 내놓고 온몸을 바쳐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첨 만난 사내 품에 얼싸안겨’

 

곰팡내 물씬 풍기는 단란주점에서

올망졸망 두고 온 식솔들

눈망울에 수평선을 담고 노래 부르는데, 씨발

왜 그리도 화가 나는지

휘청휘청 밖에 나와 해장으로 국수를 먹는데, 씨발

국물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뒷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하는데, 씨발

건더기는 안 나오고

왜 그리도 오장 쓴 물만 쏟아지는지

전봇대에 기대어 오줌 누는데, 씨발

왜 죄 없는 바지만 젖는지

 

 

 

출구는 없다

 

 

지리한 장맛비 잠시 숨 고르는 사이

교실 창틈으로 포로롱 날아든 잠자리 한 마리

 

시험지 받아들고 미로를 헤매던 아이들

일제히 잠자리가 그리고 간 자리에 눈길을 준다

 

유리창 너머 파란 하늘로 쏜살같이 날갯짓하다

부딪히고 다시 부딪히고

 

아이들은 활자와 도형이 종횡무진하는 길 위에서

가도가도 막은 창 다시 가도 막은 창

 

파닥거리는 잠자리에게도

가쁜 숨 몰아쉬는 아이들에게도

 

출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