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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용미 曺容美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등이 있음. treepoem@hanmail.net
불도
금골산 아래 오층석탑을 보고 나와 안치리 소포리 상고야리를 지나면 심력사가 있던 금노리에 닿는다
해질녘 날아가는 학에 마음을 빼앗긴 스님이 학을 잡으러 심력산에서 날아올랐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곳
학을 놓친 스님의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가 되고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가 되고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가, 윗옷이 떨어진 곳은 상의도가
발가락이 떨어진 데는 발가락섬, 손가락이 떨어진 데는 손가락섬이
그리고 심장이 떨어진 곳은 佛島가 되었다
가학리나 세방리의 일몰을 만나면 한동안 옛 스님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심장을 바다 저 멀리 떨어뜨리게 될 사람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불도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
물이 없는 불도에서 묵언수행을 했다고 한다
삼년 동안 붉은 가사와 검은 장삼을 버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심장이 떨어져 생긴 섬에서
눈이 오면 꽃이 핀다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향이 그윽한 비파나무 아래에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룽거리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붉은 심장을 주웠다
붉은 그것을 들고 돌아서서 나는 더듬더듬 처음인 양 그를 향해 말을 꺼내어보았다
검은 달, 흰 달
섬의 동쪽과 서쪽은 죽음과 삶만큼 닮아 있고
또 빛과 어둠처럼 달랐다
동쪽에서는 검은 달이, 서쪽에서는 흰 달이 떠올라
두 개의 달이 머리 위를 지나기도 했다
섬에서 모든 빛은 다 하늘색 페인트칠을 한
그 창을 통해 모여들었다
그 창으로 쏟아져들어오던
바다를 거쳐온 혼돈과 푸른빛을
모두 다 꺼내어 만져보면
손바닥에서 바람소리가 나기도 했다
흰 달이 검은 달이 되고
검은 달은 흰 달로 변해
바다 쪽으로 오래 끌려나가는 날이 있었다
나는 이 지상의
어느 먼 별에 와 있는 것일까